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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금싸막 17

딥딥-검은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03 00:16:09
조회 382 추천 0 댓글 1
														

이 날부터는 캠코더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전부 날아갔다.

그래서 갔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는 부분들이 꽤 많음.

거기다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직접 적은 것 말고는 그때와 또 다를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함.

잡소리가 길었다.

시작.



4월 12일, 모스크바



지독하게 아팠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고부터 뭔가 이상했다.

뱃속에서 장기들이 엉켜서 잔뜩 꼬여진것처럼 배가 아팠다.

무심코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직감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잠깐 기절하듯 누워서 숨을 골랐다.

크게 숨을 쉬며 움직이는 배에 맞춰 복통도 심해졌다.

단순히 배탈이 났다, 체했다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명치 아래쯤에 손을 집어넣고 내장을 움켜잡아 뽑을 듯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조금 정신이 들고 천천히 일어나 물을 먼저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찬 물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생각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아파진듯한 느낌에 조심스레 화장실을 갔다.

배를 쥐어짜듯 내보냈는데도 복통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오히려 시합중에 헤드기어를 벗은 복서가 된 듯,

뭐라도 있던 게 없어지고나니 더 무지막지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변기 앞 세면대에 손이 닿았다.

세면대를 붙잡고 쓰러지듯 엎드린채로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랬다.

그 상태로 잠깐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뒷수습을 한 뒤 침대로 휘적이며 걸어갔다.

그리곤 쓰러져 다시 기절했다.



얼마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니 침이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팔 하나도 들기 힘들었다.

그냥 그대로 다시 자고 싶었지만 허벅지가 시려서 정신을 차렸다.

알고보니 바지도 못 올리고 쓰러져있었다.

바지만 간신히 올리고 다시 누웠다.

슬리퍼를 차 벗고 잡히는대로 몸에 덮고 누우니 그대로 눈이 감겼다.

10분쯤, 잤는지 안 잤는지도 모르게 조금 쉬었다.

다시 눈이 떠져 핸드폰을 켜 소설을 읽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로 조금 보고 있으니 어느샌가 또 잠들었다.



얼마간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는 조금 나아졌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심하게 어지러웠다.

생각을 해 보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지?

까만 커터칼? 위생상태? 인스턴트 식사? 누적된 피로? 지나친 스트레스?

의심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 고를 수가 없었다.

그중 꼭 몇가지만 꼽아본다면 커터칼로 장염이 생기고,

좀 서늘하게 다녔던 어제일로 감기까지 온 것 같았다.

사실 다른것들도 하나하나 따지자면 여기까지 무사한것만 해도 기적이 아닐까..

으슬으슬 추웠다.

방풍복을 입어도 서늘했다.

가방 안쪽에 넣어두었던 패딩을 꺼내기로 했다.

밧줄로 조그맣게 말아서 챙겨온 이후로 한번도 안 입은 패딩.

방풍복에 밀려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패딩.

정말 따듯했다.



패딩을 묶어두었던 밧줄은 윗층 침대 철골에 묶어두었다.

병실에서 가끔 보이는 보조 손잡이처럼 몸을 일으킬 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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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정말 유용했음.


일어나서 화장실도 가고 잠도 어느정도 잔 상태.

조금은 몸이 추슬러진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대도 여전히 괜찮다기엔 멀었다.

사그라들었어도 여전히 꿀렁이는 복통은 남아있었고 머리도 띵하고 어지러웠다.

잔뜩 취한 듯,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듯한 느낌.

머리는 붕 떠서 구름처럼 가벼운데 몸은 무겁고 힘이 빠져 위태로웠다.

다시 핸드폰으로 소설을 읽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잡아서 읽었다.

가만히 있으면 더 아플 것 같아 그랬던 것도 같다.

아... 하는 느낌으로 읽다보니 어지러움도 좀 잦아드는 듯 했다.

일어나자. 일어나서 뭐라도 먹자.

상비약도 없으니 나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한다.

식욕도 변변한 유동식도 없었지만 뭐라도 먹어야 낫는다.

