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테스트 해본다고 한글팀끼린 한글로 글쓰기 연습하는데
하루는 전하가 무휼한테 봉투를 주더니 나중에 열어보라고 함
그래서 밤에 혼자 펴봤더니 한글로 쓴 전하의 편지임

그동안 말로는 잘 표현하지 않았던 마음들이 전하의 평소말투로 써져있음
무휼아...부터 이미 소름돋음
우리 함께 한 지도 벌써 30년이구나, 자네가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부터 시작해서
자네 그거 기억하는가? 하는 옛날 얘기도 있고
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정갈하게 쓰여있는데 글자 생긴 것도 예쁘고 귀엽고
글에서 전하의 음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서 한글 뽕참
전하의 마음이 감동적이라 살짝 눈물 짓다가
자기도 답장을 써내려감

글자도 아직 낯설고 전하께 편지 쓰는 것도 처음이니까 썼다 버렸다 하며 거의 밤을 새움
글자에서 전하의 음성이 들렸다고 글자 진짜 신기하고 좋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전하 모실 수 있어서 정말 좋다는 얘기 등등
잔뜩 써서 봉투에 고이 담아서 다음날 전하께 수줍게 건넴

무휼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전하는 보고서인 줄 알고 그자리에서 열어버림
펼쳤는데 편지라서 놀란 눈으로 무휼 보는데
얼굴 빨개져서 시선 피하고 있음
그거 보며 빙긋 웃고는 읽어내려가는데 무휼에게 어울리지 않게 글씨가 귀여워서 웃음이 남
근데 필체나 문체에서 무휼다움이 묻어나고 역시 무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음

전하가 말이 없으시니 무휼이 쳐다보는데
자기 편지 보면서 흐뭇해하다가 감동받은 표정 짓다가 다시 웃으시는 거 보니까
미칠 거 같음
뭐라고 말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음

다 읽고 내려놓으시더니 여운이 남았는지 잠시 편지 바라보다가
생각도 못했는데 바로 답장해주고 이렇게 글자도 잘 써줘서 고맙다고 하고
쓸 때 헷갈리는 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어봄
무휼이 피드백 해주면 기록해두고

무휼이 보는 앞에서 정기준 과거시험지 태워버리고 상자 안에 무휼 편지 넣어둠
무휼이 놀라서 보면
힘들 때마다 펴볼 거라며 웃고
무휼이 민망해서, 제가 늘 곁에 있는데 왜 편지를 보시냐고 하면
이젠 네가 쓴 편지도 질투하냐고 놀림

늘 붙어있으니까 편지로 마음 전할 일은 드물겠지만
한글 버전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테스트용으로 한글 편지 주고받음
그게 습관돼서 일기처럼 종종 편지 주고받다가
아예 책 하나 만들어서 교환일기를 써버림
갈수록 옛날 얘기들을 주로 써서 둘만의 이야기책이 돼버림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사실 내 마음은 이랬다, 뭐 이런 이야기
...가 쓰여진 고문서를 내가 발견하고 싶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