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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풍문학+그림]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첫 데이트

안나병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07 17:54:31
조회 1107 추천 78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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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


아렌델은 엘사 여왕의 마법으로 다시 여름을 되찾았다. 서던제도의 한스왕자는 아렌델을 집어 삼키려는 야욕이 드러나 서던행 배가 출항할 때까지 옥에 갇힌 신세가 됐다. 제자리를 찾은 엘사 여왕은 혼란스러운 궁 내 질서를 바로 잡고 교역국이 제시한 문서를 재검토하여 빠른 안정을 꾀했다. 한스 왕자와 함께 반역을 꿈꾸던 위즐튼과의 교역은 전면 중단됐으며 서던제도에 발송할 국가간 신성불가침 영역을 확고히 하는 조약 체결 일자 제안서 또한 준비가 끝났다. 




언니, 바빠?”

“안나, 들어와. 잠시 쉬고 있어.”

“언니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는 안나의 표정을 본 엘사는 방금 전까지 느꼈던 무거운 기분이 한번에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잠깐, 안나를 따라온 다른 사람이 있다. 한 눈에 봐도 궁이 처음인 것 같은 어색함이 가득하다. 그는 얼음성에서 안나와 함께 있던 남자다. 순록 가죽옷을 입고 사미띠를 허리에 두른 그는 안나의 등 뒤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먼지를 뒤집어 쓴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몰라도 삐친 머리에 조금 희뿌연 뭔가가 소복히 앉아 있다. 땀 냄새가 진하게 밴, 꾀죄죄하고 시커먼 옷은 궁과 어울리지 않는다. 



“남자를 소개시켜주면 언니가 깜짝 놀랄 것 같지만-지난번에는 너무 대충 얘기하고 끝나서. 정식으로 소개해주려고! 일하는 중에 갑자기 데려왔으니 언니가 이해해. 이 사람의 이름은-”

“크리스토프.”

엘사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크리스토프의 얼굴을 바로 보며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들은 크리스토프가 고개를 들어 엘사를 바라본다. 아렌델의 얼음장수. 부모님은 없고, 어렸을 때부터 고아원에서 지냈으며 주거지가 확실치 않은 사람. 엘사는 아렌델이 다시 여름을 되찾고 국정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카이를 시켜 안나와 함께 있던 남자의 정보를 수집했다. 



“제 이름을 아시네요?”

크리스토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엘사를 바라봤다. 엘사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럼요, 잘 알죠, 먼저 감사드립니다. 아렌델의 공주이자 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보호해주어 고맙습니다.”

“언니, 들어봐, 언니가 만든 그 거대한 마시멜로 기억나? 그 마시멜로에게 쫒길 때 말이야-.”

엘사는 손바닥을 펴 안나의 몸 앞에 살짝 갖다 댔다. 

“크리스토프, 아렌델의 여왕으로서 당신께 드릴 선물이 있어요. 어려운 때에 안나를 도와준 보답은 궁에서 확실히 해 드릴 것입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 말해보세요.”

주저하는 크리스토프에게 안나가 눈짓과 손짓을 하는 모습을 본 엘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왕폐하, 음...지난번에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요...” 

엘사는 그의 얼굴과 표정을 찬찬히 관찰했다. 안절부절하고 있지만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인 것 같다. 큰 키와 큰 덩치에, 일단 선해 보이는 인상이다. 흠, 이 사람이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안나를 안내해주고 궁까지 데리고 왔단 말이지. 




“안나와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요!”

풉, 엘사는 마시던 물을 뱉을 뻔 했다. 놀라기는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살짝 엘사를 올려다보는 크리스토프의 얼굴이 붉었다. 

“어..제가 뭐 가진 것도 없고 뭣도 없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느낀 것이 많아서요,,, 특히 안나와 아니 공주님과 함께.. 음... 그래도 아렌델의 공주님이시니까... 제가 감히...이런 부탁도 괜찮다면.”

“좋아요!”

엘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안나는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고 흔든다. 신나 하는 안나와 눈을 마주친 크리스토프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웃으니까 좀 낫네, 사람이. 엘사는 지난번 한스 왕자를 데리고 와 결혼하겠다는 안나를 떠올렸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안나, 얘기 좀 할까.”

“응! 그럼!”

안나의 눈과 크리스토프의 눈이 동시에 엘사의 얼굴을 향한다.

“단둘이.”



