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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Lullaby - 49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01 01: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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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맙소사.”


  죄인. 그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들어박혔다. 기껏 잊었다고 생각했었건만, 어느새 슬금슬금 기어 나와 그녀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 안나.


  문득, 엘사의 머리에 어느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자신은 죄를 지어서 이 지옥에 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것이 시련이 아니라, 자신의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 저기, 하나만 물어도 괜찮아요?”


  “응? 뭐, 상관없어. 뭔데?”


  “혹시, 정령을 본 적 있어요?”


  “정령? 아니, 없어.”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어. 죄질이 불량하고, 죗값을 치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정령의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말이야.”


  “... 심판.”


  그렇다면 자신이 본 정령은 무엇이었을까? 또 다른 환상? 정령들의 농간? 생각이 복잡해져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뭐, 너무 걱정하지는 마. 다들 처음에는 슬퍼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다시 이 곳에서 살아가게 되더라. 우리가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없고, 더 이상 죽을 수도 없으니까 말이야. 영원히, 혼자서, 때로는 여럿이서 함께 슬픔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거지. 그게 결국 우리가 겪는 벌이니 말이야.”


  남자는 말을 끝내고 다시 창문 너머를 힐끔 바라보았다. 바깥 저 멀리에서 작은 소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시끄러웠다. 남자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 젠장, 한 발 늦었네.”


  “...?”


  엘사는 의문을 가지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 


  “전부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인가.”


  “무슨… 일이에요?”


  후우- 남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속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슬픔을 나누면서 영원히 사는 것.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벌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비인데… 왜 저렇게 빠져드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는 계속해서 말을 돌리기만 하고 정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엘사는 의문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창가에 다가갔다. 혹시나 남자가 자신이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셔, 마셔, 마셔!”


  “마시고, 잊어! 포기해! 놓아버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러 영혼들이 한데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 이곳에 오면서 슬쩍 보았던 영혼들이었지만, 못 보던 영혼들도 더러 있었다. 


  “간혹 어쩌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술로 잊으려 하는 사람도 있었지.”


  어느새 남자도 옆에 다가와서 창문 밖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엘사도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손에 기다란 파이프를 들고 무언가를 뻐끔뻐끔 피우는 영혼들이 있었다. 


  “저렇게, 다른 쾌락으로 슬픔을 덮어 씌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하아- 남자는 다시 한숨을 쉬고 커튼을 젖혔다. 


  “그것도 극소수였지, 저 정도는 아니었다고…”


  “...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엘사는 커튼을 살짝 열고 다시 영혼들을 바라보았다. 눈이 풀리고,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뒤섞여서 쾌락을 탐하는 모습은 맨 정신으로 보기에 힘든 수준이었다. 


  “같은 생각이야. 도시가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어.”


  그는 다시 몸을 돌리고 집 안 어딘가에서 활과 화살을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놨다. 대검과 활, 그리고 화살. 엘사는 그 무기들을 보고 흠칫 놀라면서 뒷걸음질 쳤다. 


  “나는 분명 다른 자들에게 경고했어. 도시가 점점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잡아먹히고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들은 괜찮다고 하면서 내 말을 무시했지. 결국, 난 나와 뜻이 맞는 자들과 함께 몸을 몰래 뺐어. 몸이라고 해도 되나? 아무튼. 아, 이리로.”


  그는 엘사를 데리고 어느 방에 들어갔다. 곧바로 바닥 어느 한구석을 더듬더니 한 부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지하로 들어가는 긴 동굴이 나타났다. 


  “일단 가자. 가면서 더 이야기해줄게.”


  그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사는 가만히 서 있다가, 오래 지나지 않아 남자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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