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문학/단편] 행복한 악몽

프소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9 22:31:18
조회 796 추천 36 댓글 44

“일어나야지! 안 그러면 아침이 늦어진단다?”


아침에 듣는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부드러워 일어나기 싫어서 몸을 뒤척이고 싶을 때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떤 날은 미리 일어난 적도 있지만 엄마가 깨워주길 바래서 자는 척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침대에서 엄마를 안으며 겨우 일어났다. 엄마는 내 볼에 뽀뽀를 해주시며 미소를 지어주셨다.


"어서 식당으로 가자!"     "응!"


준비를 다하고 식당에 가보니 아빠는 신문을 읽으시다가 내가 늦었다는 듯 눈썹 한 쪽을 들으셨다.

“미인은 잠꾸러기라지만 너무 늦는 거 아니니?”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과한 다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부모님이랑 장을 보러 나가는 날이다. 내일 부모님이 배를 타고 어디를 갔다 오신다기에 부모님 선물도 사드릴 겸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초콜릿도 살 생각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 맛 초콜릿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정확히 나질 않지만 부모님이 말해주시길 아예 애기 때부터 내가 좋아했다고 하니 아직도 가지고 있는 내 인형들을 빼고는 이것만큼 내가 좋아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바깥에 나가보니 사람들은 미소를 띄운 채 돌아다니고 있었고, 해 주변에는 구름 한점 없이 약간의 바람만 얼굴을 매만져줬다. 확실히 이런 날씨면 부모님도 별다른 문제 없이 배를 타고 갔다가 오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우선 장식품 가게에 가서 엄마를 위한 머리핀과 아빠를 위한 팔찌를 산 다음 두분께 드렸다. 둘 다 고맙다며 미소를 지어주시는데 왠지 모르게 뿌듯해지는 듯 했다. 특히나 이걸 산 돈은 내가 직접 마을에서 무역사 밑에서 일을 하며 벌은 것이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은 당신들께서 사야할 지도가 있으시다기에 나는 혼자서 초콜릿 가게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가게 안에 은은히 퍼져있는 따뜻한 핫초코 냄새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가게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 진열대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역시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데, 그 책임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결국에 나는 가게 수제초콜릿을 고르기로 했다.


“이걸로 주세요!”

상인 할머니는 나에게 초콜릿을 주면서 작은 초콜릿 주머니를 추가로 얹어서 주셨다. 특히나 그건 내가 좋아하는 밀크 초콜릿이었기에 나는 다시 감사인사를 드렸다.

“아뇨, 우리 @#$#공주님에게 이 정도 드리는 거야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순간적으로 그 분의 입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고, 나는 그 모습에 순간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계속 뚫어져라 보자,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셨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던 부모님 중간에 다가가 내 양팔을 두분 동시에 걸었다. 이 이상한 느낌 때문에 이렇게 기분 좋은 외출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까 그건 뭐였을까?


* * *


아무래도 오늘 초콜릿을 한 번에 너무 먹어서 그런지 목이 말라 물을 가지러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 방에 불이 들어온 걸 보고 자기 전에 인사라도 드릴 겸 문을 열려 했다. 그런데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 문틈으로 살짝 안을 들여다 봤다. 아빠가 울고 계셨다. 그것도 엄청 서럽게 우는 목소리에 나는 당황했다. 아빠가 저러신 적은 처음인데 오늘 무슨 문제가 생겼나? 하지만 아까 외출 때는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 하지만 부모님의 대화는 대답보다는 질문을 더하는 듯 했다.


“#$%#를볼 때마다 @#$@#가 자꾸 생각이나.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버티지 못하겠어.”

“이번에 거기로 가면 그래도 해답이 있을거니까 그 때까지만 참아요.”

“하지만 거기로 간다고 해도 #$%가 돌아오지는 않잖아.”


도대체 뭘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는 거고 누가 돌아오지 못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아까 할머니한테서 들었던 소리를 다시금 듣게 되니 나한테 무언가 문제가 있나 싶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저 끔찍하게 무거운 정적 안에 들어가 물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물을 가지고 침대 위에 앉았다. 오늘은 유난히 이상한 날이다. 분명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기분이 좋은 그런 날인데 왜 이런 소리가 나를 방해하는 걸까? 그것도 부모님이 가시기 바로 전날에? 나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이 나는 엄마가 노크를 하고 있는 것도 듣지 못하고 엄마를 맞이해야 했다.


