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이벤트?
독일에서 국제박람회가 열려 출장을 갔더니 참가자들 대상으로 러닝 이벤트를 한단다. 마인강변 5k 코스라는데 어차피 짬나면 달리려고 했고 티셔츠도 준다니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큰 행사의 여러 서브 이벤트 중 하나라 막 대회 느낌은 아닐테고 종료 후 다들 박람회장 출근을 할테니 조깅 삘이겠다, 최대한 일코하는 것으로 보스톤과 나이키 반바지를 챙겨갔다.
그리고 이벤트 당일, 현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참가자가 모였다.
대부분 조깅러로 보인다. 적당히 달리다가 마지막에 과감한 질주로 서양애들 놀래켜볼까? 평화로운 조깅러 사이에 느닷없이 침입한 동양의 러너라니. 그림이 나온다 싶었다.
…만 저 멀리 천천히 달려가며 몸 푸는 사람들이 있다. 뭘 좀 아는 사람이다. 회사 동료와 함께라 평범히 관절만 풀고 있으려니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싱글렛 아재가 등장했다. 벽밀기랑 스킵 비스므레한 동작으로 몸을 푸는 사람이 등장했다. 이정도는 계획에 없었다.
이 사람들의 주력이 가늠이 되지 않으니, 앞선에서 함 튀어나기보기로 한다. 나는 세계적 스케일을 자랑하는 한강을 달리는 러너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커뮤니티 디시 런갤러이다. 한번 붙어보자. 유럽 달리기가 어느 수준인지 함 보자.
…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얼척없었는지 깨닫는데 1분 30초면 충분했다. 355…350… 3…??? 내가 3분대 페이스를 뛰어본 적이 있던가?;;
곱게 선두그룹을 보내주고 고뇌한다. 최대한 뽑아볼 것인가, 펀런으로 전환할 것인가. 회사 사람 두고 튀어나왔다, 내가 풀코스를 달린 것도 알고 있다. 체면상; 펀런은 안된다. 혹시나 사진 찍을까 손에 쥔 핸드폰이 무색하게 빡런을 하기로 한다.
다리 건너는 중 한 컷. 500정도로 밀려서 까무러칠뻔하다 수평도 안맞게 급하게 찍었지만 그 순간 내 상황을 대변하는거라 그대로 두었다.
5k 동안에 다리를 두 번 건넌다=두 번의 오르막이 있다.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다. 숨을 몰아쉬며 페이스가 처지는 중에 누군가 나를 추월한다. 여자다. 여자 1등이 나를 지나치고 뭐라뭐하 외친다. 힘내라는 의민가 따라올테면 따라오라는 얘긴가 ㅋㅋㅋㅋ 여자 1등을 페이스메이커 삼아 나머지 거리를 달린다.
그리고 골인.
내 앞에 아홉 명 정도 있었고, 한 명을 제끼고, 두 명에게 따였다. 대략 10등 언저리 정도 하지 않았나 싶다.
1등은 이탈리아 러너다. 왜 기념티를 안 입나 고깝게 봤으나 같은 이벤트 2019년 버전이다. 고인물이다…
양말을 신고 뛰었다?!!!;;;; 유럽 고인물은 도대체 ㄷㄷㄷ
내 페메 여자 1등은 슬로바키아에서 왔단다. 누나 너무 잘 뛰드라. 행사장에서 슬로바키아 부스 갔더니 와인주드라 ㅋㅋ 알고보니 트레일 러너라고 한다.
동아마라톤 수준의 포디움. 1등은 베어풋, 2등은 하프타이즈, 3번은 싱글렛에 쇼츠. 이 고인물놈들…
간식 테이블 차려놔서 맛나게 먹고 일하러 ㄱㄱ
대회라기 보다는 몇 백명이 모인 작은 이벤트라고 봐야하지만 각국에서 모인 러너들과 함께 달리는 기분은 아주 새롭고 짜릿했다. 달리기하면서 또 좋은 추억이 생겼다. 여의도 강가에서 열심히 수련하여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유럽이 들썩이고 미주가 까무러치는 달리기를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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