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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33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1 23: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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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상에…”


데이지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경악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힐끔힐끔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하도 시달려서 말이지. 이 빌어먹을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더라.”


“그, 그래서 네 손목에…”


“아, 이거?”


나는 팔을 들어 올린 다음 소매를 걷었다. 흉측하게 생긴 흉터가 손목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 많이 힘들었어. 너도 잘 알잖아, 5등급은 사람 취급받기 힘든 걸.”


데이지는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좀 지나고 나니까 네가 내 곁에 와 줬잖아.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어. 고마워, 데이지.”


“... 응, 그런 말은 나가서 나를 만난 뒤에 직접 해 줘, 헤헤. 어쨌거나 지금 난 네 환상인걸. 앗, 오늘치 시간이 다 됐나 보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잠깐, 데이지!”


데이지는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데이지의 팔을 잡으려 했다. 홱- 하지만 내 손은 맥없이 그녀의 투명한 팔을 통과하고야 말았다.


“너무 걱정 마, 안나. 나는 네 환상이니까. 바깥의 나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어.”


“하, 하지만…! 난 네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단 말이야!”


아무리 소리쳐도 데이지가 희미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졌다.


“데이지!”


“... 조금만, … 더…”


데이지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 전조도 없이 사라진 그녀를 애타게 불렀지만, 소리는 다시 벽에 잡아 먹힐 뿐이었다.


쿵, 뒤에서 굉음이 들렸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나는 눈이 부셔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오늘 훈련 끝이야, 따라와.”


  한 사람이 들어와 나를 데리고 나왔다. 나는 들어본 듯한 목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 방에서 나오자 먹먹하던 귀가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왠지 울적해 있었다. 환상이라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사라져 버리니 우울했다.


구웨엑- 어디선가 토악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족히 수십 번은 계속되었다.


뭐지?


나는 실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 사이로 바닥을 뒹굴며 토사물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뭐… 뭐예요? 다들 왜 저래요?”


“못 버틴 거지, 쯧.”


“당신은…”


옆에서 남성이 내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종전에 내게 그나마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그 남성이었다.


“왜, 그나마 익숙한 얼굴 보니 반가워?”


“... 됐어요. 그런데, 저 사람들 괜찮은 거 맞아요?”


나는 실성한 채 바닥에 축 늘어진 그들을 안쓰럽게 보며 물었다. 남성은 혀를 끌끌 차며 대답했다.


“아니, 미쳐 버린 거지. 첫날부터 저럴 정도면 볼 가치도 없어.”


“첫날…?” 나는 되물었다.


“그래, 계속 반복되거든. 점점 강도는 세질 거야. 네가 버틸지 못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흠…”


남성은 그 말과 함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불쾌함을 느끼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워, 잠깐. 너 그거 조심하는 게 좋을걸?”


“왜요?”


“난 네 선배이기도 해서 눈감아주는 편이긴 한데, 다른 상관들은 얄짤없어.”


“그 말은…?”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쯤 되면 눈치챘을 거라 생각했는데, 쯧. 여긴 부대야.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바로 끝이라고.”


“아…”


저 멀리, 다른 방에서 나온 한 사람이 팔을 붙잡히고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난 개죽음당하기 싫어! 살고 싶다고!”


정신이 멀쩡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끌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자를 잊으려 했다.


“내가 네 직속 담당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었어.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 나도 네 처지였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는 말이야.”


“... 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리고 미쳐 버린 사람들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자, 네 방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어. 조금 이따 상담하러 갈 테니까.”


그는 나를 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붙어 있던 자들도 그와 함께 어딘가로 떠났다. 그 많던 사람들이 있던 이 공간엔 이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리고 알게 모르게 속마음을 숨기며 하나둘씩 걷기 시작했다.


스물 한 명.


첫날의 훈련이 끝나고, 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게 훈련이라고?


내겐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람마다 다른 걸까?


벌컥, 나는 내 이름이 적힌 방문을 열었다. 훈련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난장판이었던 방은 어느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매트리스의 탄성이 내 몸을 받쳐 주었다. 브루니도 주머니에서 쪼르르 튀어나와 베개 밑을 파고들어갔다.


… 데이지.


방금 전의 상황이 꿈만 같이 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녀의 형상이 손에 잡힐 것처럼 침대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잘 지내고 있지?


환상으로라도 짧게나마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문득 내 머릿속에 그녀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 앗, 오늘치 시간이 다 됐나 보다.”


데이지, 우리 내일도 만날 수 있지?


나는 작은 희망을 마음에 품었다. 당장이라도 그 방에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는 애써 참아냈다.


똑똑-


“상담 왔어.”


밖에서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안녕, 이름이… 앤이었나?”


“... 안나요. 문에 달린 명패에도 쓰여 있잖아요.”


그는 손에 서류 뭉치와 수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민망한 듯이 머리를 긁었다.


“앤이나, 안나나. 아무튼 들어가도 되지?”


“네, 들어오세요.”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서 앉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두고 그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인적사항 확인, 가족관계 확인, … 뭐가 이렇게 많아, 어후.”


그는 종이 뭉치에서 일부를 따로 빼냈다. 그리고 내게 그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태워 버려.”


“... 네?”


“그냥 태워. 증거만 없으면 되니까.”


“어…”


나는 힐끔 브루니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베개가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브루니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다행히도 내 손 위에 불구슬이 피어올랐다.


“... 진짜로 태워요?”


“그래,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말아 줘.”


나는 미심쩍었지만 결국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내 불구슬이 맹렬하게 종이 뭉치를 잡아먹었다.


“궁금한 거 한 가지만 좀 물어보자. 혹시 그 방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네? 무슨 일이라니요?”


“그, 음… 아니야, 고마워.”


  그는 곧바로 문을 열고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그의 행동은 수상했다. 상담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러 온 것만 같았다.


… 조사하던가, 말던가.


나는 퀭한 눈으로 그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끼익-! 베개에 눌린 브루니의 비명 소리가 작게 들렸다.


“미안, 브루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엘사의 형상이, 데이지의 형상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훈련을 얼마나 더 버텨야 정보를 얻게 될까?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속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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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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