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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기 시리즈 1.5화 -후편-

ㅁㄴ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10.21 11: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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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기 시리즈 1.5화 ― 권태 속에서도 히키가야 하치만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 -후편-



 이젠 정말로 한계다. 자꾸 멋대로 눈꺼풀이 감기려드는 걸로 보건대 틀림없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긴장을 풀어버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곯아떨어져 버릴 테지. 어쩌면 필름이 끊겨버려서 술주정을 부리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잔뜩 마신 건 장인어른의 장례식 후 시즈카와 둘이서 마신 이후로 처음인 것 같군……. 그때는 우리 집에서 마신 거다 보니 뒷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마셨었지만, 유키노네 집에서 마시고 있는 오늘은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니 아직 몸을 가눌 수 있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현명한 판단이겠지. 


 "아, 더는 못 마시겠다. 이젠 진짜 한계야."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고, 한계까지 꽉 찬 배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하자 유이가 불만스럽게 뺨을 볼록이며 입술을 삐죽인다. 


 "벌써~? 힛키, 주량이 너무 약한 거 아냐?" 

 "밤은 아직도 긴데 벌써 항복이니? 여전히 술에 약하구나. 집에만 박혀있어서 그런 걸까?" 

 "니들이 너무 강한 거거든? 취하는 거 이전에 이젠 배가 터질 것 같다고……." 


 뭐, 정확히는 술에 강한 건 유키노뿐이고, 유이의 얼굴은 딱 봐도 술에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빨개져 있는 상태다. 눈도 살짝 풀려있는 게 이미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돌아갈 걸 생각하면 이쯤에서 그만 마시게 하는 게 좋겠지만, 유이야 여차하면 여기서 자고 가면 될 테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


 "벌써 9시 반인가……. 유이, 너는 어쩔 거냐? 유키노네 집에서 자고 갈 거야?"

 "어? 아,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이대로 유키농네서 자고 가려고."

 "그러냐. 그럼 나 혼자 가야겠군."


 그렇게 말한 후 내가 식탁 의자를 뒤로 빼자 유이와 유키노가 당혹함이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붙잡는다.


 "어?! 벌써 가는 거야? 좀만 더 있다가 가자~!" 

 "아직 전철 끊길 때까지 시간이 남아있잖니. 신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려고 하는 걸까." 

 "아니, 여기 온 지 6시간이 넘었다만……."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녀석들 설마 진짜로 밤새도록 마실 생각이었던 건가? 몇 시간이나 마셨는데도 떨어질 줄을 모르고 계속 리필되는 맥주를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힛키, 조금만 더 같이 마시자~ 응?" 

 "그래, 모처럼 셋이서 마시는 거잖니." 


 유이와 유키노가 애원하는 목소리와 섭섭한 목소리로 나를 붙잡는다. 니들 나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유이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유키노까지 이렇게 조르는 건 굉장히 드문일이다 보니 또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한계다. 이 이상 마셨다간 혼자서 무사히 전철을 타고 돌아갈 자신이 없다. 이제는 정말 한계라고 오랜 경험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날이었다면 시즈카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 비장의 수단을 쓸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시즈카도 친구들과 술을 마셨을 게 분명하니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콜택시를 부르자니 돈이 너무 아깝다. 아이가 없다 보니 돈에 쪼들려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책 3, 4권은 살 수 있을 돈을 택시비로 내는 건 쓰라린 지출이다. 유이와 유키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젠 그만 돌아가 봐야겠다. 


 "이젠 진짜 한계다. 더 마셨다간 무사히 돌아갈 자신이 없다고."


 필름이 끊겼다고 해서 설마하니 공원에서 알몸으로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추태야 일으키지 않겠지만, 길거리나 전철역에서 곯아떨어져 버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직은 따스한 날씨니 밖에서 잔들 추위에 입이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만, 이 나이에 그런 쪽팔린 경험은 사양이다.

 내가 거절의 의사를 보이자 유키노와 유이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아직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이번에는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나를 어른다.   


 "……내일은 주말이기도 하니 같이 더 마시다가 오늘은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게 어떻겠니?"

 "그거 좋네! 힛키도 같이 자고 가자~"


 예전이라면 있을 수도 없는 대담한 발언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만다. 오래전 시즈카까지 넷이서 유키노네 맨션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을 땐 만취해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나를 시즈카에게 맡겨서 기어이 돌려보냈었는데 말이지. 이젠 나 같은 건 이성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건가……. 

 하기야 요전에 유이네 집에서 모였을 땐 덥다면서 속옷 차림이나 다름없는 꼴로 있었던 두 사람이다. 요즘은 곧잘 섹드립도 치고 있고, 겉모습은 젊어 보여도 속은 아줌마가 다된 것이다. 알고 지낸 지도 벌써 20년은 지났는데 그런 말에 일일이 얼굴을 붉히는 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말씀은 고맙지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봐야 하는 애니가 있으니까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뭐~? 애니 같은 건 유키농네 집에서 보면 되잖아!" 

