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수도' 있다는 말은 대체 무엇인가. 도브리닌은 조건을 걸었다. "소련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만나주기는 할 텐데 주제를 경협(경제협력)으로 한정하라. 경협을 얼마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준비해 놓아라. 그리고 미국에서 한소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이 사전에 유출되면 회담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조건이었다. 5월 말에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고르바초프와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6월 초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대통령 전용기가 김포공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서울공항에 대기하고 있었다. 며칠 후 다시 움직여야 하니 말이다. 이것을 기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통령이 또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아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걸어놓고 '미국에서 한소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이틀 전 부산의 어느 신문사가 그 엠바고를 깨뜨려 버렸다. 그것 때문에 회담이 취소될까봐 어찌나 조마조마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