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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69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5 22: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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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났다. 잠에서 깨어나자 연구원이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어때요?”


  나는 팔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한동안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통증이 조금 덜했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어제 먹은 초콜릿 덕분인 건가요?”


  끄덕.


  연구원은 나를 흘깃 곁눈질하더니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뭐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서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답답해서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먼저 말을 걸어야 할까? 


  “저기, 스미스 씨?”


  연구원은 내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혹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알 수 없는 불안이 나를 감쌌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 안나 양. 그게…”


  두어 번을 더 부르고 나서야 대답한 연구원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후- 연구원은 잔뜩 인상을 쓰면서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의 손에 잡혀 있던 종이가 잔뜩 구겨져서 알아보기 힘든 형체로 변했다. 종이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 미안해요.”


  “네? 대체 무슨 문제가 생겼길래…”


  “가이드, 없어요. 전 우주에 등록된 사람들을 전부 조회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 말도 안 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너지려는 것을 간신히 버텼다. 


  “방법이 나올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미안해요, 안나 양. 당분간은 카페인으로 버텨야 될 것 같아요. 약효가 듣지 않을 때가 되기 전에 당신의 가이드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망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엘사를 다시 볼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걸림돌이었다. 엘사를 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지 상관없었다. 잠깐 쓰고 말 가이드가 되었건, 아니면 초콜릿이 되었건. 


  “... 혹시, 그러면 카페인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알 방법이 있을까요?”


  “안나 양의 파장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봐야 알 것 같은데, 필요하다면 해 드리죠.”


  “고마…”


  “그전에, 당신.”


  연구원은 갑작스럽게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급격히 어두워졌다. 연구원의 눈은 나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한 나머지, 나는 침을 한번 삼켰다. 


  “뭐 숨기는 거라도… 아, 됐다. 그냥 쉬고 있어요. 조금 이따 다른 검사하러 가야 되니까, 준비하고 있고.”


  뭐?


  연구원은 그 말을 끝내자마자 급하게 방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으면서 생긴 바람이 내 머리칼을 흩날렸다. 뭐가 급하길래 저렇게 다급한 것일까? 그 생각을 하기 전에, 문득 그가 남기고 간 말이 떠올랐다. 


  숨기는 것?


  연구원은 날이 선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설마, 브루니?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연구원이 들고 있던 종이에 무슨 말이라도 적혀 있었던 걸까? 연구원이 있던 곳을 살펴보니 그가 두고 간 구겨진 종이가 보였다. 나는 급하게 종이를 집어 들어서 구겨진 부분을 폈다. 


  “이건… 맙소사.”


  그 종이는 나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내 신상정보, 내가 다녔던 곳들은 기본이었다. 그들이 나에 대해 조사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그 기록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름, Anna Doe.

  성별, 여성.

  주거지, 11지구 리치먼드 가 2번지 1327호 불분명

  생일, 크로커스력 547년 6월 22일 (검체 채취로 검증 시도 => 실패함.)


  검체 채취로 검증? 하긴, 나도 내가 정확히 몇 살인지 모르니까.


  신장, 체중… 이건 넘어가고.


  학력, 국립 고아원 287지부 (크로커스력 547년 ~ 552년)

   * 고아원 화재로 전소. 원인 불명. 대상을 제외한 전원 사망. 대상에게 자세한 기억이 없는 것 같음.

   * 소방 안드로이드도 일부 전소. 의회에서 이 부분으로 예산 증액을 요청함. 황제 폐하의 명으로 기각됨. 실험 결과, 현 소방 안드로이드는 섭씨 1만 도를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확인.

   * 이후, 황제 폐하가 유일한 생존자의 이름을 물음. 당시에는 대상에게 이름이 없었음. 그러자 황제 폐하께선 흥미를 잃으심.


  … 이런 것까지.


  기록은 내 생각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듯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혹시 이해 안 가는 부분 있으면 물어봐줘!

나는 멍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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