 "그래, 우리 집에서 보렴.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 TV는 너희 집 TV보다 훨씬 크니까 감상하기 더 좋을 거야." 


 호오, 그건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군. 확실히 유키노네 커다란 TV라면 같은 애니를 봐도 박진감이 다를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애니를 봐야 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한 소리일 뿐이다. 이렇게 잔뜩 술을 마셨으니 어차피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지도 못할 거다. 


 "아, 그래. 내일 아침은 해장도 할 겸 라멘으로 하려고 하는데 둘 다 그걸로 괜찮니?"

 "라멘인가~ 난 미소 라멘!"

 "그래, 알았어. 하치만은 돈코츠면 되지?"


 내가 자고 가는 건 확정인 거냐……. 술을 마셔서 졸리기도 하고, 이대로 여기서 자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니지만……. 


 "미안하지만 난 사양하마."

 "에이~ 그러지 말고 힛키도 같이 자고 가자~"

 "오랜만에 셋이서 마시는 거기도 하고, 이번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겠니?" 


 이런 제안을 할 정도로 친구로서 나를 신뢰하고 소중히 여겨주는 건 솔직히 기쁘다. 하지만 제안에 따를 수는 없다. 왜냐면 내게는 아내가 있으니까.


 "야야, 난 유부남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인 너희 집에서 자고 갔다간 시즈카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과 너무 자주 만난다고 내심 불만스럽게 여기는 판국이다. 설마하니 불륜으로 오해해서 더는 두 사람과 만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만, 내심 속상하게 생각할 건 분명하다.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그랬을 테지. 

 아무리 20년 지기 친구라고 해도, 시즈카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제자라고 해도, 남자인 내가 여자인 유키노네 집에서 자고 갈 수는 없는 거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와 유이랑 마시는 거니까 전화로 잘 말씀드리면 선생님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턱에 손을 얹으며 담담하게 말하는 유키노. 반면 유이는 뺨을 뾰로통하게 부풀리며 불만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취해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노려보는 모습이 나이에 안 어울리게 귀여워서 무심코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예전에 자이모쿠자가 귀염 떠는 목소리와 함께 비슷한 표정을 지었을 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갈 뻔했었는데 말이지. 역시 츤데레도 도짓코도 귀여운 여자애가 하니까 용서가 되는 거다. 뭐, 유이는 귀여운 여자애는커녕 귀여운 여자애가 자식으로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지만!


 "…………."

 "한 침대에서 자자는 것도 아니잖니. 시즈카 선생님은 이해심이 많은 분이니 이정도는 충분히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해."

 "그래! 시즈카 선생님이라면 분명 이해해주실 거라고~"


 뭐, 상대가 유키노와 유이니 전화로 사정하면 시즈카도 아마 허락해줄 거라고는 생각한다. 허락받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마지못해 하는 허락일 거라는 점이다. 얼마 전 내게 넌지시 불만을 토했던 걸 생각하면 내심은 못마땅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다. 아내인 시즈카를 속상하게 만들면서까지 자고 가고 싶지는 않은 거다.


 "글쎄다. 안 그래도 요즘 너무 자주 나다니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들은 판국이라……. 게다가 오늘 밤은 시즈카가 우울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거든."

 "응? 시즈카 선생님하고 무슨 일 있었어?"

 "혹시 부부싸움이라도 한 거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실은 시즈카가 오늘 친구 딸의 결혼식에 갔거든."


 다소 모호한 설명이었지만 시즈카가 불임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두 사람에겐 그걸로도 충분했는지 유키노와 유이가 아아… 하고 짧게 말을 흘린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시즈카는 자신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내심 담아두고 있다. 지금은 그런 얘기가 나와도 쓴웃음으로 넘겨버리고 있지만, 한때는 이러다가 우울증이라도 걸리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이번에도 우울해져서 집으로 돌아올 테지. 

 자신은 불임의 몸이라 아이도 가져보지 못했는데 친구는 벌써 딸이 결혼식까지 올리고 있는 거다. 결혼식에 참석해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심경일 텐데, 그 후엔 친구들과의 모임에까지 참석해야 한다. 나이 50 먹은 여자들의 모임이니 자식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겠지. 시즈카에게 있어선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는 즐거운 자리임과 동시에 듣고 싶지 않은 얘기들을 들을 수밖에 없는 가시방석 같은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시즈카 선생님, 아직도 신경 쓰고 계시는구나…… 어? 잠깐만, 지금 친구 딸의 결혼식이라고 했어?!"

 "응? 어, 친구 딸의 결혼식."


 유이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으로 가득 찬 얼굴로 아연실색하고, 유키노도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본다. 뭐, 나 역시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충격과 공포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으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놀랐어. 하지만 시즈카 선생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구나."

 "뭐, 그렇지. 우리 부부는 나이 차가 적지 않으니까."


 시즈카와 나는 무려 띠동갑도 넘는 13살 차이인 거다. 시즈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나는 이제 겨우 세상에 태어났을 정도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치만, 혹시 그 친구 딸의 나이는 알고 있니?"

