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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질주 (12-2부: 시즈오카 -> 도쿄)

정태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7.07.21 08:28:46
조회 5551 추천 1 댓글 14



애초의 계획대로

짐 풀고 싸기가 귀찮으니 침낭을 안풀려고 했는데


계속 추워지고 소름이 돋고

이가 덜덜 떨려서 딱딱 소리가 나기 시작하니


더 이상 체온이 떨어지면 위험하겠다 싶어서

침낭을 꺼낸다음 자크를 완전히 열어 이불처럼 펴고

온몸에 둘러 싼채로 버너에 닿을락 말락 앉았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가스를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꺼질락 말랑한 정도로 세기를 조절해 놓고

불을 쬡니다.




더이상 추워지진 않는데

바닥의 냉기와 함께

서늘한 느낌은 계속 됩니다.


앉아서 뭔가라도 생각을 해볼려고 하는데

정신이 멍해서 뭔가 딱히 생각도 안나고




그냥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은

그런 생각밖에 안나서 더 괴로워 지길래


그냥 멍하니 앉아 마음속에다 인내할 인자를 새기며(손으로는 쓸줄 모름)

시계만 확인하고 앉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아져서

차라리 지금 확 올라가 버릴 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은 지금도 충분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이 상태에서 오르면 확실한 자살행위가 될 듯한 느낌에

죽는 것보다는 심심한게 나으므로

잠자코 있기로 합니다..



그래서 그냥 그러고 있다보니

아무리 꽁꽁 덮어쓰고 있어도

점점 침낭이 차갑게 느껴지면서

왠지 엄청 어린시절때 잠자리에 들기전에

상상했던 것이 문득 떠오릅니다.


저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간에

잘려고 딱 누웠을 때에 아직 체온이 전해지지 않아서

차가운 상태의 이불을 엄청 좋아했었는데


그 차가움이 가시면

더워지고 짜증나서 잠도 안오고 해서

차가운 기운이 없어지기전에

잠들려고 무진장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각종 수면 유도법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한가지 방법을 찾아내었는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은채로 눈을 감고

집에서 내 방, 혹은 내 침대만

어떤 마법같은걸로 분리되어 날아가서


알래스카 같은곳으로 떠내려 가는

상상을 하는것입니다.




실제 알래스카가 어쨌든간에 상상속에 있는 알래스카

그 곳은 춥지만 햇빛이 따뜻하기에


이불만 시원한채로 보존되어

쾌적하게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장소가 있다는 등의


시원한 상상을 하면서 등을 붙이고

꼼짝달싹 하지 않으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었던

그때의 아련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결론은 ..역시 현실은 냉혹한 것이구나 하는

성냥팔이소녀 껌 팔아먹는

앞과뒤에밑도끝도없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식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다시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3시 30분이 지나는 시간,

조금만 더 버티면 출발인데 너무나 졸립니다.


아무튼 어쩌다 계획이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어째서 이런 계획을 세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중에


잠시 꾸뻑 졸았는데 버너의 냄비 받침부분에

손 바닥이 살짝 데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다시 침낭을 덮어 쓰고 앉아있으니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대로 옆으로 풀썩 꼬구라져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뺨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바닥에 깜짝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밖이 조금 밝아져 있기에 순간 당혹감이 들어

서둘러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5시 10분



가스가 다 되었는지 버너는 꺼져 있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자서 그런지 뺨이 얼얼합니다.

(차칫했으면 입이 돌아갈 위기)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의식 불명 상태가 된 듯 합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떡실신은 했지만 잠은 들지 않았나 봅니다.


주위를 둘러 보니 비도 안내리고 고요한 것이


태풍이 오다가 비껴가던가

애초에 태풍같은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태풍 전의 고요함일 수도 있고요..




해도 뜨고 했으니 빨리 출발하려고

짐을 꾸리고 있는데 건물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아저씨가 나와서,


여긴 병원이니 이 앞에서 이렇게 있으면 안된다고

빨리 정리를 해달라고 하시고는 다시 들어갑니다.



