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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우리 시사에서 과대평가된 시인, 과소평가된 시인(2)

(180.66) 2011.06.25 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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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청춘의 비애

                                                                                   이    명    원 | 문학평론가

윤동주의 시를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그의 시는 역시 호소력이 있다. 이 느낌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유년 시절, 내가 소슬하게 읊기를 즐겼던 작품은 「별 헤는 밤」이었다.1) 나뿐만 아니라, 당시의 거의 모든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대개 이 작품을 사랑했던 것 같다. 특히 이 시의 4연, 그러니까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는 부분은 자주 애송되던 부분이다.

애송시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일단 위와 같은 문장의 통사론적 반복은 매우 단순한 형태이긴 하지만, 피아노 위의 메트로놈과도 같은 편안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그 규칙적 리듬감이야말로 낭송과 애송을 용이하게 하는데, 물론 그것이 사춘기의 소년·소녀들이 윤동주의 시를 애송했던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을 것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별”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를 포함한 여드름 낀 청소년들을 자못 설레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별과 짝짓기된 단어들, 그러니까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와 같은 것들은 사춘기적 몽상의 태반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실제적인 체험 없이도 또는 시에 대한 정밀한 이해 없이도, 자연스럽게 친화력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컨대 윤동주 시가 시어에 대한 학습 없이도 낭송될 수 있는 근거는 이 서늘한 낭만적 감성을 듬뿍 머금은 센티멘탈리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센티멘털리즘이 인간의 생물학적 연대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략 20대에 이르기까지일 것으로 판단되고, 특히 그것이 활성화되는 시간대는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에테르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는 것일 텐데, 실제로 윤동주의 많은 시는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나의 사춘기 시절로 소급해 보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마치 이문세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던 정체불명의 사춘기적 정서와 밀착한 듯한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거기에도 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환기시키고 있는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와 같은 단어들이 애청자 엽서를 통해 줄기차게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화된 윤동주를 의식하고 있다가, 내가 그를 ‘민족시인’ 또는 ‘저항시인’의 맥락에서 이해하게 된 것은 역시 제도교육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서시」를 ‘공부’하다가 「참회록」, 「십자가」, 「쉽게 쓰여진 시」, 「또 다른 고향」 등의 작품을 연계시키고, 거기에 윤동주의 옥사獄死라는 비극이 개입되고, 거기에 다시 일제 말기의 엄혹한 상황이 보태지면서, 시인의 시작 행위 전체가 ‘저항’을 향해 수렴되는 것으로, 그리고 윤동주는 저항시인의 훌륭한 모범으로 해석되고 표상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주 지적되어 온 시교육의 문제라면 문제일 것인데, 이는 윤동주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역시 옥사한 이육사나 한용운의 시 읽기에도 동일한 해석학을 가동하게 만들었다. 잠깐 샛길로 빠져 이육사를 상기한다면, 그의 몇몇 뛰어난 시는 분명 저항시의 맥락 안에 속해 있지만, 시적으로 실패했다고 판단되는 더욱 많은 그의 시들은 실제로는 내적인 상실감으로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강철로 된 무지개”에서 해석자들은 “강철”은 볼지언정, “무지개”와도 같은 마음의 섬세한 파문에는 대체로 눈 감아 왔던 것이 시 읽기의 관습이었다.

나는 윤동주의 후기작에 속하는 몇몇 시는 분명 그에게 ‘민족적 저항시인’이라는 명예로운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2) 그런 점에서 보자면, 그는 결코 한국의 현대시문학사에서 ‘과대평가’된 시인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런 평가는 평가대로 수용하면서, 반대로 그의 시를 ‘과소평가’했던 부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연구자와 비평가들이 개인으로서의 윤동주의 섬세한 내면성에 대해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한다.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윤동주 시에 대한 민족적 맥락에서의 평가의 에스컬레이션은, 실존적 개인으로서의 윤동주 시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을까.

실존적 맥락이라는 말이 어렵기는 하지만, 적어도 윤동주의 시세계에서 그것은 매우 명료한 형식을 얻고 있다. 이는 윤동주의 기독교적 세계관 때문이다. 윤동주가 독실한 크리스천의 가풍이 지배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나 김형수의 『문익환 평전』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세계관은 윤동주에게 가장 강력한 인식론적·심미적 아비투스(habitus)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관은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른바 실존의식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신이 숨어 있다는 기독교 교리의 아이러니에 근거한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간은 태어난 것인데, 태어나기 전부터 죄인이라는, 인류사적 죄의 연좌제에 해당하는 ‘원죄론’이 기독교 교리에서는 강변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신은 숨어 있는데, 신에 대해 상상하고 있는 윤동주는 실재한다. 실재하는 윤동주는 알쏭달쏭하긴 하지만, 그렇게 ‘숨은 신’에 대해 상상했을 것이고, 보이지도 않는데 믿어야 했을 것이다. 
 
