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린글의 수정본입니다. 좀더 모호했던게 정리된 것 같아 올립니다.
왜 슬리퍼일까?
왜 동훈은 상무 첫 출근에 슬리퍼를 갈아신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의 아저씨는 유난히 등장인물의 신발에 포커싱을 많이 합니다. 먼저 1화에 나온 결혼식 장면에서 카메라는 요순의 꽃고무신을 비추는데요. 상훈과 기훈의 축의금사건으로 요순의 예쁜 꽃고무신은 기훈에게로 던져지고 집에 돌아온 요순은 결국 일할 때 신는 신발 즉, 갈라지고 해진 검정고무신으로 갈아신게 됩니다. 그 신을 신고 빌라 앞마당에 나가 파를 캐 저녁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껏 홀로 삼형제를 위해 산 희생의 세월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다음은 지안의 트레이드마크, 스니커즈를 살펴볼까요. 보기에도 헌신처럼 보이고 얇은 천으로 만든 노메이커 스니커즈, 그 위 발목을 드러내는 발목양말까지.. 꽤나 춥게 보여집니다. 특히 한겨울에 짧은 양말은 추위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그녀의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녀를 차갑게 대하는 세상에 굴하지 않는 강한 저항심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따라서 지안의 스니커즈 또한 춥고 고달픈 지안의 삶과 차가운 세상에 대한 반항 그리고 감정조차 메말라 버린 지안. 그 자체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럼 동훈의 슬리퍼는 어떨까요. 저는 동훈의 슬리퍼 또한 요순의 고무신, 지안의 스니커즈와 함께 동훈의 삶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봅니다. 직장인들은 보통 사무실에 출근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 편하게 업무를 보기 위해 구두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습니다. 슬리퍼는 그래서 동훈이 일할 때 신는 신발이고 동훈의 삶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사생활을 상징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슬리퍼는 동훈이 상무후보에 선정되고 얼마 후 우편을 배분하던 지안의 눈을 통해 발견됩니다. 책상 밑 그늘진 곳에 낡고 해진 상태로 말이죠. 동훈은 회사 생활 중 어딜 가나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설계팀에 있을 때도 안전진단 한직에 있을 때도 누구처럼 구두신고 나가 사내정치질을 하는 게 아닌 일하기 편한 슬리퍼로 갈아신고 일에 몰두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슬리퍼는 누구보다 많이 해져있죠. 정치와는 무관하게 일만 하다 보니 어느새 윗선에선 왕따가 돼버렸고 그의 슬리퍼는 해진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동훈의 책상 아래 어둠속에서 말입니다. 동훈은 이젠 그 방치된 슬리퍼에 스스로도 무관심합니다. 낡았는지 해진지도 모르고 있죠. 언제 떨어질 지도 모르는 슬리퍼를 계속 신고 업무만 보고 있을 뿐 입니다.
지안이 그의 낡은 슬리퍼를 바꿔주려 새로운 슬리퍼를 선물하려 한 것은 표면상으로 지안 할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낼 수 있게 되어 그에게 감사하다는 표현과 어쩌면 그를 좋아하는 마음의 표시 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마음의 선물이라 넘긴다면 지안이 두번이나 선물해준 슬리퍼를 망설이다 신지않는 동훈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썩 개운하진 않습니다. 바로 처음 지안이 슬리퍼를 선물해주었을 때 그녀가 보면 뻘쭘 해서, 아님 지안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새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고 해석한다면 지안이 두번째 떠나면서 남긴 슬리퍼는 이젠 그녀가 회사에 없기에 어느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바로 신을 수 있었을테니까 말이죠. 특히 지안이 떠나고 그녈 그리워 했던 그가 그녈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설정이라면 바로 신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동훈은 새슬리퍼를 옆에다만 두고 망설이며 신지 못합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에 많은 시청자들이 슬리퍼를 신지 않는 동훈의 심정에 의문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슬리퍼를 단순히 지안 마음의 선물이 아닌 동훈회사생활의 상징으로 보면 어떨까요? 지안이 동훈에게 슬리퍼를 선물한 건 그가 당당히 상무가 되서 자신이 좋아하는 설계일도 다시하고 동훈을 짓누르던 도준영도 잘라내 그가 원하는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소소하지만 슬리퍼부터 바꿔주려 했던거라면 어떨까요?(슬리퍼를 선물하기 바로 전 지하철출구씬에서 꼭 상무돼라 될거다 걱정마라고 동훈에게 호언장담했던 지안의 말을 상기해 본다면 그를 꼭 상무에 올리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결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망설이던 동훈 심정이 다 설명이 됩니다. 먼저 첫번째 지안이 준 슬리퍼를 신지않는 동훈의 씬을 자세히 보면 익숙하게 기존 슬리퍼에 손이 가다 지안을 힐끔 보고는 그녀가 사준 슬리퍼가 생각났는지 서랍을 열어 새 슬리퍼를 꺼내려 했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생각나서 신으려 함=그녀 때문에 부끄럽거나 거절의 의미로 신지 않는게 아님)
하지만 이내 단념했는지 서랍을 닫고 그냥 해진 슬리퍼로 갈아 신는데요.. 슬리퍼를 동훈 회사생활의 상징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아직 예전 슬리퍼가 편하고 익숙한 겁니다. 처음 상무후보에 자신을 올리겠다는 정상무 제의에 자기는 영업이나 정치 못한다며 현장에 맞는 사람이다, 임원자리는 안어울린다 한사코 거절했던 동훈을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 떨어집니다. 성실한 무기징역수로 이미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그였기에 새로운 슬리퍼로 갈아신을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동훈은 친구 상원이를 만나고 바뀝니다. 겸덕의 ‘아무것도 아니야! 너만 생각해!’ 라는 응원의 말에 용기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준영 집무실에 들어가 주먹질을 하며 그러다 엎어진다 경고를 하고 지안을 찾아가 회사 그만두지 마라며 슬리퍼 다시 사오라 소리칩니다. 그리고는 지안을 자르지 않고 스스로 정면돌파해 (물론 지안의 응원과 인터뷰도 한 몫 했지만) 멋지게 상무가 됩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이 경찰에 잡혀 그의 가정사가 회사에 알려지고 그것이 그의 새 출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새로 산 슬리퍼를 그의 책상서랍에 넣어 둔 채 회사를 떠나버립니다.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한참을 동훈은 그녀가 사준 슬리퍼를 꺼내놓기만 하고 신지를 못합니다. 동훈은 지안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채 자신만 새 신을 신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도 자신과 같이 아직 낡은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안이 공중전화로 강남에서 새직장 구했다 알려오자 그녀도새신 신고 새출발 한 줄 알고 그녈 마음에서 놓아주려 합니다. 그래서 상무 첫 출근날 드디어 그녀가 사준 새 슬리퍼로 갈아신고 업무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극상 상징적의미로..)
동훈이 생각하기에 그녀는 할머니도 요양원에 모셨겠다 빛도 다 갚았으니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을 위한 새 신발정도는 살 수 있다 생각했을테니까요.
[요약]
슬리퍼는 동훈회사생활 즉 삶의 상징
슬리퍼를 신지 않은 이유는 첫번째 지안이 줬을 때는 아직 그의 틀(성실한 무기징역수)을 벗어나지 못해서..혹은 두려워서
두번째 지안이 남기고 떠났을 때 신지 못한 것은 그녀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채 그녀가 선물해준 슬리퍼를 신을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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