애초에 멋대로 병원(인줄 몰랐지만)앞에서

죽치고 있었던게 잘못이긴 하지만


이미 정리 중인데 또 정리하라고 이야기를 하니

잠결이라 그런지

왠지 좀 짜증이 납니다.



여튼 그래서 서둘러 짐을 치우고 있는데

아까 그 아저씨가

다시 나오시더니 캔커피를 건네주면서


지금 하코네를 넘을 거냐고 물어 봅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지금 태풍이 오는 중인데

이대로 하코네를 넘는건 위험하고

차칫 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다시 조금 돌아내려가면 겟콘 로드가 나오니 그쪽으로 가면


조금 더 돌아가긴 하지만 하코네를 넘는 것보다

빠르고 안전할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나고야에서 우스이씨에게 들은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코네 목전에서 다시 한번 듣는 동시에

태풍이 온다는 확실한 정보를 듣고 나니


오히려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증폭되는

한편, 본능적인 불안감 때문에

조금 망설여 지기도 하는 느낌이지만..


일찍 일어나서 출발하는 자체가 계획 절반의 성공이고

지금 막 태풍이 불고 있는 것도 아닌데다

비도 내리지 않고 있는 잠잠한 상태이니


일단은 못먹어도 고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한번 마음을 굳히고서

알려줘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짐을 다 챙기고 주고 가신 커피를 마시는데

따뜻한 커피일줄 알았는데 엄청 차가운 커피라

마실까 싸갈까 잠시 고민하다 목마르고 하니 단숨에 들이킵니다.


일어나자마자 차가운게 뱃속에 흘러 들어가니

왠지 속이 허해 집니다.


근데 다 챙기고 이동하려던 중에 보니

장갑 한쪽이 없습니다.


또 뭔가 없어지니까 짜증이

정말 최고조에 달하는데



어디 떨어뜨렸나 하고

짜증내면서 가던중에 보니 쓰레기 처럼 버려져있는

장갑이 보이길래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대략 세시간 전에 라면도 먹고 해서 배는 고프지 않기에

비상식으로 사용할 것들만 몇가지 챙깁니다.


100엔 짜리 초콜렛, 104엔짜리 복숭아 주스, 130엔 짜리 소세지빵~



그리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서 출발전에 결의를 다지기 위한

화장실 셀카를 찍어 봅니다.



그럴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아까 아저씨의 충고가 문득 떠오르면서

혹여 이게 내 마지막 셀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의지가 더욱 결연해 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바로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하코네를 향합니다.

출발하는 시간은 아침 6시 10분!


계산상으로 해지는 시간이 저녁 6시고 치면

밤 8~9시 까지는 안전선이라고 생각했을때


앞으로 약 120km 남았으니 대략 한시간에 10km씩만 가거나

그것보다 조금 느려도 이 짧고도 긴 여행은 끝나게 됩니다.


이런 계산이 나오니 벌써 도쿄에 도착한 듯한 느낌에

왠지 신납니다.


지금 하늘을 봐서는 비도 안내릴거 같고

아무튼 매우 낙관적인 출발입니다.



근데 이런생각도 잠시

낙관적인 출발과는 차별화 되는 인도가 등장합니다.

아까부터 경사가 엄청 심해져서


어차피 타고 올라갈 수는 없지만.

이런 인도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도 짜증나기 때문에

정태준은 짜증이 났습니다.



산에서 만나는 육교의 느낌은 왠지 새롭습니다.


자전거를 들고 올라오는데

팔이 간질간질해서 힘이 안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육교에 올라와 주위를 둘러보니

뭔가 별로 안올라온거 같은데 벌써 상당한 고도가 느껴지는 것이

하코네가 생각보다 쉽게 정복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과는 반대로

아까부터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 다다라서 오르기 시작하니

"사망사고 다발지역" 으로 추정되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표지판을 보고 있으니 왠지 지옥으로 통하는

문 앞에 다다른 그런 기분입니다.


여기 올라온 것 부터가

안전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일단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조심조심 해서 무사히 살아서 도착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해봅니다.





사망!

극락왕생

(으로 멋대로 추정)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미리 명복을 빌어주는 스님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어제 편의점 알바생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앞으로 하코네가 12km 남았다는 것은

앞으로 12km을 이런식으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아까 보았던 스님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면서

눈앞이 살짝 깜깜해집니다.




