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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When I am Older (2)

서리나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9 2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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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When I am Older(1)






6.
일이 터졌다. 위원회로 소집된 제독의 머리 위로 마르틴이 초콜릿 무스를 쏟아버렸다. 초콜릿 무스는 제독뿐만 아니라 매티어스 장군이며 폐하의 옷에도 튀었다. 그 날 회의는 취소되었고 모든 비난은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은 내게 쏟아졌다.



"내가 말했지, 올라프."



안나 폐하는 차분한 표정이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자꾸 왜 이런 실수를 하는 거야? 한두 번이면 이해해. 그런데 어떻게 너한테 맡길 때마다 매번 이러니?"
"......."
"그것도 위원회 소집 기간에 말이야. 내가 분명 열흘 동안 바쁘니까 잘 돌봐 달라고 했었지?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 너도 13살이나 먹었으니 네 몫을 해야지."



나는 불만스런 얼굴로 침묵했다. 몫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분명히 새겨진다.



내 몫이라.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 변명이라도. 이 일을 어떡할 거야? 쌓인 일이 산더미인데-"
"내 몫이요."



내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렌델, 노덜드라, 아토할란, 그 어디에도. 나는 어디에도 섞일 수 없고,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는 척하면서도 나를 자신들과 동등하게 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위치를 잡았지만, 나는 아직도 제대로 자릴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틈만 메꿀 뿐이다. 그들이 커다란 바위라면 나는 강가에 구르는 조약돌이다.



그런데 뭐? 내 몫이라고?




"뭐라고 했어?"



눈에 힘을 주고 폐하를 노려봤다. 폐하의 얼굴을 이렇게 똑바로 마주 보는 게 얼마만이던가.



"내 몫이요? 내 자리조차 없는데 내 몫을 운운해요?"



노기 서린 음성이 방 안에 낮게 깔린다.



"지금 여왕에게 대드는 건가?"
"아, 그럼요. 대든다고 칩시다."



나는 굴하지 않고 빈정거리는 투로 맞섰다.



"폐하께서는 날 무슨 애 보는 보모로 아시나보죠? 자꾸 부탁을 맡기니 이제 당연하게 여기시나봐요? 천만에요. 날 쓰고 싶으면, 내가 성인이 된 후 날 직접 고용하시든가, 아니면 보모를 따로 구하든가 하세요."
"네 자리?"



코웃음이 내 차가운 몸뚱이를 갉아먹는다.



"보모 일도 못 하면서, 네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니?"
"하, 답답하면 직접 보시든지요. 고아원에 쏟는 정성의 반만이라도 애들한테 관심을 가지면 참 좋겠네요!"
"네가 감히......."



손을 부들부들 떨며 폐하는 날 노려봤다.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서서히 식는다.



"안나,"


커다란 입을 열어 그녀의 이름을 발음해본다. 어색하다. 너무도 어색해서 그 단어가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내가 말했었죠. 마법의 숲에 있는 동굴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고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폐하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미약한 파문이라도 일기를 바랐지만 폐하는 미동조차 없이 노기에 차 나를 쏘아볼 뿐이다.



"아무래도 제가 틀린 것 같군요. 사랑도 변해요. 그렇다면 저는 아직도 변치 않는 걸 못 찾은 거겠네요."
"내가 변했다는 거야?"
"스스로 못 느끼세요? 엘사랑 왜 연락하지 않는 건데요? 그 일은 엘사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왜 노덜드라 부족민들을 배척하는 정책만 내놓는 거죠? 왜 순록 사냥을 대놓고 허가한 거에요? 일에 미쳐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게-"
"말 조심해, 올라프. 건방져진 건 너니까."



더 말해 봐야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이야기란 걸 나는 안다. 집무실을 뒤뚱뒤뚱 걸어나가며 나는 덧붙였다.



"변치 않는 걸 사랑이라고 10년 동안이나 믿었던 제가 바보죠."



공허한 마음을 끌어안고 나는 문을 닫았다. 작은 주름이나 옴폭 꺼진 볼을 제외하곤 폐하의 얼굴은 1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안나를 찾을 수 없었다.

성문을 나서는데 마구간 쪽에서 나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토프가 내게 달려온다.



"올라프."



턱수염과 구렛나루로 덥수룩하게 뒤덮인 그의 얼굴이 너무도 생경해서, 황급히 내 이름을 부르는 그를 나는 멍하니 올려다봤다.



"안나 일은 내가 사과하마. 요 근래 잠을 못 자서 많이 날카로워졌어."
"어저껜 어디 있었어요? 요새 얼굴 보기가 힘드네요, 크리스토프."



내 말엔 뼈가 들어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우물쭈물하며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그가 다녀온 곳을 안다.



"술만 퍼먹을 생각 말고 애들이나 좀 잘 봐요."



대답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서만 벙긋거리던 입은 기어코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 만다.



"민트가 죽었더구나."



