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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왜곡하지 말라 ! 초인은 이미 중세에 실재 했었다.

UeberMensch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6.14 11:11:40
조회 114 추천 0 댓글 3

초인이란 도덕적인 성인군자가 아니다.
체사레 보르자 같은 사람이야말로 초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실제 모델 체사레 보르자!

르네상스 시대 교황의 사생아로 태어나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꾼 젊은 군주.
극단적 야망과 승부욕, 본능적 정치 감각으로
마키아벨리를 사로잡은 <냉혹한 천재>.
마키아벨리는 그를 <이상적 군주의 전형>으로 예찬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본 것인가?
그리고 역사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탄핵해 왔는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로 태어나 16세기 초 교황군의 총사령관으로 이탈리아 중북부를 정복하면서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꾸다 서른한 살의 나이로 요절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체사레 보르자. 마키아벨리로부터 <이상적 군주의 전형>으로 찬탄을 받으면서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 된 그의 삶을 다룬 『체사레 보르자』가 사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1502-1503년 동안 직접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에게서 새로운 군주의 모델을 발견하였고, 이것이 후에『군주론』에서 구체화되었다. 체사레와의 만남은 마키아벨리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513년에 집필된『군주론』은 메디치 가의 신생 군주에게 어떻게 하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 확대할 수 있는가에 관해 조언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구상되었다. 이런 목적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군주 체사레 보르자를 모델로 하여 자신의 통치론을『군주론』에서 펼치게 된다.

