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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민족주의 근원「난징대학살」을 부정해야 진정한 진보

ㅇㅇ(126.47) 2021.12.01 23:41:38
조회 254 추천 0 댓글 0

난징학살 날조가 드디어 폭로되기 시작하다


南京虐殺の捏造がついに暴かれ始めた


마침내 드러난 시진핑의 역사 왜곡이 백일 하에


ついに馬脚現した習近平、歴史歪曲が白日の下に



森清勇 모리 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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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강소성 남경시 "침화 일본군 난징 대학살 우난 동포 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에서 열린 추도식 [사진] [AFPBB News]




중국은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난징 대학살"을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 문화기구)의 "세계의 기억"(기억유산)에 등록했다. 일본에서는 난징에서 대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부터, 위법행위는 있었지만 학살로 불릴 만한 일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대량학살(홀로 코스트)한 비인도 행위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지만, 전쟁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범죄다. 그래서 패전한 독일을 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종래의 전쟁 범죄의 범주에는 없었던 "인도에 대한 범죄"를 신설해 재판했다.



대동아 전쟁에서 홀로 코스트에 버금가는 범죄행위는, 일본의 패전이 농후해진 단계에서, 미국이 행한 무차별 도시폭격과 원폭투하로 약 40만명의 일본 시민을 살육한 일일 것이다.



공정한 재판이라면, 미국이 피고석에 앉아 선고받았어야 할 "인도에 대한 범죄"다. 그러나, 미국은 판사석에 앉아 자국의 대살육을 상쇄하기 위해서인지, 일본이 난징공략에서 대학살을 벌여 "인도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일본을 재판한 것이다.



남경사건 당시, 중국 국민당에 관련된 재중 미국인 기자와 선교사들은, 일본군이 학살을 하고있는 것처럼 하는 선전공작에 주력했다.



그러나, 난징 성내에서 시민 보호에 나섰던 국제위원회(독일인 용 라베 위원장)가 항의한 일본군의 비행은 살인 49건, 상해 44건, 강간 361건, 연행 390건, 약탈 기타 170건 정도였다.



중국에 있던 미국 외교관 등이 귀국 후, 실제로 본 현실(대학살은 없으며 선전은 왜곡되어있다는 등의 주장)을 미국 국민에게 호소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전쟁수행을 방해하는 사안으로 구속되는 상황이었다.



"대학살"이란 무엇인가


원래, 대학살이라는 것은 무엇인가가 문제다. 코우지엔(広辞苑 : 대사전)에는 "끔찍한 수단으로 죽이는 것"이라고 쓰여있다. 유엔이 1948년에 의결한 제노사이드 조약(통칭)에는, "집단학살죄란,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할 목적을 가지고 다음의 행위를 할 사안을 말한다.



(1)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것


(2) 집단살해의 음모


(3) 집단살해의 직접적이며 공공연한 교사


(4) 집단살해 미수(등)


이 정의에 해당하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서의 사건은 앞서 언급한 나치의 600만명 대학살이며, 미국의 무차별 도시폭격·원폭 투하에 의한 40만명 학살, 미영의 드레스덴 폭격에 의한 15만 명 사상, 및 소련군이 폴란드 장병 4400 명을 참살한카친 숲 사건 등이다.


그외의 대량살인이라면, 마오쩌둥의 대약진 때의 2200만명 살해·아사, 문화혁명 기간의 2000만 명 살해, 소련 혁명시 2000만명 숙청,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 때 200만 명 살해( 이상, "정론"2016년 4월호, 기타)등인 것이다.



또한,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 사건에서는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인민 해방군이 전차로 깔아뭉개는 등의 무력 탄압을 행해, 해금된 미국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사상자 4만 명 이상, 그 중 사망자는 1만 454명( "WiLL"2016년 7월)로 여겨진다.


남경사건에 앞선 4개월 여 전, 북경 동북 지역의 친일 정권이 있었던 통주에서, 일본인 거류지역의 385명(민간인)이 거류 지역을 경비하고 있던 중국 보안대와 폭도들에게 갑자기 습격당해 약탈 ·폭행당한 데다 부녀자를 포함한 223명이 살해되는 사건(통주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인에게 시집간 일본인 여성이 현장 근처에 있어서 그 자초지종을 목격했다 (후지오카 노부카츠 편저 "통주사건 목격자").



본인은 일본인이 살해되는 상황을 차마 볼 수가 없고, 소리를 질러, 도우러 가려고 갈등했지만, 남편이 일본말을 하지마, 숨어있으라고 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 증언은 현장에 있지않고는 말할 수 없는, 또한 일본에서는있을 수없는 참담함으로 가득차 있다.



