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사실 제목의 얘기는 출붕이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내 군대시절 경험과 관련지어 말해보고자 한다.
군 시절을 말하기에 앞서 입대 전까지의 나는 매우 가난하고 불행했다. 고3 수능 망치고 부모 지원 1도 없이 재수 시작했는데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월 10만원짜리 외딴 하숙방에서 생라면 부숴먹으면서 지냈다.
결국은 못 버티고 향한 곳이 군대.
그런 나에게 군대는 천국이었다. 그저 따뜻한 밥을 준다는 이유 하나로.
맨날 굶거나 차디찬 생라면을 먹던 내게 싸구려 정부미로 만든 푸석푸석한 쌀밥에 똥국은 오마카세 부러울 게 없는 만찬이었다. 남들 집밥 투정할 때 난 밥 한 톨도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물론 짬찌일 때 군생활(선임들 전투화 전부 걷어서 혼자 다 닦고, 밥 먹으러 갈 때 열 몇개 되는 수저 혼자서 다 씻고, 각종 청소 및 분리수거 혼자 다 하고, 빨래도 대신 다 하고 등등)은 하나같이 좆같은 것이었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이전의 삶이 너무도 좆같았으니까.
오히려 재수한다고 맨날 혼자서 외로웠는데 갈구는 사람이라도 옆에 있으니 좋았다.
그러다 결국 난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고 말았다.
전문하사를 해버린 것이다.
당시 병장 월급이 10만원 수준이라 모은 돈은 없었고, 이대로 전역해봤자 다시 거지 같은 생활로 돌아갈 거 같아 생활비라도 벌어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군수과장이 내게 딜을 걸었던 것.
내겐 10일의 영창 기간이 있었다. 내 맞선임이 휴가 복귀할 때 휴가자들 태워주는 운전병을 통해 예거마이스터 한 병을 밀반입 했었는데, 창고에서 같이 까먹다가 걸려버렸다.
알다시피 영창을 갔다오면 군 전역 날짜가 갔다온 날짜만큼 연기된다.
여기서 군수과장이 말했다. 내가 전문하사만 하면 어떻게든 자기가 손 써서 전역 10일 연장 안 되게 해주겠다는 것.
거기다 전문하사로 군 생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자기가 밀어주고 적극지원해주겠다는 것.
사실 뭐 10일 빼자고 6개월 더 한 게 병신 같긴 한데, 생활비도 있고 과장이 워낙 평소에도 잘해준 사람인 데다 더 잘해준다고 하니 덥석 받아버렸다.
문제는 전문하사 되는 게 확정이 되고 발생한다.
여기서부터 본론이 시작된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과장이 영창 날짜에 대한 얘기는 싹 무시해버리고, 태도까지 이전과 확 달라진 것이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싶어서 알고 봤더니 조만간 다른 부대 간다더라.
와씨, 뭐 가는 건 그렇다 쳐도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평소에 농담 따먹기 잘하던 웃는 모습은 싹 사라지고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던 사람이 그 뒤로는 나한테 전부 다 던지고 담배만 피러 가더라.
지원은 얼어죽을.
그 상태로 얼마간 지내보고 느꼈다. 이 사람은 일시적으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 이러는 게 아니라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그동안 정말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웃긴 게 과장만이 그런 게 아니었음. 오히려 이 사람이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병사 때 바라보던 간부들의 모습과, 간부 대 간부로 사석에서 마주한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180도 달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당시 부대에 개FM으로 통하는 참군인 중사.
진짜 딱 느낌이 그 해병대 로보캅 교관 이정구 같았음.
당직설 때 손가락으로 먼지 하나 안 나올때까지 체크하고, 주말엔 예외없이 전 생활관 밖에서 모포 싹 털게 했음. 다른 당직사관은 당직 때 다 폰게임하거나 자는데 잠도 절대 안 자고 계속 순찰다님.
좆같긴 했는데 그만큼 자기 일에 프로 같은 모습 보여서 와 그래 이런 사람이 군인 해야지, 하고 나름 존경도 했었음. 나 말고 다른 병사들도 전부 인정했고.
그런데 와 미친.
그 사람 사는 군인 아파트 가봤는데 그냥 진짜 개쓰레기 천국이더라.
술병과 먹다 남은 치킨상자와 피자판 등이 나뒹굴었음.
당연히 먼지 하나 안 나오게 청소된 집일 줄 알았는데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님.
술자리 강제는 기본이고, 소주 따르는데 소주병 그림 안 가렸다고 존나 뭐라하고 사석에서 입이 걸레임. 병사들 앞에서 말하던 격식 있는 모습은 진짜 온데간데 없고 그냥 욕 잘하는 양아치 새끼였음.
그리고 음주운전이 그냥 패시브(그것도 만취 상태로).
술자리 끝나고 사람 여섯 명이 있고 소나타 한 대가 있는데 자연스레 나보고 트렁크에 타라고 하더라(애초부터 억지로 끌려간 술자리).
와 관짝에 누운 시체마냥 트렁크에 누워서 가는데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일반 도로에서 기본 100km 이상을 밟아대는데 코너에서도 속도를 안 줄임. 운전 내내 뒤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양쪽에 무한으로 쳐박았음.
같이 탄 사람들 개쫄아서 담당관님! 속도! 속도! 하는데 이 미친새끼 오히려 속도 더 올림. 가는 30분 내내 차안에서 담당관님! 담당관님! 소리만 반복.
이땐 진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음. 인생 처음으로 기도라는 걸 했음.
그런데 이런 일이 헤프닝이 아니고 그냥 일상이었음.
같이 탔던 새끼들도 역시나 알고 보니 음주운전 기본으로 하는 놈들이었고, 병사 시절에 다 평가 좋았던 간부들.
하사 중사 간부들 사는 숙소랑 아파트 웬만한 덴 다 가봤는데 거의 다 개판이었음. 당직사관으로 검사 빡세게 했던 놈일수록 더 심했음.
그러면 위에 놈들은 괜찮느냐?
병사한텐 잘 사주는데 뒤에선 하급 간부들 다 빨아먹는 대위.
병사 앞에선 정의로운 척 다하더니 뒤에선 군대 기름이나 보급품 식량 가져가는 상사, 원사.
병사들한테 선망의 대상이자 아버지라고 불리던 준위는 자기 뭔 실적 채우려고 내 집주소 마음대로 바꾸게 강요하고, 행사나 자기 사적인 일 있을 때마다 무일푼 대리운전 시켰음.
전체적으로 그냥 병사 때 평가와 일치하는 놈 찾기가 어려웠음.
되려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 있었음.
만약 내가 전문하사 안 하고 병사로 전역했으면 저 사람들 다 내 머릿속에 참군인으로 남았을 거임. 병사들 앞에서의 모습과 본모습 다른 사람이 이렇게나 많고, 이렇게나 다를 줄은.
마치 학부생 앞에선 수업 평가나 인망이 자자하다고 소문난 교수가 대학원생 앞에서 악마가 되는 느낌.
기부 많이 하거나 방송에서 보이는 착한 이미지로 빨고 하는 게 아직도 많이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럴 사람은 백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 체감은.
실제 지인에 대한 평가도 수시로 달라지는데 갓 친해진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그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
가면 그 자체인 한국인의 겉모습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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