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는 15년 위잉위잉으로 알려지고, 무한도전 출연으로 터지고, 17년 톰보이 때 노래 인기가 정점이다, 이정도는 대충 알테지
와따시 진성 홍대 인디충으로서 이미 14년 여름 부터 홍대는 혁오로 웅성웅성 해댔음
홍대에서 밴드 공연 보겠다고 쿨럽 앞에 줄이 백미터 넘어가게 서는 것은 아마 14년 혁오때가 마지막이었지 싶다
근데 애새끼들은 혁오가 무한도전으로 뜬 것만 알지, 혁오가 뮤지션으로서 팬덤을 확보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잘 모르는 듯 함
혁오는 데뷔 직후부터 중화권 팬덤을 확보하기 위해 존나 노력 했음.
이미 혁오 자체가 중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네이티브 스피커임
혁오 밴드의 매출의 많은 부분이 중화권을 중심으로한 머천다이즈 판매로부터 발생
혁오는 데뷔 초인 16년 중국 최대 록페스티벌인 상하이 스트로베리뮤직페스티벌 출연을 시작으로
16년 중국어 가사로 스여진 싱글 '완리 Wanli万里' 발표,
상하이 단독공연 개최 (1분만에 매진)
중화권 최대의 소셜기반 인디 레이블이자 플랫폼인 88Rising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고
이러한 노력들의 결실은 결국 혁오가 자체 패션 브랜드로 출시한 '다다, dada, 多多'의 폭발적인 인기로
음악적 성취와 더불어 안정적인 활동기반을 갖게되는 성공한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마 혁오 공연을 다녀온 인밴갤러라면 공연장에 '多多' 브랜드의 모자나 의류를 입은 중화권 팬들이 거의 관중의 30% 이상 되는거 다 알제?
걔들이 엄청난 구매력으로 혁오 한국투어까지 오며 먹여살리니까 너무 위화감 느끼지는 말고.
다음으로 아도이 오주환님은 이미 이스턴사이드킥 때부터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이스턴사이드킥 때도 준수한 결과물을 내놨지만, 홍대에서 음악하면 음악 아무리 잘해도 배곯게 된다는 뻔한 현실에 한번 좌절하신 분이시지
그런데 이 오주환님이 나랑 좀 비슷한 구석이 있는게, 태국 여행 가서 존나게 흥한 태국 인디씬을 보고 거기서 큰 영감을 받으심
태국 인디씬은 음악만 해도 잘먹고 잘살고 하고 싶은 음악은 맘껏 할 수 있거든 (이건 내가 옛날에 싼 게시물 보면 잘 알꺼임)
음악도 2010년대 중반부터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권에서 발흥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있는
트로피컬한 신스팝 스타일의 인디팝으로 바꾸고 본인의 음악적 지향을 Commercial Indie로 해서 첫 EP CATNIP 앨범 발표
(트로피컬한 신스팝은 태국이나 동남아 아니어도 당시 전세계적인 트렌드였고, 동남아 인디씬의 영향은 아니다라는 놈은,
Phum Viphurit이 시도한 VHS 비디오카메라 감성과 카메라 워킹을 그대로 가져다 쓴 Wonder 뮤직비디오 한번 보고,
태국 인디음악의 영향을 항상 얘기하는 오주환씨의 인터뷰나 보고 와라)
태국 로컬에서 출발해 동남아권, 아시아, 그리고 세계로 투어를 다니는 태국 인디 밴드들 처럼
오주환씨는 영어가 되는 멤버 ZEE 씨와 함께 해외 프로모터, 해외 페스티벌 관계사 등에 존나게 이메일로 들쑤셔대서
한국 씬의 인기와는 별개로 해외 투어, 해외 페스티벌 참가가 주 스케쥴이 되는 홍대씬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가 됨으로서
결국 ADOY는 배곯던 홍대씬의 한계를 넘어 그토록 꿈꾸던 음악만으로 생계가 가능한 인디뮤지션이 되신 것
현재 ADOY의 주 활동무대는 방콕, 싱가폴, 말레이, 타이완 등등.
또한 음악가라고 해서 청각적 감상에만 머물지 않고, 시각적 감상이 가능하게 하는 그들의 디자인과 비쥬얼에 대한 집요한 집념도 또 하나의 포인트
멋진 비쥬얼 아트를 기반으로 한 앨범 커버를 쭉쭉 뽑아내는 통애 옷, 머천, LP도 존나 잘팔아 댐.
이상 혁오 아도이 성공모델 다뤄봤다. 질문이나 반박은 환영.
정신병자 'ㅇㅇ(115.23)'은 제네시스 필콜린스 병신같은 댓글 달지마라. 정신병자 병신새끼 댓글 삭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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