이상의 예시처럼, 전투 행위에 관련된 병사 등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 대한 살육은 이의없이 학살이라고 할 수있다. 한편으로, 포로의 자격을 상실한 변의병(민간인으로 변장한 군인, 국제법 위반)이나 반란을 일으킨 포로 등에 대한 대처로 발생하는 살상은 전투행위의 일환으로 보아야하며, 학살이라고 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아사히 신문이 확산한 난징 대학살


난징에서는 전투는 있었지만, 융 롤라베가 항의한 것처럼 "학살"이라고 불릴 정도의 사안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혀져 갔다.



그런데 "학살의 피해자가 (그 기억을)잊으려고 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학살한 측의 국민이 잊는다는 것은, 범죄를 감추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혼다 카즈이치의 "중국여행")라면서, 아사히 신문의 혼다 기자가 "전쟁 중의 중국에서 일본군의 행동을, 중국 측의 관점에서 밝히겠다"는 방중 목적으로 입국을 허용받아, 1971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취재를 한다.



그 르포르타주(현지 리포트)가 귀국 약 1개월 후부터 4개월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어 커다란 반향을 부른다.



당시 현지에서 싸운 10만명 이상의 군인, 200명이 넘는 일본의 신문사·통신사의 취재진, 수십 명의 일본인 작가와 화가, 그리고 외교관, 심지어 민간인은 전투가 행해지고 나서 약 8년 후의 도쿄 재판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고, 강한 의심을 품었는데, 혼다 기자의 르포기사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사건에 연루된 일본인 관계자가 이의 신청을 해도, 혼다 씨는 "중국 측의 관점"에서 듣고 쓴 것이며, 상대가 말한 것을 충실하게 쓴 것 뿐이라고 하면서, 극히 일부 정정을 제외하고, 사실 확인에 노력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신문 연재가 남경 대학살 논란의 발화점이 되어,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인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르게 된 것이다.



혼다 씨는 신문 뿐만 아니라, "아사히 저널"과 "주간 아사히"에도 연재해, 사진의 일부는"아사히 그래프"에도 발표된다.



이러한 르포는 단행본 "중국 여행"으로 정리해, 이듬 해에 출판된다. 아사히 신문사가 얼마나 전력투구해 남경 사건을 "난징 대학살"로 만들어 갔는 지 알 수있다.



예비조사를 하고 의문점이나 문제점을 찾아,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위를 불문하고 여러 곳에서 학살이 있었다는 중국의 주장은, 도쿄 재판에 의한 자학사관에 사로잡힌 일본인 학자들을 고무하게 된다.



중국에게는 일본의 유명 언론으로부터 (난진 학살에 대한)보증을 받은 것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종래, 일본에서는 대학살파(30만명 이상), 환상파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 그리고 그 중간파(수만명 학살)로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 논쟁을 해왔다.



그 후 발굴된 자료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당의 선전공작에 의해 확대 선전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학살파의 주장은 내려앉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전투 행위에 부수한 포로의 반란 진압 등, 파생적으로 발생한 것은 기본적으로 학살이 아니라는 관점에 서있으며, 그 시점으로는 30만명은 커녕 몇 만명의 학살도 없어, 환상파의 입장이다.



난징 전투에 참가한 장병과 다수의 기자 등은 누구 하나 "대학살"을 말한 사람은 없다. 현지에서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할 것이다. 도쿄 재판에서 처음으로 "난징대 학살"이라는 것을 듣고, 경악한 것이다.




혼다 씨는 선동가


혼다 씨가 언론인이라고 하면, 전시 중에는 이야기한 적도 없고, 도쿄 재판에서 갑자기 이야기하기 시작한 난징 사안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드는 것인데, 중국의 변명을 그저 듣고 쓰기만 해서 신문지상에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무책임하다는 치욕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중국을 르포취재한 1970년대 초는, 현지에 있었던 군인과 기자 등은 여전히 대부분이 생존해 있었고, 기억도 제대로 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아라 켄이치 씨는 80년대 중반에 군인과 기자, 외교관 등 48명의 증언집을 저술했다).



1970년대 초기의 르포 취재, 그리고 그 직후에 가필해 출판된 단행본 "중국 여행"이 선도역이 되어, 그 후 학살을 주장하는 책이 잇달아 출간되어,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하게 된다.