나는 그제야 크리스토프의 품 속에 고개를 파묻은 새끼 강아지를 발견했다. 협곡 위 목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치기 개로 쓰이는 대형견의 새끼이다. 새까만 소형견인 민트와는 닮은 구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이이다. 얼음에서 씁쓸한 맛이 날 리 없건만, 느닷없이 입술이 쓰게 느껴진다.


"죽은 지 두 달이 넘었어요."


내 몸에 걸린 마법만큼이나 나는 차갑게 쏘아붙인다. 순록처럼 우둔한 눈이 뒤통수에 진하게 남았다.







7.
그 날 이후 폐하는 나를 보려 하지 않았다. 아렌델을 찾아가도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노라면, 그녀는 방문을 꼭 걸어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 모습이 그토록 그녀가 싫어했던 어릴 적 엘사의 모습과도 똑같아 나는 번번이 회의감을 느끼며 돌아선다. 재밌는 것은 직접 나를 만나 주지는 않으면서도 마르틴과 라일라를 돌보는 건 시종을 통해 내게 맡긴다는 사실이었다.



"미안하구나."



크리스토프는 날 볼 때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앙상한 겨울 나무처럼 공허하고 형식적인 말에 나는 질려버렸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에 응하지 않는다. 민트가 사라진 아렌델 마당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물감처럼 뒤섞인 짧은 털 강아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안나 폐하나 크리스토프 전하는 그 강아지가 민트를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시나 보다.



마법의 숲을 거닐며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사람은 남녀의 사랑으로 태어나고,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며,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완성된 사랑을 이룬다. 인간이 아닌 한낱 눈사람에 불과한 나는 이 중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인간에겐 복잡한 신체 기관이 있지만 나는 그저 눈덩이를 뭉쳐 마법으로 얼린 것에 불과하다. 나뭇가지로 된 팔은 쉽게 뽑히기 일쑤이고, 당근으로 된 코는 그저 장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엘사, 내가 태어난 이유는 뭐죠?"



한때 엘사에게 그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더란다. 엘사는 마치 대답을 준비하기라도 한 듯 막힘없이 대답했다.



"너는 우리 자매를 잇는 다리야. 안나와 내가 13년 동안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징이지."
"그럼 나는....... 당신들로 인해 만들어진 상상의 매개체, 그뿐이군요."
"응?"



엘사는 퍽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반항스러운 어조를 유지하며 막힘없이 그녀를 몰아세웠다.



"당신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마법으로 되살린 존재가 나인가요?"
"올라프......."
"동심을 잃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난감이요.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만들어내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요."
"올라프, 그게 아니야. 우리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다고요?"



요즘 들어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때가 잦아졌다. 나는 혼란스럽다.



"엘사. 당신은 안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사랑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저 순수히 나로서 사랑하는 건가요?"



엘사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 망설임이 내 가슴을 잔인하게 찌른다.



"그럼 안나와 엘사, 당신들의 사이가 틀어진 지금은요? 그래도 날 사랑해요?"



서늘한 입술 틈으로 새어나오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지만, 더 말을 이으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나는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당신들에게 난 뭐예요?"



아픈 기억을 떠올리자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당근 코를 훔치며 해안 절벽 쪽으로 뒤뚱거리며 다가갔다. 그런데 불청객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검은 덤불 뒤로 황급히 몸을 숨기고 절벽을 흘끔거렸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백금발이 태양빛에 반짝인다.



".......널 보니 스벤이 생각나는구나. 마르틴은 아홉 살이 되었을 테고."



먼젓번 보았던 아기 순록이다. 커다랗고 순진한 눈이 꼭 크리스토프와도 닮았다.



"마르틴의 상처는 다 나았을까? 흉 많이 졌겠지?"



휘파람 소리가 그녀를 감싸 돈다.



"별로 티 안 난다고? 다행이다."


하고 읊조리는 엘사의 얼굴엔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라일라의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했네."


휘파람 소리가 이어진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게일이 몰아 온 낙엽을 훑다 엘사는 혼잣말을 이어나간다.



"왜 안나에게 연락하지 않느냐고?"



절벽에 웅크리고 앉아 그녀는 검지로 땅바닥을 휘휘 젓기 시작한다. 바람결을 타고 땅에 앉아 있던 옅은 모래먼지가 흩어진다.



"안나는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야. 나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엘사는 어느덧 34살이나 되었지만 외모만큼은 10년 전 그때와 다를 바 없다. 외로이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쓸쓸한 소녀 같아 나도 모르게 그녀가 안쓰러워진다.



북쪽에서 추위가 몰려오며 해가 바다 속으로 저무는 시간이 점점 당겨지고 있다. 서쪽 하늘에서 별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본 후에야 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곤 나는 수풀을 헤집고 절벽으로 다가갔다. 녹크를 타고 아토할란으로 멀어지는 엘사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게 드리웠다.



나는 절벽 끝에 자리를 잡고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본다. 진홍빛 하늘에 어둠이 스미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너무도 아쉬워 나는 서글픈 한숨만 지을 따름이다. 아직도 나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건지도 모른다.



엘사가 앉은 자리에는 여전히 미미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북극성이 하늘에 선명해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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