원죄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윤동주의 시를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는 무시로 정체불명의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 죄의식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던지 「십자가」라는 시에서는 마치 예수처럼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과감한 선언을 하고 있다. 역시 알쏭달쏭한 것은 시의 전후좌우를 읽어봐도, 그가 왜 그렇게 죽음을 약속해야 하는지 상황맥락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숨은 신’에 대한 확신이나 미래의 죽음을 앞당겨 시적으로 실현하는 상상적 순교에의 약속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소여된 조건이라는 점에서, 그것에 순응하든지 또는 반대로 반발하든지 윤동주의 내적 번민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윤동주의 유력한 대타자大他者라 할 신神이 철저히 숨어 있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무한히 들여다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화상」에서 그가 “산모퉁이를 돌아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라고 말하다가, 다시 돌아서고, 그러다가 “도로 가 들여다보”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심지어 윤동주는 ‘하늘’조차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소년」에서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고 말하거나,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 들여다보는 행위가 사실은 ‘자기’로 귀환하는 행위라는 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윤동주의 시세계에서 그를 둘러싼 자연과 세계 전체는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그가 거주하던 ‘방’조차도 자신을 가장 낮은 바닥으로부터 탐문하게 하는 거울이었다. 「쉽게 쓰여진 시」에서 그가 “창밖에 밤비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말할 때, 그는 자기를 둘러싼 육첩방조차 자기의 내면의 비밀스러움을 관찰하는 감시자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남의 나라인 육첩방 안에서 윤동주의 내면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윤동주였기에, 또 그런 윤동주가 써내려갔던 시였기에, 윤동주의 시 전체를 통독하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오히려 상황적이거나 역사적인 저항에 대한 신념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어 보다 근원적인 존재감의 결핍 또는 실존에 대한 무한한 회의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가 이러한 실존적·근원적 회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42년을 전후한 시기였다고 판단된다. 그는 식민본국인 일본의 동경과 경도를 오고가면서, 아마도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했던 것과 같이 상황적·역사적 문제에 대한 신념화된 실천에 가담했을 것이다. 윤동주의 문학이 민족적 저항문학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근거 역시, 이러한 후기 윤동주의 시적·현실적 변모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의 습작기의 작품을 포함하여 그의 문학 전체를 포괄적으로 검토할 때, 그의 시세계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청춘의 비애’다. 과감하게 말하면, 그의 대다수의 시들은 이 ‘청춘의 비애’를 고백하는 것으로 시종하고 있다. 성공한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비애」라는 시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호젓한 세기의 달을 따라/ 알 듯 모를 듯한 데로 거닐과저!// 아닌 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쳐/ 끝 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심사는 외로우려니//아-- 이 젊은이는/ 피라미드처럼 슬프구나” 이 외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윤동주는 시 속의 젊은이를 일컬어 “피라미드처럼 슬프구나”라고 말하지만, 그가 왜 슬픈지, 도대체 아닌 밤중에 잠자리를 뛰쳐나온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청춘의 비애란 그렇게 이유 없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라는 시는 이를 잘 보여준다. 1연에서 윤동주는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라고 말한 후에,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주의할 것은 이러한 시적 진술을 독자들이 즉자적으로 수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연에서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라는 의문을 시인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괴로움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윤동주는 다음 연에서 자신의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또다시 강조하고 있다.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표면적 진술을 즉각적으로 사실로 수용한다면, 시 읽기에는 실패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에 해당한다. 아마도 윤동주는 한 여자를 사랑해 보았을 것이고, 역시 같은 차원에서 시대를 슬퍼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몇몇 시편에서 ‘순이’를 포함하여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호명하거나, 「코스모스」에서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라고 진술한 것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윤동주의 진술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요컨대 윤동주가 실제로 진술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에도 괴로워했고, 시대 문제에도 괴로워했지만, 그 자신은 이러한 괴로움을 뛰어넘은 더 큰 괴로움이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그 ‘더 큰 괴로움’의 정체를 윤동주 자신이 선명하게 논리화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는 단정형의 진술은, 뒤집어 읽자면 도대체가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는 그 ‘더 큰 괴로움’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탐문의 다른 표현으로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윤동주에게 그 ‘더 큰 괴로움’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청춘의 비애’가 청년 윤동주의 내면을 장악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청춘의 비애란 그것이 구체적인 지향이나 대상의 상실에서 오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전체를 도대체가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정서적 요동과 불안이 초래하는 정서의 일반형이라 할 수 있다.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가 “별”과 연계시키고 있는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과 같은 것은 그것이 기표상으로는 명료해 보이지만, 내용적 차원에서는 내면을 요동치게 하는 불명료한 혼란상태를 가중시키는 무의식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의 8연에서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윤동주가 “나는 무언가가 그리워”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료한 대상에 고착되지 못한 그리움이라는 점에서, 부단히 내면의 불안과 비애를 증폭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윤동주는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고 산문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윤동주에게 지나친 시련과 피로로 느껴졌던 그 병이란 무엇이었을까. ‘청춘의 비애’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윤동주의 시에서 유독 ‘밤’이라는 상황적 배경이 강조되는 것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윤동주에게 밤은 명랑한 낮의 이성이 휘발되고, ‘나’로 언급되는 내면의 무의식이 확장되고 강화되면서, 숨어 있던 비애가 증폭되는 계기를 이룬다. 

윤동주는 늦은 밤에 홀로 자신의 방에서 상념과 외로움에 잠겨 있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이 밤의 무기력성은 그러나 도래할 새벽과 명랑한 낮의 건강성 앞에 서면, 마술적으로 극복되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조울과 우울 사이를 왕복하는 상황 전체가 사실은 ‘청춘의 비애’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윤동주는 저항시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윤동주 시의 표면이다. 빙산으로 비유하자면, 윤동주에게 0.917의 비중으로 내면을 장악했던 것은 ‘청춘의 비애’였다. 그런 점에서 윤동주는 한국시의 유력한 계보 중에 하나임에 분명한 ‘센티멘탈 로맨티시즘’의 한 전형을 보여준 청춘의 서정시인이기도 했다.   