지금도 충분히 힘들 게 끌고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반갑지 않은 오르막 차로 표지판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천천히 가고 있는데 ..

아놔.

게다가 아까부터 바람이 불어오고 비가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올라가는데 바람이 정말 미친 듯이 불고

비가 매섭게 내립니다.


바람에 나무들이 온통 누워있고 아스팔트에 내린 비들이

다시 튕겨져 올라와 다시 위로 흩뿌려집니다.



태풍이 활동하기 시작한건지

원래 이곳이 이렇게 바람이 부는곳인지 모르겠지만

기상 상태가 한번에 확 바뀌어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깃발이 빠바박 거리는 마찰음을 내며 휘날리고

깃대를 지나는 바람소리가 날카롭게 들립니다.


바람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 정도라

공기 저항을 적게하려고 허리를 최대한 숙이고

자전거를 밀면서 올라갑니다.


카메라 위에 비닐을 덮었는데도

바람 때문에 그 안으로 비가 들어쳐서

사진찍기가 곤란합니다.



이제 겨우 한시간 가량을

끌고 올라왔을 뿐인데 이때까지의 여정중에

가장 힘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해뜨기 전에 오르려 시도 했었다면 오도가도 못하고 여기서

얼어죽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꾸준히 계속 오르고 있으면서도

하코네를 무사히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어서

절로 욕이 나옵니다.


마음같아서는 지금 바로 돌아내려가서 겟콘인지 개콘인지

여튼 그 뭐시기로 확 가 버리고 싶은 느낌입니다.



이건 뭐라고 적혀있을까요


L^^ 다음세상에서 또 만나요


아무튼 이런 내용이 아닐까요

아님 말고..




의외로 빨리 끝나는 오르막 차로.. 지만

끝나던 말던 경사는 계속 되므로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원래라면 이 뒤로 내리막이 나와야 할텐데..



내리막 대신 멀리 중간 휴게소 같은 것이 나옵니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끌고 올라갑니다.

올라가니 작은 음식점과 슈퍼 그리고 자판기가 놓여져 있습니다.



마땅히 비를 피하면서 쉴데도 없고 해서

자판기 옆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는데

아주 포근하고 따뜻한것이..


자판기가 음료수를 판매하는 기능 말고

난로의 기능도 겸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 게 되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인도가 공사중이라 폐쇠한다는 것 같은 표지판이 보입니다.


어떻게 된일인지 슈퍼에 들어가서 물어 봤더니

옆쪽으로 건너가서 샛길을 이용하라고

알려주십니다.



일러준 길로 갔더니 환장할 것 같은 길이 나옵니다.

돌이 비에 젖어 미끈미끈한걸

잘못 밟아서 한번 넘어질뻔하고 나니

정신이 오락가락 합니다.



엠티비도 아닌걸 끌고 올라갈려니

자꾸 미끈거리고 넘어질거 같아서

환장할거 같지만


길이 똑바로 무조건 올라가는것이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듯한 불안감은 없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옆에 건물이라던지

나무가 많아서 바람이 살살 부는 것도

괜찮긴 합니다.




환장길을 다 올라오니 뜬금없이 이런곳에 호텔이 떡하니 등장합니다.

6800엔 내고 하루 자고 갈까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올라가다 보니 어린이들이 그린

환경보전 포스터 같은게 붙어 있습니다.



태풍이 부는날 하코네에 자전거를 끌고 오는 사람들의

심정을 그려놓은 포스터인 것 같습니다.


그림을 잠시 감상후에 다시 올라가는데

갑자기 그분의 신호가 마구 옵니다.



차가운 커피를 먹고 찬 비바람을 계속 쐬어서 그런지

그것도 단단한 그분이 아니라 무른 것으로 추정되는 그분이

삐질삐질 새어나오실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근처에 절대 화장실이 있을거 같지도 않고

차칫하면 풀숲에 들어가서 싸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엉덩이에 정신과 힘을 집중한채로

버티면서 올라갑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대장이 꼬였다 풀렸다 하는 느낌이 들면서

등줄기에서 땀이 솟아오릅니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으로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건물이 등장합니다.

