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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 태양과 바다와 별과 눈 [2-2]

Medeo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3.22 11: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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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eok

3) 미안해

 날이 밝자 아크다르가 갑판에 올라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그는 곧 그 이상한 기운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어제는 어두워서 잘 못 봤지만, 아렌델 근처의 사파이어빛 바다가 아니라 에메랄드빛 바다에 진입한 것이다. 출항한 지 4일 만이었다. 아크다르는 코로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난 밤 노인이 등대를 비추던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건 일을 모두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확인해도 될 문제였다. 그는 지난 밤 이둔이 곤히 자고 있던 탓에 등대가 내뿜는 불빛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봤다면 분명 뱃머리를 돌려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가자고 할 터였다. 아크다르의 눈에 방에서 막 나온 이둔이 들어왔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둔은 가벼운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코로나까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둔이 갑판 위에 양손을 포개고 부드러운 가죽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아크다르가 그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크다르는 이둔의 뒤에 다가간 뒤 껴안았다. 적당히 따스한 아침햇살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 따뜻함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온도였다. 둘은 한동안 가만히 서서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침햇살을 받고 비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먼저 고요함을 깬 쪽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아크다르가 아니라 이둔이었다.

 “돌아가면, 꼭 엘사를 안아주고 싶어요.”

 이둔이 죄를 지은 듯 포갠 손으로 시선을 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몇 해 전 이둔이 울고 있는 엘사를 달래고자 끌어안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엘사의 통제를 벗어난 얼음마법에 이둔이 크게 다치고 나서는 이둔뿐만 아니라 아크다르 역시 엘사와의 접촉을 가급적 피했다. 아크다르는 그 이둔이 방금 한 말이 얼마나 깊은 바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크다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엘사와 안나 두 사람 모두를 생각했을 때, 우리가 돌아가면 다시 같이 놀고 웃을 수 있겠지.”

 아크다르의 눈에 두 공주가 함께 뛰노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상상은 곧 현실이 되리라.

 “엘사가 우릴 미워하진 않겠죠.”

 이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한 마디는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아크다르의 가슴을 찔렀다. 그것은 그 역시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였다. 만약 엘사가 우리를 미워하고 있다면? 원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법 이외의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럴지도.”

 아크다르가 이둔을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말했다. 이둔은 한손을 들어 올려 아크다르의 팔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아크다르는 너무 세게 힘을 주어 아프진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이둔을 보며 안심하곤 힘을 풀었다. 그가 팔을 풀며 한 손은 여전히 이둔의 어깨에 둔 채로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중요한 건, 우린 엘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엘사도 머지않아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란 거지.”

 아크다르가 고개를 돌려 이둔의 슬픈 눈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지만 슬픈 눈망울엔 걱정, 두려움, 고뇌가 담겨있었다. 아, 내 입맞춤으로 그녀의 걱정을 영원히 날려버리리라. 코로나에 있을 마법의 꽃만 찾는다면 그 어떤 문제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아크다르가 그녀와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이었지만 이미 오래 전 그것에 익숙해진 이둔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를 받아들였다.

 그 순간 마스트의 꼭대기에서 다급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다르와 이둔은 거의 동시에 마스트를 쳐다보았다. 선원이 배의 끝에 있는 사람마저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소리쳤다.

 “폭풍이다!”

 아크다르가 방금 전 까지 밝은 빛을 내던 바다를 바라보았다. 깊은 심연보다 어두워 보이는 먹구름이 늑대가 거대한 입을 벌린 것처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크다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폭풍이 오고 있다. 절대 헛것이 아니다.

 “폭풍에 대비하라!”

 선장의 침착한 목소리에 선원들은 작게나마 두려움을 떨치고 일사분란하게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둔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괜찮을 거야.”

 아크다르가 이둔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놓으며 말했다. 부드러운 가죽같던 바다는 어느 새 깨진 유리처럼 울퉁불퉁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아직 해가 떠있을 시간이었지만 어둠이 밝은 하늘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나갔다. 이둔이 방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아크다르는 재빨리 선장실로 향했다.

 “선장.”

 아크다르는 항해 시작 후 처음으로 선장이 그렇게 불안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신만만하던 선장의 표정 역시 불안하게 변하자 아크다르는 긴장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선장이 이를 뿌득 갈더니 나지막이 욕했다. 바다가 내는 거친 소리에 아크다르의 목소리가 묻혔다.

 “선장!”

 더 큰 소리로 선장을 불렀다. 선장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불안한 눈빛으로 아크다르를 바라보았다. 바위보다 단단해 보이고 굳세 보이던 그의 몸은 이 순간만큼은 왜소하고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배를 돌려야 하나?”