 "어. 우리보다 13살 어린 24살인 모양이다."

 

 보통은 얼굴도 모르는 아내 친구 딸의 나이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나와 시즈카의 나이 차이와 똑같다 보니 기억을 못 하려야 못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유키노가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깨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훗 하고 웃는다.


 "정확히는 너와 유이보다 13살 어린 거고, 나보다는 12살 어리단다. 난 빠른 생일이니까."

 "……대충 좀 넘어가라."


 예전에는 이렇게 1살 차이에 연연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하기야 겉모습은 젊어 보여도 유키노도 이제는 30대 중반의 아줌마다. 나이를 신경 쓰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24살이 결혼…… 난 아직 경험도 없는데……."


 아무래도 좋은 사소한 일에 승리의 미소를 짓는 유키노와 달리 유이의 표정은 어둡다. 아니지, 어둡다기보다는 오히려 하얗군.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새하얗게 불타버려 있다. 으음,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이건 터무니없는 오폭을 해버렸군. 

 

 "아무튼, 오늘은 친구 딸 결혼식에 참석한 데다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자식 자랑까지 듣느라 시즈카의 기분이 우울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그러니까 오늘은 무리다." 

 "…………그래. 그러면 오늘은 어쩔 수 없겠구나." 


 날 여기서 재우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는지 유키노가 긴 한숨을 흘린 후 잔에 남아있던 맥주를 들이켠다. 유이 역시 에휴 하고 한숨을 흘리며 빈 잔에 거칠게 맥주를 들이붓는다. 저기요, 마음이 불편하니까 그렇게 대놓고 실망하지 말아 주실래요? 너무 노골적이어서 살짝 기쁘기까지 하거든요. 

 즐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된 게 미안한 나머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한다. 자이모쿠자의 부탁을 거절할 때는 일말의 미안함도 안 드는데 유이와 유키노의 부탁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단 말이지.

 뭐,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다. 두 사람과는 늦어도 다다음 주엔 또 만날 수 있다. 유키노가 허락한다면 다음에는 시즈카도 데려와 밤늦게까지 마신 다음 자고 가는 것도 괜찮겠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불현듯 유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역시 힛키는 상냥하네." 

 "엥?"


 뜬금없는 칭찬에 일어나려던 걸 멈추고 갑자기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유이가 턱을 괸 자세로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즈카 선생님이 우울해 할까 봐 집에 가서 위로해 주려는 거잖아?" 

 "어, 그야 뭐……."

 "결혼하지 15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렇게 세심하게 챙겨주고…… 역시 힛키는 상냥해~ 그치?" 


 유이가 쌩긋 웃으며 동의를 구하듯이 유키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시선에 유키노는 한순간 눈을 내리깔며 쓴웃음 지었지만,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 시즈카 선생님이 부러울 정도야." 


 그 한 점의 거짓도 없는 본심이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에 멋쩍어져서 나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만다.


 "갑자기 뭔데……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걱정하지 말렴. 이 나이 먹도록 용돈을 타서 쓰는 네게 뭔가를 사달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아니, 용돈은 오히려 내가 시즈카한테 주고 있거든?"


 월급 관리는 내가 하고 있으니까. 뭐, 돈을 벌어오는 건 시즈카니까 엄밀히 따지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아하하~ 그냥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라고. 부끄러워하긴~"


 유이가 헤실 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한다. 아, 아니거든? 딱히 부끄러워하는 거 아니거든? 그전에 얼굴이 새빨개진 녀석한텐 듣고 싶지 않다고.


 "……하긴 뭐, 내가 상냥하고 좋은 남편이긴 하지. 아내가 주말에 집에서 뒹굴고 있어도 잔소리 안 하고, 회식이 있다면서 집에 늦게 들어와도 잔소리 안 하고, 나이 먹고 애들처럼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어도 하나도 잔소리도 안 하거든."  

 "아니, 집에서 뒹구는 거랑 만화 보는 건 힛키도 마찬가지잖아!"

 "좋은 남편의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니니……."


 유키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하는 말에 나는 집게손가락을 척 세우며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고. 종종 시즈카한테 스포츠 마사지도 해주고 있다."

 "어? 힛키, 스포츠 마사지 같은 것도 할 줄 알았어?"

 "어. 인터넷 강좌랑 책으로 공부했거든."


 유이가 의외라는 듯 헤에~ 하고 감탄사를 흘린다. 뭐, 무리는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안 어울리니까. 

 하지만 내가 스포츠 마사지란 리얼충 냄새가 나는 기술을 익힌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어머, 확실히 그건 칭찬할만하구나. 시즈카 선생님에게 해주려고 배운 거니?" 

 "뭐, 그렇지. 어떻게 하면 돈 안 들이고 시즈카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거라면 건강까지 일거양득이다 싶었거든." 

 "……괜히 감동했어."


 유이와 유키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유가 좀 구두쇠 같으면 어떠냐? 아내만 만족하게 하면 그만이지. 