1) 앞으로 인용될 윤동주의 시는, 정현종 외 편주,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연세대 출판부, 2004)의 현대어 표기를 따르기로 한다.

2) 이명원, <닫힌 시대의 시쓰기와 자의식>,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새움, 2005)에서의 논의가 그러하다.

이명원    1970년 서울 출생.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로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파문』 『해독』 등이 있음. 현재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
 
<과대평가된 시인 3> 김수영

김수영의 신화

                                                                            박    현    수 | 경북대 국문과 교수

1. 신화의 기원

사실이 신화로 탄생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신화는 그 신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어떤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화는 더욱 화려해지고 사실은 더욱 초라해진다. 일종의 신화적인 사건을 생생한 현실로 돌려주려는 시도로서 문화기호학 혹은 문화연구라는 연구 경향이 근래 붐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수많은 생략과 과장을 통해 숭고하게 된, 아니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신화의 탄생지점을 밝혀 신화를 현실로 끌어내리려는 탈신화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아니면 그 신화를 더욱더 즐기기 위한, 쾌락의 차연일 수도 있다.

엘리아데는 『우주와 역사』에서 실제의 한 사건이 신화로 탈바꿈한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민속학자 콘스탄틴 브레일로이우가 어느 마을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훌륭한 민요 하나를 채록했다. 그 민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젊은이가 산의 요정을 사랑하였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질투에 불타는 요정은 젊은이를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다. 그 시신을 수습해오는 동네 사람들이 젊은이의 약혼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신화적 비유로 가득찬 소박하고 아름다운, 기도와 같은 울림이 지닌 통곡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속학자가 그 민요의 기원을 조사해보니 그 민요는 불과 40년도 안 된 실제 사건의 변형이었으며, 그때까지 그 약혼녀가 생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극구 부인하였다. 엘리아데 말대로 “거의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 확실한 역사적 사실과 동시대에 있었던 사람들인데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 그들 스스로가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혼 전날 밤에 죽음을 맞이한 젊은이의 비극은 신화의 개입 없이는 그냥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이 신화가 탄생하는 지점이다.

2. 초인의 탄생

우리 근대시사는 짧지만 여자의 질처럼 수많은 주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 주름 안에는 질서없이 들여온 수많은 문예사조가 있고, 그런 사조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암중모색하던 시인들이 있고, 그 시인의 시선을 내향적으로 사소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외향적으로 거칠게 만들어온 지난한 질곡의 역사가 뒤엉켜 있다. 이 주름이 우리 문학을 탄생하게 만들었으며, 그 주름의 깊이는 다른 어느 나라의 문학사에 대해서도 우리를 주눅들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 길이는 짧아도 그 주름의 깊이는 협곡보다 더 거대했던 것이다.

충분한 무기와 치밀한 통제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던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을 꿈꾸던 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김좌진, 안중근 같은 이들이 우리들 주위에서 줄지어 나왔으면 하는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문학에서도 그들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문약에 흐른 문인 중에 그런 의지를 지닌 사람은 너무나 드물었다. 문인들이 흉내낸 이념에는 척추가 없기 때문이다. 

이육사는 이때 신화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해방 이후 우리 문학사는 일제말 암흑의 공백을 어떻게든 메워야 했다. 이육사는 그 암흑의 강을 건너게 해줄 징검다리였다. 그는 신화 속의 비극적인 젊은이처럼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죽었으며, 또한 그는 신화가 되기에 충분한 이력을 갖추고 있었다. 「광야」는 그의 사후에 유고로 탄생하였다. 「절정」만으로 뭔가 부족했던 이육사에게 시 「광야」는 초인의 백마였다. 많지 않은 그의 시 중에 빛나고 강직한 시들이 몇 편 있었기에 그의 신화는 지금도 건재하다.

해방 이후 짙은 혼란을 일시에 거두어줄 영웅이 없었다. 김구가 살아 있었다면 현실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끼쳤을지 의문이지만, 그의 죽음은 신화가 탄생할 적절한 시공간에 있었다. 문인들은 아무런 구심점이 없이 좌충우돌 남으로 북으로 흩어져 여러 단체들로 이합집산을 거듭하였다. 그것이 독재 정권에 의해 강제적으로 정리되자 이제 시인들은 새로운 통제에 어떤 반응을 해야만 하였다. 4·19는 이때 소심한 시인들의 목소리를 거리로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 5·16으로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가자 억압은 새로운 신화를 주조하였다.

김수영의 신화는 그 속에서 탄생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와 시론은 그의 죽음 후 한참 뒤에까지 왜소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연보에 의하면 작고 특집 외에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은 그가 죽은 2년 후인 1970년 《시인》이라는 잡지에 의해서이다. 이를 기점으로 서서히 그의 신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참여한 평론가는 김윤식, 김지하, 임중빈 등이다. 논자들은 당연히 리얼리즘의 옹호자들이다. 
 
그의 신화는 리얼리즘을 중심으로 하여 영토를 확장하여 갔다. 그 영토가 급격하게 확장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거대한 뿌리』라는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 첫 권의 출간이다. 이 시리즈의 첫 권으로 김수영이 선택된 데에도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존재했을 것이다. 이 시집의 해설은 이후 문단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나갈 김현이 썼다. 그리고 김수영 시의 모더니즘적 요소들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이 점에서 김수영 시의 혼돈스런 특질은 장점이 되었다.

