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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김한국 김미화 쓰리랑 부부 워메 기죽어 짱개어 ㅋㅋ 워따 워메 징한것

웨메아따징한것짱개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9.17 14: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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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023-09-17 13: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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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국 김미화 쓰리랑 부부 워메 기죽어 짱개어 ㅋㅋ   워따 워메 징한것 전라도 사투리 조상은 중국 짱개어

당나라에서 귀화한 황건적 후손 전남 광주 광산 노씨 노무현 노태우 노신영 노정희 노태악 ㅋㅋ

전 중앙선관위원장 노정희 현재 대법원 판사 
현재 중앙선관위원장 노태악 현직 판사 
 

중공과 수교한 노태우 딸 노소영 중공에 유학보내고 손녀딸 까지 중공에 보내 유학 

한국 언론과 방송을 친중 친북 조총련 친중 작업 노태우 때 부터 시작 

중앙선관위 중공 화웨이 해킹 부정선거 노정희 노태악   세계 최대 학살자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삼성장학생 노무현 등등 

중공 바퀴벌레 개진핑 즐겨 쓰던 단어 여시재 친중을표방하는 여시재 두목 쥐새끼 홍석현 이재용 애완견 홍준표 이준석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죽인 쥐새끼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회장의 조상도 당나라에서 귀화한 후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조상인 남평은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남평읍 일대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남평은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일대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백제 무진군 미동부리현이었으나 백제 멸망 후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대방주에 속하였다. 10개의 지역 군사 조직.

아마도 당시 당나라에서 건너와 전라남도에 정착하여 문씨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홍라희 홍석현 홍준표 조상 남양홍씨 당홍계는 고구려 때 당나라에서 건너온 홍천하를 도시조로 하고, 홍천하의 10세손인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있다



신라말 귀화 唐의 한림학사盧穗가 도시조  전라도 정착한 광산. 광주노씨(光山,光州盧氏)편 - 노태우 노무현 노신영 노정희 노태악 

이것들은 황건적 난을 피해서 왔다는데 이것들이 황건적 일수도 

장흥 위씨(長興 魏氏)는 전라남도 장흥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당 태종이 파견한 팔학사의 일원으로 신라에 동래하였다.

문재인 남평 문씨(南平 文氏)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

남평(南平)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남평읍 일대의 지명이다. 백제의 무진군(武珍郡)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는데, 백제 멸망 뒤에는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대방주(帶方州)에 속했다

 

백제가 멸망하고 30만명이 일본으로 도망 나머지는 학살 노예 

그때 당나라에 건너온 해적들 후손 문재인 조상 얘기야  

그때 당나라 짱개들이 전라도 성씨를 많이 만들어 한국성씨라고 조작질 

등 대부분  당나라 속국 신라때 

당나라 태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였던 나지강(羅至强)은 1,300여년 전 ... 한국에서 나씨는 나주,금성,안정등 10개가 넘는 본관들이 존재한다.

 

장보고의 고향과 조상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낭설이 마치 정설인양 널리 퍼지고 있어, 이 장에서 우선 그것부터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가 제기하는 장보고에 대한 잘못된 견해란 무엇인가? 그것의 일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보고의 부조父祖는 장백익張伯翼으로 중국 절강성 소주부蘇州府 용흥리龍興里에서 출생한 중국인이었으며 신라국에 여러 차례 왕래하다가 귀화하여 현재의 완도읍 장좌리에 정착하였다.’




‘張伯翼장백익, 字大號자대호, 官中郞將右僕射관중랑장우복야, 本中原浙江省蘇州龍興府人본중원절강성소주용흥부인, (장백익, 자는 대호, 벼슬은 중랑장우복야, 본래 중국 절강성 소주용흥부 사람이다.) 張保皐장보고, 字正集少字弓福자정집소자궁복, 唐祖(?-필자)右丞相來東國來淸海鎭大使당조우승상래동국래청해진대사, (장보고, 자는 정집, 어렸을 때 자는 궁복, 당나라 우승상을 지내다 청해진 대사로 왔다.)’ 〈인동장씨 대종보 권1, 구보舊譜〉

대종보는 이어 장보고의 증손인 장원張源이 당말唐末의 혼란기를 틈타 한반도로 망명하고, 그의 아들 장정필張貞弼이 고려 태조 왕건에 입조하여 공을 세움으로서 그를 시조로 삼았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원문을 확인하자,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절강성소주용흥부’에서 절강성浙江省의 성省은 기실 원나라에서 시작된 지방행정단위이며, 소주는 예나 지금이나 절강성이 아니라, 강소성에 속한다는 점이다.

