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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36)「후후, 마치 그날로 돌아간 것 같네요. 시즈카 선생님」

ㅁㄴㅇ(1.229) 2014.01.18 02:45:01
조회 39492 추천 228 댓글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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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가야 하치만(37)


대학졸업과 동시에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인 히라츠카 시즈카와 결혼하여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내인 시즈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나 그녀의 폐경기가 시작된 후로 부부관계는 시들해졌다.

이성 친구인 유키노와 유이에게 연애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으나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아내 못지않다.



히라츠카 시즈카(50)


35살이란 아슬아슬한 나이에 이르러 꿈에도 그리던 결혼에 성공.

제자인 유키노와 유이의 마음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다소 비겁한 방법으로 하치만을 가로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으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유이가하마 유이(37)


하치만을 두고 오랫동안 유키노와 선의의 경쟁을 벌였으나 예상치 못하게 은사인 시즈카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하치만이 결혼한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가오는 남자들을 모두 거절한 끝에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노처녀가 되었다.

결혼한 후로 하치만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유키노와 달리 친구로서 꾸준히 그와의 만남을 유지해왔다.



유키노시타 유키노(36)


하치만을 빼앗긴 것에 자포자기하여 부모가 시키는 대로 정략결혼하였으나 고통뿐인 결혼생활 끝에 결국 이혼했다.

몸도 호적도 더럽혀졌지만, 마음만은 더럽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치만만을 그리며 살아왔다. 

보증 빚으로 살 곳이 없어진 히키가야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거두어들인다.



――――――――――――――――――――――――



만약.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인생은 바뀌었을까?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내었더라면, 인생은 바뀌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인생에 만약이란 것은 없기에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한다. 언제나 그것만을 생각한다. 

그랬더라면 그의 곁에 있는 건 자신이었을까 하는 공허한 생각을 반복한다.

자신은 특별하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했다. 누구보다 강하다는 믿음도 착각에 불과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실연을 타인에게 안겨준 주제에 자신은 단 한 번의 실연만으로 무너져버렸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후회만을 반복한다. 과거만을 바라보는 두 눈에 미래는 비치지 않는다. 

그날부터, 내 시간은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히키가야 하치만을 히라츠카 시즈카에게 빼앗긴 그 날부터.





- 16년 전 -



<크리스마스>



유이: 유키농, 야헬롱―!


유키노: 어서 와 유이가하마양. 히키가야군은?


유이: 힛키는 조금 늦을 거라고 했어.


유키노: 그래. 그러면 우리끼리 먼저 준비할까?


유이: 응! 그건 그렇고 유키농, 올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많이 해놨네? 


유키노: 그랬으면 좋겠다고 작년에 유이가하마양이 말했었으니까. 


유이: 어? 지나가는 말로 했던 건데 기억해준 거야? 


유키노: 괜한 짓을 한 걸까? 혹시 이상하니?


유이: 아냐, 굉장히 예뻐! 신경 써줘서 고마워 유키농!  꽈악


유키노: 너, 너무 들러붙지 말아줘……


유이: 에헤헤― 유키농 정말 좋아―!


유키노: 나도…… 유이가하마양을 좋아해……

        

유키노: 그러니까…… 설령 내가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너라면…… 난 괜찮아.        


유이: ……


유이: 나도…… 나도 상대가 유키농이라면…… 괜찮아……


유키노: 후후, 그렇구나.


유이: 유키농, 어느 쪽이 선택받더라도 우리는 계속 친구지?


유키노: 물론이야 유이가하마양.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은걸.


유이: 에헤헤…… 뭔가 긴장되네.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유키노: 그러네. 나도 긴장돼. 


유이: 유키농도 긴장할 때가 있구나~


유키노: 물론이야. 나라도 긴장할 때는 있어.


유이: 그렇구나. 우리한테 동시에 고백받으면 힛키, 분명 깜짝 놀라겠지?


유키노: 그래, 분명 놀랄 거야. 이런 미녀 둘에게 동시에 고백받는다니, 그 남자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인걸.


유이: 후후, 그러네~♪




유이: 힛키, 늦네.


유키노: 그러네. 이제 요리도 거의 다 돼가는데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유이: 내가 전화해볼게.   틱틱틱 뚜르르―


하치만: 여보세요.


유이: 힛키, 늦어!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벌써 약속 시각 40분이나 지났다고.