사람 사는곳이니 화장실은 있으리라 생각하고


서둘러 가봤더니 약간 떨어진 곳에 문도 제대로 안달려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습니다.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니 바로 까고

그분을 보내 드립니다.


근데 너무 한꺼번에 보내드렸더니

내장까지 빠져나간 느낌으로 속이 허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올라가는데

아까 속에 들어있던걸

몽땅 내보내서 그런건지


정말 뼛속까지 추운 기분입니다.

갈비뼈 사이로 바람이 슝슝 들어와서

내 갈비뼈가 몇 개인지 정확하게 셀 수 있을 것 같은

생물학적 자신감이 생깁니다.


올라가던중 쌩뚱맞게 전화부스가 있길래

서둘러 들어갑니다.



단지 전화부스에 들어왔을 뿐인데도 엄청 따뜻합니다.

카메라를 보니 추운날씨와 비 때문인지 또 렌즈에 습기가 차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질 않습니다.


게다가 올라오면서 몇장 안되는

사진을 찍는동안에도 비를 꽤 맞아서

고장이 날 것 같은 느낌에 d50을 휴지와 함께 잘 포장해 놓고

스페어 카메라를 꺼냅니다.



스페어 카메라로 공중전화 안에서 셀카를 찍어 봅니다.

추위에 안면근육이 경직되서 양 볼이 얼얼하고

표정관리가 안됩니다.


공중전화 부스에 있으면서 어제 남은 초코 샌드와 함께

초콜렛도 몇 개 집어 먹고

복숭아주스가 아닌 복숭아 물을 마시면서

한숨 돌립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계속 있고 싶지만

점점 비도 많이 내리는 것 같고 바람도 거세지는 느낌에다



자전거 속도계로 확인해본 결과

현재 7km 가량을 이동 했지만


아직 얼마만큼의 거리가 남았는지도

감이 안잡히는 상태라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다시 끝없이 이어지는 미끈미끈한 인도를 오릅니다.


얼마나 남았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표지판 같은 것도 없고 언덕 끝은 보이지도 않고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많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라는 시구가 불현듯 떠오르면서 왠지 분통이 터집니다.



하코네 VS 정태준의 대결이 3시간째

벌어지고 있는 하코네산의 어딘가에서


정태준은 갈곳 없는 분노를 느끼며

앞이 점점 깜깜해 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있다가 등장한 표지판

거리를 보니 하코네가 4km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출발할 때가 12km 전이었으니 8km를 달려왔습니다.



자전거 속도계를 확인해보니

그동안 헤멘곳이나 돌아온 길과 상관없이


표시된 현재 이동 거리와

표지판의 표기가 대략 일치하는 거리 표기라


12km 만 채우면 하코네를 정복하게 되는거니

자전거 속도계 거리 표기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근데 3시간에 8km 이면..

한시간에 대략 2km 조금 넘게 온셈인데

아직 두시간을 더 끌고 올라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점점 더 추워지고 바람도 거세지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정말 얼어 죽거나

지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잠시 걱정을 하면서 올라가던중에 누군가가 어기적 어기적

내려오고 있길래 봤더니


오마이갓!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내려오고 계신 분이 감속을 하는데도 바람때문인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지나쳤다가



아래에 정지 하시더니

어이~!! 하면서 서로 불러서


태풍속의 알 수 없는 만남을 가집니다.



태풍속에 둘다 경황이 없어서인지

서로 소개같은 것도 없이


이런 날씨에 왜 하코네에 왔느냐고 서로 물어 보고

서로 미쳤다고 이야기 하면서

한 바탕 낄낄댑니다.


이야기 하는 와중에 보니 옷을 참 따뜻하게 입고 있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하코네 반대쪽에서 올라와서

벌써 내려가고 있는걸 보면

어지간히 일찍 출발했거나.


지금 정상이 얼마 안남았거나.. 하는 생각에

대뜸 정상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봤더니


조금있으면 나오는데 조금 더 가야 된다는?

그런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무튼 뭐든지 간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기분이 나아집니다.