둘째, ‘용흥부龍興府’의 부府는 당의 지방제도(주현州縣제도) 하에서 당 현종 대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몇 곳에 설치되었으나, ‘용흥부’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부府는 송나라(북송) 시기부터 주州와 현縣을 거느리는 행정단위로서 일반화된 것으로, 이 경우에도 단위가 바뀐 ‘소주州용흥부府’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셋째, ‘당조우승상’에서 조祖는 조朝의 오기라 하더라도, 승상은 우리의 정승에 해당하는 관직인데 장보고가 우승상을 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점이다. 이 글의 본론에서 다루게 되겠지만 청해진대사 장보고는 당나라의 군진절도사 하의 직급인 대사大使 직급에 그쳤을 뿐이다.

넷째, 장보고에서 장원張源에 이르기까지의 2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중에서 마지막 문제점이 가장 결정적 결함이라 판단하고, 인동장씨대종회에 연락을 취했다. 그것은 혹시 추가내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결과를 정리하자면, 장보고의 후손이라는 위 장정필張貞弼은 인동장씨가 아니라, 안동安東장씨의 시조란 것이다. 인동장씨 측에선 여태 자신들이 안동安東장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간주해 왔으나, 근래에 이르러 분파사실에 대해 종문 내부에서 의문이 제기되었다며, 한 마디로 장보고와의 관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위 내용의 근원인 안동安東장씨 측의 기록을 확인해 보았다. 아래는 안동장씨중앙대종회 사이트에 실린 내용이다.

‘자字는 정집正集이요, 어릴 때 이름은 궁복弓福인데 또 다른 이름은 궁파弓巴라고도 하였다. 관官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감의군사感義軍使, 진해장군鎭海將軍이시고, 장군의 아버지는 중국 절강성 소흥부蘇興府 용흥龍興사람이신데 당나라에서 중랑장우복야中郞將右僕射를 지냈으나 750년경(경덕왕) 신라로 귀화하였고 장군은 신라에서 태어났다. …’ 〈안동장씨중앙대종회 사이트〉

먼저 위 내용 중에 (자는 정집 제외) 전반부와, ‘장군은 신라에서 태어났다’고 한 후반부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유추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원문에 있을 우승상이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운데에 보이는, 장군의 아버지가 ‘절강성 소흥부蘇興府 용흥龍興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안동장씨의 다른 기록에서도 일관적으로 확인되는데, 앞서 본 인동仁同장씨의 소주용흥부蘇州龍興府완 완전히 다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절강성엔 소흥부蘇興府는 물론이고 소흥蘇興이란 지명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글자가 다른 소흥紹興이 존재하는데, 소흥紹興은 현재 항주 만灣에 위치한 도시로 당시 재당신라인의 거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소흥紹興은 당시 월주越州로 불리웠으며, 앞서의 소주蘇州완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서 8~9C 당시 부府를 설치하기엔 변두리 성읍城邑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안동安東장씨대종보의 기록 역시 장보고와 시조인 장정필을 잇는 중간의 2대가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대先代의 자세함에 비해 후대後代의 휘諱(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소주용흥부’든 ‘소흥부용흥’이든 장보고의 원적지로서의 지명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장보고의 부조父祖로 기록된 장백익張伯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이다.

필자는 앞장에서 장보고가 입신하게 된 무령군武寧軍 군중소장軍中小將 직위를 두고 무령군이 실상 백제계의 규합일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더불어 신당서新唐書의 편찬자인 송기의 말을 근거로 장보고가 기실 신라가 아닌 당나라 사회에 근거를 둔 인물일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제 여기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들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자.