 

하치만: 아, 미안미안.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유이: 혹시 무슨 일 있어? 힛키가 약속 늦은 적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하치만: 어, 원래는 약속보다 일찍 갈 생각이었는데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하게 히라츠카 선생님을 만나서 말이야.


유키노: 히라츠카 선생님을?


하치만: 어. 그래서 말인데 유이가하마, 갑작스럽게 미안하다만 혹시 히라츠카 선생님도 데려가도 될까?


유키노: 어? 히라츠카 선생님을 데려온다고?


하치만: 그래. 괜찮은지 유키노시타에게도 좀 물어봐 줘.


유이: 유키농……


유키노 …… 


유키노: 하아…… 뭐, 괜찮겠지. 히라츠카 선생님은 우리의 은사시니까.


유이: 그러네…… 응, 그러네.


유이: 힛키, 유키농이 괜찮대. 


하치만: 어 알았다. 금방 가마.


유이: 응, 좀 이따 봐.   뚝


유이: 아하하…… 오랜만에 히라츠카 선생님을 뵙는 건 기쁘지만…… 솔직히 복잡한 기분……


유키노: 그러네. 다른 날이었다면 기뻤겠지만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솔직히 곤혹스러워.


유이: 응. 하지만 오늘만 날인 건 아니고.


유키노: 그래,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유이: 히라츠카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유키노: 어서 오세요. 히라츠카 선생님.


시즈카: 오랜만이구나 유키노시타, 유이가하마. 잘들 지냈니?


유이: 네, 잘 지냈어요. 히라츠카 선생님도 잘 지내셨나요? 


시즈카: 아하하, 나야 늘 그렇지. 오늘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미안하다.


유키노: 아뇨, 히라츠카 선생님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시즈카: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나.


유이: 근데 힛키, 그 짐들은 다 뭐야?


하치만: 엉? 아, 술이야. 


유이: 뭐? 그게 전부 술이야!?


유키노: 오늘은 술 파티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예정이었지만. 

            히키가야군은 그렇게 술이 고팠던 걸까?


하치만: 아니, 별로 내가 먹고 싶어서 사온 거 아니거든?


시즈카: 아, 술이라면 내가 샀다. 파티에는 역시 술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유이: 아하하…… 이렇게 많은 맥주는 다 못 마실 것 같은데요……


시즈카: 뭐, 걱정할 것 없다. 네가 중간에 뻗더라도 히키가야가 책임지고 다 마셔줄 테니까.


하치만: 엥? 아뇨, 저도 이렇게 많이는 못 마시는데요? 애초에 술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시즈카: 겸손해할 것 없다.


하치만: 아뇨, 겸손 떠는 거 아니거든요? 


시즈카: 게다가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오랜만에 히키가야 쇼가 보고 싶은 거다.


하치만: 네? 히키가야 쇼라뇨? 


유키노: 그러네. 확실히 못 본 지 오래됐네. 오랜만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유이: 아하하, 그러네.


하치만: 아니, 왜 내 이름이 붙은 정체불명의 쇼를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는 건데? 


유키노: 어머, 벌써 잊은 거니? 까르보가야군.


하치만: ……


유이: 아하하, 그거 오랜만이네~


하치만: 망할…… 사람이 실수 좀 한 걸 멋대로 쇼 취급하기는……


시즈카: 뭐, 농담이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없다 히키가야. 오늘은 즐겁게 마시자꾸나. 


하치만: 예예.


유키노 (오늘을 위해 고급 샴페인을 준비했었지만, 아무래도 이것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네.)




유이: 우응…… zzZ


유키노: 히키가야군, 정말 괜찮겠니?


하치만: 괜찮아 괜찮아~ 아직 안 취했어~   꾸벅꾸벅


유키노: 전혀 안 괜찮아 보이지만…… 

            히키가야군, 시간도 늦었고 많이 취했으니 오늘은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ㄴ……


시즈카: 걱정 마라 유키노시타. 히키가야라면 내가 택시로 집까지 바래다주마.


유키노: 아뇨, 히라츠카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시즈카: 괜찮다 유키노시타. 뭘, 히키가야네 집은 우리 집에서 그렇게 먼것도 아니니까. 조금 돌아서 가는 것뿐이니 괜찮다.


유키노: ……


유키노: 그렇군요. 그럼 부탁할게요. 


시즈카: 그래, 맡겨둬라. 히키가야! 정신 차려라! 집에 가자!


하치만: 우응? 집이요? 아아, 집! 가야죠 우리 집.