“어머, 아직 안자고 있었니?”     “응...그런데 엄마.”     “왜 그러니?”


차마 입이 더 떨어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까?

무엇보다 부모님은 내일 바로 배를 타야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기에는 너무 두 분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아녜요. 혹시 잠깐만 자장가를 불러줄 수 있나요?”

엄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침대에 올라오셨다.

“우리 공주님이 엄마의 자장가가 그리웠구나?”     "응!"     “이리 와서 누우렴.”

나는 그렇게 엄마 옆에 누웠고, 엄마는 내 콧등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문질러 주셨다.


바다 저편 북쪽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강

잘 자거라 아가야

기억의 강을 건너라


어? 전에 불러준 자장가는 이게 아닌 거 같은데? 하지만 뭐 어때, 역시 자기 전에는 엄마의 자장가만한 노래가 없는 것 같다.


* * *


“다녀오세요.”     “그래.”     “우리야 괜찮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 너나 몸조심하렴.”

또 그거다. 도대체 이게 왜 이러지? 분명히 다른 건 다 들리는데 왜 내 이름만 들리지 않는걸까?

“어..엄마?”     “응?”     “아..아니에요. 다녀오세요!”

나는 부모님께 뽀뽀를 하고 나가시는걸 배웅했다.

역시 물어봤어야 했나?

* * *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목적지로 향하던 배가 풍랑을 맞아 그대로 가라앉아버렸고, 이후 수색대가 찾으려 해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배의 파편과 부모님의 시신 밖에 없었다. 나는 두 분의 장례식을 치뤄드리고 내 방에 들어왔다. 문을 닫자마자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런지 문 앞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내 곁에 나를 위해 웃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내가 겪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 물을 사람도 없었다. 장례식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고, 나는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울어도 슬픔이 가시지는 않았다. 내가 완전히 혼자가 된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안나..."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굳어 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멈춰버렸다. 안나가 누구지? 나는 생각을 더 해보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거라고는 그 이상한 #$@%소리밖에 없었다. 혹시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서재는 물론 부모님의 방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때 부모님이 말하신 것도 어쩌면 그 이름과 관련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부모님은 뭔가를 알고 계셨던 거야.

결국 나는 엄마의 침대 매트리스 밑에 붙어 있던 상자에 노트를 서너 권을 발견했다. 첫 몇페이지에는 네명의 가족이 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한 아기를 보면서 웃고 있었고, 둘의 미소는 한동안 이어지다 내가 9살 정도 나이 이후 한 명이 없어짐으로서 끊겨져 있었다. 그 이후로는 사진에 부모님과 안나만이 있었다. 내가 갔던 모든 장소는 다 가봤고, 내가 부모님이랑 했던 일을 안나는 다 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셋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내 손바닥과 등에서 나는 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책의 마지막 장에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안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 공책을 옆으로 던진 뒤 다른 것도 꺼내 펴보았지만 다른 공책들 역시 같은 말만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한테 안나라는 동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


지금도 있는건가? 그러면 그 아이는 어디로 갔지? 저 사진에서는 많이 커보였는데? 아니지...그 때 대관식에서 같이 있었는데?

대관식? 부모님이 돌아가신건 아까인데? 뭐야?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안나의 즉위식을 봤고 나는 이제 여왕이 아닌데...잠깐만...그럼 이게 다 꿈인건가?

이 모든 게 다 꿈이라고? 이렇게 생생하고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그 때, 펴져있던 공책의 문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빴던 숨도 그 문장에 멈췄다.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덮는데 표지의 엄마의 이름은 내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노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하지만 그 노트는 점점 흐려지더니 나머지 단어들도 내 글씨체로 변해버렸다. 다른 노트를 펴봐도 똑같았다. 다만 차이라면 그림에서 안나만 있던 자리에 그 아이는 없어진 채 내가 서서 웃고 있었다. 모든 그림에는 나와 부모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머리를 감싸는 내 두손은 사시나무마냥 떨고 있었다.


내가 안나를 기억에서 완전히 잊고 싶고 미워했구나.

아...이기적이어도 이런 이기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사실 잊혀져야 되는 건 모든 원인이자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일텐데.


