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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팬픽] Whiskey Bonbon -24

ㅇㅇ(14.32) 2021.04.23 01:18:00
조회 533 추천 21 댓글 6


몇번 갈아엎고 있었는데 그 동안 벌써 한 달이나 지났을 줄은 몰랐다...ㅠㅠ 늦어서 미안해

25화는 2주안에 올릴게! 흐규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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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한 귀퉁이에서 아침을 맞은 안나는 가장 먼저 핸드폰을 확인했다. 엘사로부터 온 연락은 한 건도 없었다.


내가 또 헛것을 봤나봐. 몇 분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쉽고 간단한 처방이었다. 선례 또한 충분했다. 착각으로부터 시작된 지난날의 과오가 바로 그 증거 아니던가? 허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꿈이었던 거지? 사실은 이 집에 들어온 적조차 없던 것은 아닐까? 안나가 확신한 듯이 눈을 빛냈다. 그래, 약속도 잊을 만큼 초콜릿에 정신이 팔렸...... 맞다, 초콜릿!


내 아기들! 안나가 머리를 번쩍 일으켰다. 졸지에 하룻밤 방치된 초콜릿은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되살리긴 이미 늦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안나는 여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손을 써보다 끝내 상품가치가 없단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참 비싼 꿈이기도 하지. 먼 길을 떠난 초콜릿을 바라보던 안나가 자조했다.

 

‘기왕 꿨으면 끝까지라도 보여주든가, 도중에 사라져버릴 건 또 뭐야?’


안나는 연신 툴툴거리며 어수선한 주방을 정리해나갔다. 그러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물체를 발견했다. 꿈에서 봤던 위스키 병이었다. 잠깐만, 이게 왜 여기 있지? 안나의 등골이 빠르게 식어갔다. 설마......


에이, 아냐. 아닐 거야. 안나는 스멀스멀 부상하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쫓아냈다. 그 대신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문 앞에서 건네만 주고 바로 돌아갔을 거야!’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 이어 안나는 소파 아래서도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다. 바로 문제의 도화선이자 연결고리인 유리잔이었다. 그녀는 잔 테두리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보고도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하, 하하. 내 정신 좀 봐. 컵을 아무데나 흘리고 다니면 어떡한담?”


그렇게 그녀는 간밤의 사태가 미쳐 날뛰는 호르몬이 벌인, 욕구불만에서 비롯된 한 겨울밤의 꿈이리라 단정 짓고 이만 사건을 종결키로 했다. 어차피 꿈인지 생시인지 대낮부터 본인에게 물어볼 만큼 그리 개방적인 주제도 아니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저희 어제 섹스하려던 거 맞나요?”) 안 돼! 상상만 해도 좋아 죽겠는지 안나가 몸을 마구 비틀었다. 이로써 평생 품고 가야할 흑역사가 하나 더 늘은 셈이었다.


이 상태로 과연 멀쩡히 일할 수 있을지, 안나는 엘사의 얼굴 볼 일이 슬슬 걱정되었다. 때문에 오늘이 마켓이 열리는 마지막 날이란 감상에 젖을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저 머릿속엔 오로지 출근하기 싫다는 번뇌만 가득할 뿐. 그러나 곧 기상 알람이 매정히 울려대며 철없는 주인을 닦달했고,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보낸 뒤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그래, 꿈일 뿐인데 뭐 어때! 물론 씁쓸한 길몽인지, 찜찜한 악몽인지 분간이 어렵긴 했다. 그럼에도 현실과는 먼 이야기일 뿐이라며 위안을 삼던 안나는 문을 나서자마자 목도한 실제 상황에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또 왜 여기 있어?’


안나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은 승용차 한 대가 그녀의 집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말 할 것도 없이 엘사의 차가 분명했다.


설마, 여기서 잔건가? 안나는 비밀 미션을 수행하는 자세로 살금살금 다가가 내부를 살폈다. 다행히(?) 차 안은 비어있었다. 마중도 아닌 것 같고, 대체 뭐지? 출근길에 닥친 무인불법주차사건을 두고 안나 홈즈가 입 언저리를 매만지며 고심하던 찰나, 예사롭지 않은 직감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굳이 차를 두고 가야할 이유라면, 혹시......