우선 장보고와 신라와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알다시피 장보고는 평로치청이 멸망한 지 9년 만인 828년 오늘날의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다. 이에 대해 삼국사기는 신라본기와 열전에서 각각 ‘귀국歸國'과 ’환국還國‘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시각은 당唐에서 성공한 장보고가 금의환향한 후 신라조정을 설득하여 당시 황해에서 발흥하던 해적소탕을 위해 청해진 설치와 함께 청해진 대사大使에 임명되고 군사 1만 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엔 중대한 결함이 존재한다. 더불어 이러한 해석은 그동안 장보고의 실체에 대한 이해에 장벽이 되어 왔다.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인가?

우리는 앞장에서 인용한 삼국사기(신라본기 문성왕 조)와 삼국유사(신무대왕, 염장, 궁파 편)로부터 신라조정의 장보고에 대한 시각의 일단을 확인한 바 있다. 바로 ‘해도인海島人’과 ‘파측미巴側微’가 그것이다. 이는 일개 ‘섬사람’과 매우 ‘미천한’이란 뜻으로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결정적 명분이었다.

이를 근거로 필자는 앞장에서 장보고의 신분이 신라 주류사회는 고사하고 골품제도의 바깥에 위치했음을 논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보고와 청해진에 대한 기존 해석에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한다.

즉 신라조정은 어떻게 이런 미천한 신분의 인물에게 청해진을 맡기고 대사大使라는 관직에다, 1만의 병권을 맡겼는가? 당시 신라 귀족사회의 신분적 배타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신라조정의 입장에선 장보고는 어디까지나 당唐에서 공을 세웠을 뿐, 자신들과는 생면부지의 관계에 있었다. 그런 인물이기에 신라조정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이것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있다. 그것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장보고의 직함인 대사大使라는 칭호이다. 대사大使는 신라의 관등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17관등 중의 12관등에 대사大舍가 있긴 하나, 문자도 다를뿐더러 하위직이라 장보고의 직위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학계 일각에선 대사大使 직위가 장보고에만 한시적으로 수여된 신라의 특수직위라 보아 왔다. 그 어떤 근거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오류가 있음이 드러났다. 대사大使란 직위가 당唐의 관등인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대체로 군진의 대사大使와 부사는 모두 겸인을 거느린다. (범제군진대사부사개유겸인凡諸軍鎭大使副使皆有傔人)’ 〈대당육전大唐六典, 권5 병부조兵部條〉

여기서 우리는 대사大使가 당의 절도사 휘하의 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보고의 직함인 대사는 기존에 알려져 온 신라의 특수 직위가 아니라, 당唐 조정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청해진을 설치하면서 제수 받은 것인지, 아니면 당에서부터 대사 직위에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필자의 판단으론, 치청 토벌 후 장보고가 당 조정으로부터 치청이 지배하던 문등현(오늘날의 산동성 내)의 땅을 하사받아, 적산포와 법화원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당에서 이미 대사大使 급의 직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보고가 신무왕을 옹립한 공으로 신무왕과 문성왕에 의해 각각 봉해진 감의군사感義軍使나, 진해장군鎭海將軍 직함에 대해 건국대 김광수 교수는 자신의 논문(장보고의 정치사적 위치)에서 ‘당나라 풍의 관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필자의 판단으로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전이나 이후의 중국의 역대조정이 삼국이나 고려의 국왕에게 내린 칭호에서 숱하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전제한다면 또 하나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신라조정이 청해진을 설치하면서 장보고에게 당의 관작을 수여하거나, 계승토록 한 것이 되기에 말이다. 이에 우리는 청해진의 성격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에 대한 중대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주장의 내용은 청해진은 신라조정의 관할영역이 아니며, 청해진대사의 직위는 당의 치청절도사 휘하의 관직이란 것이다.



‘開成三年秋七月(개성3년 추칠월) 新羅王金祐徵(신라왕김우징) 遣淄靑節都使奴婢(견치청절도사노비) 帝矜以遠人(제긍이원인) 詔令却歸本國(조령각귀본국), (838년 가을 7월 신라왕 김우징은 치청절도사에게 노비를 보냈지만, 황제는 멀리서 온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도록 조서를 내렸다)’ 〈책부원구冊府元龜 권980, 외신부통호조外臣部通好條〉