 초로의 아내가 피곤함에 절어서 돌아오는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해서 해주기 시작한 스포츠 마사지였지만, 실은 이게 돈만 안 들지 은근히 중노동이다. 시즈카가 워낙에 좋아해서 처음에는 매일같이 해줬었지만, 너무 힘들고 귀찮아서 지금은 시즈카가 부탁할 때만 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귀찮아서 거절하다가 시즈카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마지못해 해주고 있다. 

 신혼 시절 땐 시즈카도 아직 30대 중반이었고, 이성으로서의 설렘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이에 안 어울리는 애교도 귀엽게 느껴졌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소름이 돋는다. 요컨대 정신적인 고통보다 육체적인 고통을 택했다고 할까……. 

 

 "……하치만, 혹시 내게도 스포츠 마사지를 해줄 수 있겠니?"

 "아, 나도~!"


 유키노가 긴 머릿결을 조용히 쓸어 올리며 그렇게 말하자 유이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맞장구친다.


 "엥? 엉덩이랑 다리도 주무르는 건데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겠냐? 


 확실히 우리는 반 속옷 차림을 보여줄 정도로 친한 사이지만, 보여주는 것과 만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머리를 만진다든가, 손을 잡는다든가, 어깨를 두들기는 정도의 스킨십은 해봤지만, 우연한 사고로 두 사람을 가볍게 끌어안아 본 적도 있긴 하지만, 그녀들의 엉덩이나 다리에 손을 대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이다.


 "별로 상관없어. 네게 불순한 의도가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

 "나도 힛키라면 딱히 상관없어."


 뭐, 본인들이 괜찮다면 상관없겠지……. 

 유키노와 유이에게는 얻어먹은 게 많고, 그 보답도 할 겸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 두 사람이라면 시즈카도 분명 흔쾌히 허락해줄 테고. 


 "알았다. 오늘은 배도 꽉 찼으니까 다음에 유이네 집에서 모일 때 해줄게." 

 "그래, 기대할게."

 "와아~ 고마워 힛키!"


 ……어이쿠, 어느새 시간이 또 5분이나 지나가 버렸군.


 "그럼 난 이만 간다."


 이번에야말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두 사람은 나를 붙잡았다.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파닥파닥 손짓하며 유이가 말한다. 


 "있잖아, 딱 한 시간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아니, 충분히 오래 있었잖아." 

 "아직 전철 끊길 때까지 시간도 있고……. 실은 나 힛키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그러니까 술도 깰 겸 딱 한 시간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 


 물어보고 싶은 거라니, 반나절을 함께 있었으면서 여태 뭐하고 집에 간다니까 이제서야 물어보려는 건데……. 

 하지만 뭐, 전철이 끊길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한 시간 정도라면야 안 될 것도 없긴 하지만……. 


 "나도 동감이야. 게다가 오늘은 시즈카 선생님도 친구분들과 모임이 있으니 집에 늦게 들어오시지 않겠니?" 

 

 ……그것도 그렇군. 유키노의 말대로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간 시즈카는 보통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온다. 요즘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보다 빨리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돌아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설령 이미 집에 돌아와 있다고 해도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시즈카는 내가 자기보다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화를 낼 정도로 속이 좁지 않으니까. 유키노네서 자고 가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조금 늦게 들어가는 정도는 괜찮을 거다. 늦어봐야 자정이 되기 전엔 집에 도착할 테고.


 "……알았다 알았어. 한 시간만 더 있다 갈게."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리 말하자 유이가 앗싸~! 하고 기쁜 듯이 웃고, 유키노도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자이모쿠자 놈도 그렇고 얘네도 그렇고 내 친구들은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정작 붙잡아줬으면 하는 토츠카는 언제나 쿨하게 보내주고 있는데 말이지…… 토츠카가 붙잡았다면 나 얼마든지 더 남았을 텐데…….


 "그래서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뭐냐? 미리 말해두지만, 카드 비밀번호 같은 건 안 말해준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안 물어본다고!"


 벼룩의 간이라니 정말 너무하네. 그래도 지갑 속 체크카드에 10만 엔 정도는 들어있거든요……? 


 "…………아니, 그……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유이가 부끄러운 듯 몸을 비비 꼰다. 그리고 망설이듯이 뜸을 들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즈카 선생님이랑 요즘도 섹…… 부부관계는 하고 있어?"

 "…………뭐?"


 

× × ×



 확실히 대단한 질문은 아니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너 겨우 그런 걸 물어보려고 가지 말라고 한 거였냐……."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유이가 허둥지둥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듯이 말한다. 


 "아, 아냐, 원래는 밤이 더 깊어지고 나서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힛키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간다고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남의 부부관계 같은 건 들어서 어쩌려는 건데……." 

 "딱히 어쩌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유이가 빨갛게 익은 뺨을 긁적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까보다 더 빨개진 것처럼 보이는 건 딱히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힛키랑 유키농도 알다시피 난 독신이고…… 경험도 없고……. 그래서 전부터 남들의 부부관계 같은 게 궁금했거든." 