3. 신화 이전의 김수영

죽음 이전의 김수영은 어떠하였을까. 그는 시단에서 다른 시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었던가. 그의 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었던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실상 풍부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에 대한 언급 자체가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그 중 접근 가능한 것을 몇 개 살펴보기로 하자.

1963년에 발표된 유종호의 평가에서 『달나라의 장난』(1959)의 김수영은 ‘다채로운 레파토리’를 지닌 시인으로 평가된다. 김수영의 시는 ‘가끔 가다가 매력적인 멜로디가 있는 얼마간 지루한 음악과 같’은 것이며, ‘기발한 이미지나 직유 그리고 화술의 묘기’를 지닌 것이다. 물론 그는 마지막에 김수영의 시에 참여시의 요체로서 ‘민중의 직정언어’가 부족하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그는 “저항과 참여의 시는 무엇보다 먼저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수법으로보다도 민중의 직정언어로 씌어져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시의 방향을 ‘암시하는’ 수작秀作으로 「하… 그림자가 없다」라는 시를 언급한다. 현실참여의 시를 다루는 그 글에서 김수영은 모더니스트로서 더 강조되어 있고 참여시인은 ‘암시’로만 나타나 있는 셈이다.

참여시인으로서 김수영이 강조된 것은 김수영 자신의 지속적인 발언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참여시인으로서 지녀야 할 중요한 요소, 즉 독자의 수용성에 대한 시적 고려가 없다는 결함은 김수영의 참여시를 언급하는 당시 논자들의 중요한 지적 중의 하나이다. 전봉건은 시인을 요청하는 사회의 어떤 계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써야 진정한 참여시인이라고 전제하고, 김수영의 시 「설사의 알리바이」는 진정한 참여시라 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고도의 비유와 알레고리 등의 기법으로 이룩된 「설사의 알라바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계층이 있을 수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기름 땀 얼룩진 ‘근로대중’은 아니고 예술적 교양이 상당한 수준인 ‘지식대중’일 수밖에는 없는 까닭”이라고 그 근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김현승은 김수영의 어중간한 문학적 위치를 두고 한 마디 한 바 있다. “그의 어떤 시는 예술파에 속하는 양 보이고, 다른 어떤 시는 참여파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면서 그의 시론은 분명히 참여파를 옹호하고 있다”고. 그래서 그는 “사상성과 예술성을 작품에 따라 또는 경우에 따라 각각 분리시키지 말고, 다시 말하면 속된 말로 양다리 걸치지 말고 필요한 두 가지 요소를 한 작품 속에 조화 집결시키라는 것”을 김수영에게 요구하고 있다. 
 
김현승이 보기에 김수영은 예술파와 참여파 중 어디 하나에도 자신의 특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김현승은 이런 불안정한 구도가 해소된 것으로 김수영의 말년작 「꽃잎」을 드는데, 아쉽게도 그는 이후 10편 정도의 시를 쓰고 생을 마감하고 있다. 김현승의 판단에 따르면 「꽃잎」은 시인의 성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지만 그것은 김수영의 거의 마지막 작품에 속한다. 그렇다면 김수영은 본격적인 시인으로 채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우리들 곁을 떠난 셈이다.

「현실참여의 시, 수영, 봉건, 동문」이라는 유종호의 평론에서 현실참여 시인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는 전봉건은 김수영의 문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한다. 그는 「사기론」에서 김수영의 산문을 “과잉되게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저돌적이고 황당무계한 것”으로 명명한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김수영의 시로 자연스럽게 전이되고 있다. 물론 이런 감정적이고 솔직한 대응은 김수영의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전봉건의 시와 시평을 대상으로 하여 “소위 기성시인이라는 사람들이 허술하게 책임없는 시론을 쓰고 또 그런 시나 시론을 쓰는 신진시인들의 산파역을 하는 한 우리 시단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일갈한다. 그는 잡지의 노트와 비평이 “요령부득의 것이 너무나 많다”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것은 김수영의 시와 산문에 돌아가야 할 불평이라는 점에서 희극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초기의 평가를 고려하면 김수영은 분명히 시로서는 모더니즘,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아방가르드 계열의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발한 이미지나 직유 그리고 화술의 묘기’(유종호), ‘고도의 비유와 알레고리 등의 기법’(전봉건) 등이 그가 스타일리스트로서 모더니즘의 영역에서 활동한 시인임을 인정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론에 있어서는 김현승의 지적처럼 그는 분명히 참여파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몇 편의 현실비판적인 시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그를 참여파 시인이라 한다면, 5·16 이후 더 치열하게 현실비판적인 시를 쓴 유치환 같은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여파 시인일 것이다. 그러나 유치환보다 김수영이 참여파 시인의 대표로 부각된 것은 그의 정리되지 않은 시론에서 현실참여와 관련된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였다는 점, 그리고 그 시론에 입각하여 그의 시 전체를 그렇게 읽고자 하는 어떤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사실과 연계되어 있다. 