여기서 주목할 점은 838년 7월이면 김우징이 청해진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인데, 당나라에선 김우징을 신라왕이라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근거하여 김성호 박사는 김우징이 청해진 시기에 이미 당 조정으로부터 신라왕으로 책봉을 받았으며, 그 배경에 장보고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위 내용에 대해 김우징이 신무왕으로 즉위한 후인 839년 7월의 일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 달에 김우징이 죽었다는 점과, 구당서舊唐書 천문조天文條 및 일본의 엔닌圓仁일기 등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신라본기가 장보고와 청해진의 정치사적 무게를 말살하기 위해 기년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위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지면상 다 다룰 수 없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장보고에 대한 기록엔 이 외에도 중국의 기록과 기년이 다른 경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해진의 치외법권적 성격은 신라본기 문성왕(신무왕의 아들) 조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일길찬 홍필弘弼이 모반하다 발각되어 해도로 도망갔는데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의 해도가 바로 청해진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청해진은 신라조정의 입장에선 매우 부담스런 존재였을 것이다. 알다시피 김우징은 청해진에서의 신변안전은 물론이고 군사를 일으켜 왕위에 오르기까지 장보고의 결정적 도움에 힘입었다. 이러한 사정이 장보고가 암살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더하여 무엇보다 장보고와 청해진의 성격에 대해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장보고 사후(841년)에 발생한 나당간의 외교분쟁이다. 무려 5년간이나 외교가 단절된 것이다. 결국 신라사신의 당唐입조(846년)로 외교가 재개되긴 했지만, 신라는 장보고의 죽음에 대해 변명부터 늘어놓아야 했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엔 장보고가 그해(846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하여 장보고로 인한 외교적 교착상태를 은폐하고 있다.

위의 내용들을 통해 우리는 신당서新唐書의 편찬자인 송기가 왜 ‘당에 보고가 있다’고 한 것인지 그 배경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망한 뒤 당나라가 이곳에 웅진(熊津)주 01)ㆍ마한(馬韓)주 02)ㆍ동명(東明)주 03)ㆍ덕안(德安)주 04)ㆍ금련(金連)주 05)의 5개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였다.

 

장보고는 고향과 가문의 내력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었다.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 소장을 하다가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왕에게 신라 사람들이 중국에 끌려가 노예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자신이 이를 막겠다고 제안해서 1만 명의 군사를 얻어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을 근거지로 장보고는 군사를 키우고 배를 만들어 바다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다. 신라인을 대상으로 한 해적의 횡포는 사라졌다. 장보고는 중국에도 세력을 뻗쳐 산둥반도에 법화원이라는 절을 세우고 신라인을 도왔다. 중국에 10년간이나 거주하던 엔닌이라는 유명한 일본 승려가 귀국할 방도가 없자 장보고에게 도움을 청해 결국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당시 신라에서는 진골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현재의 국왕이나 태자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보고의 군사력은 이들에게는 커다란 유혹이었다. 마침내 장보고는 왕위 다툼에 휘말리게 되었다. 김우징이라는 사람의 편을 들어 군사를 동원하여 민애왕을 제거하였던 것이다. 거사가 성공하면 자기 딸을 왕비로 삼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김우징이 신무왕이 되었으나 곧 죽고, 그 아들이 문성왕이 되었다. 문성왕은 즉위 즉시 장보고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예복을 내렸다. 문성왕 7년 왕이 장보고의 딸을 두 번째 왕비로 맞아들이려고 하자 신하들이 반대하였다. 미천한 섬사람의 딸을 왕실의 배필로 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왕은 이 말을 들어서 결혼을 포기하였다.
장보고는 이에 불만을 품고 청해진에서 반역을 꾀했다. 조정은 장보고를 정벌하려고 하기보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때 염장이라는 장수가 나타났다. 자신이 거짓으로 장보고에게 투항한 다음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염장은 날래고 힘이 셌다. 장보고는 그런 염장이 마음에 들어 아무런 의심 없이 같이 술을 마시다 취하였고, 이 틈을 타서 염장이 장보고의 칼을 빼앗아 찔러 죽이고 목을 베었다. 장보고는 이렇게 삶을 마감하였다. 청해진도 함께 사라졌다.