 아크다르가 물었다. 선장은 국왕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앞의 폭풍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배를 돌려야 하나? 돌릴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돌려라!”

 선장은 강하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양 팔의 근육이 섬세하게 보이도록 강하게 키를 잡았다.

 “돌파할 수 있습니다.”

 점점 커지는 바닷소리에 묻힐 수도 있을 만큼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러나 선장의 목소리는 모든 소음을 뚫고 아크다르의 귀에 똑똑히 꽂혔다. 선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아크다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키를 놓은 뒤 예의를 다해 거수경례를 했다.

 “지금까지의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선장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아크다르는 당황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폐하와 왕비님을 코로나까지 모시겠습니다. 배가 난파되더라도 바다의 신이 두 분을 코로나까지 모시고 가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선원들과 배는 오늘 가라앉을지라도 폐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살리겠습니다.”

 아크다르가 그의 태도에 잠시나마 감동했다.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자 선장은 국왕에게 진심으로 충성했다. 아크다르는 선장이 오만하고 예의 없다는 생각을 거두며 선장실에서 빠져나온 뒤 사랑하는 아내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배 전체에 선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배를 타 줘서 고마웠다! 우린 이 폭풍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서 키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너무 늦었다. 어떻게 해도 폭풍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돌파하자. 우린! 오늘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죽는다면, 시도는 해 보고 죽자. 배에 타고계신 폐하와 왕비님이 무사히 코로나에 닿으실 수 있도록 다함께 기도하자.”

 선장의 목소리는 어떤 두려움도 묻어있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굳은 결의만이 담겨있었다. 선장이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산다. 멍청한 녀석들. 알아들었으면 당장 움직여라!”

 선원들의 대답소리가 폭풍을 몰아 낼 듯 그 근처 바다 전체를 울렸다. 점점 높아지는 물결은 배가 위 아래로 흔들리게 했다. 경험 없는 어린 선원 한 명이 갑판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졌다는 다급한 외침이 밖에서 들려왔다. 아크다르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이둔이 바람 때문에 활짝 열린 창문을 힘겹게 닫았다. 잠깐이었지만 바닷물과 비가 섞여 이둔의 드레스를 적셨다. 위험은 폭풍뿐만이 아니었다. 추위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둔이 몸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아크다르는 담요를 이둔의 어깨에 걸쳐주며 의자에 앉혔다.

 “오, 당신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아크다르가 깊은 후회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배가 점점 더 크게 넘실거렸다. 아크다르는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둔은 오히려 눈썹을 찌푸리며 아크다르를 올려다보았다. 아크다르는 그 찌푸림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걱정할 때 나오는 찌푸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잘못된 선택 때문에 모두가 죽을 거야.”

 아크다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이둔이 그의 손을 붙잡고 제지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아크다르는 이둔이 잡은 손을 맞잡으며 양 손으로 감쌌다. 아크다르는 손을 너무 세게 잡아 부러지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이미 지난 일이야. 아크다르.”

 이둔이 남은 한 손을 들어 아크다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부드럽고 차가운 손이 얼굴에 닿자 아크다르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그것이 이둔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심했다. 아크다르는 그녀가 이제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만약 그 순간까지도 왕의 아내로서 대했다면 아크다르는 더 큰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크다르가 엄마에게 안기는 아이처럼 이둔의 무릎에 이마를 기대며 울었다. 이둔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크다르가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엘사는, 안나는?”

 이둔이 안쓰러운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다음 순간, 둘은 확실한 소리를 들었다. 바다를 뒤흔드는 듯한 큰 천둥소리였다. 폭풍이 마침내 그들의 배를 집어삼키기 위해 오로지 불순한 목적만을 지닌 채 다가왔다. 아크다르가 울음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둔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크다르의 눈에서 어느 정도 두려움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등대지기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아크다르의 목소리에 후회가 여실히 묻어났다.

 “카이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 말을 마치자 아크다르의 눈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오로지 폭풍에 대한 순수한 분노만이 자리 잡았다. 딸을 구할 꽃을 포기할 수도, 여기서 이둔을 잃을 수도 없다. 포기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고작 폭풍 따위가 우리의 희망을 막을 순 없다. 아크다르는 갑판으로 올라갔다.

 “아크다르!”

 이둔이 걱정하며 외치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아크다르는 갑판으로 올라 와 문틀에 몸을 의지하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비규환이었다. 여기 저기 날리는 물건들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돛을 사수하고, 더 노련한 선원이 그보다 덜 노련한 선원에게 다급히 큰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아크다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결이 점점 더 크게 출렁이며 배를 덮쳤다. 선장 역시 온 힘을 다해 키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아크다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분노했다.