 섹스가 궁금한 거라면 그냥 AV라도 빌려보면 되지 않을까요? 설마 그런 음란한 몸을 하고 계신 주제에 포르노 한번 안 보셨습니까? 

 뭐, 유이가 궁금해하는 건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몇 번 정도 하는지, 얼마 동안 하는지, 어떤 식으로 하는지 같은 걸 거다. 아마 인터넷이나 TV, 잡지 등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주위 사람의 실감 나는 얘기가 듣고 싶은 거겠지.


 "근데 그런 건 나 말고 미우라나 에비나한테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냐?" 

 "유미코한테 그런 걸 물어봤다간 빨리 결혼하라고 잔소리할 게 뻔하고, 히나는…… 자기 얘기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으음, 확실히 그래선 물어보기가 힘들겠군…….  

 미우라야 친구인 유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소리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쓸데없는 참견이고 고통일 뿐이다. 노처녀가 결혼 언제 할 거냐는 말을들었을 때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한 것이어서, 시즈카의 경우는 나와 사귀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노이로제 상태였다고 한다. 나와 결혼한 후에도 너는혹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니 그 고통을 대충 알만하다. 에비나는………… 20년을 사귀었는데도 여전하다니 걔도 참 대단하군. 

 유키노에게는…… 역시 물어보기 힘들겠지. 저번에 얘기 듣기로는 계속 각방을 썼을 정도로 전남편과 사이가 나빴던 모양이고. 

 어찌 보면 유이가 이런 걸 내게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군. 나나 유키노와 달리 사교성이 좋아 친구가 많은 유이지만, 부부 관계 같은 은밀하고 사적인 얘기를 마음 편히 물어볼 정도로 친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딱히 무성애자인 것도, 골드미스를 지향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노처녀가 된 유이로서는 이런 걸 묻어보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대가 나라면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고, 무시당하고 비웃음당하는 일 없이 마음 편히 물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부부 사이가 좋다. 그러니 유이가 나를 선택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유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솔직히 당혹스럽다. 자이모쿠자와는 만나서 곧잘 야한 얘기를 나누고 있지만, 솔직히 여자인 유이나 유키노와 그런 얘기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좀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런 것에 일일이 부끄러워할 나이도 아니고, 딱히 그녀들을 이성으로 의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녀들과 함께 보낸 학생 시절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일까, 그런 음탕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역시 좀 저항감이 든다. 아니, 별로 나랑 시즈카가 음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

 

 "흐음, 하치만의 부부 생활이라면 나도 흥미가 있어." 

 "넌 또 왜 그러는데……." 


 유이야 본의 아니게 순결을 지킨 것뿐이니까 억눌려온 성욕과 미지의 호기심에 다른 사람의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진작에 경험을 끝마쳐서 알 거 다 아는 너는 또 왜 그러는데…….


 "너와 달리 난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했었잖니. 부부관계는 배우자의 의무 중 하나니까 최소한의 부부관계는 가졌었지만, 그것을 좋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그러니까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너희 부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 거야." 

 "어, 어……. 그러냐……."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아무래도 유키노의 결혼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행했던 모양이다. 

 배우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소한의 부부관계는 가졌었다는 유키노다운 고지식한 그 말은 그녀의 부부생활이 얼마나 불행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인 이상 유키노도 전남편과 부부관계를 가지며 어느 정도는 육체적 쾌감을 느꼈겠지만, 분명 그 쾌감 따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느꼈던 거겠지.

 유키노는 이혼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고, 말해줬다 한들 내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힘들었을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조금 민망한 질문에 대답해주는 거로 그녀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위안을 줄 수 있다면야…….


 "…………뭐, 말해준다고 해서 딱히 닳는 것도 아니니까 다 대답해주마. 시즈카랑 부부관계를 얼마나 하는지를 말해주면 되는 거냐?" 

 "응! 신혼 때야 물어볼 것도 없이 자주 했을 테고, 결혼한 지 15년이나 지난 요즘은 어떤지 궁금했거든." 


 앞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흥미진진하게 나를 쳐다보는 유이. 예쁘장한 외모와 성숙한 나이로도 감출 수 없는 그 동정력에 유키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잠은 같이 자지만 요즘은 부부관계는 거의 안 했다. 아마 6월 초에 한 게 마지막일 거다." 

 "어머, 의외로 적구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러게. 의외네~" 


 유키노가 턱에 손을 얹은 채 흥미롭다는 듯이 말하고, 유이도 헤에~ 하고 흥미진진한 분위기로 맞장구를 친다. 말해주는 입장으로선 멋쩍을 뿐이지만, 듣는 입장으로선 즐거운지 두 사람 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권태기…… 라기보다는 섹스리스 부부구나." 

 "섹스리스 부부?" 

 "특별한 사유가 없이 한 달 이상 성적 관계를 갖지 않는 부부를 뜻하는 말이야." 

 "섹스리스 부부라…… 틀린 말은 아니군……." 


 말끝을 흐리며 그렇게 말하자 유키노가 묘하게 따스한 시선과 함께 후우 하고 안쓰럽다는 양 한숨을 흘린다.


