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오늘 아침 눈을 떠 시계를 보자마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좆됐다.

오늘은 엄마도 지방출장 때문에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날이었고 아빠는 늘 그렇듯이 내 이름을 대충 한번 부르고 본인은 깨웠다고 하며 그냥 출근해버렸을것이다.

즉, 나는 오늘 알아서 늦지않게 일어나야 했던것이다.

사실 그렇게 크게 늦은것은 아니었다. 평소보다 10분정도.

하지만 문제는 요즘 담임이 꽤나 까칠모드라는 것이다. 지각하면 벌금도 벌금이지만 까칠해진 담임의 히스테리가 더 두려웠다.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을 정돈할 여유가 없다.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화장실로 달려갔다.

대충 세수를 하고 리스테린으로 가글을 한번 하고 난장판이 된 머리는 붕 뜬곳만 물을 묻혀 간단히 정돈을 하고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나는 이럴때를 대비해서 늘 내가 타는 시간보다 +20분 이후까지의 마을버스 도착시간을 외우고 있었다. 외운게 틀리지 않았다면 마을버스는 5분쯤 뒤에 도착할것이고 나는 죽기살기로 뛰었다.

다행히 마을버스보다 일찍 도착했다. 역시 정류장과 집이 가까워서 좋을땐 이럴때다.

마을버스가 저쪽에서 오는게 보인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임에도 안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마을버스는 도착했고 나는 줄의 맨 뒤에 서있던 관계로 가장 늦게 탑승하게 되었다.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 거의 문앞에 끼어갈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데..

버스에 타면서 우연히 본 사이드 미러에 어떤 여학생 한명이 뛰어오는게 눈에 보였다. 내가 올라서자마자 기사님은 "문 닫습니다~" 라며 출발을 하려고 했다. 당시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저씨 잠깐만요 아직 덜 탔어요"

닫히던 문은 다시 열렸고 저 뒤에서 열심히 뛰어오던 여학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감사합니다" 라고 작게 인사를 하고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역시 예상대로. 사람이 너무 많아 앞문 발판쪽에 겨우겨우 끼어 가게 되었다. 고작 10분 늦었을뿐인데..아침부터 일진이 영 안좋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까 내 뒤에 탄 여학생..뭔가 좀 이상하다. 그냥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자꾸 들어서 슬쩍 쳐다봤다. 그래 이거였구나.

내가 사는 동네는 신도시라 근처에 학교가 아직 세개밖에 없다.

하나는 내가 다니는 이동네 유일한 고등학교 원민고교. 하나는 이동네 유일한 중학교 w중학교. 다른 하나는 이동네 유일한 초등학교 m초등학교.

초등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고 w중학교는 그 학교 애들을 많이 봐서 교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은 처음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전학생인가?' 라고 생각을 하며 호기심에 조금 더 흘깃거리며 쳐다보니 명찰이 보였다. 

'최예원'

그러고보니 버스에 타면서 카드를 안찍었다. 사실 그냥 넘어갈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작은 양심을 저버리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말기 근처에 있는 아주머니께 카드 좀 찍어주십사 내 교통카드를 힘겹게 전해 드렸고 아주머니는 사람좋게 웃으시며 찍어주셨다.

"뒤에 학생! 학생도 안찍었지? 나한테 줘"

아주머니가 내 뒤에 있던 전학생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차가 매우 붐비는 관계로 그 여학생은 한참을 부시럭거리며 낑낑대더니 겨우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아주머니와의 거리가 약간 있기도 했고 중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전달을 해줘야 할것 같았다.

"제가 드릴께요" 

하며 나는 그 여학생의 카드를 전달 받았다. 카드를 받는 순간 살짝 손이 스쳤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그 여학생은 움찔하며 놀라는게 느껴졌다.

'귀엽네..생긴것도 그렇고 이런거에 놀라는거 보니 1학년이겠지'

그런 잡생각을 하며 5분쯤 지났을까. 버스는 어느덧 학교앞에 도착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