시즈카: 유키노시타, 오늘은 정말 고맙다. 오랜만에 너희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유키노: 네, 저도 오랜만에 뵐 수 있어 즐거웠어요. 히라츠카 선생님.


시즈카: 잘 지내라. 유이가하마한테도 잘 지내라고 전해주렴. 가자, 히키가야.


하치만: 눼에~ 유키노시타~ 난 간다~   흔들흔들


유키노: 그래, 조심해서 가. 다음에 또 봐.


시즈카: 히키가야, 어딜 가는 거냐! 그쪽이 아니야!


하치만: 네에?  휘청휘청


시즈카: 정말이지, 어쩔 수 없군. 내가 부축해주마.


하치만: 네에~


유키노: ……


유키노 (정말로 괜찮은 걸까……)


유키노 (뭐, 히라츠카 선생님이 붙어있으니 괜찮겠지.)


유이: 우음…… 힛키…… zzZ


유키노 (후후,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방해가 들어왔었네. 오늘에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전할 생각이었는데.)  쓰다듬 쓰다듬


유키노 (하지만 오랜만에 히라츠카 선생님을 뵙게 돼서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고,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니까.)




그로부터 8일이 지난 1월 3일. 그해에도 어김없이 그와 그녀는 내 생일을 축하해줬다.

친구에게 생일을 축하받는다는,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 내게는 익숙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특별하게 느껴졌기에,

5년째가 되는 그해가 돼서야 나는 겨우 그 행복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치만: 유키노시타, 설거지 다 끝났어.


유이: 힛키, 수고했어~


유키노: 고마워, 히키가야군.


하치만: 참나. 아무리 생일이라지만 손님한테 뒷정리까지 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그보다 왜 나만 남아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데?


유키노: 하지만 토츠카군이나 코마치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잖니?


하치만: 나는 괜찮은 거냐…… 뭐, 별로 상관없지만……


유이: 아하하, 별로 상관없는 거구나.


하치만: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의 부탁이니까. 너희가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유키노: ……


유이: ……힛키는 가끔 씩 그런 깜짝 놀랄 소리를 한다니까. 아마 무의식중에 하는 말이겠지만.


유키노: 그러네. 의외로 바람둥이의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하치만: 뭐?


유키노: 아무것도 아냐. 잊으렴.


하치만: 뭐야 대체……

 

유이: 아, 맞다! 유키농, 저번에 샀던 그거 오늘 터뜨리는 건 어떨까?


유키노: ……그러네. 수고해준 히키가야군에게 주는 포상이란 걸로 해도 괜찮겠네. 


하치만: 엉? 그거라니?


유이: 실은 크리스마스 때 마시려고 유키농이랑 내가 샴페인을 샀었거든.

         근데 크리스마스 때는 히라츠카 선생님이 맥주를 잔뜩 사오셔서 못 마셨으니까.


하치만: 그렇군. 샴페인인가…… 그러고 보니 샴페인은 마셔본 적 없는데. 그거 비싸지 않냐?


유키노: 뭐, 2만 엔 가까이했으니까 싸지는 않네. 


하치만: 진짜냐…… 잘도 그런 비싼 술을 샀네. 너희 겨우 크리스마스 가지고 너무 오버한 거 아니냐?


유이: 확실히 비쌌지만, 그 날은 다른 크리스마스 때보다 특별한 날이었으니까.


유키노: 감사하렴. 히키가야군이 샴페인을 마셔볼 기회는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싱긋


하치만: 그것도 그렇군. 뭐, 준다면 감사히 마시마.




유키노: 어떠니? 처음 마셔보는 샴페인의 맛은.


하치만: 시큼하네. 


유이: 감상 짧아!? 비싼 돈 주고 산 건데 좀 더 제대로 된 감상은 없어?


하치만: 아니, 그런 소리를 해도 말이지…… 난 소믈리에가 아니라고. 


유이: 우…… 힛키를 위해 산 건데 이렇게 썰렁한 반응이라니, 들뜬 마음으로 골랐던 내가 바보 같아……


유키노: 하아…… 정말 사람 맥빠지게 하는 대는 재주가 있구나. 


하치만: 엑? 이거 날 위해 산 거였어?


유이: 봉사부 3인을 위해 산 거니까 힛키를 위해서 산 거기도 하다고! 


하치만: 그, 그러냐……  긁적긁적


하치만: 아니, 별로 싫은 건 아냐. 제법 맛있다고 생각해.

