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스벤. 이번에 광장으로 내려가면 네 당근부터 사 줄게.\'\'
대관식 하루 전, 크리스토프는 그답지 않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얼음 장사때 우연찮게 대관식 날짜와 성문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 크리스토프의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가지를 않았다. 게다가 이미 한 상인에게 얼음을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13년만에 성문이 열리고 대관식까지 진행되니, 외국에서도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들거야. 운이 좋으면 루이스와 약속한 얼음보다 더 많이 팔릴수도 있어!\'\'
이번에 수입이 짭잘하면 반드시 승차감 좋은 새 썰매와 오랜 친구 스벤을 위한 더 편한 발굽까지 사야지. 크리스토프의 머릿속에서는 평소의 단순하게 생필품과 그 외에 물건을 사던 모습과 다르게 번 돈을 어떻게 쓸지 세세한 계획까지 전부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크리스토프는 이번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엇차. 너도 기대되지 않아 스벤?\'\'
\'\'(물론이지!)\'\'
\'\'그럼 당연하지. 이제 네가 산을 탈 때 발바닥을 다칠 걱정을 할 일도 없을걸.\'\'
마지막 얼음을 썰매에 실은 뒤, 크리스토프는 부드럽게 스벤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내일이 지나면 푹 쉴수 있을테니 조금만 힘내자는 의미겠지.
스벤은 기대감에 가득 찬 크리스토프의 눈을 보고는 애써 웃어보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텐데..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크리스토프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아서 스벤은 불안한 생각은 치우고 자신도 행복회로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자 가자! 내일 열심히 일하려면 오늘은 푹 쉬어 둬야지.\'\'
북쪽 산 근처 저장고에 캔 얼음을 넣어두고, 크리스토프와 스벤은 자신들이 지내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말이 오두막이지 낡은 헛간이나 다름없었다. 널리고 널린 아렌델의 얼음장수들에게는 흔한 생활이였다.
\'\'(잘자, 크리스토프.)\'\'
\'\'너도 스벤. 내일은 동상에 걸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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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크리스토프는 약속대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당근을 사서 스벤과 나눠 먹었다. 가벼운 말장난과 함께.
\'\'원하는게 뭐야, 스벤?\'\'
\'\'(간식 좀 줘!)\'\'
\'\'공손하게 말해야지.\'\'
\'\'(제발?)\'\'
\'\'그렇지. 어어? 남겨야지.\'\'
크리스토프는 새 여왕의 대관식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물론 어떤 다른 얼음장수들은 여왕님이 매우 아름다우시네, 아니? 공주님이 더 아름다우실걸 하는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나누면서 대관식을 보러 갔지만, 크리스토프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 없을뿐더러 당장 수입이 더 중요했다.
\'\'항구쪽에 루이스가 있을거야. 오늘만 지나면 된다구. 이런 기회는 너도 나도 태어나서 처음일걸(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스벤도 산더미처럼 쌓인 얼음을 보며, 집에 갈때는 썰매가 비어 있기를 바라면서 항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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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벤은 어제 했던 불안한 생각이 곧 사실이 될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루이스?\'\'
\'\'말 그대로야, 크리스토프. 자네보다 더 싸게 팔겠다는 얼음장수가 둘이나 더 있어. 안타깝지만 그 둘 중 한 명에게 사기로 약속했네.\'\'
\'\'하지만 약속은 나랑도 했..\'\'
\'\'그건 말뿐인 약속이지. 자네 계약서가 뭔지도 모르지? 하긴 산속에서 지내는 무지렁이가 알 턱이 없지.\'\'
\'\'제발요, 루이스. 오늘 팔지 못하면 저 얼음은 다 어쩌구요? 어제 저 얼음을 캐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아니 힘들었는데...\'\'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얼음값은 지금 한 값진 경험으로 퉁치도록 하지. 다음부턴 좀 신중하게 살아, 이 촌뜨기야.\'\'
눈앞의 지난번에 봤던 인자한 상인의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비열한 사기꾼의 웃음만이 자신을 깎아내리자 크리스토프는 그냥 두들겨패고 감옥이나 갈까 하는 충동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였고, 곧 이성을 되찾았다.
\'\'그래도...\'\'
스벤은 크리스토프의 목소리가 평소와 똑같은 톤으로 가라앉은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잘 팔수 있을거야.\'\'
\'\'(힘 내, 크리스토프.)\'\'
\'\'고마워 친구. 역시 너밖에 없어.\'\'
몇 시간이 지났을까. 크리스토프의 썰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얼음의 개수는 거의 그대로였다.
\'\'감사..합니다.\'\'
저녁까지 애써 열심히 팔아 봤지만, 얻은 수입은
겨우 10전이 전부였다. 힘들게 캔 얼음을 못 팔게 된 것도 그랬지만, 아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들은 무시가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하기야 이미 더 상처가 날 자리도 없겠지. 그런 류의 무시는 어릴 때부터 이미 수도 없이 들어온 그였다.
\'\'가자, 스벤.\'\'
둘은 북쪽 산 쪽 얼음 저장고로 출발하였다. 가는 내내 크리스토프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 뒤, 크리스토프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이러했다.
\'\'역시, 순록이 사람보다 나은 것 같아.\'\'
저장고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크리스토프와 스벤이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함박눈이 쏟아지고 눈보라가 내리치기 시작한 뒤였다. 아니, 알아차리긴 하였으나 7월에 눈이 내릴리가 없다고 단정지은게 화근이였다. 순식간에 발목까지 내린 눈은 더 이상 저장고로 갈수 없고 하산한다는 결론을 내게 했다.
되는 일이 하나 없군. 크리스토프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얼음을 묶은 밧줄을 더 단단히 동여맸다. 이미 눈발이 머리에까지 휘날린 터라, 몸을 녹일 장소가 필요했다. 마침 저 멀리서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빛으로 다가간 크리스토프는 자신보다 작은 사이즈의 발자국이 불빛의 근원인 상점의 문으로 연결된 것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이 날씨에 나 말고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좀 더 다가가자, \'떠돌이 오큰의 거래소\' 라고 적힌 작은 건물 옆에는 따뜻해 보이는 헛간이 있었다. 오늘 밤은 저기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크리스토프는 문을 열고 들어가 발을 털었다.
고개를 들자, 네 개의 눈동자가 그를 향한 시선을 보냈다. 남자치고 목소리가 높은, 가게의 주인 같아 보이는 남자와,
적갈색 머리의, 여름철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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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첫등장 이전에 뭔일을 겪었을까 궁금해서 써봄
개추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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