 "친구로서 조금 안타깝구나. 설마 하치만이 그 나이에 벌써 발기부전증에 걸렸을 줄이야……."

 "야야, 발기부전증 같은 거 안 걸렸거든? 그래서 안 한 거 아니거든?"


 10대나 20대 때처럼 아침마다 탄탄하게 텐트를 치는 건 아니지만, 하치만 주니어는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거든요?


 "농담이야."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가 키득 하고 작게 웃는다.

 

 "뭐, 시즈카 선생님이랑 결혼한 지도 15년은 지났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동감이야. 게다가 시즈카 선생님은 벌써 50대니까 30대인 하치만이 선생님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네. 같은 30대였다면 힛키도 섹스리스까진 아니었으려나?" 

 "그랬을지도 모르지……."


 확실히 시즈카가 지금도 30대였다면, 아니, 하다못해 40대 초반만 됐어도 섹스리스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했다 보니 질려버린것도 있겠지만, 내가 섹스리스 상태가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늙은 아내에게 더는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젊은 날의 내가 좋아했던 나이에 안 어울리게 귀여운 얼굴도, 밤마다 푹 빠져 살았던 아름다운 몸매도 더는 없다.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얼굴의 주름살과 늘어난 뱃살, 그리고 노년기의 시작이라는 폐경기. 13살 연상의 아내는 나보다 몇 발이나 앞서서 50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건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쳐오니 역시 씁쓸한 마음이 들고 만다.


 

 "아무튼, 요즘은 시즈카랑 부부관계는 거의 안 하고 있다는 거다. 더 궁금한 거 있냐?"


 유이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얼큰하게 술에 취해있지 않고서는 이런 질문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두 사람과 일상적으로 성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진 않으니까 차라리 오늘 다 끝내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조금 전 얘기를 듣고나니 한가지 궁금한 게 생겼는데……."


 유키노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턱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그러면 하치만은 평소 성욕은 어떻게 해결하는 거니?" 

 "…………."


 아니, 그야 다 대답해주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보다 그거 부부관계랑 관계없지 않냐?


 "어떻게 해소하긴……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해소하고 있다만……."


 그 말에 유키노가 흐음 하고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묘한 미소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남들처럼이란 건 혹시 윤락업소를 말하는 걸까?"

 "……저기요. 전 돈 받고 몸을 팔 수는 있어도 돈 주고는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어?! 힛키는 돈 주면 몸을 팔 거야?"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돈을 내면서까지 나랑 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없을 테니까."


 한참 운동하던 시절에 이따금 느낀 아줌마들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생각하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연상의 누님들은 이쪽에서 사양이다. 뭐, 연상의 아줌마가 아니라 연하의 아가씨라고 해도 사양할 거지만.


 "글쎄, 혹시 모르지. 전 재산을 줘서라도 널 사고 싶어하는 별난 여자가 있을지도."

 "없다고. 있어도 안 판다."


 전 재산을 줘서라도 사고 싶을 정도면 대체 날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애당초 결혼 15년 차의 유부남 앞에 그런 여자가 나타나 봐야 곤란할 뿐이다. 

 미안해…… 하앗…… 나…… 이젠 시즈카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린 고야…… 그러니까…… 미안해……!

 

 "……이야기가 탈선했구나. 그래서, 호스트가야는 어떻게 성욕을 해결하고 있는 거니?"

 "하치만이라는 이름으로는 라임이 안 살디? 성욕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이 뻔하잖아."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실눈을 뜨고 쏘아보자 유키노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미소를 짓는다.


 "어머, 미안해. 그런 쪽의 지식은 별로 없거든. 그러니까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가르쳐주겠니?"

 "아~ 미안해 힛키! 나도 경험이 없어서 힛키가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


 저질스럽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난에 저절로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이거 성별이 반대였으면 고소감 아니냐?


 "……마스터베이션으로 해결하고 있다. 됐냐?"

 "에이~ 영어로 말하니까 별로 느낌이 안 산다. 그치?"

 "그렇구나. 솔직히 실망했어."

 

 실망한 건 오히려 접니다만……. 

 처음 만났을 땐 나와 함께 있으면 신변의 위험을 느낀다며 몸을 사렸던 유키노가 지금은 이렇게 날 성희롱해대고 있다니……. 고등학교 시절의 유키노가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분명 기절초풍하겠지…….


 "근데 남자들은 결혼했는데도 자위 같은 걸 하는 거야?"

 "보통은 그럴 걸? 아내랑 하는 것보다 혼자서 자위하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있고." 

 

 섹스할 때는 아무래도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는 데다가, 만족하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으니까 말이지. 반면에 자위는 그럴 필요 없이 자기 멋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섹스보다 나은 점도 있다. 게다가 상대방이 아내로 고정된 섹스와 달리 다양하게 딸감을 선택할 수 있고.

 

 "아, 그건 좀 싫다~ 뭐랄까, 여자로서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뭐,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하는 것보다 혼자서 자위하는 걸 더 좋아한다면 확실히 기분이 좋지는 않겠구나."