일단 손에 잡히는것부터 먹기로 하고 일어났다.



몸에 좋을만한, 영양분이 많을만한 음식..

다행히 마늘과 계란이 남아 있었다.

완전식품이라는 계란과 대표 한약재인 마늘.

하지만 조리방법이 문제였다.

계란이야 뭐 후라이가 있지만, 마늘은 어떻게 먹지

통으로 익히기에는 제대로 안 익을 것 같고, 약한 불로 익히자니 그동안 쓰러질 것 같고..

그렇다고 잘라서 먹기엔 더 이상 커터칼을 신뢰할 수 없었다.

쪄먹기로 했다.

기름진 음식도 피할 겸, 또 제대로 다 익힐 겸.

이르꾸츠크에서 산 잼통을 비우고 그 안에 생수와 마늘, 계란에 소금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순서는 마늘부터 깔고 물을 넣은 뒤 소금을 치고 계란.

처음에는 가득 채웠는데 넘쳐서 물 좀 빼고 다시 돌렸다.

뚜껑을 닫고 돌리는데도 부글부글 끓으면서 피식피식 새어나왔음.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빼지를 못함 ;;

처음에는 수건이나 옷으로 감싸서 들고오려 했는데 그것도 뜨거울 것 같았다.

생각보다 주방과 방 사이가 멀어서 가다 떨어트릴 듯.

....

아 맞다 그게 있었구나!!!!



패딩처럼, 챙겨와놓고 한번도 쓰지 않은 장갑이 있었다.

두툼한데다 털장갑이라 그야말로 안성맞춤.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장갑도 꺼냈다.

그리고 그대로 돌아와 내 보양식을 꺼냈다. 하나도 안 뜨거움 ㅋㅋ.

SF 영화 속 방사능 물질을 다루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방으로 갔다.

어떻게 장갑하고 패딩을 이렇게 쓰게 되는건지..

챙기면서도 설마 쓸 날이 있을까 싶었던 것들마저 너무나도 유용했다.

호루라기만 빼고 다 써본 듯.

보양식이라기도 민망한 마늘 찜이지만 이것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앉아서 웅크리고 한 숟갈씩 떠먹으니 점점 나아가는듯한 느낌.

솔직하게 맛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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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나서 컵라면도 계란 넣어서 끓여먹었다.

그냥 마늘만 먹으면 속 버릴까봐..

단순히 뜨거운 물만으로는 계란이 익지 않아서 전자렌지에 돌렸다.

우그러진 건 그 때문.


내친김에 오렌지까지 먹었다.

어느정도 눈도 붙혔고 먹을것도 제대로 챙겨먹었다.

거기다가 패딩도 입고있어 춥지도 않고 방도 혼자 씀.

이러니저러니 해도 더 나을수가 없는 상황.

감사했다.



이렇게 쓰니 굉장히 호전된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완전히 멀쩡해진 건 아니었다.

간신히 식사만 한 정도,

빈 속까지 게워내던 아침보다는 좀 나아진 정도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장염같던 건 조금 잠잠해졌지만 몸살같은 건 그대로인 상태였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배가 아플 땐 몰랐던 어지러움과 지끈거림이 찾아왔다.

걸을 때마다 토할 것 같았고 뒤통수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어느정도 몸이 식고나니 추위도 다시금 찾아왔다.

그대로 누워서 쉴까 나가서 먹을거라도 사올까 고민했다.

계란하고 마늘은 남아있었지만 다른 먹거리를 사 와야 할 것 같았다.

영양가 있는, 질 좋은 야채나 과일같은 것.

치즈도 먹고 싶었고..

하지만 가는 길에 멀쩡할 수 있을까?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운데 버스에서 버틸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다시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지면?

챙겨온 상비약도 없어 이렇다하게 장담할 수 있는게 없었다.

거기다 의사소통이라도 막히게 되면.. 상상만으로도 다시 지끈거렸다.

어떻게 보나 꺼려졌다.



고민이 길어졌다.

몸 상태라는건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신할 수 없는 부분.

