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영화계의 최고의 달변가는 누구?

| 기사입력 2008-10-17 19:51  

인터뷰는 연예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스타라는 큰 허울 속에 숨겨진 인간미를 찾아야 하는 작업이지요. 그러나 작품 홍보라는 미명 아래 만나 짧은 1시간이라는 시간 내에 그 사람을 알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형식적인 질문과 답만 오다가 끝나기 마련입니다. 두 세번 만나야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오기 마련이지요.

몇몇 배우들에게서 모든 질문에 단답형의 대답이 나올 때는 속이 뒤집어지곤 합니다. 또한 앵무새처럼 틀에 박힌 말을 듣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죠. 솔직해지고 인간적으로 보이면 왠지 약점 잡히는 우리 나라 연예계 상황상 속마음을 보여주기 쉽지 않기도 하겠죠. 그 가운데서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속이 시원해지는 달변의 배우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말을 잘할까?"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죠. 이제까지 만난 배우들 중 가장 말을 잘하는 배우들을 뽑아보겠습니다.

가장 말 잘하는 배우는 역시 문소리입니다. 모든 질문의 답들이 어찌나 모두 알맹이들이 다 있는지 멋진 제목들이 수십개 튀어나옵니다. 현란한 수사를 쓰지 않으면서 풍부한 어휘로 정확하면서 명료한 대답만을 쏟아냅니다. 한마디로 직설화법의 대가죠. 질문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 어찌나 똑 떨어지는 답들이 내놓는지 인터뷰를 하던 순간순간 "정말 말 잘한다"는 탄사가 입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말싸움이 붙어도 곧 상대를 1시간 내에 설득시켜 굴복시킬 것만 같습니다.

손예진도 만만치 않은 달변가입니다. 언론에 비쳐진 자신의 이미지와 대중이 무엇을 자신에게 요구하는지 완벽히 파악하는 영리한 배우입니다. 왠지 청순가련한 외모 때문에 내숭을 떨며 말을 잘 안할 것 같지만 참으로 맛깔스럽게 말을 잘합니다. 외모와 달리 성격이 매우 털털한데요. 인터뷰할 때마다 매우 프로답습니다. 솔직하면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위를 잘 아는 것이지요. 곤란한 질문을 받아도 피하기보다 수위 조절을 하면서 솔직한 대답을 내놓으려고 노력합니다.

문근영도 좋은 인터뷰이 중 하나입니다. '장화, 홍련'이 개봉됐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요. 어린 친구가 어찌나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어찌나 어휘가 풍부한지 감탄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가끔은 나이답지 않게 너무 어른스러워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그러나 대답마다 따뜻한 인성과 사려깊음이 느껴져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좋은 집에서 엄격한 교육과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차승원은 알려진 대로 '홍보의 달인'입니다. 모든 인터뷰를 허술하게 하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론에 어떤 게 기사가 되는지 확실히 알고 제공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인터뷰할 때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습니다.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권상우도 나름대로 좋은 인터뷰이입니다. 잦은 말실수로 구설에 올랐지만 인터뷰를 하면 너무나도 솔직해 많은 기삿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잡기 힘들 뿐이지 일단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남자답게 되도록 자신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려고 노력합니다. 너무 솔직하다 못해 가끔은 돌발발언을 하긴 하지만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게 엿보여 정이 많이 갑니다.

정재영도 인터뷰하기 매우 재미있는 배우입니다. 항상 순박하고 솔직하죠. 어눌한 말투 속에서도 꼭 해야 할 말은 잊지 않습니다. 1시간 동안 중구난방식으로 수다를 떨어도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과 에피소드를 정확하게 전달해 기사를 쓸 게 분명히 있습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됐지 꼭 말을 잘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을 못해도 그의 진심을 끌어낼 줄 아는 게 진짜 기자겠죠? 그러나 기자들 입장에서는 위의 배우들은 정말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최재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