‘술에 취하기라도 했나?’


그럼 꿈이 아니었단 소리잖아! 안나는 꽥하고 소리를 지르려다 문득 궁금해졌다. 잠깐만, 집에는 어떻게 간 거래? (※정답: 뛰어감)


여하튼간에, 더 이상 외면할 곳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밤의 그 난리는 분명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말은 두 사람 간에 굉장한 한 페이지가 펼쳐지려다 도로 덮어진 것 또한 사실이란 뜻이었다. 안나가 살포시 혀를 깨물었다. 그래도 직전까지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잖아? 그러니 도망친 건 아니고, 분명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며 안나는 그리 생각키로 했다.


맞아, 사연 없는 무덤 없다고들 하잖아. 무덤...... 그래...... 확 그냥 묻어버릴까? 안나가 마켓에 도착할 쯤엔 사고는 살벌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머잖아 안나의 눈이 목표를 포착했다. 엘사는 팔러왔다기보단 팔려왔다는 말이 더 들어맞을 얼굴로 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마침 상대방도 안나를 발견했다. XX...... 엘사를 보자마자 전날의 키스를 떠올린 안나가 무의식적으로 욕설을 읊조렸다. 


안나는 엘사를 마주보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그 동안 엘사는 고양이 앞에 놓인 쥐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자, 안나가 먼저 ‘안녕(하니)?’이란 단어를 잇새로 뱉어냈다. 그에 비해 엘사는 미리 인사말이라도 적어둔 것 마냥 제 손바닥만 쳐다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안녕... 하세요?”


안녕하냐고? 기껏 고른 인사치곤 턱없이 일상적이었다. 차까지 내버리고 간 너는 어떤데? 안나가 어이없다는 듯이 콧김을 후욱 내뿜었다. 안나는 ‘꼴을 보니 집엔 잘 들어갔나 보네? 연락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더니.’와 ‘견인차 부를 거니까 알아서 해!’란 말을 어찌 부드럽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 마침 엘사가 대화를 시도해왔다.


“그게, 있잖아요......”
“......계속 해봐요.”
“......시, 시제품은 다 완성했어요?”


장난해? 잘 만들고 있던 사람한테 다짜고짜 입술 박치기한 게 누군데! 안나의 위아랫니가 갈리면서 까드득 소리를 냈다. 그렇게 버리고 가면, 어? 팬티만 입고 있던 내가 ‘아하, 이제 마법이 풀릴 시간이구나’ 하고 다시 작업할 줄 알았단 거야, 뭐야! 끓어오르는 열분은 안나의 입을 거치며 외려 싸늘하게 식어 나왔다.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간 저한테 죽을 줄 아세요.”


엘사는 그렇게 영원히 침묵했다.


그 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일을 제외하곤 어떤 소통도 없이 마지막 나날이 흘러갔다. 엘사에게 있어서는 지옥과도 다름없는 하루였다. 더 이상 안나가 끈질기게 들러붙는 인간들을 퇴치해주지도 않는데다가, 어쩌다 동선이 겹쳐 신체 일부분이 닿기라도 하면 곧장 서슬 퍼런 칼날이 도마 위에 내리꽂혔다. 엘사는 종종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북쪽 산을 향해 내달리고 싶단 충동에 사로잡혔으나, 이 곳에서마저 도망을 쳤다간 안나로부터 절연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으므로 그 때마다 얌전히 도주 의욕을 꺾어야 했다.


어쩌면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엘사는 본인이 무슨 일을 자초한 것인지 그 원인과 결과는 물론, 해결책까지도 분명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안나가 이해해 줄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말이 나왔으니 엘사는 슬쩍 눈길을 돌려 안나의 거동을 살폈다. 마침 초콜릿을 녹이고 있던 안나는 달콤한 향기에 얼굴빛이 한결 누그러졌다가, 엘사와 눈이 맞자마자 인상을 팍 구기곤 신경질적으로 주걱을 휘저어댔다.


적어도 지금 말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엘사가 재깍 꼬리를 내리고 모르는 척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그러나 앞에는 손님을 가장한 진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하루 종일 견뎌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엘사는 작게 성호를 그은 뒤, 부디 이 혹독한 근무 환경을 벗어날 구실이 제 발로 찾아와 주기를 신에게 간청했다. ...그것이 과연 구원일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일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고서.