 

이것이 그동안 조작된 장보고의 시나리오

 

미천한 집안 출신인 장보고가 당나라에 간 것은 다른 사람처럼 노예로 끌려간 것일 수도 있다. 드라마 <해신>도 그렇게 각색했다 그러나

두목이 장보고 생전에 집필한 ‘번천문집’권6 ‘장보고정년전‘에 의하면 신라인 장보고와 정년은 당나라 서주(徐州)에 들어가 군중소장(軍中小將) 30세에 무령군중 소장이 되었다. 장보고의 나이는 30이고 정년은 열 살 젊어 보고를 형이라 불렀다. 함께 모두 싸움을 잘하였고,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는데 나라와 서주에서 능히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고 적었다.

【張保皐.鄭年傳】
新羅人 張保皐·鄭年者 自其國來徐州 爲軍中小將 保皐年三十
年少十歲 兄呼保皐 俱善鬪戰騎而用槍 其本{國與徐州 無有能
敵者 年復能沒海 履其地五十里不噎角 其勇健 保皐差不及年』

마상 무술에 뛰어나지 않았다면 장보고는 무령군중 소장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말을 타고 무예를 펼칠 수 있는 무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좋은 스승을 모시고 직접 말을 타면서 배워야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장보고의 집안은 말을 가지고 있는 집안으로 무술을 지도할 수 있는 스승을 모실 수 있는 부유한 집안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노예로 당나라에 팔려갔으면 죽도 먹기 힘든 사정인데 무령군중 소장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추리하면 당나라에서 잘사는 집안이 전라도 섬에 건너온게 아니라 당나라 죄수나 해적출신 아들 장보고는 백제 유민을 노예로 당나라에 팔아 부를 누리고 당나라에서 무령군중 소장까지 하는 관직에 오르고

신라 중앙정부가 관여 못하는 당나라 입김으로 전라도 섬을 장악하여 신라인을 노예로 팔아 부를 누리다 암살당하였다


인동장씨 대동보’나 ‘장씨연원보감’을 보면 장보고의 부친은 당나라 절강성 용흥부 사람으로 신라를 왕래하다 신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장씨 연원보감이 중요한 것은 장보고 시대에 이미 완도에서 중국과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장보고가 중국에 건너가기 전에 완도에서 이미 중국과 무역을 하고 있어 장보고가 무역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보고의 집안이 무역을 위해 군사를 키웠다
출처 : 완도신문(http://www.wandonews.com)

전라도 진도 완도 신문도 당나라 시대부터 전라도 섬과 연결되었다고 밝히네

[룽청(중국)=이데일리 문영재 기자] “한국에서는 공자가 유명하지만, 이곳 중국에서는 ‘해상왕 장보고’가 더 유명합니다. 장보고의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얘기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최근 ‘해상왕 장보고 중국 유적지 답사’를 위해 중국 산둥(山東)반도의 동쪽 끝 룽청(榮成)시 스다오(石島)진에 위치한 츠산법화원(赤山法華院)을 방문했을 때 만난 중국 현지인 가이드의 말이다.

고구려·발해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장보고(?~841년)라는 역사적 인물에게까지 뻗치고 있다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중국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인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장보고가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중 학계의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라도 섬에서 신라인을 잡아다 노예로 당나라 팔아먹는 해적선이 10세기에 사라지는데 당나라가 907년 10세기에 망하는거와 겹친다

당나라 죄수들 해적들 혈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더니 아직도 전남 신안 염전노예 사건이 뉴스 보도되고 있다

오대 십국 시대(五代十國時代, 907년~979년)는 중국의 역사에서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십국을 통일한 979년까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오대)와 화중·화남과 화북의 일부를 지배했던 여러 지방정권(십국)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가리킨다.

신라 왕권 권력싸움을 하던 김우징 청해진에 도망가자 신라군이 들어가지 못했다

김우징은 그후 신라 신무왕 된다 신라 보병 3만명이 당나라 기병 20만명을 이겼다고 구라치더니 그깟 당나라 해적들 무서워 청해진에 못들어 갔다는게 말이 되냐

신라 중앙군이 청해진에 못들어간건 당나라 입김

 

당과 ‘麗·濟 분할 밀약’으로 신라 구했지만 중국화 길 터

중앙선데이

입력 2014.01.12 01:58

신라의 중화 속국 정책에 대한 사료 고증

 

백제의 8대 성씨는 어디로 갔는가.
백제는 시조 온조(溫祚)가 부여 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라 ... (南山新城碑)등에 나타나 있는 인명을 보면 성(姓)을 쓴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성씨 통계) 한반도에는 백제 성씨가 없다
한국의 성씨 통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신구당서나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경우 2백 여개의 성(城)과 76만호(戶)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래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백제 8대성중 국(國)씨와 진(眞)씨를 제외한 6대 성씨가 한반도에는 없다

무슨이유일까 ?