* * *


안나는 멍하니 선 채 점점 퍼져나가는 얼음을 보고 있었다. 성 안의 사람들은 전부 대피한 채 바깥에서 웅성거리며 성을 바라보고 있었고, 크리스토프는 올라프를 안은 채 걱정스러운 눈길을 안나와 엘사의 창문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올라프는 아까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방에 온 이후로 걷지도 못하겠는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 이후에는 계속 자신의 가슴쪽을 가리키며 아프다고만 중얼거리다 결국에는 기절한 듯 숨만 가늘게 쉬고 있었다. 올라프까지 저러는걸 보면 확실히 엘사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었다.

정말 이러면 안되지만 ‘이번에는 또 무슨일이야’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없어졌다. 그에 안나는 스스로에게 기가 막혀 코웃음을 쳤다.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런가? 나도 미쳤지. 이렇게 서로 만나서 복작거린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걸까? 혼자 지냈을 때는 얼마나 편했다고...'

안나는 카이가 가져온 자신의 경갑옷을 입고 얼음을 부수기 위한 칼도 찼다. 브루니를 크게 부르자 스벤 위에 있던 도마뱀은 곧바로 안나의 어깨 위로 달려가 앉았다.


"정말로 혼자서 괜찮겠어?"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볼에 키스한 뒤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그에 안나는 미소를 지었다.

"응. 한 명은 여기서 사람들을 통솔해야지. 그리고 이건 언니의 일이니까."


* * *


안나가 엘사의 방 복도에 들어서고 나서 처음으로 발견한 건 얼음으로 만들어진 또다른 문이었다. 혹시나 이유를 아나 싶어 브루니를 바라봤지만 브루니 역시 모른다는 듯 고개만 열심히 저었다. 하는 수 없이 안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방 안은 옛날 엘사가 있던 방과 똑같은 구조였는데, 유일한 차이라면 그 방 한쪽 벽에 엘사의 현재 방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안나는 주변을 살피다 방문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뒤에서 어린아이가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칼을 뽑았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언니..."


어린 엘사의 얼음 형상이 방 한쪽 어두운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언제 울었는지는 몰라도 말할 때 조금씩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조심했어야 했는데...아니면 그 때 안나더러 눈사람 만드는 거 말고 다른 놀이를 하자 할걸. 그러면 안나도 안다치고 나도 이렇게 있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안나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그 형상은 사라지고 곧바로 뒤에서 조금 더 큰 10대 초중반의 엘사가 보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절망과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안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해? 마법을 실수로 한 번 썼다고? 하지만 나도 실수였는데 왜 나만 갇혀 있어야 하지? 나도 힘들어!!

이렇게 몇 년이나 방안에만 있는 나도 괴로워 미치겠다고! 그런데 왜 너만 밖에 나가서 저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거야? 왜 너만 부모님이 더 안아주는거야?

너도 밉고, 이렇게 가둔 부모님도 미워!"


형상은 사라지고 상복을 입은 형상이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아까보다는 많이 수척해 있었고, 목소리도 갈라져 있었다.

이 형상은 아까와는 다르게 슬픔과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안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너 혼자 장례식을 치뤘겠지...얼마나 혼자서 힘들었을까...그리고 왜 나는 있으면서도 돕지 못하는걸까...왜 내 고통에 애꿎은 너도 고통을 받아야할까?"


다시 없어진 형상 대신 얼음성에서 봤던 옷을 입고 있는 엘사가 나타나 방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거의 머리가 터질듯 그녀는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왜 자꾸 너를 고통받게 하지? 이제는 멈출 수 있으려나? 만약에 그러지 못한다면? 아아아악!!!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한 나도 너무 밉고, 이런 마음이 들게 한 너도 괜히 밉게 된다고!"

형상은 안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다 곧바로 자신이 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팔짱을 끼며 몸을 움츠렸다. 

"미안.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는데. 이런 생각은 틀린거야.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이러면 안돼지. 다 나 때문인데... 그런데 언제까지 내가 나를 원망하고 그것 때문에 가끔 너도 미워져야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나온 형상은 안나의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전에 나타난 모든 형상들과는 다르게 여유있지만 씁쓸한 미소로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아토할란에서 계속 얼어있는 것도 괜찮았을텐데...그러면 처음에는 네가 아플지라도 크리스토프랑 지내면서 차차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 형상은 입을 한 번 열다 말을 삼킨 듯 바로 다물고 안나를 바라봤다.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웃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동안 미안했어 안나. 안녕."