체사레 보르자, 그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영웅적인 면과 악마적인 면을 동시에 소유한 냉혹한 천재
체사레 보르자는 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 선출되는 로드리고 보르자와 그의 정부 사이에서 1475년에 태어났다. 아버지인 교황의 권력과 부, 명성을 직접 등에 업고 검을 휘두르던 체사레는, 아버지에 의해 추기경이 되었고 이후 환속하여 교황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로마냐 일대를 정복해 나간다. 당시 이탈리아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그는, 동시에 두려움과 증오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고, 각종 살해 사건과 납치 사건, 독살 사건, 성직 매매, 추문과 스캔들 등에 휘말리면서 악마적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게다가 갈수록 커지는 그의 야심에 사람들은 위협을 느꼈고, 이탈리아 정치 체제에 대한 그의 위협은 충격과 분노를 낳았는데, 바로 이 충격과 분노가 그를 <악의 본보기>, <차가운 심장의 소유자>, <위험한 아웃사이더>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악마적인 면과 동시에 그는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략과 스페인의 압력 등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두 강대국을 이용하여 뛰어난 정치 감각을 발휘하며 젊은 나이에 화려한 성공을 이루면서 이탈리아 최고의 무장이 되는 등 영웅적인 면도 소유하기도 했다. 그는 훌륭한 정복자이자 통치자로서의 자질도 갖추었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헌신과 충성을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탈리아 군주들은 그를 증오하고 두려워하고 불신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그와의 친분이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따라서 짧은 기간 동안 형성한 그의 권력 기반은 매우 탄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교황령 국가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약해진 교황권과 이탈리아의 세력을 강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등극하면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자신의 정복지와 병력을 잃게 되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스페인의 라 모타 성에 감금되고, 그곳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여 이탈리아 무대로의 복귀를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서른하나의 나이로 죽게 된다.(본문 659-660쪽) 그는 엄청난 폭우 속에서 적의 공격으로 스물다섯 군데에 상처를 입고 발가벗겨진 채 홀로 거친 들판에서 비참하게 죽게 된다. 1507년 3월 십이일 아침인 이날은, 그의 영웅이자 동명이인인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에서 사흘이 부족한 날이었다. 체사레 보르자의 이야기는 걱?건?재능과 강한 권력욕을 가진, 성공과 위기 사이에서 위태롭게 외줄을 탄 한 인간의 대서사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그의 생애는 그리스 비극의 요소들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 체사레 보르자는 1507년 숨진 뒤 스페인 북부 비아나 지역의 산타마리아 교회에 묻혔지만, 1527년 “죄인을 교회에 묻을 수 없다.”는 교회의 반발로 무덤이 파헤쳐진 뒤 유해는 길가에 묻혔다. 그러나 2007년 스페인의 한 대주교가 시청에 있는 그의 무덤을 교회로 이장토록 허락했다고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007년에 보도했다. 그는 결국 숨진 지 500년 만에 교회로 이장되게 되었다.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 그들의 만남
마키아벨리는 1502-1503년까지 피렌체의 외교 사절로 로마에 파견되어 당시 교황군의 총사령관인 체사레 보르자를 직접 대면하면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본문 423-428쪽, 475-481쪽)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공국 피렌체를 위해 체사레와 외교 협상을 벌이면서 점차 그의 정치적 감각, 과감한 행동력, 거칠 것 없는 용기와 높은 자신감, 냉철한 판단력, 승부욕, 미래에 대한 통찰력 등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이탈리아 중부를 정복하고 베네치아, 나폴리, 피렌체까지 위협하면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목표로 하는,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스물일곱 살의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강력한 군주의 모습을 보았다. 체사레가 죽은 후, 마키아벨리 그 자신도 공직에서 물러난 후『군주론』을 집필하면서 그는 당대의 왕, 황제, 군주, 군인을 모두 알게 된 후인 생애 말년에, 체사레 보르자를 그 시대의 가장 능력 있고 <이상적인 정치적 인물>로 꼽았다. 그는 정치 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도덕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했는데, 이 또한 체사레의 정치색과 일치하는 면으로, 그는 이러한 냉혹한 통치론을 『군주론』에서 피력했다. 이에 그는『군주론』7장에서 체사레의 삶과 정치 철학에 대해 따로 한 장을 할애하면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 책의 11, 십이장에서는 당시 마키아벨리와 체사레가 직접 만나 나눈 대화 내용들과, 『군주론』 이외에 마키아벨리가 체사레에 대해 남긴 다양한 글들이 소개되고 있다. 또 이 책에는 10여 컷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의 체사레 보르자 초상화와 함께 총 100여 컷의 시각 자료들이 들어 있어 역사적 생생함을 더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체사레 보르자는 왜 <악마 같은 인물>로 전해져오는 걸까?
역사는 그동안 체사레 보르자를 <악의 화신>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를 악인의 대명사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평가는, 그가 이탈리아가 아닌 스페인 혈통이라는 사실, 또 이러한 인종적 편견과 함께 그의 <위험한 성격>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차갑고, 무자비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더불어 그에게는 그를 위험한 인물로 만든 특별한 속성, 즉 불같은 야망이 있었다. 그는 <극단적인 야망>을 품고 태어난 희귀한 사람으로, 자신의 야망과 권력욕을 위해 정치 한복판으로 뛰어든 사람이다. 또한 여동생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었다. 낭만 같은 건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사생활을 철저히 은폐했으며, 자신의 집에서 도통 나오지 않았으며 사람들 앞에 나설 땐 가면을 자주 착용했다. 하지만 기회를 잘 포착하는 동시에 장기적인 계획에도 능통한 기회주의자 기질도 갖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거의 미신적으로 믿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마키아벨리도 그의 이러한 <높은 자신감>에 주목했다. 게다가 그는 복수의 화신이었다. 이와 같은 위험하고 모순적인 성격이 그를 역사적으로 왜곡하게끔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외교 사절들의 기록과 마키아벨리의 보고서, 체사레 보르자가 직접 쓴 편지, 바티칸 의전관의 기록, 연대기 등 생생한 자료들을 통해 보는 <체사레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거짓>
이 책의 저자는 영국 크리스티 경매소의 문서부에서 일하면서 중세의 기록들과 고문서들을 직접 감정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녀는 이때 수집한 자료들을 근거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들 위주로 이 책을 집필했다. 특히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여 피렌체 정부에 보고한 각종 외교 문서들과 보고서, 편지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마키아벨리가 본 체사레의 모습과, 그가 체사레에게 느낀 다양한 감정들도 생생히 들려주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실들 중 잘못 전해지고 있는 내용들을 당시의 자료들과 대조하면서 반박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잔인함, 악마적 기질, 동생 및 매제 암살 사건 등에 얽힌 오해와 진실을 밝히면서, 그가 어떻게 <악의 화신>으로 불리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체사레는 자신의 동생 후안의 살해범으로 지목되면서 잔인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데, 저자는 체사레가 동생을 죽였다는 당대의 증거는 전무하고 당시에 작성된 살인에 대한 어떤 기록도 체사레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의 정적들조차도 그가 범인이라는 의심을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당시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피렌체의 역사가 구이차르디니가 체사레가 범인이라고 윤색한 이야기를 역사에 남겼는데, 그것이 현재까지 전해지면서 그의 악명을 더 높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왜곡과 별도로, 그는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뛰어난 <정치적 도박사>였으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추구했다. 기회를 알아보고 그것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는 능력, 위험에 압도당하기 전에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 등을 지녔으며, 언제 손을 털고 일어나 지금까지 딴 것을 지켜야 하는지도 알았다. 또 당대 사람들이 군사 지휘관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는 신중함, 조심성, 영리함 같은 자질들도 보여주었다. 그는 <운명>이 그의 신이라고 믿으면서 자신의 재능에 의지하여 세상을 헤쳐 나갔다. 앞날을 내다보기에 바빴을 뿐 결코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또 자신은 “폭군 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라 폭군들을 제거할 사람”이라고 단언했으며, 적을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당대 사람들은 그를 실존 인물 이상으로 보았다. 그의 야망이 너무나 원대했고, 그 야망을 이루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의 축도縮圖였다.