 "으, 으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시즈카에게 미안해지는군. 자이모쿠자가 선물로 보내준 C115 동인지들도 한 번씩 다 반찬으로 써먹었겠다, 조만간 날 잡아서 시즈카랑도 한 번 하는 게 좋으려나…….


 "아, 맞다. 나 힛키랑 시즈카 선생님이 어떤 느낌으로 부부관계를 하는지도 궁금한데……."

 

 아, 역시 그것도 물어보는 건가……. 뭐, 어느 의미론 메인 디쉬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후우 한숨을 내쉬고 유이의 물음에 되묻는다. 


 "구체적으로 뭘 말해주면 되는 건데?"

 "어? 음, 그럼…… 체위라든가……?"


 유이가 자신의 옆머리를 꼼지락 꼼지락 만져대며 어색한 미소로 말한다.

 이거 설마 시즈카랑 어떻게 부부관계를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해줘야 하는 건가? 수치 플레이가 따로 없군…….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에서 열기를 느끼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평범하게 정상위나, 후배위, 기승위 정도다. 신혼 때는 69 같은 것도 자주 했는데 최근엔 거의 한 적 없군."  

 "헤에~ 의외로 평범하네."

 "그러게. 하치만은 좀 더 매니악한 걸 선호할 줄 알았는데."

 "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서로가 서로의 첫상대기 때문일까, 우리 부부의 성생활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SM이나, 노출, 스캇 같은 특수한 플레이는 시도조차 해본 적 없다.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마음으로 교복을 입고 교사와 제자플레이는 해본 적 있지만, 우리는 실제로 사제관계고, 그 정도는 평범한 축에 속하겠지. 파이즈리나 페라도 다들 하고 사는 걸 테고. ……맞겠지?

 흐음. 생각해보니 정말 평범한 것들밖에 안 해봤군. 젊었을 때 좀 더 이것저것 도전해볼 걸 그랬나? 

 사실 지금도 늦은 건 아니지만, 시즈카가 50대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한 의욕이 폐경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꺾여버렸는지라 이제 와서는 무리일 것 같다. 시즈카가 원한다면 굳이 거부는 하지 않겠지만, 아마 이제는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은 없겠지.

 게다가 시즈카도 벌써 50대다. 30대 때 절정에 이르렀던 성욕도 이제는 거의 줄어들었겠지. 실제로도 벌써 3달 이상 하지 않았는데 아무 말 없고.

 뭐, 부부관계가 시들해졌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마저 시들어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사랑하는 마음만 지켜내면 설령 순결을 빼앗기더라도 NTR이 아닌 것이다. 출처는 자이모쿠자.

  


× × ×



 그 후로도 두 사람의 질문은 계속되었고, 약속했던 한 시간보다 20분 늦게 출발하게 된 나는 자정이 다 돼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밤공기를 마시며 걷는 동안 어느 정도 술기운 깬 머리로 돌이켜보니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설마 그녀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결국, 나는 유키노와 유이의 공세에 못 이겨 내 성적 취향부터 거시기 사이즈까지 말해주게 되었다. 그 대가로 그녀들의 쓰리사이즈 같은 걸 들을 수 있었지만, 솔직히 수지가 맞는 장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할까……. 

 우와아아아아!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버했잖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걸 묻는 그녀들이나 대답해주는 나나 셋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만약에 그 상태로 술을 더 마셔서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면 학생 시절 그녀들을 딸감으로 썼던 것도 말해버렸으려나…….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군. 술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다녀왔어~"


 언제나처럼 현관에서 귀가를 고했으나 대답하는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현관에 놓여있는 구두나 거실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집에 돌아온 건 분명하고, 씻고 있거나 방 안에 있어서 듣지 못한 모양이다.


 "시즈카, 방에 있어?"


 그렇게 말하며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바닥에 앉아있는 시즈카가 보였다.

 그제야 내가 돌아온 걸 깨달은 시즈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입을 연다.


 "아, 하치만. 늦었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결혼식이랑 모임은 잘 다녀왔어?"

 

 화장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그렇게 묻자 시즈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뭐, 그렇지……." 하고 말끝을 흐린다. 보아하니 우려했던 대로 그다지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건 아무래도 같이 맥주라도 한 캔 마시는 게 좋을 것 같군. 아직 배가 꽉 찬 상태긴 하지만 한 캔 정도라면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시선을 돌리자 시즈카가 앞쪽으로 널브러져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읽는 것도 민망한 음란한 제목들과 표지들. 자이모쿠자가 선물로 보내준 에로 동인지들이었다.


 "엑…… 그건……."

 "어, 아까 서재에서 우연히 찾았다. ……자이모쿠자가 보내준 책들이라는 게 이건가 보지?"

 "어, 뭐, 그렇지……."


 에로 동인지 같은 걸 떡하니 책장에 보관하는 건 저항감이 있다 보니 자이모쿠자가 보낸 택배 상자에 그대로 넣어서 안 보이게 구석에 잘 박아놨었는데 그걸 찾아낸 모양이다. 