“왜 당신이 초콜릿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마치 북극에서 펭귄을 만났다는 투였다. 그녀의 습성을 제법 파악했단 듯이 나오는 이 여성은 엘사에게 있어서도 구면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음식 같은 이름이었는데. 허니, 마ㄹ...... 마들렌?

 

“마카롱? 마지팬?”
“무슨 얘기죠?”
“아, 아니에요.”


이름을 생각해내는데 몰두한 터라, 엘사는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가 어떤 식으로 종말을 맞았는지 뒤늦게 떠올렸다. 하하, 외나무다리가 따로 없군. 궁지에 몰린 엘사는 안면몰수란 단어를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네요, 저는 엘사가 아니라 사만다거든요.”


아직 이쪽에서 이름을 꺼낸 적은 없는데...... 허니마린이 수상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깐만요, 저 분은 혹시?”


구석에 있던 안나의 존재를 발견하자마자, ‘또라이 전썸녀’를 보는 허니마린의 눈빛이 ‘부부사기단’을 보는 그것으로 바뀌었다. 하, 하. 알겠다. 떫은 웃음을 입가에 올리며 허니마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야 명확히 보이네요, 그 날의 진상이.”
“......정말요?”


어떻게? 나도 겨우 며칠 전에야 알았는데! 엘사는 진심으로 놀란 나머지, 모른 척 중이란 사실도 잊고 되물었다. 그러자 허니마린이 (‘뭐 이런 파렴치가 다 있지’라는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고, 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그럼 이제 저희 사이 앙금은......”
“다행이요? 불행히도 제가 두 분의 블록버스터 급 사랑싸움에 운 없이 휘말린 것이겠죠.”
“지금, 뭐... 무슨 싸움이라고요?”
“발뺌하실 작정인가요? 두 분이서 사랑을 실험대 위에 올려두었을 때, 마침 나타난 저를 ‘비온 뒤 땅이 굳는 효과’로써 이용하셨잖아요.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제가 알아서 물러날 수 있도록 당신에 대한 흑색선전까지도 마다하지 않으면서요.”
“제가 당신을 이용했다니요?”


엘사가 넋 나간 사람처럼 허니마린의 주장을 따라했다. 또다시 당사자만 모르는 삼각관계 폭로전이 펼쳐지려 하자 이번에도 관중들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머리끄댕이부터 잡고보란 코칭이 날아들은 것도 같았다. 엘사는 한 귀로 듣고 흘리려고 했다. 설마, 교양 있으신 분이 과연 그럴 리가...... 있을 수도 있지! 엘두부가 자신의 탐스런 두부를 양손으로 사수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변호했다.


“저,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결백해요!”
“안타깝군요, 제가 평소에 휴대용 거짓말 탐지기를 지참하진 않아서.”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나부터 들고 다녔을 거야! 엘사가 울분을 삭이며 생각했다.


“믿어주세요! 저는 지금으로부터 48시간 전만해도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몰랐다니까요?”
“그래요, 환승은커녕 드라이브 스루당한 제 기분을 당신께서 아실 리 없죠.”


상황이 고조될수록 수런대는 소리가 높아졌다. “글쎄, 저기 직원이 양다리를 걸쳤다나 봐요.”, “세상에, 잘난 사람 얼굴값 한다더니.”...... 맞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안나는 격세지감을 느끼며 추억에 잠겨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본인임을 기억해냈다. 잠깐만요! 초콜릿이 묻어나는 주걱을 든 채 문제의 원흉이 마운드에 올랐다.


“저, 죄송하지만, 손님? 진정하고 들어주세요. 이제와 말하자면, 사실 그땐 제가 헛소리를......”
“헛소리라 함은, 결국 모든 것이 한 편의 쇼였단 사실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절대 의도적으로 그 쪽 분들 데이트를 방해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모두 제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에요!”
“아하, 그런데 두 분은 해프닝에만 그친 것 같지 않네요. 이게 바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상황일까요? 당구로 비유하자면, 스톱 샷?”
“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네요....... 아냐, 미안해요! 죄송해요! 그럴 마음은 없었어요!”
“혹시 은혜를 원수로 갚는 편이신가요?”