            다만…… 이제 술은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유이: 어? 왜?


하치만: 그 뭐냐…… 술 먹고 실수한 적이 은근히 많으니까…… 

            요전에도 크게 사고 쳤고…… 아니, 그걸 사고라고 하는 건 좀 그런가……


유키노: 크리스마스날을 말하는 거라면 안심하렴.  

            그날은 딱히 눈물로 사랑을 고백하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쿡쿡

       

유이: 우응~ 난 도중에 잠들어서 잘 모르겠지만.


하치만: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냐. 

            뭐, 모처럼 맛보는 비싼 술이고, 오늘은 네 생일이기도 하니 오늘 정도는 괜찮겠지.  


유키노: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인걸. 


유이: 응, 그러네.



그렇게 맞장구치는 유이가하마양의 미소가 경직되어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앞으로 반 잔. 저 술병의 술이 다 비는 순간, 우리는 오랫동안 품어온 이 마음을 그에게 전할 것이다.

다가오지 않는 사람에겐 이쪽이 먼저 다가가는 거라고, 예전에 유이가하마양이 말했었다. 

정말 그 말대로야. 히키가야군이 고백해주기를 기다리다간 분명 할머니가 되고 말 테니까. 



하치만: 후우…… 잘 마셨어. 고맙다.


유키노: 그래……


유이: ……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이렇게 긴장되는 순간이 있었을까? 

처음으로 어머니의 말을 거역한 순간에도 이 정도로 가슴이 뛰지는 않았었다. 히키가야군, 네가 곁에 있어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네가 곁에 있기에 이렇게 가슴이 뛰어. 긴장이 들면 들수록 실감이 들어. 

아아, 나는 이렇게나 히키가야군을 사랑하고 있구나…… 분명 유이가하마양도 마찬가지겠지. 



하치만: 응? 둘 다 왜 그렇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거냐? 뭐 묻었어?


유이: 어? 아, 아냐……


유키노: ……



이제 곧 둘 중 한 사람은 웃고, 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설령 내가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분명 눈물을 그치고 미소 지을 수 있을 테니까.

상대가 유이가하마양이라면 난 분명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을 테니까. 분명 유이가하마양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유키노: 히, 히키가야군.


유이: 히, 힛키.


하치만: 응? 갑자기 둘 다 왜 그래?


유키노: ……


유이: ……


유키노: 하아…… 실은…………


하치만: 아, 그러고 보니 나 너희에게 보고할 게 있어.

            실은 그 뭐냐…… 나 히라츠카 선생님과 사귀게 되었어.





그리고 우리는 누구 하나 웃을 수 없었다.






<석 달 후>



시즈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하치만군의 부모님.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시즈카: 돌이켜보면 제가 서른이 넘도록 독신이었던 것도, 고교시절 그의 담임이 되었던 것도 분명 운명이었던 거겠죠!



해맑게 빛나는 신부의 미소에 하객들이 한결같이 미소를 짓는다. 행복에 찬 미소라는 건 분명 저런 걸 말하는 거겠지. 

어이지는 신부의 부끄러운 폭로들에 신랑은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 역시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웃고 있는 결혼식장 안에서 오로지 나만이 웃고 있지 않았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면 되는 일인데도, 천근만근처럼 느껴져서…… 눈물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그러니까 분명, 나는 웃고 있지 않을 것이다.

문뜩, 무릎을 쥐고 있던 내 왼손을 유이가마하양의 오른손이 감싸 쥐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도 없는 축복의 미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 또한 웃고 있지 않다는 걸. 내 손을 감싸 쥔 그녀의 손이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으니까.




코마치: 유키노 언니, 유이 언니. 오늘은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유이: 감사하기는. 힛키와 선생님의 결혼식인걸. 당연히 와야지. 


유키노: 그래. 선생님은 나의 은사시고, 히키가야군은 나의………… 친구니까……. 


코마치: 그렇군요……


유이: 응…… 친구인걸……


코마치: ……


코마치: 솔직히 코마치는 오빠의 신부가 되는 건 유이 언니나 유키노 언니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유이: 어? 아냐아냐~


유키노: 그래, 코마치. 아무리 그래도 실례야.


코마치: 아하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며 유키노 언니 집에 간 오빠가 다음날 오후에야 집에 돌아왔을 땐 틀림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유키노: …………뭐?


유이: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코마치: 어라……?