크리스토프를 물리고 안나와 이야기를 시작한 엘사는 걱정이 많다. 안나를 안전하게 궁까지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공은 크지만 공주와 얼음장수라니. 엘사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언니,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지난번에 한스를 데려왔던 것 때문에 이러는 거지?”

“안나, 물론 크리스토프는 큰 상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내가 걱정하는 건 너무 성급하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거야.”

안나는 수심어린 엘사의 손을 맞잡았다. 엘사가 안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한스, 그 빌어먹을 자식의 속셈도 실은 언니가 먼저 알아챈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지?”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엘사를 바라보는 안나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사뭇 진지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 모르게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던 그녀를, 엘사는 신경쓰고 있다. 그녀가 또다시 상처 받을까봐. 이렇게 귀엽고 착한 내 동생이. 

“이번엔 달라. 천천히, 하나씩 잘 알아가 볼게. 나를 구해준 사람이야.”

맞잡은 손을 꼭 쥐는 안나의 힘이 전해진다. 따뜻하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어. 그게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 언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엘사는 전과 다른 그녀의 확고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새, 안나는 훌쩍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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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어떡하면 좋지, 스벤?”

스벤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가느다란 눈으로 쳐다봤다.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구나,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얼마 전 데리고 온 그 컵케이크 여자?”

어느새 크리스토프의 양아버지 클리프가 그의 옆자리로 와 자리를 잡는다. 그를 이어 몇몇 트롤들이 크리스토프를 중심으로 원형을 만들었다. 

“저는 혼자 지내니까 이제까지 여자를 만나본 적이 아예 없다구요. 친한 사람 아니면 대화하는 것도 부담되는데.”

“그런데 데이트 신청은 어떻게 했어?”

“아아-.”

정곡을 찌르는 클리프의 말에 크리스토프는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생각해보니 안나 본인에게 말한 것도 아니고 엘사 여왕께 허락을 구한 것 뿐이네. 최악이다.

“이제까지 여자친구 같은 거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었어?”

“크리스토프가 여자친구가 생긴다고?”

“그때 그 컵케이크 아가씨 있잖아.”

“우와, 그럼 크리스토프 결혼 하는거야? 그때 결혼한 거 아니었어?”

“크리스토프가 결혼한다!!! 또 결혼한다!!!”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고 있던 크리스토프가 손을 내리고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다들 잠깐만 조용히 해 줄래!”

약간 뾰루퉁한 그는 클리프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클리프.. 그래도 불다와 결혼을 했잖아요. 뭐라도 도움 되는 말 좀 해주세요. 전 뭘 어떻게 해야 하죠?”

그의 고민이 남일 같지 않은 클리프는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 봤다. 불다와 함께 한지 약 400년... 참 긴 시간이었지.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뭘 했더라...?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단 인간의 데이트라는게 말이야, 어딜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데를 가야 하는 건데, 이 숲이라면 분위기 좋은 장소가 있긴 해.”

그들이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뒤쪽으로 불다가 나타났다. 그녀는 크리스토프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매우 중요한 말을 해 주었다.

“크리스토프, 일단 씻어, 빡빡. 그리고 옷을 갈아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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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클라크게이트 메인거리. 오전부터 서둘러 준비를 시작한 크리스토프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데이트를 하기로 했지만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함께 북쪽 산 여행을 했을 때는 일종의 의뢰인과 고용인으로서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같이 있을 때 몇 번 신체 접촉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자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크리스토프는 여자라는 종족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면역도 없고 지식은 더더욱 없다. 


“스벤, 나 냄새 나?”