엘사가 들릴락 말락한 크기로 핀잔을 놓았다.


“어제 일 담아둔 걸 이런 식으로 복수하는 거예요?”
“방금 건 실수였어요! .......뭐야, 어제 일? 그럼 여태 알면서도 시치미 뗐단 소리네?”
“계속 두 분께서 비밀 대화를 나누실 거면, 불청객은 이만 빠져야겠네요.”


험한 말을 늘어놓는 대신 허니마린은 자리를 피하는 방식을 택했다. 더 이상 엮이기조차 싫다는 표정이었다. 안 돼, 오명만 더 늘린 셈이잖아! 엘사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다 이내 결심한 듯이 안나에게 말했다.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따라가 봐도 될까요?”


어, 어. 그래...... 내심 죄책감이 들었던 안나가 얼떨결에 승낙했다. 그러자 엘사가 서둘러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고 안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내가 대신 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 괜한 오해만 불어나면 어쩌나 싶어 뒤따르려니 두 사람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안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 내가 없어도 충분할 거야. 안나가 생각했다. 대뜸 모르는 사람이 나서는 것보단, 아는 사람 쪽이 더 설득력 있을 테고.


‘거기다 저 둘은 ‘그냥’ 아는 사이도 아니니까.’


......기다려 봐! 안나의 머릿속에서 위기 경보가 울려댔다.


‘만약 오해가 잘 해결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두 사람은 다시 데이트하는 사이로 돌아가는 건가? 안나의 몹쓸 추리력이 다시금 발동했다. 잠깐만, 혹시 어제 떠났던 이유가..... 아직 미련을 못 놓고 있었던 거라면?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날 남겨두고 혼자 가버렸잖아?’


퍼즐이 착착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거, 나한테 하던 짓처럼 마켓 구경 핑계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렇게 긴장 풀게 만들고서, 분위기를 탔으니 집에 가자하곤...... 그래, 차라리 가! 가버려! 아주 내 인생에서 꺼져! 안나가 상상 이별 단계를 거치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탓에 지나가던 그 누구도 감히 말을 붙이려하지 않았다. 뒤이어 그녀의 망상이 다음 단계인 피의 복수로 진입하면서부터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도 눈치를 보며 슬슬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여인만이 도주 행렬을 거스르듯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주문대 앞에 선 그녀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 안나를 향해 질문했다.


“혹시 이곳에 엘사 라이언이란 사람이 있나요?”


하, 오늘 정말 무슨 날이야? 안나는 기가 찬 웃음을 뱉었다. 이 근처에서 엘사 라이언 구애인 모임이라도 열린 모양이었다. 나도 가입 대상자인지 한 번 물어나 볼까? 안나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글쎄, 번호표 뽑고 기다리셔야 하는데요.”


벌써 예약이 다 찼거든요. 안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덧붙였다. 그러나 눈앞의 여성은 환영이라고 볼 수 없는 대우에도 오히려 눈을 빛낼 따름이었다.


“그럼 그 사람이 여기 있다는 말씀이시죠?”


안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혹시 악질 스토커면 어떡하지? 어쨌건 ‘지금’ 이 곳에 없는 건 사실이니, 일단 주저리주저리 둘러대며 화제 전환을 시도하기로 했다. 


“아뇨, 보시다시피 여긴 저뿐인걸요. 참, 아깐 엘라이자라고 하셨나요?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네요. 영 생소해서 꼭 이국 이름같기도 하고. 그리고 참고로 드리는 말씀인데, 여긴 초콜릿을 취급하는 곳이랍니다. 온 김에 한 잔 어떠세요?”
“핫초콜릿이라니, 그리워라. 끼니 대용으로 자주 마셨었는데. 엘사가 특히나 즐겼더랬죠.”
“그 인간이 초콜릿을요? 그럴 리가!”


악! 안나는 급히 입구멍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넘친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미지의 여인은 당황한 안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괜찮아요, 말해도 돼요. 우린 서로 잘 아는 사이거든요. 그러니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자신을 이상하다고 소개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 하. 들켰네.”


......경찰 부를 거야! 안나가 핸드폰을 들어 긴급통화 화면으로 넘어가려하자, 여인은 다소 난처해하며 안나의 행동을 제지했다.