유이: 유키농, 힛키는 그날 밤 히라츠카 선생님이 바래다준 거 아니었어……?


유키노: …………


유이: 설마…… 설마…………


코마치: 아, 아차……





<돌아가는 길>



하루노: 시즈카 정말 행복해 보였지~


유키노: ……그러네.


하루노: 히키가야군도 행복해 보였고~


유키노: ……그러네.


하루노: 설마 그 두 사람이 결혼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유키노: ……그러네.


하루노: 히키가야군은 분명 유키노랑 결혼할 거로 생각했는데~


유키노: …………그러네.


하루노: ……


하루노: 유키노는…… 이번에도 선택받지 못했구나……


유키노: …………


유키노: ………………후후……


하루노: 유키노…? 


유키노: 후후……… 그랬던 거네…………


하루노: 유키노…………


유키노: 후후………후후흑……………흐윽흐읏……흐윽…………히키이……갸햐아……구운…………


하루노: …………  꼬옥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어머니의 강요로 정략결혼하게 된다.

자포자기 상태였던 내게 어머니의 말을 거부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연상의 남자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 유키노시타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올 것.

히키가야군에게 유키노시타가 아닌 다른 성으로 불리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으니까. 



유이: 유키농은 정말로 그걸로 괜찮은 거야?


유키노: ……괜찮아.


유이: 거짓말. 유키농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걸……

         기분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야. 결혼해봐야 분명 불행하기만 할거라고……


유키노: ……


유키노: 이미…… 어쩔 도리가 없잖니……


유이: ……


유이: 이 결혼…… 역시 난 축하해주지 못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유이가하마양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나의 결혼식에서, 나는 오랜만에 히키가야군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치만: 결혼 축하해 유키노시타. 아니, 이제 유키노시타가 아닌가?


유키노: 아니, 남편이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거니까 내 성은 변함없어. 


하치만: 그런가.


시즈카: 오랜만이다 유키노시타. 결혼 축하한다. 오늘은 정말로 아름답구나.


유키노: ……네. 감사해요 히라츠카 선생님.


시즈카: 아하하, 이젠 히라츠카가 아니라 히키가야지만.


유키노: 그랬네요…… 이제는 히키가야였죠……


유키노: ……


유키노: ……히키가야군.


하치만: 응?


유키노: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은 어떠니?


하치만: ……그렇구나. 매우 아름다워. 역시 유키노시타 유키노구나.


유키노: ………………그래.



사실 히키가야 부부에게는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었다. 

오늘만큼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을 아름답다 칭찬해주는 히키가야군의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기쁘서…… 슬펐다…… 





<신혼여행지 호텔>



남편: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유키노: ……


남편: 자칫 잘못했으면 결혼식을 다 망칠뻔했어!! 

         신부는 신랑을 평생 사랑하겠느냐는 말에 "네"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유키노: ……


남편: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그래!?


유키노: ……처음부터 말했잖아? 난 당신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한 건 당신이야. 


남편: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꼭 그래야 했어!?


유키노: ……난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유키노 (그래, 히키가야군이 보고 있는 앞에서 거짓말 따윈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남편: 아, 그래!! 이젠 됐어!!  


유키노: ……


유키노: ……   풀썩


유키노: ……………………



호텔 방을 박차고 나갔던 그가 돌아온 것은 자정이 다 돼서였다.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그가 다짜고짜 내 옷을 벗겼을 때,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부질없는 짓이니까. 

분명 그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겠지. 씩씩거리며 나를 매도하던 그는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나를 보며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처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키스조차 한 적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미소는 환희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히키가야군에게 주려고 했었던 첫 키스도, 처음도, 전부 그에게 빼앗겼다. 더럽혀졌다.

하지만 이 몸이 골백번 깔아뭉개더라도, 이 마음만은 절대로 주지 않을 거야…… 

이 마음만은 언제까지나 히키가야군의 것이니까……

그러니 눈을 감자. 입을 닫자.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날 때까지……





×         ×         ×



만약.

만약 그날 히라츠카 선생님도 불러도 되냐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인생은 바뀌었을까?

만약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그를 바래다주겠다던 선생님을 막았더라면, 인생은 바뀌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인생에 만약이란 것은 없기에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했다. 언제나 그것만을 생각했다. 

만약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야말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그 날을 추억하며, 언제까지고 그날을 기다려왔다.





- 현재 -



<크리스마스>



하치만: 크리스마스 파티인가. 이렇게 다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하는 거 정말 오랜만이네.


