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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1-
아돌프 히틀러 하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민주주의의 결함’,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라는 것이다.지금도 한국의 여러 TV 교양 프로그램에선 이런 시각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전파하며, 그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의 복잡한 정치 상황은 도외시 한다.히틀러 같은 독재자는 우리가 과연 그런 자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기만 하면 절대 탄생할 리 없는 ‘민주주의의 이단아’일까?이 글은 실제 독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튜버 "함께하는 세계사"님의 영상을 보고 제작되었다.1918년, 독일제국의 상황은 최악 그 자체였다. 4년을 이어간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독일에서 200만 넘는 군인들이 죽었고, 상이군인은 421만 명에 달했다.군부의 전시경제 체제로 인해 궁핍과 극심한 기아가 독일 전역에 만연했고, 이는 11월 혁명을 촉발시켰다.11월 혁명으로 인해 독일 전역은 공산 혁명을 외치는 극좌 공산당과 이를 막는다며 날뛰는 퇴역 군인 출신 극우 준군사조직들로 인해 심각한 진통을 겪었다.이 상황에서 바이마르에 모인 독일의 주요 정치인들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공화국을 선포하며 혁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우선 히틀러의 등장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과 정치 체제를 살펴보아야 한다.일단 형식상으로 바이마르 헌법은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었다. 20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했으며, 공화국이지만 비상사태를 제외하고 의회에 더 많은 권한이 있는, 이원집정부제~의원내각제 쯤 되는 국가였다.우선 행정부의 수장은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 임기 7년에 중임이 가능했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가 추천한 후보들 중에서 장관을 임명하여 내각을 구성하였다. 또한 의회해산권도 가지고 있어서 의회 해산 이후 6개월 이내에 재선거를 실시할 수 있었다.입법부는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하원과 주의회에서 선출하는 상원이 있었는데, 하원의 경우 의원의 임기는 4년이었고 내각불신임을 결의할 수 있었다.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 속에서 향후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던 게 헌법 제48조였다. 이 조항에선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시 긴급명령을 통해 의회를 무시하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물론 바이마르 헌법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의도는 이 사람처럼 긴급조치를 남발하며 통치하라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헌법에는 대통령 긴급명령 남발을 걱정했는지 의회 과반수가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그 즉시 효력을 잃는다고 적어두었다.행정부-입법부 다음으론 사법부가 있었는데,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사법부는 매우 보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법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실제 이들은 1923년 히틀러의 뮌헨 폭동에 대해 판결하며 ‘히틀러의 동기가 애국심이니까’라는 황당한 이유로 징역 5년만 선고했다.[당시 형법상 내란죄는 최소 징역 10년이고, 히틀러는 그마저 9개월만에 가석방된다.]이렇게 정치체제를 들여다보고 나면,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것에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1.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2. 나치당이 하원에서 단독 과반, 혹은 연립하여 과반 차지.그러나 히틀러는 두 개 다 실패했다.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직 육군 원수였던 전쟁영웅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게 패했고, 총선에서도 과반 확보에 매번 실패했다. 다른 정당들이 극단적인 주장만 일삼는 나치와 연정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과정을 이해할 때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인간이 바로 사진 속 인물, 파울 폰 힌덴부르크다.힌덴부르크는 1차 대전 당시 열세였던 동부전선의 타넨베르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으로, 이때의 명성에 기반해 대전 후반기 독일의 군부 독재자로 떠올랐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한 뒤에도 명성은 대단해서 공화국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우익 세력이 대통령으로 모셔가려 했던 인물이었다.