 여기저기서 천둥이 치며 하늘이 전율했다. 거센 비가 송곳이 되어 선원들과 아크다르의 몸에 꽂혔다. 하지만 선원들은 몹시 흥분해 있는 탓에 비가 자신들을 때리고 있는 고통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아크다르는 차라리 비가 자신에게 더 큰 고통을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이정도 고통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치고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선원 한 명이 아크다르를 발견하곤 빠르게 뛰어갔다.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꼭 들고 계십시오.”

 선원은 아크다르에게 부표를 넘기는 것과 동시에 아크다르를 방으로 통하는 복도에 밀어놓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 아크다르는 두 개의 부표를 각각 하나씩 든 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피식 피식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둔이 어느새 젖은 옷을 갈아입은 채로 문 앞에 서서 아크다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사는 잘 이겨낼 거야.”

 잘 이겨낼 거라고? 무엇을? 아크다르의 머릿속에 애써 외면하려 했던 불안이 엄습했다. 이둔이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아크다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죽어도, 엘사와 안나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널 닮았으니까.”

 아크다르는 자신을 닮았다는 말에 반응하여 고개를 돌리며 이둔을 바라보았다.

 “죽고싶지 않아.”

 아크다르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도 그래.”

 이둔이 부표를 복도에 던져 둔 채 병적으로 떨리는 아크다르의 큰 손을 잡았다. 아크다르는 이둔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흰 손을 바라보았다. 이둔의 몸의 반쪽은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새하얗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신들의 세계로……. 이둔의 모습은 절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니라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준비하는 잠시 땅으로 내려 온 여신의 모습이었다.

 아크다르가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의자로 향하는 순간, 폭풍이 다가온 이후로 배가 가장 크게 흔들렸다. 배가 거의 뒤집어질 뻔 했다. 큰 위기 직후 아크다르는 선장의 배 몰기 실력에 감탄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절대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아니었다. 물고기의 비릿한 냄새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것은…….

 “이둔!”

 아크다르가 쓰러져있는 이둔에게 달려갔다. 참았던 눈물을 마침내 터뜨렸다. 방금 전 배가 흔들릴 때 선반에 있던 무거운 물건들이 떨어지며 이둔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괜찮아?”

 아크다르가 이둔의 머리를 무릎에 뉘이며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위의 선반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떨어질 것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둔이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위에 놓인 아크다르의 손을 미약한 힘으로 매만졌다.

 “이런 바보.”

 이둔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왕이 너무 쉽게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거야.”

 이둔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너무 쉽게라니? 나, 난 네가…… 그리고 에, 엘사가…….”

 울먹거리며 말하는 아크다르의 머리를 쓰다듬던 이둔은 갑작스럽게 그를 끌어당기며 키스를 퍼부었다. 아크다르는 이둔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랐다. 이 순간에도 키스라니……. 아크다르는 이둔의 입 안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입맞춤이 끝나자마자 아크다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둔을 바라보았다.

 “넌 예전부터 마음이 약했어. 그 만큼 착했고. 아, 이런 왕자라면…… 분명 나중에 훌륭한 왕이 되겠구나 하고 널 만날 때마다 생각했지.”

 이둔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좋은 왕이었어. 정말, 정말 좋은 아버지였어.”

 아크다르는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네가 왕자였을 때 타던 말 생각 나?”

 아크다르는 젊을 때 타고 다니던 애마 별빛하늘이 아크다르의 부주의로 인해 늑대의 습격으로 죽은 일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종착점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크다르는 입을 열려 했지만 이둔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죽고 나서 넌 바보처럼 수업도 안하고 방안에만 틀어박혀서 나한테 찾아오지도 않았잖아. 몇 개월을. 그때 확신했지. 아, 이 왕자는 모든 것을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는구나. 정이 많은 사람이구나.”

 이둔은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마 아까 부딪혔던 곳의 충격이 이제 밀려오고 있을 것이다. 이둔은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지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숨을 내뱉으며 이내 다시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너와 함께 해서 행복했어.”

 그 말을 마치자마자 이둔은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은 아크다르는 아직까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행복했다고? 정말로? 결혼하고 나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아직 잘해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는데, 자기 멋대로 벌써부터 마지막 인사처럼 남기고 가다니. 장난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아크다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차디찬 나무 바닥에 누워있는 이둔의 행복한 표정을 발견했다. 이둔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크다르는 힘없이 늘어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직 생명이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생명의 기운이 뛰고 있었다. 아크다르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실수들에 대해 떠올리며 몸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후회의 한숨을 내뱉었다.

 “금방 돌아올게.”

