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우리는 무심코 이 단어를 많이들 써왔지만 그 본 뜻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철학 사조 가운데 실존주의는 작금의 시대까지도 영향을 미쳐 떡볶이 어쩌구 저쩌구의 온갖 자기계발서를 찍어내고 있지만,
실존주의라는 개념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잡혀있지 아니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목적보다 존재함 그 자체와 주체적 존재성 및 개별적 자아를 중시'하는 철학 사조로,
1940년대 유럽이 겪은 수 많은 전쟁과 실직 사태 등에 따라 등장한 인간 소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실존'과 상응하는 '본질' 자체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위에 있는 냉장고의 본질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해주는 기능이자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냉장고가 고장나 차갑지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냉장고가 아니고, 큰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즉, 냉장고의 고유한 기능인 본질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의 존재 가치 또한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실존주의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알려진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참고로 얘는 소련 기밀 문서 나오기 전까지 북침설을 펼치던 그쪽 양반이다)
인간은 사물과 달리 본질, 즉 고유한 목적과 기능이 결정되지 않은 채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인 실존이 앞선다는 것이다.
사물은 애초에 본질(목적)이 이미 결정된 채 실존(존재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지만,
인간은 본질이 결정되지 않은 채 우연히 세상에 내던져짐으로써 이후 본질을 창조해나가고,
이러한 본질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80억 인구의 목적과 기능은 모두 달리할 수 밖에 없다.
즉,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속성을 통해 존재하게 된 인간은 주관적 선택, 행동으로 스스로의 삶을 창조해나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삶의 시기에 따라 또한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사물처럼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본질이라는 것은 단연코 있을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라면 또한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이라면 공통된 절대적 본질이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예컨데, 학생이 학생다워야지라는 표현이나 '남자는 이래야지' 라는 표현 등이 그 예일 것이다.
다만, 실존주의의 또 다른 거장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우연히 이 세계에 내던져져 사는 존재이니만큼
그 어떠한 공통된 본질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빈 껍데기로서 삶을 지속해가는 존재일 뿐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렇듯 실존주의 사상은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주장하며, 당시 혼란스럽던
유럽의 노동 매커니즘과 허무주의 관념에 큰 충격을 가했는데,
이번 시간에는 현대 실존주의 철학을 같이하는 철학가 4명을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나누어
각각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로 나누어 구분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
우선, 오늘은 키르케고르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키르케고르는 부유한 양모 상인 출신의 아버지 미카엘과 어머니 아네가 각각 57세, 45세일 때 7남매 중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러다가 키르케고르는 성인이 되기 전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첫 번째 부인이 죽은 후 결혼한 하녀 출신이었다는 것과
일탈을 하면서 항상 신에 대한 기도보다도 저주와 음해를 지속했다는 비밀을 듣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혼인 비해소주의라는 교회법으로 인해 이혼이나 재혼 함부로 못함)
쨌든 그러다보니 키르케고르 아버지 미카엘은 자신의 원죄로 자녀들이 단명할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7남매 중 장남과 막내 키르케고르를 제외하곤 모두 33살 전에 죽었다.
그러다보니, 키르케고르 또한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함, 소극적 성격을 달고 살 수 밖에 없었고
매우매우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만을 연명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삶을 비추어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초조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그러한 원인을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에서 찾게 된다.
매 순간 놓여 있는 선택과 결정의 상황에서 인간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에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불안에 따라 인간은 죄를 짓고, 또 죄는 불안을 낳고, 이를 피하고자 방탕을 택하는 악순환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회피는 곧 자신처럼 절망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러한 회피가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는 것.
왜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칭했냐면
인간은 우선 방탕에 빠져 절망인지도 모르는 무지의 절망(1단계)에 빠진 후,
쾌락의 유한성을 깨닫고 오만함에 빠져 신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반항의 절망(2단계)에 빠지고 나선
최종적으로, 자신의 취약함을 깨달은 채 자살하기에 이르는 죽음의 절망(3단계)에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절망은 곧 신과의 단절이자 포기라고 키르케고르는 칭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쨌든 키르케고르에게 인간은 무한성과 유한성, 자유와 필연성 등 모순되는 양극의 종합체 사이에 놓인 존재이다.
이러한 모순 사이에 놓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기에 능동적으로 자기 자신을 창조 및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키르케고르는 근대 철학이 기존에 가졌던 절대적 진리의 보편화를 명백히 배격했는데,
이러한 객관적 진리와 지식은 선택의 무수한 갈림길에 놓여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에 의해 주체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지식과 편견, 선입견 등에 의존하게 하여 무수한 절망과 자기 책임만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여기 후라이드 치킨만을 치킨이라고 보는 후라이드 철학 학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철학 사조는 많은 시대를 거쳐 객관적 진리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게 되면 후라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절대적인 진리에만 생각을 의지한 채
현재 이 순간에 놓여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주체성과 개별성을 곧 진리이자 실존의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주체성이 곧 진리다'를 실존주의적 어젠다로 삼았는데, 이 문장조차도 남을 구속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즉, 주체성이 곧 진리라는 문장마저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철학으로 자리잡히면 내로남의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집필한 많은 책과 논문을 익명으로 출판해 독자들의 해석을 중시했고,
심지어는 또 다른 익명으로 자신의 낸 책에 또 다시 익명으로 비판하는 등 디시로치면 다중이 짓을 하며 주체적 실존을 강조했었다.
