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통령후보자 토론회때 이회창 후보인가? 하여간 후보자 한 분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 문화산업시장의 2%를 점유하여 세계 7위권이라고 하더군요. 1위 미국과 2위 일본이 전 세계 문화산업시장의 절반이상을 독식하고 있답니다. 아마 3위부터 6위는 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같은 나라들일 것 같고요.

이 중 만화-애니쪽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가 세계 3위라고 하더군요. 다 하청덕이죠. 우리나란 하청제국입니다. 중국, 필리핀이나 태국 등으로 하청의 수요가 빠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하청은 우리가 최강입니다. 그 아래로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이 있고요. 그런데 지금 일본애니의 파급효과는 무섭습니다. 지금 일본애니때문에 자국의 애니산업이 사장된 나라가 한 둘이 아닙니다. 아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절반 이상의 국가들은 그럴겁니다. 중국도 지금 일본애니때문에 자국 애니 산업에 잠재적인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고, 대만이나 동남아도 이미 자국의 순수창작애니의 질이 저하된지 오래됐죠. 유럽도 이미 일애니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일애니의 천하가 된거죠.

왜 그럴까요? 일애니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본의 것으로 보여주면서 무의식중에 \'일본의 것이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일본애니들을 보면 자신들의 문화를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기모노나 온천은 기본이고, 일본의 명승들이 거리낌없이 나옵니다. 일식들을 보면 초밥과 우동 돈가스 라면 등. 참으로 단순해 보이는 음식들조차 아주 제대로 맛있고 감칠맛 나게 보이게 합니다. 일 애니에서 가옥의 상징이 된 일본식 양옥도 일애니마다 빠짐없이 등장합니다(정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집이 있나요? 일본에서도 이제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선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분명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것인양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루토나 닌자보이 란타로, 닌자 핫토리 같은 애니들은 일본사에서도 굉장히 수치스러운 부분인 닌자를 제대로 미화하고 있던데(실제로 이들은 굉장히 암살을 비롯해 혐오스러운 역할을 많이 수행했습니다.), 이것을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부인양 알게 되는 겁니다. 미국애니가 자신들의 소재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왜 우리 애니는 우리 것을 적극적으로 쓰질 않을까요? 80년대 말 90년대 초 우리 애니는 우리의 문화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둘리와 로봇찌빠의 활약상이 남아있는 도봉구 쌍문동, 하니의 숨결이 서려있는 강동구 성내동 등. 그런데 지금 이런 애니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우리애니는 우리만의 것을 무기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비슷하긴 해도 엄연히 다릅니다. 이것은 별것 아닌것 같아도 일애니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일 애니의 힘을 빼버릴 수 있는 결정적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들이 줄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별 특색이 없다고요. 특색이 없다면 만들면 됩니다. 강남,동대문,여의도 등을 신주쿠,하라주쿠,시부야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겁니다. 또 일산 호수공원이나 북한산 국립공원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재를 발굴할 수도 있고요. 경복궁과 일본 황궁이 어찌 같을 수가 있고, 에버랜드,롯데월드가 도쿄 디즈니랜드,오사카 유니버셜스튜디오와 차이가 없을 수가 있을까요. JR야마노테센과 지하철2호선은 같은 순환선이지만, 지하철2호선은 대부분 지하를 경유하고, 야마노테선은 전 구간 지상입니다. 서울이 도쿄보다 더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버선과 일본식 나막신도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싹튼 문화적 산물입니다. 한식의 풍성함이 일식을 상대하기에 뭐가 부족합니까? 김치찌개와 부대찌개가 우동보다 더 무시무시한 포용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왜 안 쓰는지.. 참 답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세련된 인터넷 포털사이트들 또한 예외는 아니죠. 그 어떤 나라도 흉내내지 못할 다양한 서비스와 발달된 인터넷문화. 이 또한 일본에는 없는 우리만의 소재입니다. 참으로 독특한 소재죠.

잡설 : 인터넷문화가 저질이라 하시는데, 인터넷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서 그런 저질 행위가 없을 수가 없죠. 인터넷문화가 깨끗하다는 덴마크,노르웨이,아일랜드 등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그런 나라들에도 그런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 나라들에도 어딘가 그 나라가 처한 문제는 당연히 있고요.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릅니다. 일본은 50년대 한국전쟁 이후로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80년대말 버블경제가 붕괴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성장을 거듭하여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죠. 그리고 일본은 패전했음에도 산업기반이 완전히 파괴되진 않았습니다. 반면 우리는 그나마 없던 기반까지 파괴되고, 폐허속에서 여기까지 이뤄냈습니다. 크레용신짱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을 보면 우리네가 80년대에 즐겼던 추억의 일본만화들이 일본에선 이미 60년대에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60년대 풍경이 우리나라의 80년대 풍경과 유사하단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일본은 1964년에, 한국은 1988년에 올림픽을 유치하고, 일본은 1970년에, 한국은 1993년에 엑스포를 유치합니다.(어른제국의 역습이 바로 1970년 오사카엑스포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엔 20여년의 시간차가 엄격히 존재한 겁니다. 이 사이에서 결정적으로 일본에는 없고 우리에겐 있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로 감동을 담아낼 수 있는 수 많은 소재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검정고무신은 참으로 명작이지요. 일본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작품으로 하나다 소년사가 있긴 하나, 역시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귀신이란 소재때문인지 감동은 떨어지더군요.

과거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우리 애니의 걸작들을 보면 우리 만의 문화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둘리를 보세요. 그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하니의 헝그리 정신. 올림픽을 기억하는 세대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영심이 또한 마찬가지죠. 80년대 학생들의 학창시절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마지막으로 시도되었던 애니가 꼬비꼬비와 두치와 뿌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허접스런 작품성에 비난를 한몸에 받은 채 쓸쓸하게 퇴장하고 맙니다. 참 안타깝더군요.

그런데 왜 지금 우리 애니는 이런 것들을 도외시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나마 이런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이런 애니는 외면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것을 모방하면 모작일 뿐입니다. 우리의 것을 잘 살리는 것이 우리 애니의 성공의 첩경이란 것을 왜 모를까요.

창의력은 세상에 없는 것을 지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있는대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어느 일간지의 교육관련 기사가 생각납니다. 실제로 영재들은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답니다. 오히려 일반 아동들이 상상력을 많이 발휘했다죠. 지금 우리 애니의 수준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에서 멋진 것이 출발하는 것인데.. 왜 그걸 모를까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우리가 우리만의 진솔함과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소재들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것들을 취하지 않아서 그렇지. 더이상 일애니만을 따라하지 말고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내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 있는 그대로, 하지만 아주 아름답게. 그리고 거기에 우리만의 아름다운 문화적 요소를 담아내야죠. 일본과는 다른 한국만의 멋을 담아 내어야 합니다. 숭례문이 전소되었다고 실의에 잠겨있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그저 옛 추억에 잠기는 것 뿐이죠. 원래 숭례문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다시 숭례문을 복원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것을 아주 멋있게 담아내야 합니다. 우리 애니가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외국인들은 한국의 멋을 알아갈 수 있는 지침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 하나만 되어도 최소한 우리 애니가 암흑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망할 YWCA가 태클을 걸지만 않는다면요...

제 부족한 생각이오니, 부족한 점 있으면 지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