지금 신화 이후에 그의 평가는 절대적으로 상향조정되어, 서정주와 더불어 하나의 정부가 되었다. 서정주가 우리 시의 우익 정부라면, 그는 우리 시의 좌익 정부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꼼꼼하게 읽을 때 박인환의 겉멋 같은 것이 너무 과잉되어 있으며 시적 맥락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시대적 요청에 의하여 너무 급하게 포장된 그의 신화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오세영 시인이 최근에 제기한 김수영 비판은 그런 관점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근래 다른 연구자에 의해서도 이미 지적된 바 있다. 오태환 시인 역시 일종의 과대평가된 「사랑의 변주곡」을 꼼꼼하게 읽은 후 그 시를 치밀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그 시가 메시지의 보편성이 없으며, 형태나 기법 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후자와 관련하여 그는 “이 시는 표현수법에서 대가다운(?), 능숙한(?) 풍모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고 나태해 보이는 진술로 채워져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 논의 뒤에 덧붙인 다음과 같은 말은 김수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돌아보게 한다.

상당수 현대문학 연구자들에 의해서 과대포장된 김수영의 이름에 주눅들지 않고, 그의 말대로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바로 보>(「공자의 생활난」)게 된다면, 이 시는 그다지 잘된 작품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눈치채게 된다.
                                                               ――  오태환, 「한 정직한 퓨리턴의 좌절」

김수영이 타계하기 전까지의 일반적인 평가나, 이후 김수영의 과대포장된 명성에 주눅들지 않고 그의 실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은 쓸쓸하게 읽힌다. 신화 속의 실체를 겨냥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모래야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부분

그러나 그는 이미 너무 커져 버렸고, 우리는 너무 많이 와 버렸다.

4. 신화 이후, ‘난도질’의 시학

자신의 관점을 독창적으로 만들고 그 관점에 힘을 싣기 위해 대상을 의도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우는 불가피하다. 그것은 이론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마치 엘리어트가 이성과 감성의 조화라는 자신의 시론을 강조하기 위해 몇백 년 전의 시인인 존 던을 현대에 초대한 것처럼. 
 
그러나 존 던의 기상奇想은 아무리 보아도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 보기 힘들다. 존 던 역시 시대를 앞서 역시 영미 모더니즘적 기교에 치우친 시인일 수밖에 없다. 엘리어트 시각의 유효성이 의심 받는 지금에도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에피고넨의 철 지난 충성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수영 역시 기존 이론적 책사들의 전략이 유효성을 상실한 지금 우리는 김수영이란 이름에 괄호를 치고 다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건 김수영 시의 장점은 부정되기 힘들 것이다. 김수영의 장점은 시적 맥락에 ‘난도질’ 혹은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진술 방식에 있다. 그의 시 대부분에 서로 다른 지점에서 서로 다른 화법들이 토막난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것은 그의 시가 우연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의 진행을 시의 내적 맥락 속에만 가두지 않는다. 
 
수많은 외적 맥락들이 수시로 시 속에 틈입하여 하나의 거점을 마련한다. 그의 시의 모든 구절은 시의 외적 맥락 속에서 뛰어들어와 시적 맥락 속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를 하는 진지전을 연상케 한다. 
‘난도질’의 시학은 김수영이 자신의 시 「잔인의 초」를 해설한 산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이 시를 완성하게 된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의 시를 인용해둔다.

한 번 잔인해봐라
이 문이 열리거든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봐라
태연히 조그맣게 인사 대꾸만 해 두어봐라
마루바닥에서 하든지 마당에서 하든지
하다가 가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얼 하든지
말도 걸지 말고― 저 놈은 내가 말을 걸 줄 알지
아까 점심때처럼 그렇게 나긋나긋할 줄 알지
시금치 이파리처럼 부드러울 줄 알지
암 지금도 부드럽기는 하지만 좀 다르다
초가 쳐있다 잔인의 초가
요놈― 요 어린 놈― 맹랑한 놈― 육六학년 놈―
에미 없는 놈― 생명
나도 나다 ― 잔인이다 ― 미안하지만 잔인이다 ―
콧노래를 부르더니 그만두었구나 ― 너도 어지간한 놈이다― 요놈― 죽어라
                                                                                   ――  김수영, 「잔인의 초」 전문

이 난도질과 이 눈물나는 소시민성(이웃집 아이를 상대로 대결의식을 자행하는)! 그는 이 시를 완성하기 전에 이 시의 앞부분을 많이 난도질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시를 ‘죽음의 총성과 함께 스타트한 시’라고 부른다. 죽음을 당한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체바퀴 속에서
돈다
또 다른 머리카락이 뛰어든다
그럼 그렇지
잔인의 말단― 용케 내가 서 있다
그럼 그렇지
적은 벌써 저렇게 죽어 있다―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잔인도 절망처럼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이 구절들은 「잔인의 초」의 전사前史로서 앞으로 이 시에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이 부분이 사라진 것은 이미 다른 작품에 ‘적’이라는 낱말과 “잔인도 절망처럼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살아남는 것은 ‘잔인’과 ‘콧노래’ 정도이다. 나머지는 전사로서 의미를 보조해준다. 
 
물론 그 전사의 부분 역시 「잔인의 초」의 (억압된)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김수영은 잔인에 대하여 생각한다. 잔인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 담겨 있다. “잔인의 말단― 용케 내가 서 있다”는 표현에는 자신이 철저하게 잔인하지 못함, 즉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지 못함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 의지는 잔인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적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개입 없이 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적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내가 잔인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용케 서 있는 데 급급하여 어떤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적은 벌써 소멸한 상태다. 그 적은 바로 나의 이 철저하지 못함, 이 우유부단함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잔인이라면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더욱 잔인하게 극단으로 나아갈 것이지만, 화자는 잔인의 끝에 서 있어 반성밖에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이 부분이 말하는 것은 이런 내용이다. 이 시의 다음 부분은 엉뚱하게 외적 사건으로부터 온다.