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19세기 프로이센 군인으로 군주에 대한 충성과 극심한 보수성 말고는 딱히 공화국과 어울리지 않았다.계속 출마를 고사하던 힌덴부르크는 보수 정당들의 거듭된 요구에 192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초반 임기는 꽤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이내 대폭풍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덮치게 된다.대공황이 독일에 닥쳐오자 힌덴부르크는 그 책임을 물어 연립내각을 이끌던 사민당 출신 총리 헤르만 뮐러를 경질하고 의회와 사전 협의 없이 중도 우익 정당인 중앙당 출신 하인리히 브뤼닝을 임명한다.내각 구성에 의회가 동의한 적이 없었으므로 브뤼닝의 입지는 위태로웠다. 그는 결국 힌덴부르크가 가진 무기인 ‘대통령 긴급명령’을 내세워 통치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의회가 번번이 무산시켰다.힌덴부르크는 화가 난 나머지 의회를 해산시키는 강수를 두게 된다. 국가 비상사태시에 최소한으로만 쓰라고 부여된 긴급명령권을 남발하고, 경제 위기 속에서 의회를 무책임하게 해산하는 태도는 정치 혼란을 폭발시켰다. 이후 갑자기 극좌와 극우 세력이 약진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를 본 중도 좌파 성향의 주류 정당 사회민주당은 ‘행정부를 너무 견제해서 혼란만 가중시킨다! 차라리 그냥 놔두자!’며 의회 차원의 행정부 견제를 포기한다.정치혼란이 방치되자 나치당은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 1932년 7월 총선에선 제1당이 된다. 그러나 이는 득표수로 보면 과반에 한참 못미치는 결과였고, 사민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이 나치와 연정을 거부하고 있었다.게다가 상술했듯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성이 극악이었던 사민당이 히틀러를 낙선시키기 위해 후보도 내지 않고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면서 히틀러의 대권 도전은 물거품이 된다.이렇게 되자 나치당의 지지율은 점점 흔들렸다. 실제 당시 뉴욕 타임스는 ‘히틀러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보도했으며, 1932년 11월에 열린 총선에선 다수당 지위는 지켜냈지만 34석이나 되는 의석을 털리며 위기를 맞이했다.이런 혼란 속에서 대통령 긴급명령만 남발하던 브뤼닝은 국민의 인기도 잃고, 뒤늦게 실시한 대공황 극복 정책이 기업계로부터 ‘너무 좌파적’이라는 비난을 받자 사임한다.그리고 공화국의 신임 총리로 프란츠 폰 파펜이 등장한다.1932년 6월,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된 프란츠 폰 파펜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실업자 복지 대책, 노동자 보호 대책들을 대거 후퇴시켰다. 이는 기업들에겐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국민 대부분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는 정권 지지율 폭락으로 이어진다.이 상황에서 파펜은 나치와 연정하여 지지율을 흡수할 목적으로 히틀러에게 내각의 몇 자리를 제안했지만, 히틀러가 ‘총리 아니면 받지 않는다’며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무산된다.게다가 파펜 총리는 독일 공산당의 주도하에 치러진 내각 불신임안 상정에서 511:42라는 압도적 표차로 불신임을 맞게 된다.파펜은 의회 해산 후 선거 무기한 중단이라는 쿠테타를 일으키려 했고 평소 공화주의에 관심 없던 힌덴부르크도 이에 동의했으나, 국방장관이었던 쿠르트 폰 슐라이허가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하자 무산되었다.군대를 동원할 수 있던 슐라이허가 반대하자 힌덴부르크는 총리직을 슐라이허에게 넘겨준다. 이 일로 파펜과 슐라이허는 권력을 두고 투쟁을 벌이게 된다.힌덴부르크의 총애로 인해 개인적인 정치고문 역할을 지속하던 파펜은 슐라이허를 실각시키기 위해(+ 정권을 되찾기 위해) 힌덴부르크에게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할 것을 권유한다.그런데 의외로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힌덴부르크가 전통 보수 우익이라 신흥 세력인 나치를 곱게 보지 않았으며, 둘째로 감히 육군 상병 놈이 육군 원수인 자신과 맞먹으려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파펜은 힌덴부르크를 설득하기 위해 ‘사실 히틀러는 얼굴마담으로 하고 우리가 그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파펜은 히틀러와 만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어 재계의 지지를 얻었고, 부총리 자리에 본인이, 그리고 경제정책 전권은 그간 독일 보수세력을 대표해온 국가인민당 소속 후겐베르크에게 쥐어주기로 한다.슐라이허 총리는 파펜이 자신을 노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움직였다. 그도 히틀러를 제외하고 나치당 일부 세력과 연합하려 했고, 후겐베르크를 파펜과 떼어놓으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군부에선 슐라이허에게 쿠테타를 일으킬 것을 요구했으나, 슐라이허는 거절하고 총리직에서 사임한다.그렇게 히틀러는 파펜을 비롯한 보수우익 세력의 야합에 의해 총리로 진출한다.-2편에서 계속--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핵폭탄에 쓰이는 기폭장치.
