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의 피터팬이었다. 어두운 달빛이 들어오는 창틀에 기대어 앉아 

나만을 위한 세레나데를 부르는 그는 나의 피터팬이었다.

주변에 반짝반짝 빛나는 팅커벨은 없었지만 그 자체로도 빛이 나기때문에,

그의 어두운 그림자들은 내가 다 거둬주기로 했기때문에 그는 나의 피터팬이 아니면 안되었다.

그를 처음만난건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충재와 함께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하며

그의 페이스에 맞춰주다 나만 취해버린 꼴이되었다. 충재는 형이 되어 이것도 못마시냐며 나를 놀려댔지만

속에서 차오르는 토기가 억울함을 이겨버린 탓에 나는 흔들리는 머리를 가까스로 고정한채 그를 한껏 노려보았다.

"야아... 니가 비정상인거야. 나 안해!"

나름대로 분풀이를 한 것이었는데 소주에 절어버린 자신의 입에서 나온건 귀염섞인 애교였나.

충재는 나를 쓰다듬으며 웃기에 여념이 없었다. 뽀뽀해주지 않으면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는 동생의 애교아닌 애교에

부루퉁한 입술을 몇번 볼에 가져다 대어준 후 흔들리는 밤거리를 따라 또박또박 걸어 집으로 향했었다.

"내가~ 아 나느은! 똑바로 걷고있는데헤 흐응 누가 막 왜 흔들어어..응..?"

집 앞 현관에 누군가 앉아있다. 나처럼 취한 사람이었을까? 하지만 난 취하지 않았는걸. 저 사람은 취했나보다.

"저기여어.. 여기! 우리! 집!"

내 목소리에 감고있던 눈을 뜬 그는 한 눈에봐도 술에 취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집을 헷갈려 잘못온 사람 같지도 않았다.

집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그가 나에게 눈을 마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내려다보는 그 시선은 어른의 그것이라 하기엔 맑았고, 아이의 것이라하기엔 탐욕적으로 보였다. 

나보다 커다란 키로 항상 세상을 내려다봤을 것 같은 그의 눈에서는 욕망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자신을 향한 갈증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마셨던 술이 차가운 겨울 바람에 조금씩 깨는듯한 나는 곧 몇시간동안 밖에 앉아있었는지 한껏 파래진 입술이 눈에 들어왔고

사람을 이렇게 집 밖에 그것도 추운 겨울 밤에 밖에 내버려둔다는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기억해낸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무턱대고 집안으로 그를 집어넣었다.

쾅

문닫히는 소리는 내 귀를 때렸지만 그의 시선의 강렬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못되었다.

다시한번 나는 분명 똑바로 서있었지만 또다시 세상이 한번 흔들렸고 갑작스레 세상에서 빛이 사라졌다.

"동완아... 오늘 너에게 말하고 싶은게 있었는데...."

뭐라고? 초면에 실례합니다. 지금은 조금 자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