여기에서 막혀서 고민하고 있는 나를 구제해 준 것이 이웃집에서 공부하러 오는 6학년 놈이다. 이 6학년 놈은 자기 집이 시끄럽다고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우리집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가는, 우리 여편네의 사업관계의 친구의 조카뻘 되는 아이이다. 이놈이 들어왔다. 나는 또 난도질을 당한다. 난도질의 난도질이다. 포기의 소리는 이때 들렸다.

그의 시는 이런 외적 맥락의 개입으로 계속 난도질을 당한다. 이때 난도질을 당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여 이전의 맥락이다. 이전에 잔인의 본질에 대한 언급들이 새로운 상황의 등장으로 난도질당하여 전사로 억압된다. 이제 새로운 맥락이 시의 전면에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새로운 맥락으로 난도질된다. 난도질의 난도질. 이웃집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시 내용 중 “미안하지만 잔인이다”나 “콧노래를 부르더니 그만두었구나”는 난도질당한 앞부분의 개입이다. 전자는 “잔인도 절망처럼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의 난도질이다. 철저한 잔인이 아니라 ‘그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잔인’이다. 후자는 ‘콧노래를 부르는 적’이라는 난도질당한 구절의 새로운 난도질이다. 

그의 시는 이처럼 외적 맥락에 의해 시의 내적 맥락을 수없이 난도질하여 시 구절을 낯설게 한다. 이 우연한 요소들의 철저한 개입, 그리하여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관념의 자유로운 비상이 그의 시의 장점이다. 그의 말로 하면 ‘공리성의 결핍’이 그의 장점이다. 이것을 데뷔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갈고 닦은 그의 치열함이 또다른 장점일 것이다. 앞으로 그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한다면 모더니즘 쪽에서는 이 ‘난도질’의 구조와 의미를 해명할 일이 남았고, 리얼리즘 쪽에서는 이 ‘난도질’의 시대적 의미, 발생적 구조를 밝히는 일이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 그의 신화는 새롭게 씌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신화의 끈기

모더니즘(혹은 아방가르드)은 근대적인 감각과 언어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현실의 모순이나 그 모순이 기반해 있는 억압 구조에 대한 통찰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모더니즘의 비판은 문명비판처럼 거대비판이 되어 왔다. 거대한 만큼 구체적인 맛을 전혀 주지 못하고 그런 비판 의식 역시 언어실험으로 분산되어 버렸다. 
 
김수영은 그런 모더니즘의 한계를 생리적으로 포착하고 고민한 시인이다. 김수영은 모더니즘의 문명비판에 회의를 느낀 아방가르드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 엉켜져 있는 여러 맥락들 중 현실비판의 측면이 너무 강조되었다. 여러 맥락들을 재배치하여 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스타일리스트로서 그는 너무나 소외되었다. 앞으로 김수영은 이런 스타일리스트로서 철저하게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신화 속에서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대인들조차 그를 신화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할 것이며, 그를 신화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에 엄청난 증오를 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신화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김수영은 신화가 아니라, 신화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독이 될 정도의 거대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의 ‘거대한 뿌리’는 신화 속에서 돋아 왕성하게 자란 것이다. 이제 그 거대하게 부풀려진 뿌리를 바로 보아야 할 ‘명석성’이 필요하다.

박현수   1966년 경북 봉화 출생.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한도」로 등단.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문학이론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학』 『현대시와 전통주의의 수사학』 등. 현재 경북대 국문과 교수. 

<과대평가된 시인 4> 기형도

죽음의 후광을 넘어서기 위한 단상
   ―― 삼십대 중반에 읽는 기형도
                                                                                           홍    기    돈 | 문학평론가

1. 문학과 죽음을 연결짓는 두 가지 방식
 
죽음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모든 것들을 빨아들인다. 여기 이 세계에 살아 있는 어느 누구도 그 세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죽음의 예감 앞에서 이 세계의 견고한 질서와 위계적인 가치는 창백하게 휘청거린다. 제 아무리 딱딱하고 견고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죽음과 맞대면하는 순간 무無의 가치로 돌아가 버리지 않겠는가. 죽음의 가치에 탐닉하는 사람이 존재론적인 불안에 오들오들 떠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죽음의 질서와 가까이 맞대면할수록 깜깜한 폐쇄회로에 더욱 처절하게 갇힐 수밖에 없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다.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지점의 확인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입 속의 검은 잎』을 시인의 돌연한 죽음과 연결시켜 읽어나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먼저,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펼치고 있듯이, 한 시인의 죽음 위에 시편들을 배치하여 읽어나가는 방식이 존재한다. 
 