그나마 남아 있는 국(國)씨와 진(眞)씨 성도 희귀성이다
몇가구 남아 있지를 않다


백제가 망하고 30만명 이상이 일본으로 망명 나머지는 학살 노예로 당나라에 팔려가고 텅텅빈 전라도 섬 당나라 죄수들 유배지 당나라 해적 황건적 물갈이
당나라 속국 신라는 전라도 섬 일대는 당나라 죄수들 황건적 해적들의 차지로 그들은 신라인들과 일본까지 해적질로 약탈하여 당나라 관찰사들과 짜고 노예와 각종약탈 판매 하였다 도둑놈들이 도둑질한 장물을 팔아줄 장물아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역활을 당나라 관찰사가 했다 그런데 907년 당나라가 망하고 오대십국 시대 오대(五代)의 첫 번째 왕조이다. 당나라 말기 혼란한 정세속에 판로가 막히자 사해안 당나라 해적들이 없어졌다
당나라의 보호가 없어지자 속국 신라는 935년 망한다
 

성덕왕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정립한 이후 경덕왕 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류가 크게 늘었다.신라의 제도지명관직 등을 당나라 식으로 개편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펼쳤다.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쓰는 수많은 한자 지명들이 대부분 이 경덕왕때 처음 만들어졌다.

이 때부터 신라는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신라의 김춘추가 당을 찾아가 당나라의 복식과 제도를 도입하겠다면서 청병 외교를 펼친 것은 신라 자국의 생존을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신라로서는 나라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이었기 때문에 자존심이이 사대니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며
그러나, 문제는 고구려와 백제 멸망 이후입니다.
신라는 8세기 경덕왕 대에 인명과 지명을 모조리 중국식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고려와 조선 역시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대구는 본래 이름 '달벌'을 757년(신라 경덕왕16)부터 잃어버렸다. 경덕왕이 신라의 인명과 지명을 대대적으로 중국화하면서 대구(大丘)로 바

지금의 전주에 완산주(完山州)를 설치하여 9주 5소경 체제를 완비하였다. 경덕왕 16년(757)에는 중국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의 주군현 명칭을 한자로 못합니다.

 






이름도 성씨 지명 모든걸 신라 때 중국식으로
바꾸고
신라 왕 왕비 까지 당나라 황제가 책봉 시켰는데
중국 속국 아니라고 백날 떠들어 봐야
외국애들 미친놈 취급 비웃는 이유

장보고는 당나라 장수
장씨 족보 장보고 아버지는 당나라 태생
당나라 황제 장보고를 보네 전남 완도
청해진 대사 주중대사 비슷한것
세우고 전라도 있던 신라 사람들 잡아 노예 무역 등