얼음 형상은 그대로 녹아 사라졌고, 뭔가 예감이 좋지 않은 안나는 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하며 방문을 열어제꼈다. 그녀의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은 천장을 비스듬히 보고 있는 엘사의 넋이 나간 눈과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날카로운 고드름이었다. 안나는 곧바로 달려가 칼날을 내밀었고, 엘사의 목을 찌르려는 고드름은 칼날에 산산조각 나 침대 위에 떨어졌다.


* * *


유리가 깨지는 듯 한 소리에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어느샌가 내 양손에는 왠 부서진 고드름 조각을 들고 있었고, 게일이 나를 막으려는 듯 바람이 내 팔을 누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려던 순간 느껴지는 칼날에 바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어느새 내가 나를 찌를려고 했구나. 고개를 내리다 말고 왼쪽으로 살짝 돌려보니 거기에는 안나가 화가 많이 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놀랐는지 눈에는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칼이 땅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청명한 타격음과 볼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통증이 이것이 진정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안나는 화가 난 상태로 나에게 계속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녀의 말을 뒤로한 채 방금 내가 꾼 꿈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게 꿈이 맞나 싶었다. 너무나도 생생했는데 그게 다 꿈이라고 치부하자니 지금 내 모든 신경과 감정이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안나를 바라봤다. 동생은 아직도 계속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안나...안나 맞니?"

"당연히 나지 그럼 누구야? 그리고 아까부터 왜 자꾸 나는 안 보고 이불만 바라보고 있어? 이제는 나랑 얘기도 하기 싫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리고 왜 찌르려고 한거야? 그렇게 내가 화나고 미웠으면 나한테 대놓고 말을 하지 왜 혼자 끙끙앓기만 해?"

"?? 그건 어떻게?"

"언니의 기억이 형상화 되서 문앞에 있더라. 그런데 나한테 말 못한 게 많던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 바깥에서는 그 난리였구나. 내가 다시 고개를 숙였을 때 안나는 내 눈치를 알았는지 머리를 세게 긁으며 내 앞에 앉았다.

"우선 자책은 그만하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얘기해 줘."


* * *


안나는 내 얘기를 듣는 동안 갑옷을 벗어던지고 다시 내 옆에 앉았다. 하지만 내 얘기를 다 듣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계속 쓸어내렸다.

막상 이렇게 말하니 나도 조금 부끄러워 시선을 들지 못했다.

"그까짓 꿈 때문에 지금 스스로를 찌르려 했다고?"

"찌르는 건 나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어떻게 언니가 돼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니? 어떻게 하나뿐인 동생을 이 정도로 잊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을 해?"

"그래도 이러는건 정말 아냐! 차라리 나한테 욕지거리를 하는게 낫지 이건 정말...정말로 아니야."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도대체 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떻게 사람이 좋은 것만 있을 수 있어? 차라리 싫은게 있으면 말을 해!"


나는 멍하니 안나를 바라봤다. 정말로 안나가 많이 답답했나 보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말하라고 하니 나도 뭐라 해야할지 몰라 입을 열지 못했다.

"못하겠어? 그럼 나부터 시작할게!"


그리고 안나는 자신의 불만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장례식 때 나를 원망한 것,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한스랑 결혼한다는 걸 거부했을 때 화났던 것, 기껏 북쪽산까지 힘들게 올라가서 얘기 들으려고 하니까 마시멜로나 만들어서 쫓아낸 것, 크리스마스 때 혼자 또 문 닫아버린 것, 계속 같이 있다고 하다가 막판 가서 혼자 아토할란 가려고 자신을 얼음배에 태운 것까지. 안나의 불만을 직접 맞닥뜨려보니 알 수 있었다. 나만 말을 안한 채 쌓아온 게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많다고! 여기서 짜잘한 것까지 합치면 더 할걸? 그래도 나는 언니를 사랑해!! 언니는 내 하나뿐인 언니이고 가족이니까! 원래는 서로 옥작복작 하면서 살아가는게 가족인데 우리가 그럴 시간이 있었어? 없었잖아! 있을 수가 없지! 우리 인생의 절반 넘게 떨어져지내다 나머지도 별별걸 다 겪다보니 얘기할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서로 얘기를 하면 되는데 왜...!"

안나는 분을 못이긴 듯 소리를 질렀다. 

"왜! 혼자서 멋대로 슬퍼하고 화내다가 멋대로 판단하고 가려는건데?!!"


아...또 이 아이를 이렇게 울려버렸다.