당시는 일본의 신문사로서 아사히 신문 밖에는 중국 주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중국 측의 관점으로 일본군의 행동을 밝힌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더없는 일이다. "대학살"유포의 기회이며, "화약을 짊어지고 불로 뛰어드는 혼다"를 중국 공산당이 국가 전체적으로 최대한의 편의를 도모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중국 인민정치 협상회의 강소성 남경시 위원회 문사 자료 연구위원회 편의 "사료 선운 :침화 일군 난징 대학살 사료전, 제 4 편"이 간행되어, 일본에서는, (남경시 문사 자료 연구회) "증언·남경 대학살"로 번역된다.



이어서, 대학살과 관련된 사진집인 "침화 일본군 난징대 학살 조편집"이 중국에서 출판되고, 일본에서는 아사히 신문사가 "난징으로의 길"(혼다 저)과 "남경 대학살의 현장" (혼다와 후지와라 아키라 공저)이 잇따라 출간된다.



이렇게 대학살에 관련된 책의 출판이 이어지고, 또한 난징 전투 직후에 출판된 하롤드 J 팀펄리 편 "외국인이 본 일본군의 폭행"도 재출판되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계 미국인인 아이리스 장에 의해 "난징의 강간"으로 이어져,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어 일본을 궁지로 몰아간다.



중국은 승리라도 한 것처럼, 일본에 대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강요하고, 대학살 기념관이 중국 곳곳에 세워져 나간다.



혼다 씨는 "일련의 남경 대학살 캠페인이 중국 공산당에게 평가받아 2006년 9월 24일, 난징대 학살 기념관(난징)에서"특별 공헌상"을 수여받았다"(다나카 마사키" "난징 사건"의 총괄").


30만 이든 수만명 이든, 난징 시민을 학살했다고 하면, 일본과 일본군인이 오명을 뒤집어 써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런 학살이 일어난 것일까.



기자와 군인들의 증언


"남경 사건 등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기자로서 나중에 군인으로서 참가한 야마모토 오사무 씨)"대학살이라고는 하는데, 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증언할 수 없다"(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는 아다치 가즈오 씨), "난징 학살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완곡하게 잊어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는 하시모토 토미사부로 씨).


이것은, 1984년부터 61년에 걸쳐, 아라 켄이치 씨가 인터뷰한 군인, 신문사·통신사 기자, 외교관 등 48명의 대체적인 증언이다( "남경 사건 일본인 48명의 증언") .


마이니치 신문과 아사히 신문, 그리고 동맹 통신은, 각각 기자 등 약 50명을 난징에 파견하고 있었다. 3개사에 150명의 보도 체제다. 외국인 기자도 5~6명 있었고, 외교관이나 일본인 작가·화가 등도 수십명 있으며, 언론을 업으로 살던 사람이 약 200명이나 있던 것이 된다.


그 누구도 "학살"을 말한 사람은 없다. 곳곳에서 1명 또는 2명의 사체를 보았고, 양자강 인근에 수백(수천이라는 사람도 있다)의 시체가 있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시체를 보았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전쟁 중의 사건이며, 학살 등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당시 난징에 있던 관계자는 외국어 신문과 도쿄 재판에서 처음으로 "학살"이라는 말을 듣고, 현지을 샅샅이 돌아다닌 사람들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 놀랐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학살을 보지 않았습니까"라고 끈질기게 질문을 받아, "그러고 보니 그게 학살이었다는 것이지요?"라고 오히려 반문하는 말 뿐이다.


외국어 신문은 난경에 있던 미국인 선교사와 국민당 선전기관의 촉탁 등으로 일하던 인물에 의한 보도 등이 기본으로 되어있다. 그들은 선교활동에 대한 미국의 자금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기부 등을 더 많이 모집할 목적으로 일본군의 악행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기자들보다 더 많은 있었고, 실전에서 싸운 것이 장병들이다. 개별 병사는 제한된 지역 밖에 보지 못할 것이지만, 부대 지휘관이 되면, 책임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파악하고있다.


파악하지 못하면, 군대로서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없다. 만 명을 헤아리는 병사 전부가 학살 보고서를 언급하지 않으며, 소부대의 지휘관부터 연대장, 사단장도 학살 사안과 관련된 보고를 받지 않았다.


학살 사건의 현장이라고 여겨지는 안전구(피난구역)에는 동맹통신이 지국을 개설했다. 그 지국에 남경 사건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시기에 출입했던 기자조차 학살을 본 적도 없으며, 동료 기자 등 약 50명의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도 없다고한다.


다만, 미국으로부터의 선전뉴스에서, 난징 학살사건이 일어난 것 같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날조한 정보가 반대로 난징에 소개된 것이다.