여튼 자전거를 뉘어 놓고

그외 서로 여행했던 이야기등을

짤막하게 합니다.


아예 투어링용 자전거에 패니어까지 달고 있는걸로 봐선

작정하고 여행을 다니시는분 같은데



출발을 어제 하셨다고 하는걸로 봐서는

정태준과 같이 일기예보를

별로 신경쓰지 않으시는분 같습니다...



좀더 이야기를 오래 했으면 좋겠지만

날씨가 점점 나빠지는것 같고 서로 가야할 길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고 몸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서로 해주고선 각자 갈길을 다시 갑니다.


근데 보내고 나니 서로 연락처라던가 이름이라던가를

하나도 교환하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나중에

이 하코네를 무사히 넘어 목적지에 도착하면

서로 어떻게 무사하게 도착 하였는지

다시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한데 말이죠.



잠시후 등장한 표지판에는

아까 만난 자전거 여행자분의 말대로

1km 지점에 하코네 주차장 같은게 나온다고 합니다.


뭔가 많이 표식이 붙어 있는걸로 봐서

꼭대기에 있는 휴게소 같은 것인가 봅니다.


길어 봤자 30분만 올라가면 이제 꼭대기!


확실한 목표도 생기고

아까 여행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하코네를 지나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힘이 나면서 즐거운 느낌입니다.



실질적인 도움이 없이

다른사람의 존재만 확인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다니

당연하면서 불가사의하기도 한 어떤 힘의 존재가

아주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고맙고 좋아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왠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워서 웃는게 아니라 웃기에 즐겁다"

라는 말이 떠올라서


표정은 잘 안지어지지만

자동으로 실실 쪼개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는 정 반대로

점점 바람이 거세지더니


눈뜨기조차 힘들어지고 쓰고 있는

버프 모자가 자꾸 뒤집어져서 날아가려고 하기에




모자를 벗고 눈을 질끈 감은채로

자전거를 악으로 밀고 가는데


펄럭거리는 깃발소리가 안나길래 보니

깃대가 바람에 부러져서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길래

남은 깃대를 잘라내서 공기저항을 적게 만들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니


문득 용필오빠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듣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밀려와서



나레이션을 제외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크게 불러제끼면서

열심히 하코네를 오릅니다.



조용필 - 킬리만자로의 표범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이 없으면 또 어떠리..




주둥이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무한반복 하다보니

어느새 등장하는 우리의 정상!!


일본 국도의 최고높이에 있다는

하코네 고개를 드디어 정복하고 만것입니다.


평평한 땅을 보는 것이 이 얼마만인가요

건너편으로 보이는 내리막이 기분 째지게 만듭니다.


역시 정상이라 그런지 일본 국도에 와서

처음 보는 높이 표시!


근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합니다.



얼마 안남았다고 조금 오버페이스로 올라오고

거세진 바람 때문에 너무 춥기도 해서

아무튼 지금 상태로 내리막을 바로 내려가기는 힘들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 장비들을 재 점검 해봐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하코네 정상의 장애인용 화장실..

오늘 이런 날씨에 누군가 여기 화장실에 들릴일은 없을테니

낮시간에도 잠시 멋대로 실례하기로 합니다.

실례안하면 정태준이 죽습니다..


화장실 안에 왠 침대같은 것도 있고

특히 매우 따뜻하고..

아무튼 매우 좋습니다.


거울을 보니 입술이 파리한게 반송장 상태입니다.



젖은 옷을 모두 벗고 수건으로 몸을 닦은뒤

옷들의 물기를 전부 짜내고

젖은 전자기기들을 닦고 충전시킵니다.




화장실 문 사이로 불어닥치는 굉장한 바람소리를

듣고 있자니 소름이 쫙쫙 끼치면서

아까 그대로 옷을 입고 가면 얼어 죽을것 같은 느낌에

뭐라도 더입어서 보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옷을 그냥 몽땅 껴입을려다가

잠시 생각해보니

저번에 유용하게 썼던 비상용 보온포가 떠올라서


두 번 접어서 적당한 크기로 만든다음

복대처럼 온몸에 두른뒤 위에 옷 하나를 더 껴 입고

그위에 또 방풍 자켓을 입었습니다.