너무나도 큰 일들이 끝나고 보니 이제 조금씩 우리 사이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 가족이자 당사자인 우리를 제외하고는 없다. 거기서 나는 내가 이렇게 앞에서 웃으며 안나를 돕는 것이야 말로 가족이고, 진정으로 안나를 돕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 나아지는 사이를 보며 나는 분명히 내 두려움에 다 맞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제일 중요한 사람 앞에서는 피하기 급급했고 계속 나 혼자만 생각하다 결국 이 아이의 슬픔을 찔러버렸다.

나를 위하고 동생을 위한다고 생각한 방법이 둘 다 망치고 있는 거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그럴 자격이나 있을까? 이렇게 못난 언니, 아니 언니라고 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상처를 줬는데 내가 여기서 다시 안나를 위해 뭘 할 수나 있을까? 하지만 하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또 피하려 든다면 그 때 스스로의 목에 칼을 들 사람은 안나라는 것을.

그리고 만약에 내가 그걸 보게된다면 나는 안나처럼 버티지 못하겠지.

그래. 가족이라고 해서 항상 웃을 수만은 없다. 아마 그래서 부모님도 가끔씩 내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오래 걸렸다.


나는 일어나 안나를 내 곁으로 데려와 한 번 꼭 껴안아 준 다음에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나도 시작하자. 이제는 나도 상처를 주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을 넘어서 서로 얘기해서 푸는 안도감을 더 찾아보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쉰 뒤 말했다.


"안나, 예전에 아빠가 코로나에서 가져온 한정판 화이트 초콜릿 기억나?" "응? 어...응. 아빠가 어렵게 구했다고 막 자랑했었잖아."

"그 때 네가 혼자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니? 아마 내가 그 때 처음으로 떼썼을거야. 하나 더 사달라고 말이지."

"잠깐 뭐? 언니가 정말로 그랬다고?" "그럼. 그게 처음으로 네가 가져갔던 것 중에서 나도 원하던 거였거든."

"그래서 그걸 아직도 기억하는 거야?" "어. 그걸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니가 다 먹고 던져버린 포장지의 그림도 생각나는걸?" "!?"


무거운 이야기만 하다가 갑자기 초콜릿 뺏긴 이야기로 주제가 바뀐게 어이가 없었는지 안나는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안나는 다시 내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안나를 꼬옥 안아줬다. 안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마. 알았지?"     "응."


처음에는 '미안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런 상황를 만든 내가 미안해. 여태까지 말을 하지 않아왔던 내가 미안해. 이렇게 답답한 언니인 내가 미안해.

하지만 지금만큼은 미안하다는 말보다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것보다 여태 더 했어야 하는 말을 나는 꺼냈다.


"사랑해."


안나는 내 옆에 조금 더 붙었다.

"나도 사랑해."


* * *


얼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던 크리스토프는 브루니가 쫄래쫄래 가져온 편지를 읽고 안심할 수 있었다. 


'아직 얘기할 게 남아서 오늘은 언니 방에서 잘게. 먼저 자고 있어.'


크리스토프가 사태를 수습한 뒤 잠시 엘사의 방문 앞에 서 귀를 귀울였고, 거기에서는 자매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흐릿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올라프도 뭔일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둘이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가 다시 찾아가게 된 건 그 다음날 오전이었다. 업무시작 시간이 되었는데도 방으로 오지 않아서 먼저 찾아간 것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노크를 한 두번 해도 답이 없자 문을 살짝 열어봤다. 그는 문을 닫고나서 뒤에 서있던 카이에게 물었다.


"오늘 업무가 많나요?"     "오후에 있는 내각회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저 혼자 볼게요."


자매는 서로를 꼭 안은 채 자고 있었고, 둘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추천 비추천

