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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일제 때도 조남일녀 결혼이 더 많았다

ㅇㅇ(200.25) 2022.01.05 07:30:01
조회 36255 추천 492 댓글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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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한남일녀 결혼 건수가 일남한녀 결혼 건수보다 많은게 딱히 놀랍진 않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조남일녀' 결혼 건수가 '조녀일남' 결혼 건수보다 많았거 알고 있었냐?


일제는 내선 동화를 위해 합방된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결혼을 합법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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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이정선- ,일제의 ‘內鮮結婚’ 정책 ,<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1938년 일본남-조선녀 68건, 조선남-일본녀 839건


1939년 일본남-조선녀 105건, 조선남-일본녀 900건


1940년 일본남-조선녀 97건, 조선남-일본녀 1213건


1941년 일본남-조선녀 113건, 조선남-일본녀 1416건


1942년 일본남-조선녀 172건, 조선남-일본녀 1530건


그러나 통계를 보고 당황했다. 이유는 조선인 남편-일본인 아내 조합이 많이 생겼다는 것. 그냥 많이 생긴 수준이 아니라, 조선남-일본녀 조합이 일본남-조선녀 조합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대를 고려하면 일본남-조선녀 조합이 대부분일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1928년 이전까지 조선남-일본녀 커플이 대부분이었고, 이후 후술할 내용 때문에 소폭 역전당했다가, 1938년 이후부터 다시 앞서나갔다.)


심지어 일본남-조선녀 커플의 경우 대부분 일본인이 조선에 정착하여 현지에서 처를 들인 경우였지만, 후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거나 일자리를 구하러 갔던 조선인이 일본 여자와 만나 결혼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인이 시집오러 한반도로 오는 현상이 일어났다. 조선이 일본에 동화되라고 결혼을 합법화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인 '역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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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동아일보 기사)


-1926년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부를 졸업한 요시자와 나오코는 같은 학교 출신인 김문보와 결혼했고. 나오코는 조선의 며느리로 살겠다고 다짐하여 조선으로 건너왔다.


-1912년 경성에서 광산업을 하던 김형박 (30세)은 같은 업에 종사하던 하마다씨의 딸 하마다 후쿠(16세)와 결혼했다.


-한명의는 10세 때 부친을 잃고 미장일을 배워 일본으로 건너갔다. 모시던 일본인 직인에게 솜씨를 인정받아 1932년에 그 외동딸 다치 소노에와 결혼했다.


-1927년 메이지대학생 서원록은 도쿄역에서 무라카미 하루에게 우산을 받쳐준 인연으로 연애, 하루는 가출하여 서원록과 동거했다. 하루의 부친은 경찰에 신고하여 1년 만에 서원록을 체포하였는데, 그때서야 서원록이 조선인임이 밝혀졌다. 하루는 임신한 몸이라 부친의 반대에도 결혼을 결심하여 조선에 왔는데, 알고보니 서원록은 이미 처자식이 있었다. 하루는 충격으로 유산을 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첩을 두는 것은 조선의 풍습이라 설득, 결국 하루는 첩이 되어 조선에서 살았다.


-전문학교 교사였다가 해방 후 문교차관까지 지낸 S씨는 도쿄 유학 중 하숙집 딸 다카하시와 사귀며 하숙비를 내기는커녕 그 집에서 학비까지 내줬는데, 졸업하자 여자를 버리고 귀국했다.


-1911년 경성의 지성연은 의학전문학교 유학시절 사귄 간호사 사카모토 하루요와 조선에서 결혼하고 장모까지 모셔와 함께 살았다.


이런 예상외의 결과에 일제는 1928년 어용단체인 상애회를 중심으로 '내선결혼 소개부'를 신설한다. 목적은 '일본남-조선녀' 커플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는 것.


.....도쿄 혼조구에 본부를 둔 상애회가 1928년에 내선결혼 소개부를 신설하자, "종래 내선결혼이라고 하면 거의 조선인 남자에게 내지인 여자가 시집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상애회에서는 선인여성으로 하여금 적극 내지인 남자에게 시집가게 하기 위해 힘쓴다"고 보도되었다..... (213-214p)


일본 남자들의 시선도 그닥 곱지 않았다.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 여성이 자발적으로 외지로 시집을 간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때때로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다.


"요즘 일본인 여자가 요보(조선인의 멸칭)의 부인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뭐가 좋아서 요보의 부인이 되는 건지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다. 요보의 부인이 될 바에야 차라리 창녀라도 되는 게 낫지 않은가?"


-경성의 어느 중국요리점에서 일본 남성 손님이 한 발언-


'조선남-일본녀 커플'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매우 가파르게 증가했고, 1940년 이후부터는 조선남-일본녀 조합이 일본남-조선녀 조합의 무려 10배 이상 많았다.


출처 <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




출처: 주식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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