스벤은 크리스토프의 몸 여기저기에 코를 대고 열심히 킁킁거리기 시작한다. 크리스토프의 정수리에서 몸을 거쳐 발끝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던 스벤은 만족한 표정으로 크리스토프를 봤다. 확인완료.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구석구석 씻었다. 씻고 씻고 또 씻어서 피부가 닳아 없어질 것 같다. 그동안 트롤들이 냄새가 난다고 하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데려왔을 때도 같은 말을 할 줄 몰랐으니까! 머리도 빡빡감고 목욕도 하고 불다가 빨아준 옷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크리스토프는 많이 달라 보인다. 이제 이대로 그냥 가면 되는 건가. 이제 만나러 가는 건가..!! 주저 하고 있는 새, 크리스토프를 배웅하려 불다와 몇몇 트롤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 뭔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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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들판,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아렌델 궁. 크리스토프는 머리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들리던 바람 소리, 새 소리, 사람들 소리나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들이 사라지고 머리가 울리는 소리만 느껴진다. 안나가 오면, 먼저 말을 걸어야지. 더듬지 말고, 제대로 말할거야. 안녕. 안녕이라고 시작하면 되겠지? 클리프가 뽑아준 데이트 질문 목록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내가 순록을 오래 타고 다니느라 다리가 좀 벌어져서 걸음걸이가 좀 웃기긴 하지만 오늘은 힘을 주고 잘 걸어봐야지. 우스꽝스럽지 않도록. 공주님 옆에서 멋지게 보여야 해. 공주님... 아... 크리스토프는 자꾸 흔들리는 정신줄을 잡으려 머리를 세게 좌우로 흔들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한참 일찍 나온 크리스토프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클라크게이트 메인 거리는 사람들로 매우 붐비고 있다. 시계는 벌써 11시 30분. 정오 전에 오전 일과를 마치려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밀 포대를 실어 나르는 일꾼, 커다란 통에 물을 붓고 꽃을 잔뜩 꽂아두는 꽃집 주인, 아렌델 성 기념품을 파는 가판대 상인, 잔뜩 쌓인 옷감을 밖에 넣어놓고 정리하는 테일러, 그리고 초콜릿 상점. 


“아! 초콜릿!”

불다는 첫 데이트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강조했다. 꽃과, 달콤한 것. 트롤들은 달달한 뭔가를 말하면서 서로 키스를 하는 장면을 선보였다. 혹시 모르지,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니까, 불다는 크리스토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크리스토프는 트롤들이 그를 위해 꺾어다 준 보라색 크로커스 꽃을 한손으로 꽉 쥐었다. 아, 이렇게 쥐면 안되지, 살살. 조금 쭈뼛거리며 초콜릿 가게 앞 유리 문 앞에 선 크리스토프는 머리가 새 하얘졌다. 뭘 사야 되지. 얼만큼 사야 하지. 뭘 좋아할까? 스벤과 함께 왔다면 적당한 것을 잘 골라줬을텐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 속에 섞여 내부 매장에 들어가 보니 달콤한 냄새가 꽉 들어차 있다. 크리스토프는 여자 손님들이 뭘 고르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 앞에 여자 분이 구입하신 걸로 주세요.”

“우리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고급 밀크 초콜릿이죠! 선물하실 건가요?”

“아, 네네! 선물할거에요.”

“누구에게 선물하시나요?”




손님에게 으레 하는 질문에 크리스토프는 당황했다. 누구라고 해야 하지? 공주님? 괜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여자친구? 그건 전혀 아니잖아, 그럼 여자 사람 친구? 이게 더 이상하네. 

“손님, 오늘 데이트 하세요?”

“네??네???아, 네!”

적당한 표현을 고르고 있던 크리스트포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선 동시에 질문자를 쳐다봤다. 머리 수건을 두르고 푸근한 인상을 하고 있는 가게 주인은 크리스토프에게 포장된 초콜릿을 건넸다. 

“역시 그렇군요. 달콤한 초콜릿과 달콤한 하루 보내세요.”

그는 예쁘게 포장된 손바닥 크기 상자를 크리스토프 앞으로 내밀었다. 저렇게 긴장한 상태로 꽃을 들고 초콜릿을 사러 온 남자라니. 딱 봐도 첫 데이트구만.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는 뒤돌아 나가는 크리스토프에게 응원의 미소를 보냈다. 


한 손에는 꽃, 다른 한 손에는 초콜릿 상자를 들고 멀뚱히 서 있던 크리스토프. 시계 바늘은 약속시간인 12시에 거의 닿아있다. 가게 옆 벽에 기대서 한 쪽 다리를 꼬았다가, 풀었다가 바로 섰다가, 무게중심을 오른발에 뒀다가 왼발에 뒀다가. 

“안녕.”

흠흠.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좋은 아침이네요. 어서와요. 난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

“안녕! 크리스토프!”

열심히 첫 대사 연습을 하던 그의 뒤로 경쾌한 목소리가 다가와 부딪혔다. 크리스토프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안나다. 붉은 빛 갈색 머리에 양쪽으로 머리를 땋아 내린 동그란 얼굴의 그녀다. 큰 눈으로 크리스토프를 올려다 보는 안나.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 아.. 왔어요, 안나!”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아니요! 아니 그게... 네, 맞아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건가? 잘 모르겠지만 질문했으니 제대로 답은 해야겠지. 별 문제 없는 대답이겠지? 아닌가. 방금 왔다고 했어야 했나. 안나의 눈치를 살피니 대답을 잘못한 것 같지는 않다. 

