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빵의 의미와 서구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빵의 의미는 약간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빵이라고 하면 밀가루 반죽을 구워서 만드는 부드러운 음식 대부분을 지칭하기 때문에 식빵은 물론이고 달달한 내용물이 들어있는 단팥빵이나 크림빵, 고기가 들어간 소시지빵이나 고로케, 심지어는 크루아상과 같은 페이스트리나 설탕이 많이 들어간 케이크까지 전부 빵으로 뭉뚱그려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빵, 페이스트리, 케이크의 차이는 우리나라에서 빵과 쿠키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빵이라고 하면 대부분 식빵을 떠올리게 되지만, 실제로는 빵의 영역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빵과 페이스트리, 쿠기와 케이크를 구분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첨가물의 종류와 비율인데 대다수의 경우 빵은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만을 재료로 해서 만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게트나 깜빠뉴, 베이글, 호밀빵 등 일반적으로 서구권에서 주식으로 먹는 빵과 비교해 보면 풀먼 브레드(http://blog.naver.com/40075km/220912149658)는 버터와 달걀, 설탕이 엄청나게 들어간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버터 비율이 더 올라간 브리오슈는 대부분의 경우 페이스트리로 분류될 정도지요.
밀가루 220g 기준으로 설탕 2테이블 스푼, 달걀 하나, 드라이 이스트 7g, 소금 약간, 그리고 버터가 무려 70g이나 들어갑니다.
거의 25%에서 30%에 이르는 버터 함유량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브리오슈 번을 만들기 위해 가급적 버터를 줄인 비율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버터를 밀가루의 절반 정도 넣는 레시피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버터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파이나 크루아상과 같은 페이스트리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키기 때문에 빵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운 후 설탕을 넣어 이스트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다음 드라이 이스트를 넣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거품이 올라오며 부풀어 오르는 모습으로 이스트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거품이 생기지 않으면 이스트들이 죽었다는 증거이니 다른 이스트를 꺼낼 필요가 있지요.
괜히 이스트 먼저 밀가루에 섞었다가 부풀어오르지 않는 빵을 보며 절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달걀과 이스트 푼 우유, 설탕을 반죽기에 돌리면서 밀가루를 한 스푼씩 넣어줍니다.
반죽이 한 덩어리가 되고 가루가 날리지 않으면 버터 70g을 넣고 마저 반죽합니다.
브리오슈는 달걀과 버터 비율이 워낙 높아서 손반죽하기 힘든 페이스트리 중의 하나입니다.
반죽기로 30분 가량 반죽했는데도 반죽이 워낙 질어서 줄줄 흘러내리지요.
한 시간 정도 보울에서 발효시키고 6등분해서 둥글게 모양을 잡고 비닐랩을 씌워 2차 발효를 합니다.
다른 빵이었다면 히팅 보울에서 따뜻하게 발효시킬텐데, 브리오슈는 버터가 워낙 많이 들어간지라 그렇게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버터가 녹아서 줄줄 흘러나오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레시피에는 아예 냉장고에서 넣어서 좀 굳힌 다음 성형을 하고 발효 시간을 더 길게 잡는 레시피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햄버거빵인 번(Bun)의 형태로 만들기 때문에 둥글게 모양 잡는 것 외에는 특별한 성형을 하지 않지만
보통은 하체비만형 눈사람 모양인 '브리오슈 아 테트'나 꽈배기처럼 꼬인 모양의 '브리오슈 트레세'를 많이 만듭니다.
발효가 끝나면 달걀 노른자와 물을 1:1로 풀어서 섞은 달걀물을 발라주고 기호에 맞게 참깨를 촵촵 뿌립니다.
전반적으로 본다면 식빵에 비해 그렇게 크게 복잡한 것은 없는데, 버터와 달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예전에는 고급 음식 취급을 받는 빵이었습니다.
실제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실제로는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였을 정도니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말을 한 것이 프랑스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루이 16세의 목을 자른 프랑스 혁명군이 왕족을 험담하기 위해 퍼뜨린 루머라는 설이 지배적이지요.
정작 그 대사는 '사회계약설'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고백록에 등장하는 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뭔가 먹을 것이 없으면 와인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떻게 빵을 구하느냐였다.
하지만 하인에게 빵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집 주인을 모욕하는 처사였다.
그렇다고 내가 감히 직접 빵을 구하러 갈 수도 없었다.
칼을 차고 다니는 훌륭한 신사가 어떻게 작은 빵 한 조각을 사려고 빵집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한 위대한 공주의 격언, 사람들에게 빵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도록 하세요(Qu’ils mangent de la brioche)"라고 대답한 그 말을 떠올렸다. (중략)
그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페이스트리를 앞에 놓고 찬장 바닥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와인과 함께 내 방에 틀어박혀
소설책 몇 장을 읽으며 조금씩 먹고 마실 때의 그 순간은 얼마나 즐거운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때 뭔가를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사교활동의 대체수단이라 할 만 하다.
그리고 나는 내 책이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는 손님인 것 마냥 음식 한 조각과 책 한 페이지를 번갈아 가며 음미했다."
- 장 자크 루소, 고백록(Confessions) 중에서
여기서 '위대한 공주'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고백록이 집필된 시기를 감안하면 마리 앙투아네트일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이 말이 멍청한 공주가 배고픈 농부들의 실상을 모르고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바보같은 사람들!"이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사려깊은 귀족이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주방에 있는 브리오슈를 나눠주거라"라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구요.
하지만 그 격언에 대한 진실 공방은 둘째치고, 루소처럼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상가도 뭔가를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것을 즐겼다고 하니 항상 밥 먹으며 책 보다가 혼나던 사람으로서는 왠지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비록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는 훌륭한 신사는 아니지만, 오븐에서 갓 구운 브리오슈를 볼 때의 기쁨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약 200도 전후의 오븐에서 20분간 구워서 나온 브리오슈입니다.
워낙 맛있는 빵이 많은 요즘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밋밋한 맛의 빵들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고소하고 무게감이 있는 맛입니다.
식빵과 카스테라의 중간쯤 되는 느낌이랄까요.
와인 대신 우유 한 잔을 곁들여서 책을 읽으며 갓 구운 따뜻한 브리오슈를 먹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여섯 개 밖에 안되는 조그만 브리오슈들을 한 번에 몽땅 먹어버리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절반은 남겨둡니다.
이제 내일은 햄버거를 만들 차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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