 뭐, 자이모쿠자가 다 본 상업지나 동인지 등을 내게 선물해주는 건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시즈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딱히 큰일이 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가족에게 음란물을 들키는 건 역시 부끄럽다. 심지어 저거 순애물도 아니고……. 


 "…………남자들은 역시 어린 여자가 좋은가 보군."

 "엥?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야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연하가 더 좋지만, 여기서 그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정도로 나는 눈치 없지 않다. 예전에는 연상의 미인 누나도 완전 좋아했지만, 지금의 나보다 연상이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아라포니까.


 "그런 것치고는 나오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어린 학생들인 것 같다만."

 "그거야 만화나 애니에 나오는 히로인들이 대부분 10대니까 그런거고……."

 "그렇다고 해도 중학생은 좀 심했다고 본다만."

 "그건…… 프리큐어 동인지니까……."


 프리큐어는 중학생이 되는 거니까……. 드물게 여고생 프리큐어도 나오긴 하지만 보통 중학생들이니까……. 

 프리큐어 멤버들의 어머니가 출연하는 동인지도 은근히 있는 모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이모쿠자가 내게 보내준 건 악의 제국에 패배한 프리큐어 멤버들이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생명을 잉태한다는 동심파괴물이었다. 

 으아…… 솔직히 동인지 내용물은 시즈카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뭐, 늙은 아내보다 젊고 어린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저기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만한 말은 그만둬주실래요?"


 그렇게 말하면 제가 바람이라도 피우는 것 같잖아요. 게다가 그거 자이모쿠자가 멋대로 선정해서 보내준 거라 딱히 제 취향에 직격인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훗, 농담이란다. 이런 거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상대가 2차원 여성이라면 바람을 피우더라도 얼마든지 용서해주마." 


 시즈카가 부드러운 미소로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흐트러져있는 책들을 주섬주섬 한곳에 쌓는다. 


 "…………그보다 좀 전엔 왜 그렇게 축 처져 있었던 건데? 모임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딱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친구는 머지않아 손주까지 생길 텐데 자신은 손주는커녕 자식조차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비참하고 슬펐던 거겠지……. 

 무엇 때문에 시즈카가 기운 없어 하는지 뻔히 짐작하면서도 나는 굳이 그 이유를 물었다. 말없이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보다 제대로 이유를 듣고 나서 위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아이가 없어도 너와 둘이서 오손도손 사는 거로 충분하다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더라도 시즈카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 13년이나 지났는데도 시즈카는 아직 마음의 상처와 열등감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에 때때로 풀이 죽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는 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런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없어도 너만 있으면 난 행복하다고 웃어주는 것 정도겠지. 

 

 "……나랑은 벌써 몇 달째 안 하고 있는 남편이 야한 만화나 AV를 보며 자위는 꾸준히 하고 있다고 걸 생각하니 기운이 빠진 것뿐이다." 

 "…………엑?"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길고 긴 침묵이 드리운다.

 얼빠진 것처럼 입을 벌린 채 눈만 계속 깜빡이는 나를 시즈카가 살짝 삐친 것처럼 올려다본다.

 그, 그런가…… 시즈카는 그렇게나 쌓여있었던 건가……. 


 "미, 미안하다……. 그런 거였다면 담아두고 있지 말고 진작 말을 하지……." 

 "그게…… 이 나이에 하자고 조르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아서……. 모처럼 야하게 차려입고 신호를 보냈을 때도 결국 안 했고……." 


 아, 그러고 보니 그날 낮에 폭딸을 한 탓에 안 서서 결국 안 했지……. 다음에 하자고 생각만 하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즈카가 부끄럽다는 듯 살짝 시선을 피하며 손을 꼼지락거린다. 


 "그러니까 하치만…… 그…… 말이 나온 김에 오랜만에 하지 않겠는가?"

 "어, 아, 네."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내가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시즈카가 후우~ 하고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좋아! 주말이기도 하고 오늘은 밤새도록 달리는 거다!"

 "……20대 시절도 아니니까 밤새도록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어쩐지 두려워져서 그리 말하자 시즈카가 먹이를 눈앞에 둔 육식동물 같은 눈으로 씨익 웃음 짓는다.


 "걱정할 거 없다. 똥구멍을 핥아서라도 세워줄 테니까."

 "…………."



× × ×



 사랑하는 마음은 식지 않았으니까 부부관계는 없어도 괜찮다니, 참으로 안이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50살이 되었어도, 폐경기가 왔어도, 시즈카는 아직 여자던 거다. 

 앞으로는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꼭 부부관계를 가지도록 하자. 설거지도, 음식물 쓰레기도, 아내의 성욕도, 귀찮다고 쌓아뒀다간 결국 곤혹을 치를 뿐이다. 쌓이고 쌓여서 넘쳐흐르기 전에 그때그때 처리해두는 게 현명하다. 쏟아지는 졸음과 피로와 쾌감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가 밤에 야하게 차려입고 있으면 두렵다는 중년 남성의 심정을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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