유이: 응, 정말 오랜만이지~ 힛키가 결혼한 후론 한 번도 없었으니까 15년만인가?


시즈카: 그렇구나.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하치만: 싱글인 유이는 몰라도, 남편이 있는 유키노를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부를 수는 없었으니까. 


유키노: 어머, 불렀어도 별로 상관없었는데.


하치만: 아니, 그랬다가 남편한테 오해라도 받으면 어쨌을 건데? 

            뭐, 이제 와선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만.


유키노: 후후, 그러네.


하치만: 크리스마스는 아니었지만 넷이 같이 모인 적은 몇 번 있지 않았냐?

            코마치가 결혼했을 때라든가, 코마치가 집들이했을 때라든가, 코마치가 아이를 낳았을 때라든가.


유이: 아하하, 전부 코마치랑 관련된 일들뿐이었네.


하치만: 뭐, 결혼한 후론 확실히 좀처럼 다 같이 모이지 못했지만, 

            유이 너랑은 꾸준히 얼굴 맞대왔었고, 유키노도 메일은 계속 주고 받았잖냐.


유키노: 그러네. 하치만군과 주고받는 메일만이 삶의 보람이었으니까.


시즈카: ……


하치만: 야야, 그렇게 아부해봐야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유키노: 아부가 아니야. 전 남편은 놀려봐야 재미가 없었으니까.  쿡쿡


유이: 헤에~ 유키농, 힛키랑 계속 메일 했었구나.


하치만: 엉? 유이는 몰랐냐?


유이: 응, 전혀 몰랐어. 유키농이 이혼하기 전까지 힛키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한 번도 안 했었으니까.


하치만: 야야, 내가 무슨 볼드모트라도 되냐?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사람이야?


유키노: 어머, 하치만군은 우리가 하치만군에 대한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 거니? 그렇게 원한다면 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하치만: 왜 내가 부탁하는 것처럼 되는 건데? 자기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하다니 내가 무슨 나르시스트냐? 


유키노: 중학교 때는 나르가야 하치만이라고 불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유이: 아하하, 그러고 보니 그랬었네.


하치만: 언제 얘기냐…… 아무튼 너희랑만 모이면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니까.


유키노: 그래,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 셋이서 매일 같이 얼굴을 맞대던 봉사부 시절로……


하치만: 뭐, 그때는 이렇게 얘기 나누지 않았던 날도 많았지만.


유이: 응, 힛키랑 유키농 말도 없이 책만 읽고 있을 때도 잦았고, 봉사부의 분위기가 안 좋던 시기도 있었고. 


유키노: 하지만 모두 뛰어넘고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 알게 되었으니까.


하치만: 그렇구나. 그러지 못했다면 분명 지금처럼 함께 있진 못했겠지.


유이: 또 이렇게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어 난 정말 기뻐.


하치만: 어. 여기에 코마치랑 토츠카도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둘 다 이젠 가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군.


유이: 힛키의 시스콘과 사이 사랑은 정말 변하질 않는구나……


하치만: 당연하지. 토츠카가 여전히 아름다워서 다행이야. 배 나온 아저씨가 되어버렸다면 난 울었을지도 몰라.


유이: 힛키, 진짜 징그러……


유키노: 후후……


시즈카: ……


유키노: 어머, 어디 불편하신가요? 좀 전부터 계속 말씀이 없으시네요. 시즈카 선생님.


시즈카: 어, 어? 아, 아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것뿐이다. 


유키노: 그렇네요. 생각에 잠기실만하네요. 마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죠? 16년 전의 크리스마스 날로.


시즈카: ……


유키노: ……만약 그날, 술에 취한 하치만군을 바래다주겠다던 선생님을 막았더라면……   소근소근


시즈카: !?


유키노: 선생님도 데려가도 되겠느냐는 하치만군의 말을 거부했다면……  소근소근


시즈카: 유, 유키노…… 


유키노: 저와 유이의 인생은 달라졌을까요?   소근소근


시즈카: …………


유키노: 후후, 농담이에요.



일순, 시즈카 선생님의 얼굴에 죄책감과 두려움이 깃들었던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우리의 행복을 앗아간 그녀. 그런 그녀의 행복을 조금 나눠 가지려 하는 건 잘못된 일일까?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다. 잘못됐든 잘못되지 않았든 나는 이 앞으로 나아갈 거니까.


멈췄던 나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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