 기절한 이둔을 안고 침대에 눕힌 아크다르는 곧바로 방의 구석으로 향했다. 선반에서 쏟아진 물건들은 흔들리는 배 때문에 구석에 가 있었다. 한 곳에 뭉쳐있는 물건들을 헤집으며 아크다르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조각용 칼과 나무토막. 아크다르는 한 땀 한 땀 나무를 깎아내며 말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데려가도 좋다. 하지만 내 아내만큼은 제발 살려다오.’

 흔들리는 배 안에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며 아크다르가 온 정신을 집중해서 말을 깎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잘못했다. 무리하게 항해를 계속 진행하도록 지시한 것도, 바다를 무시한 것도, 경고를 무시한 것도 나였다. 만약 바다의 신이 내 말을 듣고 있다면 꼭 이둔만이라도 살려라. 아렌델의 국왕으로서 너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아크다르는 정신적 고통으로 두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나무 조각으로 만든 말의 형태가 잡혔다. 아크다르는 뒤를 돌아 침대에 고이 누워있는 이둔을 바라보았다. 아내의 모습을 본 그는 마지막 울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만큼은 한 국가의 왕이 아닌, 아내를 잃은 평범한 남자처럼 서럽고 애통하게 울었다. 대충 깎은 말 조각상을 바다에 던지기 위해 그가 창문으로 다가가자마자 돌풍이 창문을 깨뜨리며 들어왔다. 아크다르의 두 눈에 그가 살아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의 파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뒤돌아 이둔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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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아렌델의 가장 높은 산만큼 높은 파도가 다가오는 것은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마치 평생처럼 길게 느껴졌다. 몸이 추워서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할 텐데도 손이 벌벌 떨리는 느낌이 아크다르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아크다르가 머릿속에 단 한 단어를 떠올리자 몸의 모든 떨림이 멎었다.

 ‘엘사’

 아이가 애써 만든 모래성을 무너뜨리듯 파도는 가볍게 배를 덮쳤다. 한순간 배가 기우뚱 하더니 배의 모든 열려있는 창문으로 파도가 자신의 몸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끝으로 끌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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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808 드디어 갤을 정리하고 떠날때가 된것같다 [3] ㅇㅇ(203.226) 15.02.17 86 1
2601806 크 이제 준비해야지 [2] 케투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50 0
2601805 닉언 막하네 ㅡㅡ 이 갤러 존나귀여운듯 [2] Selendi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59 0
2601803 맞는 말은 듣고 고치는게 맞긴한데 [3] ㅇㅇ(175.223) 15.02.17 87 2
2601802 처음으로 움짤만들어봤어! [4] 귤선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96 9
2601799 drown너 관심 못 받으니까 설갤 가더라? ㅇㅇ(223.33) 15.02.17 79 0
2601798 갤망때마다 소형 폭격 했긴했는데 [1] 오시아공군 (183.103) 15.02.17 55 0
2601797 지금 딱 이 기분 [1] 프냥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69 0
2601796 유동이라죄송합니다 [4] ㅇㅇ(175.115) 15.02.17 83 0
2601795 모든 유동이 분탕인건 아니지만 [1] Selendi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49 0
2601793 마! 거 싸우는거 보기싫어서 잠깐 차단 할수도 있지! 엘산나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42 0
2601792 유동 차단해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ㅇㅇ(115.86) 15.02.17 90 0
2601790 (나도 늦은 예배) [1] ㅇㅇ(115.86) 15.02.17 43 0
2601787 아재요 떡밥좀 설명해주시라요 MadWif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39 0
2601786 프갤 수개월 전부터 쭉 이래왔는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93 2
2601785 미안하다 얘들아 잠시 소형 폭격좀 할께 [2] 오시아공군 (183.103) 15.02.17 85 0
2601784 결국 유동은 나빠여하고 차단하네 ㅋㅋ [2] ㅇㅇ(39.119) 15.02.17 77 0
2601783 유동 중에 창작러도 있을텐데.. 밥알(1.254) 15.02.17 29 0
2601782 야옹이들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싶다 [2] Selendi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40 0
2601781 분탕은 싫지만 그래도 윾동 차단은 심했다 아렌델게임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33 0
2601780 고닉나치 다메... 베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68 0
2601779 저새기가 미쳤나...모든유동을 차단한다고? ㅇㅇ(218.235) 15.02.17 58 0
2601777 부모가 회사 높은분이라 낙하산 타는것들 ㄹㅇ부럽지않냐!! [3] 아렌델익-스프레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88 0
2601776 모든 유동을 차단해? [1] ㅇㅇ(223.62) 15.02.17 56 0
2601775 데비안아트에서 주운 짤들이 다 사라짐... 장작은아렌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2.17 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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