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화에서던가, 지수와 재현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런날에는' 노래를 같이 나눠 듣고 재현이 살짝 센치해지지요.

그러고 지수가

'난 선배 이런거 좋더라. 투쟁, 피의 불벼락 막 이런 과격한 말 쓰다가"

하는 대사가 있어요.

그 '피의 불벼락' 가사가 등장하는 민중가요입니다.

작은 재현이 이 노래 좋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목은 복수가.

실제로 90년대 집회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아스팔트 저 멀리, 전경들이 방패로 바닥을 치면서 기합 넣고 뭐라뭐라 소리지르면

이쪽에서는 사수대가 파이프로 바닥으로 치면서 불렀던 노래들입니다.

복수가, 결전가, 한총련 진군가 (또는 혁명의 투혼) 등등이 있었네요.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진짜 전쟁터 한 복판에 서 있는 것 같고

터질 것 같은 긴장의 순간에 이런 노래를 같이 부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워지다가도

저쪽에서 전경들이 우루루 달려오면 이쪽에서는 또 정신없이 도망가곤 했었죠.

맞붙어 진짜로 싸우고 그러는 경우는 제가 아는 한에서는 거의 없었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도망갔지.

재현과 지수는 삶을 지켜낸 해피앤딩을 맞았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네요.

진짜로 저 간악한 "적들의 심장에 피의 불벼락"을 내릴 수 있을줄로만 알았고,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기쁘게 싸우러" 가던 그 때 착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지금 오랜만에 만나면 너무 올라버린 아파트값 얘기와 어느 주식이 오를지 얘기를 하다가

얼근하게 취하면 이제는 누군지도 모를 '적들'의 심장에 피의 불벼락을 내리는 노래를 다시 같이 부르고 헤어지곤 하네요.

드라마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느새 마흔 중반을 넘어가는데,

인생의 시간 중 어느 부분은 그 시절에 멈춰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