신라 왕 왕비 당나라 책봉 시대라

드라마 해신 전부 시나리오 각색
궁복 노예 만들어 소설 쓰고 ㅋㅋ궁복 당나라 장수 되었다고 조작한 드라마 해신 ㅋㅋㅋ 목적

당나라 죄수들 해적 황건적 후손 전라도 홍어들 조상 감추려

중국 공산당 동북공정 고구려 발해 역사 왜곡 침묵
중도유적지 폐기시키고 놀이동산 건설
고조선 신화로 만든 한국놈들 아바타

이사지왕 검 주인 마한세가 23대 아사지왕
신라 금관 주인 고조선 제사장 여성
황금보검 남녀 복희씨 여와 는 중국 조상 아니고 한국 조상

신라금관이라는 증거는 없죠.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 무덤과 소위 '총'이라고 불리는 무덤은 완전히 다른 형태이니까요. 신라금관이라기 보다는 고조선 2096년을 보통 연대별로 3개로 나누는데 첫번째 아스달(지금의 하얼빈 완달산)시기가 고조선1왕조, 그 이후 아스달의 천도 이후 고조선2왕조가 있었고 1왕조 2왕조 합쳐서 1908년동안 43대 단군의 시대였죠. 마지막 아스달의 천도가 지금의 요양으로 이루어졌을때부터 4명의 단군 188년간의 시기인데 이때 굉장히 혼란했습니다. 열국 시대의 시작인데....한반도 전체와 남만주가 삼조선 중 막조선, 고조선3왕조 시대에서부터는 마한 이라고 불렸는데 이때 위만이 삼조선 중 번조선을 멸망 시켰을 전후라 북방 소국들이 대거 마한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어쨌든 신라금관이라고 알려진 금관은 신라의 금관이 아니라 고조선의 금관 그중에 막조선과 마한 시대의 지배자 금관입니다. 경주에서 발굴되었다고 자꾸 신라 금관이라고 하는데...신라는 열국 시대에 한반도로 내려왔던 가야를 뒤이어 나중에 한반도로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가야 금관을 비슷하게 차용을 했지만 현재 경주에서 발견된 금관은 신라의 것도 가야의 것도 아닙니다. 고조선 중 막조선, 마한의 금관이죠. 그리고 백제의 금관이라고 알려진 금관도 백제의 것은 아닙니다....가야의 금관

한반도 고조선 문명을 지워버리는 세력들이 고조선 금관을 신라금관으로 조작한것이다
 

고대 얼마나 많은 역사적인 왜곡이 많았겠는가 짐작이 간다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古朝鲜语 | 全世界条目
https://m2.allhistory.com/detail/5910639055b542257a033d98

古朝鮮語:古朝鮮語,亦作古代韓國語(고대 한국어),指的是古朝鮮到高麗時 -百科知識中文網
https://www.easyatm.com.tw/wiki/%E5%8F%A4%E6%9C%9D%E9%AE%AE%E8%AA%9E


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중사대주의 강단 역사학계에서는 고대 삼국의 언어가 개별 언어 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후한서>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후한서>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삼국지>"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후한서>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양서>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양서>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남사>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위략>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서>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일본어 뿌리는 고구려語"

중앙일보

입력 2003.05.06 22:08

업데이트 2003.05.07 08:55


미 UCLA 대학의 자리드 다이아몬드 박사와 호주국립대학(ANU)의 피터 벨우드 박사는 지난달 25일자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15개 주요 어족(語族)들의 확산현상을 농경문화의 전파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을 했다.

논문에 따르면 일본어는 기원전 400년께 한반도에서 일본 남부 규슈섬으로 건너와 쌀농사를 북부지역으로 전파한 농경민들의 언어에서 유래됐다는 것.

논문은 당시 한반도에는 신라.고구려.백제 등의 3국 시대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3국은 각각 자체적인 언어를 갖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현재의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일본어는 고구려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어가 고구려어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국내 학계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오늘날 일본어를 보면 우리말이 연상되는 어휘가 굉장히 많다. 아사히신문 같은 경우 한자로는 조일(朝日)이라고 적으면서, 조(朝)는 아사로 읽고, 일(日)은 히로 읽는다. 아사가 아사달이나 아시라고 할 때의 그 아사요, 히가 해를 말한다는 것쯤은 금세 알 수 있다. 지난번에 적은 백제어 수사(數詞) ‘밀’(密=3), ‘우츠’(于次=5), ‘나는’(難隱=7), ‘덕’(德=10)은 고구려어와 똑같으면서 일본어에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어는 같은 북방계 언어인 몽골어와 통하고, 같은 고구려 백성이던 여진족이 쓰던 여진어 역시 고구려어와 상당히 밀접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비록 당나라에 망한 뒤 고구려어의 실체를 들여다보기 어렵다고는 하나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 등을 연구하면 그 흔적이라도 거둘 수 있으리라고 본다.토끼는 고구려어로 ‘烏斯含’(발음은 당시 한자음대로 읽어야 한다)인데 일본어는 우사기다. 고구려어인 매는 고대 일본어 미두이다. 물을 가리키던 ‘買’, 성(城)을 가리키던 ‘忽’, 우두머리를 가리키던 ‘加’는 여진어나 몽골어와 비슷하다. 물은 퉁구스어로 ‘mu’, 만주어의 ‘mu-ke’와 같은데 ‘買’의 발음도 이와 유사했을 것이다. ‘忽’은 오늘날의 골과 비슷한데, 몽골에서는 지금도 쓰인다. ‘加’는 말할 것도 없이 북방어인 칸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그런데도 국어사를 연구한다는 학자들 중에 여진어, 몽골어, 거란어, 고대 일본어 등을 파고드는 분들이 드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또 중국 동북지방에 고구려의 후예들이 살고 있을 텐데, 더 살펴야 하지 않을까.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26109.html#csidx37572ef1b13790e8cbd090e9f83163f