안전구역을 설정한 독일인 융 라베(위원장)는 "귀하의 포격부대가 안전지역을 포격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중략)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라는 서한을 일본군에 보냈었다.



당시 난징의 모든 시민이 안전지역에 집결해 국제위원회의 관리 하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안전 구역이 평안하다는 것은, 난징 전체 시민이 평안했었다는 것이다. 국제위원회가 항의한 것처럼 약간의 살인·강도·강간 등은 있었지만, 시민을 "학살"했다고 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진핑 발언의 거짓을 폭로한 특종


2016년 8월 31일자 산케이 신문은 놀라운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그 보도 요약은 다음과 같다.


2015년 10월에 영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엘리자베스 여왕 주최의 공식 만찬에서 영국인 조지 호그 씨를 거론하며 "제 2차 세계대전 때 기자로서 침략자인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는 기사를 발표했다"며, 난징 대학살을 실제로 목격한 기자로서 이렇게 칭찬할 만한 인물은 없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중국은 2008년에 독일 등과의 합작으로, 적십자 직원으로 위장해 난징에 들어가, 중국 시민을 살해하는 일본군을 촬영하는 호그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했다. 호그 씨는 일본군에 발견되어 처형 직전에, 중국 공산당군에게 구조된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의 원작이 ​​된 책을 쓴 영국 타임즈 기자인 제임스 맥마누스 씨는, 호그 씨의 중국 입국은 난징사건이 일어났다는 1937년 12월이 아니라 다음 해인 38년 2월, 게다가 상하이에 갔지, 난징에는 가지 않았으므로, "영화는 각색되었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산케이 신문은, 호그 씨가 근무했다는 신문에 서명기사(기자이름으로 보도한 기사)가 없으며, 또한 통신사에는 서명 기사가 있지만 기행문 등으로, "일본군의 학살행위를 파헤친 서명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호그 씨는 고아 시설에서 교사로 재직해, 국민당 정부군이 고아들을 징병하려고했을 때는, 고아 60명을 데리고 몽골 국경까지 이동해, 전화로부터 아이들을 지켰다고 해 "중국판 쉰들러"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중국의 국가주석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주최한 공식 석상에서 말했던 "일본의 만행을 폭로한 기사"는 있을 수없는, 완전한 날조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범죄로 여기게 하려는 의도가 우선 전제되어 창출된 영화라는 것이다.



산케이, 2016년 10월 23일자 칼럼 "편집국에서"에 따르면, 중국 측의 공식 전사 집인 "항일 전쟁 정면전장"(1987년판)의 난징 공략 전후편을 신중하게 읽어보면, "상호 교전한 적도 있었다" "배가 준비되지않아, 부득이 뗏목을 이용했는데 익사하는 일이 많았다"등의 설명이 있는데, 난징학살은 나오지 않으며, 철수하는 중국군의 참상이 그려져있다고 한다.



빈부 격차의 확대와 언론 봉쇄 등에 반발해, 공산당 지도부로 향하기 쉬운 인민의 에너지를 외부의 일본으로 발산시키 위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을 범죄국가로 세계에 선전하려는 의사를 보여온 중국이지만, 지금에 와서 들통이 났다고 하는 것은 과언일까.




결론


혼다 씨는 "중국인들이 수천 수백만 명 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일반 일본인은 소문 정도로 추상적으로 밖에는 모른다"라고 쓰고, "(미국은 손미사건 등을 보도했지만) 일본의 보도가 그런 일은 없었다는 점, 26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 라는 것이 사실이다. 손미사건의 보도에 감탄하기보다는, 실천하는 편이 낫다"("중국 여행")고 쓴다.



백명 목자르기를 비롯해 난징 대학살은, 당시 이미 의문부호가 붙여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설명을 진실로 받아들여, "의문의 여지없이 일본은 중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제대로 보도하라"며, 혼다 씨는 일본을 압박하고, 중국을 불쏘시개로, 세계에 유포하는 요인을 만들었다.



아사히 신문의 서있는 위치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검증을 수반하지 않는 보도는 저널리즘이라 할 수없는 것이고, 기자는 기자 의식을 방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국가를 대표하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조차 의문이 드러났다. 드디어 "난징대학살"이라는 사기의 베일이 벗겨져, "존재하지 않았던 '대학살' "이 백일 하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https://jbpress.ismedia.jp/articles/-/48368



"검증을 수반하지 않는 보도는 저널리즘이라 할 수 없는 것이고, 기자는 기자 의식을 방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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