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코레를 시작한지도 이제 약 1년하고 몇 개월이 지났다.
일반해역 돌파...
레어함 파밍...
321 레벨링...
대형암 건조...
미드웨이 해전...
트럭섬 공략... 그 외 기타 등등.
참 좆같다고 느낀 적도 여러번 있었고, 각천의 음모에 빠져 정신줄을 놓을 뻔한 적도 몇 번이고 있었지만,
결국 어느날 돌이켜보니 그게 다 가볍게 쓴웃음 한번 지으며 웃어넘길 추억이 되어있더라.
흔해빠진 말이긴 해도, 새삼 망각이라는 건 참으로 편리한 능력이구나 싶다. 즐거운 요소보다 화나는 요소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이 게임조차 이토록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니 그 유용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의 불만도 생긴다.
기억을 못하니 실감이 나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는 잊어버린 안좋은 추억만큼의 좋은 추억 또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을 테니까.
시간이 연속적이라고 해도 인간의 인지는 불연속적이다.
역사가 완전하다고 해도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전날 내가 느낀 감동은 사실 과거에도 여러번 느껴본 감정일 수 있고, 그 전날 내가 느낀 고통 또한 사실은 몇번이고 경험해본 아픔일 것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따위는 없다. 설령 매일같이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 필사적으로 보존한다고 해도,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남는 것은 당시 느꼇던 기억의 본질이 아닌 그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실감하고 있음에도.
나는 오늘... 언젠가 잊혀질, 영원하지 않은 추억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3월 13일은 내게 있어 특별한 날이다.
우선은 내 생일이며, 둘째로는 화이트데이의 전날, 셋째로는 내 아내인 하루나와의 결혼 100일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생일따위는 앞으로도 죽을때까지 매년 찾아올테니 별로 유니크할 것도 없다.
오히려 내 마음속에 걸린 것은 100일 전 하루나와 결혼하던 당일날, 사정이 좋지 않아 그녀에게 무엇하나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망각이 인간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전술했지만,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기억함으로 인해 생기는 이 아픔마저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그래.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뭔가를 해주자.
그 생각이 든것은 이미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마 아직 빵집은 열었을거라고 판단하고 곧바로 밤거리로 뛰쳐나왔다.
급한대로, 하지만 신중하게 이것저것 골라서 집으로 돌아오자, 이미 시간은 10시를 넘어가 있었다.
확증은 없지만, 어째선지 하루나라면 딸기 케이크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는 몇개 드릴까요 라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순간 망설였지만, 내가 올해로 20세가 되고 하루나는 콩고급 3번 전함이니 큰초 2개와 작은초 3개로 달라고 말씀드렸다. 억지긴 해도, 아마 그녀라면 즐겁다는듯이 웃어 넘겨줄 것이다.
음료수 두잔과 작은 딸기 케이크, 그리고 화이트데이 기념 사탕 한통과 내빈 두명.
큰맘먹고 나간 것 치고는 조촐하기 짝이 없는 파티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웃어주었고, 울어주었다.
사소한 일에도 감동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아마츠카제짱과 시마카제짱은 축하보다는 케이크에 이끌려 왔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서투르게나마 최선을 다해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그 천진함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더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늦은 밤에 갑작스러운 초대다. 먹을 것만 생각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나름대로 우리를 배려해 파티에 참가해준 것이리라.
참가자라고는 당사자를 포함해 네명 뿐이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이런 좋은 날이 하필이면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사실에서 운명의 장난끼가 느껴지지만, 그런 점도 포함해서 오늘의 즐거움이 완성되는 것이겠지.
결국 지금 내가 한껏 느끼고 있는 감동도, 즐거움도, 행복함도.
몇주만 지나면 차차 잊혀지기 시작해, 몇달 안에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된거라고도 생각한다.
과거에 느꼈던 감정은 망각하더라도,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사실을 떠올리고, 약간의 민망함과 유쾌함을 내포한 쓴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내 옆에서, 그녀 또한 함께 웃어주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런 미래라면.
ps:
하루나, 지금까지도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우리 함대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야.
못난 제독이라 이렇게 작은 것들밖에 선물해 줄 수 없는 건 미안하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안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너만을 사랑하는 제독이 될게. 중혼따윈 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쓸데없이 긴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들 좋은 새벽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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