그는 이러한 실존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심미적 / 윤리적 / 종교적 단계로 나누어 구분했는데,
그 단계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제 1단계인 '심미적(미학적) 실존 단계'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필연적인 유한함이라는 한계에서 탈피하고자
동물적이고, 감각적이며, 향락적인 쾌락과 사치 및 유흥을 누림으로써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무제한적인 쾌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로버트 여키스의 성과 곡선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자극(쾌락)이 오히려 지속화되면 인간은 무뎌지고, 스트레스가 도리어 쌓이게 된다.
쾌락은 무뎌질 수 밖에 없으며, 현실 세계 속 유한한 인간은 무제한적 쾌락을 추구하지 못한다는 한계에 봉착하여
또 다른 절망에 빠지게 되는데,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절망을 '역설적 절망'이자 다음 단계와의 경계선으로서 '이로니(Ironie)'라고 부른다.
쾌락을 추구하는 심미적 실존 단계에서의 절망은 곧 역설적으로 쾌락을 좇는 관념으로부터 나와
스스로를 반성하는 삶을 조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인간은 내면에 있는 양심의 목소리를 통해 여전히 심미적 단계에 머무를 것인지, 윤리적 실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두 번째, '윤리적 실존 단계'에 도입하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쾌락만을 좇던 이기주의적인 동물적 나로서의 존재에서 벗어나
사회적, 시민적, 역사적 실존으로 타인 및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며 타자를 책임에 기반한 관계 대상으로 평가한다.
키르케고르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보편타당한 도덕적 의무(칸트의 것과 유사하다)를 부과하여 자기 완성을 목적에 둔다고 보았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이러한 노력은 어느새 절대자인 '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오만함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쾌락은 일시적임을 깨닫고, 윤리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앎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 빠지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유머(Humor)'의 개념을 통해 인간 자체의 실존적 삶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다.
유머는 말 그대로 인간이 주체가 되는 윤리적 영역과 마지막 단계인 종교적 단계의 경계선으로,
말 그대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아이러니한 모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러한 모순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내적 갈등을 유머로 회복하고자 하는 하나의 초연성인 것이다.
이 유머의 경계에서 나아갈 때 비로소 종교적 실존으로 발돋움 할 수 있다고 키르케고르는 역설한다.
'종교적 실존의 단계'에서는 그 유명한 '보편적 윤리에 대한 목적론적 정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인간 삶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보편적 윤리관은 (신과의 조우를 위한다는) 목적 앞에서 의도적으로 정지한다는 의미이다.
인간 삶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보편적 윤리, 즉 '살인을 금한다' / '남을 해하지 말라' / '배려하며 살자' 라는 보편적 도덕관은
사실 그 자체로 보편적, 절대적일 수는 없으며 필연적으로 모순과 갈등, 상대성을 낳기 때문에 신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인간의 '것'은
절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성이 다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종교적 관습을 거부하여 명예살인하는 것에 매우 옹호적이지만
대한민국을 포함해 기타 서구권 국가들에서는 법리적이든 의식적이든 절대 통용화되지 않고 있는 모습만 봐도 윤리는 상대적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키르케고르는 영원한 진리라는 건 필연적으로 갈등, 상대성, 분열, 모순을 안고 있는 인간에게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종교적 신앙을 통해 인간 외부에서 그 답을 찾음으로써 절대자인 신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꾀한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신과의 만남에 따른 종교적 실존을 이야기 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강조하였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소설)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브라함이라는 남자와 그의 아내는 불임 부부여서 아이를 얻지 못하다가 백 살이 되어서야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렇게 오냐오냐 금쪽이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와중 예수로부터
아들인 이삭을 모리아 산이라는 곳으로 가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계시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3일에 걸쳐 모리아 산으로 향하며 아브라함은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혹은 '저 계시가 악마의 속삭임 아닐까' 등등
고민을 하며, 자신의 귀한 아들을 죽이기 전까지도 고민하다가 결국 칼로 가슴을 찌르려 할 때 신의 음성이 들리면서
다시금 이삭을 죽이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소설같은 이야기이다.
어쨌든,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이러한 이성과 비이성, 유한성과 무한성 등 온갖 고민과 갈등 사이에서
보편적인 이성에 기초한 결단을 뛰어넘어 한 단 계 상위 차원인 초월적 신앙에 기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종교적 신앙은 과학적, 기술적으로 증명 할 수도 없으며, 증명될 필요도 없고, 증명되지 않아도 귀의하여 믿는 것을 강조한 그는
결과적으로 '믿음'이라는 영역을 가장 중요한 실존의 인식, 자각, 나아가 절망 해결법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귀하게 낳은 아들조차도 죽일 수 있는 아브라함의 정신을 곧 믿음으로 간주하며, 가장 내면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물론 키르케고르조차도 '아브라함의 정신은 이해할 수도, 따라할 수도 없다. 다만 찬양할 뿐이다.'라고 말하며,
믿음은 단순히 말이나 사소한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는 매우 존엄한 형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자신의 윤리관에 목매는 것에서 결별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절대자 자체를 인간 내면 가장 중요한 곳에 두어
신의 구원과 은총을 바랄 때 비로소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이 도래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음 편엔 하이데거에 대해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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