남진우는 『숲으로 된 성벽』에서 그런 일반적인 경향을 지적하며 글을 시작하였다. 김현, 김훈, 성민엽, 박해현, 박철화의 글들을 인용하고 난 후 다음과 같이 서두를 풀어나간 것이다. “기형도, 그리고 기형도의 시와 관련된 모든 담론들엔 죽음의 음산한 후광이 드리워져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젊어서 세상을 하직한 이 시인의 불우한 운명이 자아내는 애통한/애틋한 마음이 그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면 그의 시 속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죽음과 쇠락의 이미지들이 다른 한켠에서 이 시인의 시읽기를 규정짓는 인자로 작용하고 있다.”1)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이 태동하는 계기를 제공했던 셈인데, “영정 앞에 바쳐진 진혼가의 성격”2)을 넘어서겠다는 남진우는 과연 어떤 방법을 택하고 나섰던가. 그는 「신성한 숲」과 「숲으로 된 푸른 성벽」을 통해 첫 번째 방법, 즉 시인의 죽음 위에 시편들을 배치하여 읽어 나가는 방법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두 편의 글을 신화비평의 방법론으로 써 내려갔다. 「숲으로 된 푸른 성벽」의 경우 불의 이미지를 분석하는 장면에서 그의 장점은 십분 발휘되고 있다. 정과리로부터 “이것은 텍스트 바깥의 설명들(융의 정신분석을 포함한 신화비평류의)을 거의 도식적으로 텍스트에 적용한 외재적 해석이지 내재적 해석은 아니다.”3)라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숲으로 된 푸른 성벽」의 풍성하고 자유롭고 정치精緻한 분석 내용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해야 하리라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정과리가 남진우를 넘어서는 방식이다. 다시 말한다면, 정과리는 대체 어떤 관점에 섰기에 남진우에게 이런 지적이 가능했는가, 라고 물을 때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현은 일찍이 『입 속의 검은 잎』의 해설 「영원히 닫힌 빈 방의 체험」에서 “그로테스크라는 말은 원래 무덤을 뜻하는 그로타에서 연유한 말이다”4)라고 밝혀둔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기형도의 시 세계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하였다. 
 
정과리는, 다시, 김현의 뒤를 이어 기형도의 세계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기형도의 죽음 위에서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회귀한 셈인데, 이를 위해 그가 주목한 것은 기형도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단의 동향이다. 기형도가 죽은 뒤 10년 동안 “그를 다룬 산문(평문과 추도문을 합하여)은 모두 45편이나 되며, 그 중 하나는 석사학위 논문이고 둘은 소위 ‘논문집’에 실린 연구 논문이다. 그리고 그를 ‘모티프로 한 시’가 21편이다. 이러한 사실은 죽은 기형도가 살아 있는 어떤 시인보다도 더 뜨거운 현재형으로 타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5)

문단의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서 시인의 죽음과 그가 남긴 시를 이어나가는 두 번째 방법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기형도의 시는 오늘의 문학적 욕망이 집중적으로 투자된 일종의 다혈증의 장소이다. 그러니, 어떻게 그에 대해서 말할 때 순전히 그의 시 작품들‘만’을 두고 말할 수 있겠는가?”6) 이는 곧 문화적인 현상으로 기형도의 세계에 접근해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기형도의 죽음 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그의 시편들, 시인·작가들, 평론가·연구자들, 독자들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과리의 표현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문학의 대상이 작품에서 텍스트로 옮겨갔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7) 첫 번째 방법에서 시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층위에서 이해된다면, 두 번째 방법에서는 보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층위에서 시인의 죽음에 접근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 경우 평론가는 ‘비평의 모험’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의 죽음은 그의 주체 결여를 선험적 조건으로 만들어놓았다. 그의 시의 텍스트-성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주체의 작업이 개입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의 텍스트-성을 결정한 것은 우선은 철저히 우연한 것이었다. 그 죽음 이후에 그에게 집중된 뜨거운 관심은 그 우연성을 필연으로 바꾸고자 하는 거대한 집단 무의식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작업의 방향은 기형도의 죽음이 탄생시킨 새로운 문학 공간을 변질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형도를 부활시키는, 즉 되-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형도의 죽음이 열어놓은 새로운 문학 공간에서는 어떠한 되-살림도 개시될 수가 없다. 거기에서는 오직 계속적인 유랑, 즉 딴-살림만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활의 작업 자체를 도식적으로 끊어낼 수는 없다. 실천의 이름과 실천의 실제는 언제나 다소간 어긋나 있으며, 문제는 작업의 실상, 혹은 실상이 이름을 빙자해 벌이는 모험인 것이다.8)
 
그런데, 과연 정과리가 이러한 입론에 합당할만한 비평의 모험을 떠났던가. 글쎄, 나로서는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기형도의 시들 그 자체로부터 외면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존재 상실의 노동을 캐내는 것이 문학 비평의 일이다.”9)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시인의 죽음 위에서 시를 읽어내는 정과리의 방식은 첫 번째 부류의 작업들과 그리 변별성을 갖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논의를 위한 입론 부분에서 호출되던 시인·작가들, 평론가·연구자들,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기형도(와 그의 작품 세계)의 실제 분석 과정에서 증발해 버린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빚어진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죽음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것일까. 정과리도 그 늪을 벗어나지 못했던 셈인가.

