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 목소리는 좀 커진다. 미국 드라마에 관심도 없는, 미국 드라마뿐 아니라 드라마가 자기와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닥터 하우스가 최근 어떤 환자의, 어떤 미스터리한 병을 해결해냈는지에 대해 떠들어댄다. 내가 이토록 수준 높은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사방팔방 알리고 싶은 것이다. 수준 높은 드라마의 기준? 무슨 뜻인지 알아 듣기 힘든 말이 잔뜩 나오고, 장면도 팍팍 바뀌고, 한 마디로 몰입해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것.
반면, 요즘 <가십 걸>에 푹 빠져 있는 건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B급 기밀’이다. 스토리가 장 클로드 반담 영화보다 더 단순한 까닭에 보고 나면 머리 속에 남는 거라곤 ‘나도 인터넷에서 연예인 가십이나 좀 검색해볼까’ 하는 생각이 전부인 이 드라마는, 그런 까닭에 몰래 숨어서 본다. 옹호하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십 걸>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일단, 재미있잖아. 보고 있으면 시간 슉슉 간다. 걸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릴 때, 처치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지만 ‘덱스터’ 처럼은 할 수 없어 가슴을 쥐어 뜯으며 분을 삭일 때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딱’이다. 그뿐인가. 교훈도 있다. 가령 이런 것들.
<H3>단일 브랜드에 대한 집착은 화를 부를 것이니</H3>
| 프릴 스커트, 프릴 블라우스... 블레어의 엄마는 진정 딸의 안티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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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한 사람을 향한 집착만큼이나 한 브랜드에 대한 집착은 비극적인 결말을 낳는다.블레어의 엄마는 디자이너다. 그래서 블레어는 엄마가 만든 옷만 입는다. 블레어 엄마가 스텔라 매카트니나 미우치아 프라다쯤 된다면 또 모를까 ‘헨리 벤델 백화점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을 모르는 디자이너의 옷을 1년 365일 입어야 한다는 건 스타일 면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블레어 엄마는 이런 걸 좋아한다. 커다랗고 빨간 꽃무늬, 잔잔한 꽃무늬, 블라우스 네크라인에 리본 장식 달기, 소매 끝에 프릴 달기, 치마 허리선에 프릴 달기, 치마 밑단에도 프릴 달기…. 비록 당신께서는 ‘현대적이면서도 귀족적인 기품이 있는 옷’이라고 주장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옷들은 딱 변두리 양장점 수준. ‘2007년의 쇼윈도에 진열된 1987년도 옷’이라는 면에서 현대와 과거(귀족)가 블레어 엄마의 옷 속에서 사이좋게 만나고 있긴 하지만.
게다가 엄마의 ‘감각 결핍증’을 물려받은 블레어는 그나마 있는 예쁜 옷-어느 파티를 앞두고 입어봤던 푸른 색 튜브 드레스를 포함-은 다른 애들 다 줘버리고, 게 중에서도 촌스러운 옷만 골라 입는다. 그러니 빈티지 풍 드레스부터 스팽글로 뒤덮인 에디 세즈윅 풍 미니 드레스, 랑방 스타일의 볼륨감 있는 드레스 사이를 넘나드는 세레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지. 엄마 옷을 외면하는 냉정한 멋쟁이보다는 착한 딸에게 박수를 보내겠다고? “(<가십 걸> 나레이션 풍으로)착한 딸? 옷 못 입는 딸이 착한 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구 맘대로! 여기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 어퍼 이스트 사이더에겐 스타일이 곧 윤리라구!”
<H3>단일 액세서리에 대한 집착 또한 너를 망칠 것이니</H3>
| 세리나의 부츠 집착은 때와 장소를 잘 맞추지만, 블레어(사진 왼쪽)의 헤어밴드 집착은 상상초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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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액세서리를 향한 집착 역시 화를 부른다.블레어는 헤어밴드에 집착하고, 세리나는 부츠에 집착한다. 블레어의 헤어밴드는 세리나의 털털하면서도 씩씩함과는 다른 매력, 즉 여성스러움과 새침함을 발현할 수 있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만든 옷’과 더불어 블레어의 변신을 방해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늘 비슷한 스타일의 헤어밴드로 머리를 장식한 블레어는 이제 겨우 시즌 1의 7편을 보고 있는 내게도 40년은 같이 산 잔소리쟁이 마누라처럼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세리나의 집착은 양호한 편이다. ‘다리에 심각한 상처가 있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부츠에 집착하긴 하지만 파티에 갈 땐 부츠 대신 미셸 페리의 날렵한 하이힐을 신고, 교복을 입을 땐 무릎을 덮어 버리는 하이니 부츠, 데님 팬츠를 입을 땐 프린지가 달린 히피 스타일의 부츠, 교복이 아닌 미니스커트를 입을 땐 발목에 착 감기는 앵클 부츠 하는 식으로 부츠를 신을 때도 변화를 주니까.
여기서 잠깐.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가십 걸> S와 B, 스타일로 맞붙다’를 주제로 다음 주에 한번 더 해야겠다. 아직 교훈이 여남은 개쯤은 더 남았는데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드라마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여기서부턴 귓속말)옐로 저널리즘의 팬인 분들, 인터넷 창 띄우면 연예 가십 뉴스부터 검색하는 분들, <섹스 앤 더 시티> 이후 ‘옷 구경’ 못해 몸이 근질근질한 분들 <가십 걸> 꼭 보세요. 한마디로 ‘킹왕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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