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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 소설] - 봄비 6

철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6.08 21:25:06
조회 44 추천 0 댓글 0


“나 손 닿았다.”
네?
“손가락 닿았다고.”
녀석은 헤벌쭉 웃으며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 첫 번째 마디를 가리켰다. 나의 시
선이 닿자 녀석은 커플링이라도 맞춘 것처럼 짠 펼쳤다.
“어때? 부럽지?”
하늘이 어두웠다. 내 얼굴도 그러하리라. 나는 똥파리 씹은 표정을 짓다가 한숨
만 내뱉었다. 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내젓고 학교 안으로 향
했고 두 걸음이 떨어지기도 전에 녀석이 어깨를 잡으며 불렀다.
“왜 그래? 그나저나 방금 왜 부른 거야?”
난 간단하게 대답했다. 너 말하는 거 기다리다가 늙어 죽겠다고.
“그래도 덕분에 인사는 했잖아.”
녀석은 한껏 웃었다. 이빨이 환했다. 이는 잘 닦았네.
“손도 닿아보고.”
그렇게 말하고 쑥스러운지, 그녀의 손가락과 닿지 않았던 손으로 자신의 헤벌쭉
벌어진 입술을 우겨 닫았다. 예상보다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어떻게 녀석에게 대
답해줘야 녀석이 실행에 옮길지 생각하는 동안, 그녀는 키 큰놈과 대화하며 정문
을 지나 농구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이번 생이 끝나는 동안? 의문점을 동반한 강한 부정의 구름은 짜증
을 가득 싣고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나도 하고 싶어!”
그러니까 하면 되잖아. 말을, 입을 벌려서 횡격막에 힘을 빡 주고 성대를 진동시키
면서 혀와 이빨로 모양을 만들고 말이야.
“키 작다고 싫어하면 어떡해.”
짜증 났던 기분이 길 고양이처럼 사라졌다. 녀석과 그녀, 다시 보니 비슷하다고 볼
 수준이었다. 그녀는 의외로 키가 컸다. 그렇지 않아도 소심증의 끝판왕을 달리는
녀석이 키 차이까지도 의식하면서 진도를 나갈 수는 없었다. 형님의 도움이 절실
하게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온 것이 아닌가. 이 주말 봄날에 모든 일을 제쳐놓고. 그러나 녀석은 그녀
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못 하겠어.”
무릇, 서로 모르는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용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용기
라고 단정 지을 수 있었다. 나는 당분간 짝사랑을 하겠다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
리고 희망을 불어넣어 줬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훈련병. 지난 5주
간의 훈련은 이등병이 되기에 충분하네. 충분하고도 남지.
어느새 앞에 있던 사람들은 멀리 가 있었고 나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로 녀석에
게 용기의 나무를 꾹꾹 심어주며 그들을 따라갔지만, 녀석은 평소와 다르게 긍정적
인 생각은 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만 차곡차곡 만리장성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 그
녀의 옆에 붙어 있던 키 큰놈 때문인듯싶었다.
뭐, 일단 말 거는 건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농구에서 최대한 멋지게 보이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다. 녀석이 농구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키도 작은 편이었지만 최대한 열
심히 하면 그럭저럭 중간은 갈 것이고, 또 매사에 열심히 열심히 살고 맡은 일에 성
실하다는, 그런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인다는 골자의 정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정
책이 하나뿐인 유권자인 그녀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민심탐방 역을
맡는다고 말했다.
또한, 평소에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그 말을 듣자마자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흥분하는 녀석에게, 나는 직접 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떠보는 거라고 초등학생을 설득하듯 반복해서 대답했다. 반드시 그
렇게 하라는 다짐을 두 번이나 받은 뒤에야 녀석은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나의 조언대로 농구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농구공도 없는데 허공에서 공을 튀
기고 스텝을 밟으며 걷는 모양이 술 취한 것 같았다. 휘청휘청. 없는 수비를 제치고
슛을 시도했다. 취하기라도 했으면 말은 걸었겠지.
에휴.

학교 운동장엔 교회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중앙에서 공을 튀기고 있던
남자에게, 나는 힘들어서 농구를 못하겠다고 말했고 녀석도 몇 마디 거들기까지 해
줘서 아주 자연스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오는 나에게 녀석이 나 잘했지, 하
는 표정을 지었으나 하나도 안 기뻤다.
녀석을 포함한 남자 여섯 명이 하프코트를 뛰었다. 흰 티를 입은 파와 겉옷을 두른
파가 대립했다. 짙은 회색 구름에서 두꺼운 바람이 지나가며 그들은 열두 개의 눈빛
을 교차했고, 시작했다. 나와 그녀는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근처 벤츠로
가서 앉았다. 벤츠는 정말 굉장했다. 농구장이 잘 보이는 나무 아래로써 신선한 녹음
은 둘째 치더라도, 한 남자의 투쟁사를 지켜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운 거리였으
며 그 투쟁의 땀 냄새가 도달하지 않는 먼 거리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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