“하도 긴장하고 계셔서 그냥 농담 좀 해본 거예요.”
“그러신가요? 그런데 왜 당황하시는 거죠?”
“갑자기 경찰을 부른다고 했을 때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진정하고, 제가 누군지 알면 당신도 아마 절 경계하지 않을 거예요.”
“아하, 그래서 대체 누구시길래?”


언짢은 기분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채 안나가 대꾸했다. 뻔하지 뭐, 그래봤자 옛 동창 아님 전애인 둘 중 하나 아니겠어? 그러나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을 산산이 조각냈다.


“제 이름은 벨이고, 엘사의 전부인이에요.”



*



“그래서, 부부사기단이 제게 와서 할 얘기란 게 뭐죠?”
“부부라뇨,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미혼이었는데!”


엘사가 항의하자 허니마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단어를 정정했다.


“그럼 커플사기단께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행차하셨을까?”
“커플도 아니에요!”
“끝까지 사기단 입장은 고수하시려나보네요.”

“그게... 절대 고의가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설명하자면......”


엘사는 어떻게든 해명을 시도하려 했으나, 오해와 운명과 우연과 필연이 제멋대로 뒤엉킨 이 사태를 알아듣게 설명할 재간이 없어 애꿎은 손바닥만 쥐었다 폈다. 그런 엘사를 묵묵히 지켜보던 허니마린은 한숨을 내쉰 뒤, 감춰둔 심정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사실관계 따위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적어도 지금으로썬.”
“그래도, 오해는 풀어야......”
“하지만 목적이 얽히면 얘기는 다르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당신은 저와 잘 될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건... 어떤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잖아요?”


허니마린이 탓하는 눈길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는 초조한 마음으로 볼 안쪽을 잘근거렸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더 이상 얼버무리는 짓은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허니마린이 헛기침을 보내자, 제 발이 저렸던지 엘사의 입에서 익숙한 자동응답이 튀어나왔다.

 
“친구... 서로 친구로 지내는 건 어때요?”
“...배려 표현치고는 꽤나 식상하네요.”
“거절이라기보다, 사정이 조금 여의치 않은 지라......”
“그래요? 어쨌거나 물어봐주셨으니 대답은 돌려드릴게요. 물론 ‘노’예요. 전 당신들 커플 사이에 끼어 필요할 때마다 상담해주는 걱정 인형으로 남고 싶지 않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마치고 허니마린이 등을 돌려 떠나려 하자, 엘사가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는 결코 커플이......”
“그래도 시간문제잖아요? 말마따나 두 분도 단지 평생 친구로만 남는... 한에야......”
“.......”
“당신, 설마......”


여지껏 변명 내지는 비슷한 무언가라도 주절대던 엘사에게서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읽어 내고 허니마린의 표정이 일변했다. 아하, 그랬군. 허니마린이 질렸다는 어투로 중얼댔다.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어.”


엘사는 순간 ‘아무에게나 하고 다니는 말은 아니다’라고 할 뻔 했으나, 자기가 느끼기에도 여간 쓰레기같은 해명이었으므로 그냥 묵묵히 찌그러졌다.


“뭐, 적어도 한 명은 걸려든 것 같군요. 당신이 놓은 우정이란 덫에.”
“그건...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해결하려고......”
“해결이라, 좋은 의미로 들리진 않네요.”
 
엘사는 이번에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허니마린은 입술을 꽉 다문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마치 적선이라도 하는 양 엘사에게 건넸다. 그녀의 손이 움직인 순간, 알아서 뺨따귀를 대비하고 있던 엘사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자 눈에 띄게 당황했다.


“왜, 왜 이걸 제게 주시죠?”
“당신 말고 그 분을 위해 드리는 거예요. 아마 ‘공통 주제’를 통해 좋은 친구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 저는 단지 뒷담거리로 쓰일 뿐인가요?”
“글쎄, 장례식 정도는 가 드릴 의향이 있어요.”
“장례식이라뇨?”
“조만간 그 분과 ‘해결’을 보신다면서요?”


내 장례식 말하는 거였어? 갑자기 사망 선고를 받자 엘사는 할 일을 까먹은 햄스터처럼 굳어버렸다.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라고 받아넘기려는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허니마린이 진지하게 덧붙였다.