36

고정닉 2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공지 겨울왕국 갤러리 이용 안내 [200184/10] 운영자 14.01.17 128879307 3815
5488670 [그림] 올벤쳐 [22] Flight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3 235 11
5487990 님들 저 생일임다 [15] Pris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9 254 9
5487495 예술의밤) 아렌델라이프 #27 [10]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0 293 20
5487149 푸갤라미 근황 [21] K2CH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3 430 13
5486537 예술의밤) 아렌델 라이프 #26 [12]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9 370 18
5485752 솔직히 스벤은 가능이다 ㅋㅋ [14] 트루데미지노무현(223.39) 23.12.30 954 11
5485751 속초에서 좆목중 [35] 겨갤러(223.39) 23.12.30 1285 23
5485570 라디오) 오토마톤 정령님 [8]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23 354 20
5485348 ※복귀 갤러들을 위한 차기작 정보 및 갤 상황 정리※ [30] ㅇㅇ(116.41) 23.12.18 1129 75
5484986 [231206] 겨울왕국, 겨울왕국2 일일관객수 [18] Flight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07 502 13
5484950 [231205] 겨울왕국, 겨울왕국2 일일관객수 [12] Flight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06 207 13
5484669 [231202] 겨울왕국, 겨울왕국2 일일관객수 [12] Flight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02 418 12
5484618 겨갤 이상하면 개추 [16] 감자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01 767 19
5484617 망갤테스트 [27] Nobles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01 793 25
5484418 [그림] 10주년 축하합니다!! [13] PoytailPo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7 355 19
5484374 예술의밤) #278 겨울왕국 [15]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6 402 30
5484298 엘사카페 아까 좆비비는애들 대체 뭐냐 ㅋㅋㅋ [16] 겨갤러(223.39) 23.11.25 1041 18
5484297 엘사카페 재미있었으면 개추ㅋㅋㅋㅋㅋ [20] 감자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5 941 20
5483517 추워지면 나도 모르게 입장 ^^ [23] 메박_점장형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07 706 22
5483252 예술의밤) #276 마녀의 밤 [13]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30 410 22
5483106 예술의밤 할로윈 특집?? [15] 충북청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7 568 24
5482940 레전드 뉴짤 떴다 [16] Flight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23 1070 18
5482675 ai)윙크 자가격리 [11] 익명_y9J3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7 825 34
5482623 엘갤 이주 잘잘못을 탓할거면 2년전에 했어야지 [14] ㅇㅇ(106.101) 23.10.16 741 18
5482599 프갤러들이 엘갤 안갤로 간 이유를 알겠다 [8] ㅇㅇ(118.235) 23.10.15 1028 31
5482519 프갤럼들아 맞을래? [22] 렛잇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544 9
5481886 [[ 와 진짜 존나 귀여운거 찾음.... ]] [14] ㅇㅇ(112.147) 23.09.25 878 11
5481689 업데이트)재업) 엘사 vs 안나 인기 차이 [1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9 975 28
5481687 사람들이 쥬디홉스를 욕하는 이유 [11] ABC친구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9 749 15
5481668 오랜만에 그림 그려옴.. [14] 겨갤러(1.220) 23.09.19 545 24
5481664 캠퍼스라이프 #29 [9]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8 373 16
5481467 사람들이 쥬디홉스를 욕하는 이유 [11] 쥬디홉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3 748 19
5481142 404 ERROR 예술의 밤 공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12] 예술의밤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6 333 10
5480917 망갤테스트 [23] Nobles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30 709 18
5480883 [이륙요청!] 제 402회 예술의 밤 통합링크 <자유주제> [9] 예술의밤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28 157 10
5480870 [예술의밤/문학] Olaf [11] 아마프갤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28 295 26
5480860 예술의밤) 캠퍼스라이프 #28 [8]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27 304 20
5480450 Kana-Arima (旧Mason-Tony-Mount)님 [12] ㅇㅇ(14.51) 23.08.14 476 14
5480300 엘냥이 안냥이 짤 [16]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08 705 19
5480261 (AI) 엘사 체크포인트 비교 [16] 집부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07 1092 29
5480084 크리에이티브 앤 프로즌 뭐시기 대관 후기 [10] Excremen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31 466 18
5480065 예술의밤) 아렌델 라이프 #25 [6]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31 321 14
5479948 소식) 52Toys 신규 겨울왕국 굿즈 출시 예정 [10] Flight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27 508 13
5479776 대관 << 땡전한푼 후원할 생각도 없으면 개추 [10] ㅇㅇ(118.235) 23.07.20 567 11
5479474 [겨울왕국 갤러리] 법인 창설의 건 [15] n차부산대관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10 980 37
5479267 엘사 팬티 [9] ㅇㅇ(118.235) 23.07.03 1578 29
5479255 흰티셔츠 엘사 [14]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979 18
5479102 어깨동무 [11]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6.29 533 14
5478658 이새기들 뭐냐 ㅋㅋㅋ [7] Froz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6.20 931 1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