혹시라도 멀미로 버스에서 토하기라도 한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바지를 갈아입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어느 정도만 되어도 조심스레 나갔겠지만 내가 볼 때 지금은 그정도도 안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 오늘만 버티는게 문제가 아니다.

이틀 뒤면 귀국하는데 그 전까지 뭐라도 해야지

최소한, 못해도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는 몸을 추슬러놔야지

그러려면 한번은 나가야 한다.

나가서 영양가 있는 야채나 채소, 과일같은 걸 잔뜩 사서 먹어야 한다.

치즈도 정말 먹어보고 싶었고..

하지만 찾아보니 장염에 유제품과 과일은 절대 피하라고 나와있었다.

그렇다고 라면만 먹을수도 없잖아.

어느정도 생각하다가 편한대로 믿기로 했다.

어쨌든 영양만 잘 섭취하면 나을 수 있다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갔다 오기로 했다.

정말 조심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다녀오자.

어차피 숙소에 있어봤자 핸드폰밖에 안 한다.

혹시 모르니 휴지에 물티슈까지 챙기고 출발.



조심스럽게 걸으니 익숙한 길도 다르게 느껴졌다.

몸 상태가 좋았다면 그냥 휙휙 지나쳤을 것들이 보였다.

햇빛때문에 생긴 그림자라던지, 회백색 시멘트 벽의 갈라짐 같은 것들.

계단을 내려갈때도 미묘한 차이를 느꼈다.

이를테면 발 끝 부터 내밀어 내려간다던지 그런 것.

아침까지만 해도 창문 밖으로 눈이 날렸었는데 그친 상태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길.

건너편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에서 예의 그 버스를 타고 마트를 가면 된다.

그런데 정류장 왼쪽에 작은 시장이 열려있었다.

그, 11에 나왔던, 리리를 기다리다 과자를 구경했던 곳.

그곳과 똑같은 구조물에 비슷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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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11일 동영상 캡쳐본. 정작 이날은 흐린 날씨였다.

사진에서 노란 택시 뒤쪽으로 세워진 하얀 구조물이 시장임.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왼쪽 검은 차 뒤쪽이 버스정류장이었다.



뭐가 있나 슬쩍 보니까 심지어 야채와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원래 야채를 파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뻤다.

단순히 시장 하나를 발견한 것 뿐이지만 왠지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갑에서 1000루블을 꺼내 손에 쥐고 구경했다.

안에는 토마토부터 초록사과, 배와 순무, 양배추와 감자 따위의 것들이 쭉 늘어져있었다.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얘기로는 과일에도 찬 기운과 따듯한 기운이 있다고 했다.

아마 사과하고 배가 찬 기운이라고 했던 것 같음.

일단 저 둘은 빼고 만만한 토마토부터 사기로 했다.

따듯한지는 모르겠지만 몸에는 좋다더라 ;;

토마토를 샀다.

그리고 배도 한번 먹어볼까 싶어 배도 담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상인이 변했다.

토마토까지만 해도 산 것만 담아서 주려고 했었는데,

배까지 같이 달라고 하니까 이것저것 다른 과일들을 가리키며 같이 살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 말로 한 건 아니고, 손짓과 각종 표현? 들을 섞어서.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다.

솔직히 거부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살 생각이 있는것도 아니었음.

그런데 그게 상인한테는 기회로 보인 모양이었다.

어쩔까 주저하는 듯한, 그러면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나중엔 아예 1000루블 지폐를 가져가더니 가리키며 대답도 듣지않고 넣었다.

당황해서 제대로 얼탔음. 순식간에 봉지가 2개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토마토 3개, 오이 2개, 순무 1개, 사과 14개, 배 8개, 파프리카 2개가 구매되었다.

그런데 1000루블이면 약 2만원정도.

상인에겐 바가지였다고 해도 정말 싼 가격이어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흡족하기도 했다... 다만 굉장히 당황했고 놀랐을 뿐.

겪어본적은 없지만 아마 번호를 따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까지는 필요없었지만 별 불만없이 샀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마트를 향했다.