확실히 보온효과가 있는지

배가 따끈따끈한게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속이 허전한게 배가 고파서

아까 사온 소세지 빵을 먹는데

빵이 맛이 갔는지 혀가 맛이갔는지

아무 맛이 안느껴지고

그냥 목메이는 눅눅한 빵을 씹고 있다는

생각만 듭니다.



중간에 먹다가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먹는게 안먹는 것보다 나을 듯하여

복숭아 물과 함께 빵을 꾸역꾸역 씹어 삼킵니다.


근데 빵을 씹으면서 위화감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니

여기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기전에 정보를 얻고왔던 여행기에서

보았던 사진에서는 표지판이 이것과 달랐고


"1번 국도 최고점" 이라는 말이 표기되있다고 하였는데

여긴 전혀 그런말도 없고..


아까 만난 여행자분의 말도 떠오르고 해서

종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확신에 가까운 의구심이 듭니다.



아 제발..

차라리 몰랐다면 그냥 닥치는대로 갔을것을..

이게 끝이 아니라는것은 인지하고 나니

아주 죽을맛입니다.


그렇다면 저 내리막을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건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대부분 최악)이 듭니다.


국도 최고점 표시라면 여기보다 더 높은곳에 있을텐데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게 되는걸까요?



뭔가 본격적인 지옥문으로 다다른 것 같은 느낌에

오금이 저려오는 느낌입니다.


아무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걸 알고 나니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짐을 꾸리고 우비를 입습니다.



버프 모자를 쓰고 우비 모자를 쓴뒤

다시 버프로 턱과 머리를 감싸서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봉쇄를 합니다.



물론 보기는 굉장히 안좋습니다만..

머리가 꽉 조여서 정신이 또렷해 지는 기분입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뺨을 두어번 찰싹 찰싹 두드린뒤

미칠 듯한 비가 몰아치는 밖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부모님 제게 힘을 주세요!!



원래라면 여기서 기념촬영을 했겠지만

여기가 아니니..

기분 잡쳐서 그냥 지나치기로 합니다.


처음으로 갈림길이 보이길래

잠시 어디로 가야할지 표지판을 꼼꼼히 확인한뒤

1번 국도를 가리키는 쪽으로 향합니다.



초장부터 엄청난 경사로 내리막이 나오는데

역풍이 불어와서 모자가 벌렁벌렁 뒤집히고

우비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펄럭펄럭 거리는중에


브레이크도 제대로 안드니 제대로 금상첨화..

브레이크는 잡는둥 마는둥 하고

그냥 발을 땅에 붙인채로 엉금엉금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힘들 게 경사를 내려가기도 힘들텐데..

상황이 참 뭐같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내려왔는지는 모를정도로

정신없이 내리막을 10여분 내려오니

갑자기 왠 마을이 등장합니다.


뭔가 완전히 쌩뚱맞은 느낌에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여기가 진정한 하코네인가 봅니다.



이건 또 뭔가요..

왠 바다가 산중에?,..

왠지 어안이 벙벙해지는 느낌입니다.



지레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내려가는 것 없이

완만하게 끌고 올라갔다가 완만하게 내려갔다가

또 다시 평지가 이어집니다.



일본에 사공이 많은지 배가 산으로 와있고..

이게 대체 뭘까요


이 산중에 대체 왜 이런거시...


설마 지금 내려온걸로 하코네 고개를 완전히 넘어서

내려온걸까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계속 등장하는 오르막.

두 번째 오르막의 본격적인 시작인가 봅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산을 하나 넘어와서 그런지 바람은 거의 안불어서 좋은데

다시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산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

왜인지 몰라도 인도가 전혀 없는데다


마을 근처라 그런지

아까부터 버스같은게 자꾸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 거슬리게 합니다.



그건 그렇고 멀리 앞으로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이 망할놈의 산은

저 끝까지 올라가야 끝이 나나 봅니다..

대략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한시간쯤 끌고 올라왔을까..

오랜만에 표지판이 보입니다.

근데 어어.. 뭔가 눈에 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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