“음? 초콜릿 상자네요!”

“네? 아, 맞아요. 초콜릿이에요, 안나 주려고 샀어요. 받아요!”

크리스토프가 갑작스레 내민 초콜릿 상자를 받아든 안나의 시선이 포장지 겉면에 꽂혔다. 

“제가 초콜릿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고... 와우, 게다가 하트 모양이네요!”

하트 모양? 이제야 상자 겉면에 하트 모양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크리스토프는 다시한번 당황했다. 아, 이거 너무 직설적인데. 하트 무늬라니. 안나의 표정을 보니 정말 좋아하는 모습이라 다행이긴 하다. 

“고마워요! 일단 이건 바구니에 넣어둘게요. 이따가 같이 먹어요!”

“그, 그래요!”

“그럼 이제 빈드몰비엔쪽으로 가 볼까요? 가서 같이 샌드위치 먹어요!”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함께 먹으려고 싸온 샌드위치와 먹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꽤 무겁긴 하지만, 같이 먹어 없앨 거니까 괜찮아! 그녀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자기 앞에서 긴장해 떨고 있는 이 덩치 큰 금발머리 남자가 귀엽기만 하다. 함께 엘사 언니를 찾으러 북쪽산을 향할때와 사뭇 다른 기분이네! 마치 다른 사람같아. 어젯밤부터 같이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궁 부엌에서 부산을 떨며 난리를 쳤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만 꾹 참았다. 

“그거, 무겁죠? 제가 들게요. 이리 줘요.”

“고마워요, 크리스토프.”

안나의 손에 매달려 있는 바구니를 보고 있던 크리스토프는 성공적으로 타이밍에 맞춰 말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들고 있던 꽃을 바구니 안에 잘 넣어두고 뚜껑을 닫았다. 바구니는 크리스토프에게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안에 뭔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들어있는 물건의 무게만큼이나 안나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 크리스토프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살짝 뒷 편에서 걷고 있다. 다소 우물쭈물하면서 눈치를 보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에 웃음이 지어진다. 넓은 어깨, 큰 키, 찰랑이는 금발머리. 어? 그러고 보니 언니 대관식때 내가 바랐던 남자의 모습이잖아? 이것 참 신기한 우연이네. 안나는 자기도 모르게 킥킥댔다. 그 덕분에 앞서 가던 크리스토프가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친 상태로 씨익 웃음지었다. 안나는 걸음을 빨리해 크리스토프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이쪽 길이 맞죠?”

“네-맞아요! 잘 가고 있어요, 크리스토프.”

이쪽 길이 아니라도 당신과 걷고 있으니 상관없긴 하네요. 크리스토프는 입밖으로 소리가 나올까봐 깜짝 놀랐다. 아까부터 자신도 모르게 자꾸 안나를 보고 있었다. 배시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는 없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입에 힘을 주니 광대가 터져나갈 것 같다. 데이트라니. 안나와 데이트라니. 기분 좋은 떨림에 손과 다리까지 떨린다. 이런 모습을 안나가 눈치채지 않아야 할텐데. 찌질해 보일까봐 겁난다. 오늘따라 눈이 너무 자주 마주치는 것 같은데... 심장 소리가 밖으로 들릴까봐 불안하다. 


오르막길을 걸어서 인지, 둘이 함께 있어서인지 몰라도 뺨엔 홍조가 생기고, 살짝 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졌다.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다는 것이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니! 크리스토프의 안나는 서로의 발에 맞춰 걸으려고 노력했다. 안나가 오른발로 걸으면 크리스토프도 오른발을 내밀었다. 간혹 스텝이 좀 꼬이기도 했다. 


풍차가 잘 보이는 빈드몰비엔 언덕은 돗자리를 깔고 소풍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였다. 이파리가 크게 드리운 나무도 있어서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렌델 궁과 푸른 바다가 보이고, 배가 오가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크리스토프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아까 넣어둔 크로커스 꽃이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다. 

“아, 안나, 아까 오기 전에 샀어요. 이거 받아요.”

“크로커스네요!”

안나의 눈이 커졌다. 이 남자, 의외로 센스 있는데? 첫 데이트에 초콜릿과 꽃이라니! 

“그 사랑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좀 받았나 봐요?”

