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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39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9 03: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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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붉게 물든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슬쩍 보았다. 아기와 똑같은, 살짝 붉게 물든 머리카락이었다. 


  “나 맞구나.”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더라도, 아기에게서 느껴지는 특이한 기운이 내 생각을 확실시시켜 주고 있었다. 


  응애- 아기는 홀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 아기를 볼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 공간 안에는 나와 데이지, 그리고 이 아기뿐이었다. 데이지와 나는 서로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이라도 통한 것처럼 동시에 아기에게 다가갔다. 


  “이게 네 어릴 적 모습이구나…”


  그녀는 아기의 주위를 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감탄하고, 때로는 아기를 만지려 손을 뻗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데이지의 손은 아이를 통과해 버렸다. 데이지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내색했다. 


  “... 치. 오랜만에 쓰다듬어 보려 했는데…”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데이지의 말을 웃어넘겼다. 


  응애- 아기는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기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보았던 그 장면대로라면, 안드로이드는 나를 고아원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 분명했다. 


  “... 안나.”


  문득 데이지가 내 곁에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응?”


  “고마워.”


  데이지는 그 말과 함께 나를 꼭 안아주었다. 갑작스럽게 왜 이러지? 그녀의 당황스러운 행동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확 붉어지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콩닥콩닥. 지금 들리는 소리가 내 심장에서 나는 소리일까, 아니면 데이지에게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일까? 아니, 누구의 것이든 상관없었다. 데이지의 따스한 기운이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힘들었겠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줘서 고마워.”


  “... 너도, 데이지.”


  어느새 아기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어 있었다. 쌔액, 쌔액- 아기는 울다 지쳐 곤히 잠에 빠진 듯 싶었다. 


  “너무 귀여워…”


  데이지는 아기를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흠칫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저, 음… 그래서 뭘 해야 하는 거지?”


  “그건… 글쎄.”


  내 물음에 데이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어두운 공간에 데이지와 나, 그리고 아기만 덩그러니 들어서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뭘 더 하라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엇?”


  바로 그때, 내 질문에 답하기라도 하는 듯이 공간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굉음과 함께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주위로 빛이 생기더니, 점차 어떤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어느 방 안에 서 있게 되었다. 마치 궁전에 온 것처럼 고풍스러운 장식들이 방 구석구석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장식을 보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안나, 왜 그래!?”


  데이지가 다급하게 내 곁에 다가와 내 상태를 살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상해. 


  낯선 곳이었지만, 동시에 익숙한 곳이었다. 방 안의 모든 곳에서 정겨운 느낌이 솔솔 풍겨왔다. 


  내가 왔던 곳인가?


  머릿속에 황궁을 떠올렸지만, 곧바로 지워버렸다. 황궁에 있던 방과 이 방은 비슷했지만 엄연히 달랐다. 


  “끙…” 


  머리가 아팠다. 이 낯선 동질감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경축드리옵니다, 왕비 마마.”


  응애- 낯선 이의 목소리가, 그리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기의 주변에는 어느 사이에 사람들의 모습이 생겨 있었다. 


  “어여쁜 공주님이옵니다.”


  “... 고마워요.”


  또 다른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내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산파에게로부터 자신이 낳은 아이를 건네받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산모의 얼굴을 눈에 담은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한 번에 몰려왔다. 


  “아, 아아, 아아…”


  내 몸이 저절로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려 하고 있었다. 감정과 본능이 한데 뒤섞여서 날뛰고 있었다. 나는 마치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탄식만 내뱉고 있었다. 


  “이두나!”


  어느 남성이 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산모라도 된 것처럼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산모의 상태를, 그리고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그나르. 이미 엘사를 낳아본 경험도 있던걸요.”


  “하지만, 그래도…”


  산모는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쉰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 걱정은 말고 아이부터 안아봐요.”


  그는 아이를 건네받고 품에 안았다. 아이는 갑자기 사람이 바뀌자 놀란 건지 세차기 울기 시작했다. 


  “건강해서 다행이구나.”


  “압빠!”


  문 바깥에서 어린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세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가 방 안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왔다. 에쿠. 아이는 걷다가 발을 잘못 내디뎌 넘어졌다. 그러자 아버지로 보이는듯한 남성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산모에게 급하게 건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엘사?”


  “엘짜 갠차나여!”


  그는 아이가 어디 다친 곳은 없을까 살펴보고, 아이가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마음을 쓸어내렸다. 


  “동생 어디 이써여?”


  “오, 엘사… 아빠 품에 안겨 보겠니?”


  “내!”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아이를 산모의 옆으로 데려가, 산모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보여주었다. 


  “엘사, 네 동생이란다.”


  산모는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엘사에게 말했다. 아기가 아이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아이는 아기에게 그 조그마한 손을 뻗었다. 


  “자, 엘사. 안나라고 불러 보렴.”


  “애나? 아나? 아나!”


  “안나라고 해야지, 엘사.”


  “아나!”


  화목한 분위기가 잠시 이어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와 아이는 산모의 휴식을 위해 방에서 나갔다. 아기는 요람에 눕혀져서 잠시 산모와 떨어지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꿈에 나타났던 상황이랑 비슷했다. 


  “... 환상, 환상이지? 이거 훈련이잖아. 환상으로 날 미치게 만들어서, 응? 그런 거지?”


  내 목소리가 잔뜩 떨리고 있었다. 데이지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서 있기만 하고 있었다.  


  “... 말도 안 돼.”


  산모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는 분명히 나였다. 어제 보았던 그 아기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아였다. 지금 이 상황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머리가 또다시 욱신거렸다. 누군가가 내 기억을 헤집어 놓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가 떠오를 듯 싶으면서도 곧바로 사라졌다. 


  다시, 장면이 변했다. 종전의 방과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그 방 안에 있는 요람 속에 아기의 모습을 한 내가 들어가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마음 편히 누워서 잠에 빠져 있었다. 


  끼익-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백금발을 한 어느 아이가 방 안에 들어섰다. 아장아장 걸어서 요람 곁으로 다가온 아이는 폴짝폴짝 뛰어 간신히 의자 위에 올라갔다. 그렇게 아이는 의자의 도움을 받아 요람 안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안녕, 작은 아가야!”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아기가 움찔하자, 아이는 깜짝 놀라며 혹여나 아기가 잠에서 깰까 두려워 입을 손으로 막았다. 다시 아기가 곤히 잠에 빠져들자 아이는 다시 아기에게 나지막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처렁 공주가 댄대! 멋쪄 보이지, 그러치 아나?”


  아이는 활짝 웃으며 미소를 보였다. 아기는 뭐가 좋은지 헤벌레 입을 열고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러다 아이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긍데, 다들 나한태 모라모라 하더랑. 머 해야 대고, 머 하명 안 대고…”


  아이는 손을 활짝 뻗어 아기의 머리카락을 톡톡 건드렸다. 아기의 머리카락이 아이의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이는 다시 활짝 웃으며 미소를 보였다. 


  “그래두, 너랑 나, 우리능 우리가 더 잘 알꺼야! 그치, 아나? 앗, 압빠가 걱정하개따! 잘 이써, 아나!” 


  아이는 급하게 아기에게 잘 있으라고 말하고 방을 나섰다. 아이가 달릴 때마다 그녀의 백금발이 찰랑거렸다. 나는 방을 빠져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가만히 서 있었다. 


  “... 엘사.”


  저 아이는 엘사였다. 이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이 상황 속에서, 엘사와 나는 자매 관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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