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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1권 감상인가 뭔가 애매한 글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2 19:59:10
조회 67 추천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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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시리즈>를 처음으로 읽었던 건 꽤나 예전인데, 도서관 한구석 서가에 완전히 빛바랜 표지의 책들이 열 권 넘게 꽂혀 있었다. 찾아보니 이 판본으로 나왔던 건 2001년이라 그 정도로까지 낡을 이유는 없었겠지만, 표지 품질이 그리 좋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었던 <듄>은 여태 읽었던 다른 판타지나 SF와는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는데, 아동용 판타지 소설이 으레 그렇듯 가볍고 직관적인 글과는 달리 거의 예언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인상은 <듄>의 특이한 서술 방식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잊혀진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기이하게 권수가 많은 전집 탓에 더욱 강화됐지 않을까. 이런 전집에 대한 인상은 이후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잊혀지거나 대여점에서 버려진 수많은 얇고 권수 많은 장르 소설을 보며 상당히 희석되었지만, 정작 <듄>에 대한 인상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랬던 인상은 <듄> 영화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조금 달라졌는데, 막연히 <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이 생각보다도 할리우드 친화적이라는 느낌으로 변했던 탓이다. 영화 <듄>의 애매한 구성과 별개로, <듄: 파트 2>는 거의 우격다짐 수준으로 소설 작중 사건들의 결과만을 재조립해 빠르게 달려나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스토리라인이나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 및 각성, 러브라인 등의 요소가 매우 뚜렷하다. 덕분에 이 삼부작이 SF/판타지 영화에서 아마 꽤나 오래 회자되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지만, <반지의 제왕>이 오래 언급될 만한 단순하게 재밌는 부분들을 <듄: 파트 2> 역시 그럭저럭 잘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 사실 이건 <듄> 원작과는 좀 다른 방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듄> 1권을 다시 읽으며 그런 생각이 좀 강해졌다.



어쩔 수 없지만, 블록버스터는 복잡한 심리를 싫어한다. <듄>은 우주로 뻗어나간 인류 문명이 중세 유럽에 걸맞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한정된 역할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강조하는 운명론적인 글이다. 주인공 폴에게 있어 비범한 예측 및 전투 능력, 사랑, 각성 등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니라-마치 파편적인 예언서처럼-빠르게,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나가버리며, 대신 그가 주로 느끼는 것은 자신이 이미 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는 체감이다. 폴은 어머니가 자신을 이렇게 되도록 낳은 것을 줄곧 싫어하며, 스파이스에 노출된 이후 줄곧 멘다트 이상의 냉혹한 예측력을 보인다. 그리고 그의 갈등은 대체로 그의 안에서 시작해 안에서 끝난다. 이런 주인공은 모두의 공감을 사기 힘들다. 



덕분에 많은 것들이 영화에서 외주로 맡겨졌다. 사막에서의 생활과 리더쉽을 프레멘에게, 전투 능력과 인간적인 매력을 챠니에게, 악마적인 긴장감을 어머니와 뱃속의 여동생에게. 이렇게 해체되고 나니 비로소 인간적으로 갈등하며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다가 비로소 굴복하는 익숙한 영웅상이 나온다. 나쁜 건 아니다. <듄>의 글쓰기는 사실 어떤 점에서는 조악하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는데, 예언적/운명적 면모를 과시하고자 늘 미래의 일이 현재의 일과 겹쳐져 서술되며 서서히 현실에 잠식되는 것과 투박하게 서사적 재미를 위해 미래를 되짚는 회상이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고, 의도하지 않은 구애를 한 것처럼 되는 이문화 이성 교류 간 클리셰처럼 상당히 전형적인 요소들도 꽤나 많다. <듄>은 어쨌든, 장르에서 허용되는 유치한 요소들을 굳이 꺼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쓴 소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참 아쉬운 것은 역시 영화가 복잡한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폴이 느끼는 운명에 대한 부담감은, 기실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공유하는 감정이다. 제시카는 레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황제는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으며, 퀴사츠 헤더락이 될 수 있었을 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극적으로 꾸민 페이드 로타 정도를 제외하면-전부 잘려 나갔다. 베네 게세리트와 멘타트가 이루는 두 종류 지식의 대립도 사라졌고, 아라키스의 가치는 황제와 그 무력과는 그리 큰 상관 없는 스파이스로 말끔하게 요약된다. 실제로 <듄>의 가장 큰 매력은 반영웅주의와 사막 행성의 세계관 뿐 아니라, 그 끔찍할 정도로 개인적 여유를 두지 않는 범세대적 음모와 계획이 전우주에서 펼쳐진다는 데에 있기 때문에 좀 더 아쉽다. (그런 영향을 받은 작품을 한두 개만 꼽지 못할 정도로) 물론, 그런 <듄>을 영화화하는 데에 늘 실패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자미스에 대한 비중이 늘어난 건 영화 <듄>의 특기할 만한 점이다. 폴이라는 개인의 갈등이 다소 인간적인 차원으로 축소된 영화 <듄>에서 자미스는 프레멘 중 유일하게, 어쩌면 작중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폴의 퀴사츠 헤더락스러운 면모를 목격하지 않고 감화되지도 않은 사람이다. 폴을 떠나가는 챠니조차 그가 무언가 가공할 만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으며, 거니 할렉이 더 이상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원작 <듄>에서도 느낀 단절감이다. 영화 <듄> 속 폴은 약간 자학적이게도, 유일하게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자신의 상상 속 친구로 삼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셈이다. (그건, 솔직히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흠은 아닌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점이기도 해서, 괜찮은 것 같다)



별개로, <듄>에서 보이는 중동 문화권 풍습이 영화에서는 상당수 잘려나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프랭크 허버트는 실제 중동 문화를 토대로 물에 대한 집착 뿐 아니라 사회 구조 및 풍습을 아라키스와 프레멘에게 접목시켰는데, 폴이 자미스를 죽인 후 그의 아내와 자식을 말 그대로 취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아예 사라졌다. 어쩌면 이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고 현대 영화 관람자의 감수성에 맞게 바꿨겠지만, 의도야 어쨌든 그런 종류의 빈 자리는 무앗딥 신화를 믿지 않는 비-미신적 프레멘을 서서히 감화시키고 광신도로 끌어들이는 영웅주의적인 서사로 대신 메꿔졌다. <듄>의 주제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점이지만, 예전 영화 <듄: 파트 2> 감상에 썼듯 그런 아이러니한 점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조만간 <듄 2>도 읽어볼 계획인데, 이쪽은 영화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보다 더 <듄>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글이라 기대가 크다. 같은 글을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어볼 때의 감상은 늘 달라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마 비평은 그런 간극을 어떻게든 없애는 과정이겠거니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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