“아-그게-”

크리스토프는 붉어진 얼굴로 안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토프의 얼굴을 본 안나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동그랗고 맑은 눈빛을 가진 이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현실이 된다. 

“바, 받아요.”

안나에게 꽃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그냥 웃고 있을 뿐이다. 꽃을 쥔 손을 안나의 앞쪽으로 더 내밀자, 그녀의 손이 닿는다. 두 사람은 동시에 흠칫 놀랐다. 크리스토프는 순간 꽃을 떨어뜨릴 뻔 했다. 

“아아! 예쁜 꽃 고마워요!! 정말 맘에 들어요, 아렌델의 국화 크로커스라니... 참! 우리 점심 먹어야죠! 제가 열심히 준비해 온 샌드위치 맛 좀.. 볼래요?”

황급히 꽃을 받아든 안나가 얼굴을 붉히며 둘 사이에 있는 바구니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죠! 샌드위치가 있죠! 제가 꺼낼게요.” 

“어, 아니, 제가 꺼내면-.”

크리스토프가 무릎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던 순간 돗자리가 잔디에 밀렸다. 미끄러져 넘어지려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바닥을 손으로 짚었는데, 바로 옆에 안나의 얼굴이 보인다. 당혹감에 물든 눈빛이 너무 가깝다. 

“아아, 미안해요, 갑자기 미끄러져서, 어어-”

황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동시에 무릎과 돗자리가 주욱 쓸린다.

“어어어---.”

땅을 지지하고 있는 오른손에 꽉 힘을 주고, 크리스토프는 본능적으로 안나의 상체를 안아 올렸다. 이대로 안나가 깔리면 큰일이니까. 크리스토프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눈을 꼭 감고 있던 안나는 쿵쿵,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점점 커지고, 빨라지는 것 같다. 품은 따뜻하고 넓다. 안나의 코 끝에 크리스토프의 머리 카락이 살짝 닿아 간지럽다. 조금 젖은 이끼 냄새가 나네... 안나는 순간 자신의 포즈가 매우 민망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안나..?”

“아앗, 그렇지!”

황급히 손을 풀고 엉덩이로 주춤주춤 거리를 벌리는 안나의 눈에, 무릎을 세우고 팔을 벌린 채 그녀를 보는 새빨간 얼굴의 크리스토프가 있다. 

“하하! 어색하고, 민망하네요. 아니, 제가 그렇다구요, 미안해요.”

안나는 황급히 다시 바구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는 바로 위에 있었지만, 이런 순간에는 뭐라도 하는 척을 해야 했다. 

“여기요! 제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에요!”

“와우, 공주님이 만드신 샌드위치라니, 감사히 잘 먹을게요.”

샌드위치 받으려 크리스토프가 손을 뻗자, 이번에는 손가락이 닿는다. 

“아!”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회피한 채 조심스럽게 샌드위치를 주고 받았다. 말없이 빵을 우물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점심시간이다.



“....”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말없이 걷고 있는 안나와 크리스토프. 샌드위치를 먹으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말을 몇 마디 나눴지만 어색함은 그대로였다. 크리스토프는 뭔가 화제 전환할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 나무 조각과 마른 풀잎, 잔가지들이 떨어져 있는 길목이 보인다.

“아, 안나! 성냥 없이 불 피우는 거 궁금하지 않아요? 보여줄까요?”

“그, 그럼요! 보고 싶어요! 빨리 보고 싶어요!”

말 없이 긴장되는 순간이 불편했던 두 사람은 재 빨리 새로운 화제에 돌입했다. 

“안나! 낙엽이나 잔 가지들을 모아줘요. 많지 않아도 돼요.”

“좋아요! 내 수집 실력을 보여드리죠!”

안나가 모아온 재료 사이로 크리스토프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나무 조각을 발로 밟아 고정시킨 다음 반 쪼갠 모서리로 신나게 톱질을 시작한다.  

“이걸 파이어 소우라고 하는데요, 막대 두 개만 있으면 어디서든 불을 피울 수 있죠!”

산에서 오래 생활했던 경험만큼이나 생존에 필수적인 불 피우기는 크리스토프에게 식은 죽 먹기다. 물론 도구 없이 나무 조각 두 개로만 시도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이라도 하듯, 크리스토프는 불 피우기 작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선보이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크리스토프를 보는 안나의 마음이 흐뭇하다. 힘을 줄 때 살짝 눈썹을 찌푸리는 모습도 섹시하고. 앗, 잠깐, 지금 뭐라고? 내가 섹시라고 했나? 안나는 자기도 모르게 떠올린 단어를 생각하며 혼자 부끄러워 했다. 평소에는 어리숙하고 서툴지만,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멋지네. 안나는 힐끗 크리스토프를 바라봤다. 