bc 108년 고조선 한무제 망하고
고조선 유민 bc 57 년 신라 건국

경주 고분 대부분 신라 이전 부터 고조선 왕들 무덤


스웨덴 황태자 참가 서봉총 일제 발굴


고조선 무덤 신라 왕 무덤 바꾼 이유


고조선 유민 고구려 80% 서역인 중국 문헌
당시 서역인 위구르
그들 신라의 배반 망하자
중앙아시아 흑해 유럽 이동

카자흐 제국 건설 오늘날 유대인 대부분


그러한 역사적 배경 감추기 위한것

나당연합군 망한 백제 20만명 일본 망명

나머지는 학살 노예 당나라 끌려가

각설이 타령 그때 나온것

텅텅빈 전라도 땅 당나라 죄수들 해적 황건적 후손 전라도


당나라 종속국 신라 왕 왕비 당나라 책봉

장씨 족보
장보고 아버지는 당나라 태생 해적 적혀있고

중국 장보고 당나라 장수 분명히 말한다

한국 기록 궁복 왜 장보고가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

드라마 해신 노예로 당나라 끌려가 당나라 장수가 되었다고
각색 그
많큼 장보고 대한 기록 없다는 증거로 어거지로 장보고를 신라 장수로 둔갑시킨 이유



당시 전라도 섬 완도 등 당나라 죄수들 유배지 해적 황건적 소굴

신라 인들 노예 당나라 끌려가 당나라 관찰사 짜고 노예 무역

1000명 관리 하는 당나라 장수 장보고 신라 왕 찾아가

청해진 대사 일방적 통보

당시는 당나라 종속국 신라 왕 왕비 당나라 책봉 시대라


당나라 죄수들 해적 황건적 후손 전라도 홍어들 조상 감추려 역사 왜곡

동북공정 고구려 발해 역사 왜곡 침묵
중도유적지 폐기시키고
고조선 신화로 만든 이유

개진핑 후장돌이 전라도 쥐새끼들 조폭 후장 6000억 꽂아준 배후 전라도 니어미 보지 홍라희 홍석현 조상도 당나라 넘어온 짱개 후손

한국인 성씨 대부분 중국인 조상
이름도 성씨도 중국식

중국 호남 광주 전주 등 대부분 지명도 중국식 신라 시대때

중국화 시키고 중국 속국이 아니라고 우기는 미친놈


하나은행 통해 이재용 돈 최순실 송금 시키고 박근혜 친구 라며 기획 탄핵 시키고 친박은 모조리 폐기 처분 시킨
전라도 어미 홍라희 구멍 나온 쥐새끼 이재용 쇼

하나은행 통해 1조원 금융사기 화천대유 자산관리 7호 5놈 삼성소유 성균관대학교 졸업
2놈 예수회 소유 서강대학교 졸업

세월호 304명 학살 사탄 인신제사 세모그룹 같은 자산관리 놈들

부산저축은행 금융사기 같은 놈들

전국 제2의 화천대유 십수개 십수조 뜯어 공짜폰 줘도 상관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권력 공무원 언론 방송 뿌리고 코걸이 삼성공화국 작업

개진핑 후장돌이 전라도 쥐새끼들 조폭 후장 6000억 꽂아준 배후 삼성공화국
대장동 이익 6000억 싹쓸히 삼성제일기획 전라도 조폭 후장 6000억 꽂아준 배후 삼성공화국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죽인

개진핑 즐겨쓰던 여시재
친중을표방하는 여시재 두목 쥐새끼 홍석현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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