다행히 버스 안에서는 별 일 없었다.

어지러운 것도 참을만했고 배도 괜찮았음.

무릎 위에 올려둔 과일봉지가 무거운 것만 빼면 다 괜찮았다.

무겁긴 해도 보고 있으면 아픈건 빨리 낫겠다 싶었다.

언제 다 먹나 싶기도 했고..

마트에 내려서는 바로 화장실을 갔다.

갑자기 복통이 격렬하게 휘몰아쳐서 정신이 아찔했다.

화장실이 2층이었는데, 계단에서 위험했음.

다행히 별 일 없었다. 후..

그 후로는 본격적으로 장을 봤다.

사려고 했던 건 식칼과 간단한 먹거리, 그리고 치즈.

치즈는 앙팡밖에 못 먹어봤다. 제대로 된 치즈를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블라디에서 샀던 건 무식하게 얼려버려서 이상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먹을거다.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것으로 꼭 먹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이제 2일밖에 안 남았는데 돈 아껴서 뭐 하겠냐

5863루블, 11만원 정도지만 먹고싶은 것 정도는 충분히 사고도 남을거다.

마트 딱 대



계산대 근처, 매장 검색대 부근.

복분자같은 것과 블루베리, 오디같은 것까지 3종류의 과일을 모아서 파는 팩이 있엇다.

아마 베리 종류들을 모아서 파는 모양.

가격은 620루블로 정말 비싼 편이었다.

시장에서 산다면, 아마 조금 바가지쓰고,

토마토 1.5개, 오이 1개, 순무 0.5개, 사과 7개, 배 4개, 파프리카 1개의 가격.

한국돈으로는 1만3천원 정도.

평소라면 고민도 안하고 지나쳤을만한 가격이었다.

ㅇㅇ. 평소라면.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무려 흥청망청 쓰기로 결심한 날.

냉혹한 암살자처럼 자비없이 한 팩을 담았다.

그리고는 칼.

분명 전에도 봤던 똑같은 칼이지만 꼭 사야하는 상황이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안사도 될 때는 어딘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제는 꽤 괜찮아보였다.

간사한 인간 중에서도 제일 간사한 게 나라는 인간.



근처에서 소화를 위한 요플레에 설겆이 및 위생용으로 비누도 1개 샀다.

그리고 내친김에 선물까지 골랐다.

부모님과 친구들,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줄 선물.

부모님에게 드릴 것으로는 커피를 샀다.

하지만 내가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고 마셔본 적도 많이 없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싼 것으로 골랐다.

꼭 어렸을 때 팔던 제리뽀처럼 캡슐같은 것 안에 들어있었음.

친구들 선물로는 각각 원두가루 1봉과 차 2상자.

그리고 계속해서 도와줬던 형.

혼자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형한테도 차를 선물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잡히지 않을만한 것으로, 실용성이 있는 것 중에서 비싼 것.

당시로써는 고르고 골라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망의 치즈.

치즈를 살 차례였다.

어떤, 특정한 치즈가 먹고싶었던 건 아니었다.

여태 다른 기대들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봤기 때문에 먹어보고 싶었던 것 뿐이다.

어차피 종류도 모른다.

비싸도 좋으니 괜찮은 치즈를 먹어보자.



그런데 ; 무슨 가격이 ;;

가격이 미쳤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조그만 조각치즈 하나에 1만원부터 2만원, 심지어 그 이상의 것도 있었다.

치즈 장인은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레 소심해졌다.

치즈.. 치즈.. 살까 말까...

프랑스 파리가 나오는 영화들처럼

곰팡이 핀 치즈 한 조각에 와인을 곁들인다던지 하며 분위기를 잡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뭘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 비싼 것을 사자니 한없이 비쌌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 + 너무 많은 종류 + 치즈 만드는 사람은 돈 많이 벌겠다

같은 생각들이 뒤섞여 결정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고민하다가 하나를 골랐다.

어차피 남 줄 선물도 골랐는데 나한테 선물하는 셈 치고 비싸고 작은 것 중 2개를 골랐다.

