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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31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19 21:17:52
조회 157 추천 17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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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쿵, 시간이 조금 흐르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훈련 시간이다, 어서 나와!”


  그제야 나는 제복을 급하게 입었다. 제복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딱 맞고 편안했다. 


  “브루니, 이리로 와!”


  나는 입고 있던 옷에서 브루니를 꺼내 제복 주머니에 넣었다. 브루니는 주머니 안에서 다시 똬리를 틀었다. 


  벌컥, 나는 문을 열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급하게 그 사람들을 쫓아서 따라갔다. 


  “... 120, 121, 122…”


  그들을 따라 어느 공간에 들어서자 나는 단상과 그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인파를 볼 수 있었다. 단상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중얼거리면서 무언가를 세고 있었다. 


  “123, 124, 125,”


  뭘 세고 있는 거지?


  나는 조심스럽게 인파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아보았다. 


  없네, 쯧. 


  엘사는커녕 새하얀 머리색을 가진 사람조차 없었다. 데이지의 금발을 가진 사람 또한 없었다. 나는 아쉬움에 혀를 차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126, 127, 128. 그만.”


  그때, 단상 위에 선 사람이 세는 것을 멈추었다. 그가 그만하라고 외치자마자 내가 들어왔던 입구가 굉음과 함께 닫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짐작해 보려 하기도 전에 나는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닫힌 문 너머로 끔찍하고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단상 위에 선 사람이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들은 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경악하다가 시선을 급하게 돌렸다. 


  “다 왔군, 시작하지.”


  그의 말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내 모든 신경을 그에게 집중했다. 


  “여기가 어디인지인지는 다들 듣고 왔을 거라 생각한다. 이의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있는가?”


  정적이 흘렀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가 손을 살며시 들었다. 


  “좋아, 저기 한 명 있군. 또 없나?”


  한 명이 손을 들어서 신호탄을 울리자 다른 사람도 덩달아 손을 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하늘 위로 솟아오르던 손들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다섯, 열, 스물… 아흔. 선방했군. 좋아, 지금 손을 든 사람들은 전부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면 되네.”


  우리가 들어왔던 문은 어느새 활짝 열려 있었다. 손을 든 사람들은 조금씩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문으로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으로 빠져나가자 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인파는 절반도 안 남아 있었다. 


  짝, 단상 위에 서 있던 사람이 박수를 쳤다. 쿵, 그와 동시에 문이 다시 닫혔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문 밖에서 다시 괴성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저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이 곳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현 인원 38명, 우리가 필요한 건 그중에서 제일 강한 다섯이지.”


  그는 단상에서 펄쩍 뛰어 내려왔다. 나는 긴장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훈련? 별 거 없다. 매일마다 방에 들어가서 우리가 따로 부르기 전까지 버티고 있으면 된다.”


  에이, 설마. 누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그는 피식 웃으며 단언했다. 


  “숨 쉴 수 있을 때 마음껏 쉬어 둬라. 나중에 가서 뭐라 하지 말고.”


  그의 말에 우리의 표정이 굳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뭐라고 되물어 보기도 전에 바깥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들어와 우리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잠, 잠깐!”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저항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리고 우리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곧장 우리는 어느 방들 앞에 서게 되었다. 한 사람당 하나의 방이 주어져 있었다. 


  “진입.”


  그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나를 떠밀었다. 


  “어, 어?”


  어버버 하는 사이에 나는 어느새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쿵, 내가 들어온 문이 닫혔다. 문틈 사이로 방 안을 작게나마 밝혀주던 한 줄기 빛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여긴…?


  내가 들어온 방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도, 물건도, 창문도, 심지어 개미 한 마리조차 없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조차 없었다. 그 공간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오로지 내가 내는 소리뿐이었다. 


  어딘가 익숙해. 


  하지만, 내겐 이 상황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이런 공간에 자주 와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걸었다. 뚜벅, 뚜벅. 이 고요한 공간 속에 내 발걸음 소리가 도도히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얼마 가지 못하고 벽에 잡아먹혔다. 마치 방에 그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조용했다. 


  그리고, 그렇게 걷다가 어느 정도 왔다 싶은 나는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털썩. 


  “아, 피곤하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내 팔을 타고 올라왔다. 긴장이 풀리고, 온몸에 쌓여 있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나는 당장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


  나는 멍하니 깜깜한 허공을 바라보았다. 빛도, 소리도 사라지고 나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 엘사 보고 싶다.”


  나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외쳤다. 애석하게도 그 소리는 또다시 벽에 잡아먹혔다. 


  “데이지도 보고 싶다.”


  나는 계속해서 외쳤다. 하지만 내가 뱉은 소리가 내게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외쳤다. 내 목소리가, 내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가 이 방 안을 가득 채우도록 만들었다. 한동안 외쳐대던 나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씨익 지었다. 


  “... 졸리다.”


  갑자기 온몸의 힘이 쑥 빠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다리가, 내 팔이 날카로운 무언가로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다행히도 고통은 얼마 가지 않아 잦아들었다.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서 가끔 나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버틸 수는 있었다. 


  “멀쩡했는데 갑자기 왜 아프지?”


  몇 주 전부터 갑자기 온몸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원망할 정도로 건강했던 몸인데, 왜 이런 것일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초콜릿 먹고 싶다.”


  그럴 때마다 초콜릿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힘들 때마다 내게 행복을 느끼게 해 주던 초콜릿이, 특히나 더욱 강렬하던 엘사의 초콜릿이 그리웠다. 


  “엘사는 무사하겠지?”


  마음으로는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엔 불안이 가득 차올랐다. 왠지 모르게 홀로 울부짖고 있는 엘사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기괴한 얼음성에서 불안에 가득 찬 채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또 한편으로는 내 얼음 동상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그녀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 춥다.”


  갑자기 온몸이 오싹했다.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데이지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을까?”


  마지막으로 보았던 데이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었다. 그러면서 언제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응? 나?”


  바로 그때,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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