초기의 핵폭탄에는 EBW (Exploding BridgeWire Detonator, 폭발도선형 기폭관) 라는 기폭관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완벽히 대칭적인 핵폭탄의 내파를 위해서는 정밀한 폭발 제어가 필수불가결한데, 기존의 뇌관만으로는 이러한 정밀한 폭발 제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내파형 핵무기를 개발하던 로스 알라모스(이후 LANL,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가 된다.)의 과학자들은 정밀한 폭발 제어를 위해 EBW를 개발한다. EBW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폭발물을 사랑하는 군붕이라면 익숙할 기존의 뇌관과 구조가 크게 다를바 없어보인다. 하지만 차이점은 bridgewire에 연결된 폭발물의 종류가 다르다. 기존의 뇌관은 bridgewire에 1종 폭발물이 연결된다. 1종 폭발물이란 적은 양의 열이나 압력에 의해 폭발할 수 있는 민감한 물질을 뜻한다. 그러니까 bridgewire에 전류가 흘러 가열되기만 하면 1종 폭발물이 터지고 이윽고 연결된 2종 폭발물이 터지는 것이다. 하지만 EBW는? 2종 폭발물인 PETN, 그것도 저밀도 PETN이 Bridgwire와 연결되어있다. 2종 폭발물이란 덜 민감하며 폭파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폭발물을 말한다. 그럼 이녀석은 어떻게 폭발물을 격발시키냐? 바로 고전압 고전류 전원을 순간적으로 Bridgewire에 인가하면 이 Bridgwire가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기화되며 충격파를 일으키고, 이 충격파가 2차 폭발물을 바로 점화시키는 것이다. 다음은 Slapper Detonator라고도 불리는 EFI(Exploding Foil Initiator)는 폭발물의 기폭 장치이다. LLNL(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 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구조는 다음과 같다. metallic foil 위에 Plastic flyer film이 붙여져 있다. Plastic flyer film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은 주로 kapton이 쓰인다. 전자기기에 쓰이는 그 캡톤 맞다. 이 친구도 EBW와 작동방식이 약간 유사하다. 고전압, 고전류 전원이 metallic foli에 인가되어 전류가 bridge를 통과하면 bridge가 폭발적으로 기화되는것까진 EBW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렇게 기화된 Bridge가 자기 자신 위에 덮여있는 plastic flyer film을 절단시키고, Bridge가 기화하며 플라즈마가 발생되어 절단된 plastic flyer film 비행편을 정말 엄청난 속도로 가속시킨다. 이렇게 절단된 플라스틱 비행편은 Barrel을 통과해 2차 폭발물에 직접 충돌하게 되고, 이로 인해 폭발물이 점화되게 된다. EBW에 비해 EFI가 가지는 장점은 1.포일은 폭발물과 접촉하지 않으므로 포일의 부식, 포일과 폭발물 사이의 화학 반응으로 인해 불안정한 화합물을 생성하는 위험이 줄어들고, 이차적으로 폭발물의 우발적인 전기 발화 위험이 더욱 줄어든다. 2.기폭 장치에 요구되는 에너지가 EBW에 비해 매우 낮다. 3.EBW처럼 단일 지점이 아니라, 비행편이 폭발물에 충돌한 넓이만큼 기폭을 시작하는 점이 폭발을 시작하는 데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4.폭발물은 더 높은 밀도로 압축될 수 있다. 5.매우 둔감한 폭발물을 직접 기폭시킬 수 있다. 6. 2종 폭발물을 직접 점화시키기 때문에 소형화와 단순화가 가능하다. 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핵폭탄에 사용될때는 기계적 안전장치와 함께 사용된다. 사진에서 보이듯 안전 상태에서는 EFI의 포일+캡톤+Barrel과 둔감 고폭약(LX-16)이 정렬되어있지 않지만, 무장 상태(ARMED)에서는 이들이 모두 정렬되어 핵무기의 격발준비를 마친다. 물론 EBW/EFI는 핵폭탄에만 쓰이는 기술은 아니다. 우리의 청상어 경어뢰에도 사실은 EBW 기폭관이 쓰이려다가 EFI 기폭관으로 설계를 변경한 적이 있다. 또한 항공우주 분야에서 파이로테크닉의 기폭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음 정보글 미리보기: 이때 예고했던 2단계 핵분열-핵분열폭탄과 여러 참신한 핵무기 설계를 다루는 해당 글이 준비중인데 고민이 2가지임. 핵폭탄에 대한 기초적 상식을 언급하고 참신한 설계의 핵무기에대한 내용을 다룰지, 아님 다들 핵분열/핵융합/포신형 핵무기/내폭형 핵무기에 대해 안다고 가정하고 지금 그대로 글을 올릴지 고민임. 출처는 https://en.m.wikipedia.org/wiki/Exploding-bridgewire_detonator https://en.m.wikipedia.org/wiki/Slapper_detonator - dc official App
작성자 : Anthrax836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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