이세돌의 경우 2003년에 LG배에서 이창호에게 한번 이기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국내 도전기에서 수없이 이창호에게 패배만 했지.. 

그래서 이세돌도 이창호의 후계자 보다는 도전자의 느낌이 더 강했어.

그러던 중에 2004년에 갑자기 최철한이 급부상 한거야

그 이전에도 유망한 신예기사 중 한명으로 인정받았지만

이세돌, 송태곤, 박영훈에 비하면 기대 수준이 비교적 낮았지.

그런데 그런 최철한이 국수전, 기성전에서 모두 도전자가 돼.

당시 국수, 기성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던건 당연히 절대강자 이창호였고.

국수전 5번기, 기성전 5번기, 도합 10번기를 이창호와 두게 된거지.

그 당시 나를 비롯한 많은 바둑팬들은 이창호의 승리를 점쳤어

유력한 포스트 이창호로 꼽히던 이세돌, 박영훈도 이창호에게 타이틀을 빼앗지 못했으니까

이창호가 신예 강자를 어떻게 혼내주느냐가 관심사였는데..

뜻밖에도 최철한이 국수전은 3:2, 기성전은 3:1로 승리를 하면서

천하의 이창호를 상대로 타이틀을 2개나 빼앗아 온거야..

심지어 그 다음 해에는 이창호가 국수전에 도전자로 다시 올라왔지만

최철한이 3:0으로 퍼펙트 방어를 해버리면서 또 한번 화제가 되었어.

바로 그러던 시기에 제 5회 응씨배가 진행되었지.

다들 알겠지만 응씨배는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이런 순서로 우승자들이 배출되면서 당시 최강이던 한국바둑계의 계보를 보여주는 듯 했어

그리고 바로 이 5회 응씨배 결승에 최철한이 진출을 했지.

사람들은 이창호의 후계자가 어쩌면 이세돌이 아니라 최철한이라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어.

이세돌은 하지 못했던 이창호 타이틀 빼앗기를 무려 2번 이상 해냈고

마침 그 타이밍에 최철한이 응씨배 결승까지 진출했기 때문에

응씨배 우승과 함께 이창호 시대에서 최철한 시대로 넘어갈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최철한은 그 당시 결승 상대였던 창하오에게 1:3으로 패배했어.

한국기사가 응씨배 결승에서 패배한 최초의 사건이었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최철한은 세계대회에서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

4년 후 독한 마음을 품고 다시한번 응씨배 결승에 진출하게 돼

그리고 마침 그 때 결승 상대는 또 한번 이창호

최철한은 그 이창호를 이기고 응씨배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최철한이 1인자였던 시대가 있었다고 기억하지는 않아

이창호에게 타이틀을 빼앗고, 유일한 세계대회 우승도 이창호에게 이긴..

어찌보면 이창호 킬러, 이창호의 천적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지.

그런데 만약 제 5회 응씨배에서 최철한이 창하오를 이기고 우승했다면

그 때는 정말 이세돌 시대가 아닌 최철한의 시대가 열렸을까?

이세돌은 정말 아직까지도 이창호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린 적이 없어.

국내기전의 모든 도전기에서 승리는 언제나 이창호였고

2008년 이세돌이 충분히 성장해서 이미 최정상급이 되었을 때에도

응씨배 준결승 3번기에서 이창호가 2:0으로 승리했지

이세돌의 전성기라던 2009 시즌에도 바둑왕전 결승에서 이창호가 승리했어

이창호는 전대 1인자 조훈현을 직접 꺾고 계보를 이었지만

사실 이세돌은 이창호를 직접 무너뜨린 적은 사실상 거의 없어

(물론 이창호에게 역사상 최초로 5번기 패배를 안겨준건 대단한 기록이지만..)

오히려 돌부처 같던 이창호를 무너뜨린건 사실상 최철한이었는데

최철한이 그 계보를 잇지 못한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리고 어긋나기 시작한건 역시 응씨배 준우승이었는데

만약 그 때 최철한이 우승했다면..

한국바둑의 계보는 조훈현-이창호-최철한이 되었을까..

무의미하다면 무의미한 고민이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