2. 삼십대 중반에 읽는 기형도
 
90년대 한국문학을 들끓게 하였던 주제는 단연 ‘죽음’이었다. 실제의 작품 내용에서도 죽음이 범람하였고,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문학의 죽음’은 두드러진 화두로 제공되었다. 그런 점에서 죽음으로 덧칠된 기형도(와 『입 속의 검은 잎』)는 90년대 문학을 열어젖힌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다음과 같은 정과리의 지적에 동의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기형도의 시는 시인의 죽음과 함께 90년대 시의 상징도로 자리잡았다. 시가 문학의 죽음이라는 장기 지속적 과정을 예시적으로 비추는 상징 구슬의 기능을 하였다면, 기형도의 시는 그 상징의 상징, 거울의 거울이었다.”10) 그렇지만, 이는 표면적으로만 옳다. 아니, ‘표면적으로만 옳다’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내 나이, 기형도가 살아냈던 그 나이를 지나쳐, 어느덧 서른 중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평론가로서 『입 속의 검은 잎』을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인의 우발적 죽음을 필연으로 수용하는 현상은 그 사회가 처한 조건과 관계 맺는다. 즉 사회에 은연중에 유포되어 있는 죽음의 분위기가 기형도(와 『입 속의 검은 잎』)의 죽음과 공명共鳴하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공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기형도의 죽음은 우리 문학계에서 마치 신탁과도 같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는, 아무리 발버둥쳐 보아도 신탁을 실현하는 과정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오이디푸스처럼, 빠져 나올 수 없는 죽음의 폐쇄회로 안에서 서로의 도저한 절망을 애처롭게 확인하는 문학의 선조로서 기형도가 자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실제 기형도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렇게 평가되는 측면이 강하다. 바로 그런 까닭에 ‘비평의 모험’이 요구되는 것 아닐까. 
 
한 시대의 문학정신이 죽음 의식으로 드러날 때, 그리고 그런 경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갈 때, 그러한 현상의 뿌리 그러니까 죽음 의식이 만연하게 된 사회적 원인을 드러내어 보여줌으로써 극복의 가능성을 예비하는 데 ‘비평의 모험’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장정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장정일은 90년대의 소설을 열어젖힌 인물이다. 『아담이 눈뜰 때』를 보건대, 그 역시 절망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담이 눈뜰 때』에서 주인공은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식으로 어른이 되는데,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87년 대선 이후이다. ‘민주 투사’의 의상을 걸치지만 결국 각자의 욕망에 따라 분열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없게 되는 것이 어른들의 세계로 나타나는 셈이다. 절망은 바로 여기서부터 파생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한 절망에서 도피하는 방식이 바로 휘황한 문화의 조명인 바, 주인공이 가지고 싶어 했고 결국 가지게 된 타자기·뭉크 화집·턴테이블은 이를 상징한다. 

한 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90년대의 소설들은 개인의 욕망에 주목하는 한편, 정치경제적인 지점의 반대편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장정일이 90년대 소설의 나아갈 길을 미리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정일의 세계를 그렇게만 말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 대해서 서영채는 적절하게 까닭을 밝혀놓았다. 먼저 그는 80년대 문학과 90년대 문학의 공유지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80년대의 문학정신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반체제성과 부정의 정신이었다. 80년대 초의 비장미에서부터 80년대 말의 노동문학에 이르기까지, 미적 감각이나 자질은 다양했을지라도 체제에 대한 부정의 정신은 그 모든 미의식의 공통의 준거틀로 자리잡고 있었다. 체제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또 반체제의 이념적 거점이 와해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면, 바뀐 것은 저항과 부정의 방식이자 대상이지 그 정신은 아니다.”11) 
 
그 위에서 장정일의 문학은 이렇게 평가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큰 부정이 아니라 작은 부정이며 파괴가 아니라 전복이다. 파괴가 극단화된 절망이거나 결단의 산물이라면 전복은 불투명한 모색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파괴는 80년대에, 또 모색은 90년대에 가깝다. 장정일의 서사가 구현하고 있는 전복적 상상력은 소설적 사유를 통해 자기 시대의 정신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추구의 결과이다.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활기는 바로 그러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12)

나는 『입 속의 검은 잎』에서 기형도의 처절한 모색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다. 이는 장정일이 보여주는 모색의 색채와 그리 다르지 않다. 기형도는, 절망에 한 발을 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는 노예로 전락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였다. 「전문가專門家」가 이를 보여준다.13) 그러니 그를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에 매혹당한 이의 자리로 밀고 나가서는 곤란하다. 「시작詩作 메모」에서도 밝혀놓지 않았던가.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대학 시절」이나 「입 속의 검은 잎」에서는 사회적인 고통이 시인에게 어떤 절망을 안겨주는가가 드러나 있다. 그 절망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확인에 닿아 있다. 
「폐광촌廢鑛村」 같은 작품에서는 묘한 다짐이 느껴지기도 한다. “폐광촌 역사에는/ 아직도 쿵쿵 타올라야 할 것이 있었다.”라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역사는 ‘역사驛舍’이면서 동시에 ‘역사歷史’로 읽히기 때문이다. “낮은 소리로 군가를 불렀다”, “고인 채 부릅뜬 몇 개 물의 눈들”, “어둠 깃 한쪽을 허물고/ 예리하게 잘린 철로의 허리가 하얗게 일어섰다.”라는 시구들은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입 속의 검은 잎』에 나타나는 가난의 다양한 체험과 이미지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의 소개로 『입 속의 검은 잎』을 처음 읽은 지 이제 15년 즈음이 흘렀다. 나 역시 오랫동안 기형도의 죽음에 매혹당해 있었고, 그런 까닭에 『입 속의 검은 잎』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십여 년 지날 즈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내보이는 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죽음은 그저 한낱 포즈에 머무르게 된다. 죽음은 욕망의 바벨탑을 일상적으로 쌓아올릴 만큼 튼튼한 지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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