500년 동안 탄핵을 받아온 “르네상스 시대의 메피스토펠레스”, 체사레 보르자
마키아벨리는 1502년 6월 29일자 편지에서 체사레를 만나고 난 후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이 지배자는 참으로 위대하고 당당하다. 전쟁을 할 때에는 아무리 거대한 정복 사업도 그에게는 작게 보인다. 영광과 정복을 위해서는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피로나 위험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한 장소에서 떠났다고 알려지기도 전에 다른 장소에 도착한다. 그는 그의 병사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그의 밑에는 이탈리아 최고의 부하들이 모여 있다. 이런 것들이 그를 강하고 무서운 승리자로 만들고, 여기에 행운이 겹치면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본문 425쪽

이처럼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메피스토펠레스”라며 역사의 어둠 한구석에 몰려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 체사레를 저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구출해내고 있다. 저자는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왜곡된 신화 뒤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 사실에 기초하여 그의 삶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사레의 통치 전략, 그리고『군주론』에서 밝힌 신생 군주로서 체사레 보르자의 통치론
체사레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서 시민들을 정중하게 다루었고, 지방 관리들도 대부분 기존의 직위에 재임명되도록 배려했는데, 마키아벨리가 나중에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백성들이 그에게 지속적으로 충성을 바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그도 카이사르처럼 <관용과 포용의 정치>를 베풀었다. 그는 민간인을 약탈한 병사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등 규율 유지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정복지 시민들을 명예롭게 대우하고 혁신을 자제했다. 민간 통치권은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에 맡겼고, 통일된 국가 행정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로 바티칸의 최고 법원을 모델로 삼아 최고 항소 법원인 로타를 도입하기도 했다. 당대의 적들마저도 체사레의 로마냐 통치는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요소였음을 인정했고, 그는 이러한 통치 방식으로 로마냐 도시들의 변치 않는 충성을 이끌어냈다.

“새로운 군주에게 하나의 좋은 본보기로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의 행동을 인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 자신의 새로운 군주국에서 적들을 효과적으로 다루어 동맹을 맺어가며 정복하고, 무력이나 교활함으로 사람들에게 충성심과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고, 군대를 복종케 만들고, 자신에게 손해를 가할 수 있는 자들을 제압하여 섬멸시키고, 과거의 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개혁하고,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고 관대하면서도 인색하지 않게 행동하고, 불성실한 군대를 해체하여 새로운 군대를 창설하고…… 발렌티노 공작보다 더 좋은 본보기는 없다.”
--『군주론』 7장 중에서

“카이사르 아니면 무無”, 즉 “황제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체사레의 종말에 대하여 확실한 것은 그가 힘든 상황에 맞서 외롭고 격렬하게 싸우다 죽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는 죽었고, 따라서 실패했지만, 그는 성공할 수도 있었다. 거의 어떤 사람도 그처럼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는 의식과 그 운명을 성취하겠다는 강한 의지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어떤 것이라도 희생시킬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 권력욕이란 창조적 천재성만큼이나 강하고 절실한 법이다. 체사레는 무자비했고, 도덕관념이 없었고, 여러 면에서 영리한 정치 악당이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려는 집중된 추진력과 능력은 그에게 천재의 자질들을 부여했다. 체사레 보르자란 사람의 본질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다음의 금언에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카이사르 아니면 무無.”, 즉 “황제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운명이 다할 때 까지 갈 것이다. 설령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해도. -체사레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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