“보세요! 불이에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붉은 불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안나는 크리스토프 등 뒤에서 불 피우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상체를 돌린 그와 이마를 콩 찧었다. 

“아아, 미안해요 안나, 괜찮아요?”

“하하하, 그럼요 괜찮아요. 정말 멋지네요, 크리스토프.”


메마른 재료들이 모여 붉은 불꽃이 된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아무렇지 않게 땅에 떨어져 있는 작은 재료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불을 피우는 재료들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안나는 자신이 모아온 이파리와 낙엽, 나뭇가지들이 힘을 합쳐 멋진 열기를 만들어 내는 장면을 감상하고 있다. 크리스토프와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냥 무례하고 거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오늘 다시 한번 알게 됐어. 우리가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함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아, 잠깐, ‘우리?’ 안나는 또다시 부끄러워졌다.


해가 저물어 가는 하루, 크리스토프는 길어진 안나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한 걸음 정도 앞서가던 안나가 속도를 늦추더니 크리스토프와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기 시작한다. 노을이 붉어서인지, 두 사람의 얼굴이 붉어진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발밑만 본다. 몸 옆으로 자연스럽게 흔들었던 손이 살짝 부딪힌다. 전기가 찌르르, 두 사람을 울린다. 안나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일부러 크리스토프 팔에 어깨를 기댔다. 이번에는 손바닥이 닿는다. 조금 움찔하던 크리스토프는 당황한 표정으로 안나의 얼굴을 살피다가 이내 미소지었다. 크리스토프의 손에 닿은 안나의 손가락은 간지러웠고, 안나의 손에 닿은 크리스토프의 손바닥은 아주 따뜻했다. 안나가 손가락을 펴 손을 맞잡으려는 순간, 크리스토프가 먼저 선수를 친다.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작은 손을, 힘을 주어 꼭 잡았다. 작고, 부드럽다. 쪼끄매서 귀엽고 사랑스러워.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두 사람은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단단히 연결된 손,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걸었다. 



----에필로그----


어느새 사방이 푸른 색으로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마켓 스퀘어는 노오란 불빛으로 넘실댄다. 여전히 손을 잡고 광장 한복판을 걷고 있는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색다른 기분에 가슴이 설렌다. 이 곳을 좋아하는 사람과 손 잡고 걷게 될 줄 몰랐어. 안나는 슬쩍 크리스토프를 올려다봤다.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쳐 피식,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왜 웃어요?”

“그냥요.”

좋아서요, 라는 말은 간신히 참는다.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두 사람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어...음. 이제 들어가야 하죠?”

“네... 벌써 다 왔네요...”

“저... 안나. 흠흠”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손을 잡은 채, 목을 가다듬었다. 

“뭔데요?”

안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모르는 척 표정을 정돈하고 크리스토프를 바라본다. 그는 홍조 띈 얼굴로 머쓱하게 다른 곳에 시선을 두다가, 갑자기 조끼를 바로 세우고, 옷깃을 꼭 잡는다. 

“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데요..”

드디어 마음을 잡았는지,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랑 정식으로 만나줄래요?”

“푸흡.”

안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심장은 가슴속에 있는지 머릿속에 있는지 위치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 몸을 흔들고 있다. 기분 좋은 설렘이 꿈결 같다. 크리스토프는 그런 그녀를 보고 조금은 떨떠름하게 흐흡, 같이 웃기 시작한다.

“안나.. 왜 웃어요..?”

“크리스토프도 웃잖아요.”

“하하...”

한참을 키득거리는 안나의 손을 크리스토프가 다시 강하게 쥔다. 

“안나, 저랑 정.식.으.로 만나줄래요?”

“좋아요!”



크리스토프, 우리 함께 지낼래요?  

네에???? 벌써요? 

음.. 뭘 생각하는 거죠? 궁으로 들어오라구요!

아..하하..제가요? 

네! 가능하면 빨리요.

어.. 안나를 매일 볼 수 있겠네요.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끝----



오늘 프갤 라디오 예방접종으로 딱이지 않냐


읽어두면 면역력이 생긴다





1만자 글쓰고 그림까지 그려온 성의봐서

어서 개추와 댓글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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