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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나루터 노인의 행복

운영자 2017.05.03 09:36:36
조회 219 추천 0 댓글 0
백강 나루터 노인의 행복

  

백마강가의 옛 나루터 옆에 도착했다. 멀리 부소산성을 끼고 강물은 찰랑거리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강은 내게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면서 얘기를 해 주는 것 같았다. 이 나루터에서 백제 사람들은 돛을 단 배를 타고 강을 빠져나가 먼 바다를 건너가 중국과 일본으로 갔다. 역사를 품은 강가 나루터는 옛 기억을 잊은 듯 무심한 물결만 강가를 찰싹거리며 쓰다듬고 있었다. 몇 채의 오래된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틈틈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육십 대 중반 이후 살아갈 곳을 찾고 있다. 인도사람들은 나이 육십이 넘으면 숲속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마친다고 했다. 늙은이는 도시에서는 한쪽에 버려진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 있어도 숲에서는 신선이 된다는 말도 있다. 얼마 전 헬만헷세가 쓴 ‘싯타르타’를 다시 읽었다. 강가에서 뱃사공을 하는 두 노인의 얘기였다. 강은 그들에게 선생이었다. 찰랑거리며 흐르는 강은 그들에게 많은 진리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런 강가에 작은 초막을 짓고 노후를 보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걸 먼저 실행한 변호사 선배부부가 있다. 한 할머니가 혼자 살다가 죽은 단층 농가를 사서 주말이면 내려와 지내고 있었다. 칠십이 가까운 그 부부는 농가를 거의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했다. 창호문과 기름먹인 장판지 그리고 부뚜막이 어린 시절의 정서에 더 맞다는 것이다. 뒷마당 장독대 섬돌 옆에 여러 꽃나무를 심었다. 스피커에서 그 선배가 좋아하는 가곡이 조용하게 흘러나와 강가의 허공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뒤뜰 의자에 앉아 밤하늘에 하나 둘 수줍은 듯이 나타나는 별을 보면서 그 선배가 그곳에 농가를 마련하게 된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양평부터 시작해서 강화도 그리고 인천의 석모도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노후에 내가 살 곳을 알아봤지. 그러다가 부여의 백마강가 조그만 농가로 결정을 했어. 강 하구에 훨씬 경치가 수려한 곳도 있더라구. 그런데 아무리 동양화 속의 초당같이 풍광 좋은 곳에 있어도 막상 살려고 보니까 그런 곳은 맞지 않아. 이웃 사람들이 떡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곳에 너무 외따로 사는 게 좋은 게 아니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한 할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시고 빈집이 된 이 농가를 샀지. 다행히 비슷한 이웃이 생겼어. 옆집 아저씨도 나와 나이가 같은데 정년퇴직을 하고 여기 농가를 사서 아예 내려와서 혼자 살고 있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낙향을 하고 시골에 살아도 옆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 같아.”

“그래서 헤르만 헷세의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이 강가에서 두 노인이 잘 삽니까?”

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아보고 싶어 물었다.

“나는 아직 서울에 일거리가 있으니까 일주일에 반 정도만 내려오지. 그런데 아예 내려온 옆집 남자는 겨울이 혼자 지내기 너무 쓸쓸하고 힘들다고 그래. 얼어붙은 날이 선 것 같은 겨울 강 앞에서 한겨울 내내 혼자 방에 웅크리고 있으면 자신의 존재가 뭔지 회의가 인다고 그래. 겨울에는 텃밭도 가꿀 수 없잖아? 그래서 마음을 바꾸어 먹었대. 평생 교회에 나가지 않던 사람이 시골교회에 나가면서 봉고차를 운전해서 주민신도들을 모셔오고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기사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래. 그리고 시골 문화센터에 가서 요즈음은 기타를 열심히 배우고 있대.” 

호젓한 강가의 고개를 숙인 아름다운 나무뿐만 아니라 좀 더 다른 것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경치 속의 화려한 부자의 별장도 이웃이 없다면 행복은 아닐 것 같다. 저택과 좋은 차를 굴리고 살아도 그 걸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즐거움은 없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늙어도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함께 먹고 마시고 웃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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