하나는 즉석에서 잘라주는, 조각케잌 정도의 푸른 곰팡이 치즈.

나머지 하나는 통조림에 든 치즈.

통조림은 일단 제쳐두고, 곰팡이 치즈에 특히 더 기대가 컸다.

치즈하면 가장 유명한(아마?) 푸른 곰팡이 치즈.

미식가들은 이걸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다.

소세지야 종류가 다양하니 짤수도 있겠지만, 푸른 치즈는 이거 하나겠지.

기대가 되었다.



바로 옆에는 정육코너가 있었다.

스티로폼까지 녹여버린, 그 닭다리를 팔던 곳.

닭다리는 고민하다가 안 샀다.

아무리 영양이 중요해도 기름기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또 아무리 비정해졌다고 해도 하루만에 너무 많은 돈을 썼음..

왠지모를 죄책감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다행히도 무사했다.

별 일 없이 외출하고 돌아온다는, 사소한 일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새삼 느꼈다.

방에 들어와서는 짐을 풀고 과일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너무 많았다.

귀국까지 남은 건 겨우 2일인데 남은 과일/야채는 32개.

거기다가 몸살에 장염(추정)까지 걸린 상태.

하물며 이미 사다놓은 훈제고기, 냉동밥에같은 음식들도 그대로 있다.

몸이 멀쩡해도 다 먹기에는 좀 괴랄한 양.

거기다가 양파랑 무는 또 어떻게 먹냐.....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처음 도착해서 헤메다 kfc에서 대충 때웠던 것이 생각났다.

언제는 다이어트 가루만 퍼먹겠다고 했었는데, 이젠 먹을게 많다고 걱정하고 있다니.

차라리 잘된거다.

남으면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될 일이다.

받은 만큼은 아니어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녁으로는 라면을 빼고 마늘찜과 파프리카, 요플레와 토마토

그리고 복분자 세트(추정)까지 조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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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는 실망스러웠다.

곰팡이도 몇 피어있었고 가장 기대했던 빨간색도 맛, 식감이 괴상했다.

맛은 단순히 시기만 했고 식감은 물렁했다. 살 때는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이제 보니까 그 몽골리안 데스웜 닮은 것 같기도 함.


옆에 있는 토마토는 칼이 안 들어 톱질하듯 잘라 먹었다.

한 입에 다 못넣을 것 같아서 잘랐음.

토마토도 그렇고 전에 딸기도 그렇고 러시아 과일은 엄청 크다.

치즈는 하루 미루기로 했다.

원래 장염에는 과일도 피하라고 했는데 유제품까지 먹는 건 미친 짓이지..


이날의 일기.

무엇이 문제라고 짚기에도 워낙 다양해서..

모포, 커터칼, 통조림 캔, 우유곽 혹은 내 옷이 불결해서 그런건지,

스티로폼을 전자렌지에 돌려 그런지 인스턴트만 먹어 그런건지, 한번에 많이 먹어서 그런건지,

외국이라 음식이 맞지 않아 그런건지, 물이 깨끗하지 않아 그런지,

그동안 피로가 한번에 터진건지, 먹고 바로 자서 그런건지,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그런건지...


암튼 오전에는 일어나는데 기절할 것 같더라고.

움직일수가 없어 그대로 10분 자고, 엎드려 자고, 패딩까지 꺼내 입었어.


가서 구경하는데, 토마토만 사려 했는데 자꾸 담아주고 이것저것 괜찮아보여서 1000루블을 다 썼어.
짱 무거웠음..


난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집착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분명 파프리카, 오렌지, 마늘 덕이 아닐까 싶어.

건강하자 진짜. 운기조식 잘 해서.


요즘 다시 학교, 부대 꿈을 꿔. 난 다시 무서워 빌빌대고..

분명 그만큼 스스로 약해져있다는 증거겠지.


~하자! 만큼 의미없는 말도 없더라.

그냥, 나에 대해 더 알아가려 노력할게.. 같이 해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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