“농담 아니에요.”



**



위스키 봉봉 완결! 다음 화부터 위자료 봉봉이란 이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등등, 망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는 안나를 향해 벨이 위로를 던졌다.
 
“농담이에요.”


안나의 이마에 일자주름이 푸욱 파였다. 뭐 이런... 이런 인간이 다 있지? 안나는 와중에 ‘현부인’은 아니란 점을 위안 삼았던 자신이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벨이 갸륵한 눈길로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이라곤 할 순 없죠.”
“......네?”


안나의 심장이 또 한 번 내려앉았으나, 벨은 개의치 않고 본인의 주장을 이어갔다.


“뭐라 해야 하나, 오피스 와이프? 그런 거죠. 정확하게는 랩실 와이프라고 정의해두죠.”


이로써 안나는 눈앞의 여자가 엘사와 모종의 연이 닿아있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저 소름끼치는 농담 센스와 사람 들었다 놨다하는 화법! 분명해! 대체 원조가 누구일까, 머릿속으로 경험을 대조하는 그녀에게 전랩실와이프가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제가 맞게 찾아온 것 같군요.”
“네? 아니, 그게......”
“기다리다보면 알겠죠. 마침 휴가 중이라서, 여유가 조금 있거든요. 그동안 코코아라도 마시면 딱이겠네요. 한 잔 주시겠어요?”


안나의 안에서 오타쿠의 자아와 (‘어서 코코아랑 핫초콜릿을 똑같이 취급하는 사람한테 내어줄 음료 따윈 없다고 말해!’) 장사꾼의 자아가 (‘어딜, 하늘같은 고객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네X퀵이라 부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히 여겨!’) 격렬히 맞붙은 탓에, 엘사를 보호해야한다는 양심의 소리는 빠르게 잊혀져갔다. 결국 승을 거둔 쪽은 자본주의였다. 그러나 음료가 완성되기 직전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자부심 대신 자존심이 나선 승부였다.


과연 자신을 상대로 전어쩌구와이프라는 걸 잔뜩 과시하는 인간한테 곱게 제 새끼를 가져다 바쳐야하는가? 새 안건을 둘러싸고 가장 먼저 버저를 울린 건 강경반대파였다. ‘이건 저쪽이 걸어온 기싸움이야! 이대로 엘사도 넘겨받겠다는 속뜻이 담긴 행동이라고!’, 온건반대파는 주저하는 눈치였다. ‘뭐라구? 그럼 어떡하자는 건데? 보는 앞에서 다 마셔버리기라도 할까?’, 회의에 불참한 찬성파 대신 강경반대파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설마, 이미 돈은 받았잖아! 자, 잘 들어봐......’ 안나의 머릿속 메모장이 펼쳐지고 그 위에 시나리오가 채워졌다.




#S1 가게 안에서/ 아무도 안 볼 때


안나, 음료잔을 들고 구석진 곳으로 이동한다. 몸을 숨기는 동안 불안한 듯이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잔 속에 몰래 침을 뱉는다.




미쳤냐! 안나는 상상 속 메모장을 두 갈래로 부욱 찢었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누구 인생 쫑날 리 있어! 허나 상도덕 문제로 비록 기각되었어도, 기선제압(?)이 필요한 점은 그녀 역시도 공감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안나는 바로 다음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S2 가게 앞 테이블에서/ 조금 있다가


안나, 음료잔을 들고 꼿꼿한 걸음걸이로 벨이 앉은 테이블을 향한다. 상대가 다가오자, 벨은 읽던 책에서 눈을 떼고 안나를 흘깃 바라본다. 벨, 훗, 하는 웃음과 함께 고상한 손길로 책갈피를 끼운다.


벨  (안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고마워요, 이렇게 직접 가져다줘서.


안나, 그대로 벨의 시선을 흘려보내며 테이블에 음료잔을 사뿐히 내려놓는다.


안나  (의미심장한 미소로) 조심하세요. 저희가 좀, 뜨.겁.거.든.요.
벨  (한 손으로 잔을 쓸어내리며) 글쎄....... (가소롭다는 코웃음) 내가 느끼기엔 영 미지근한데.




안 돼! 안나의 역전패였다. 완벽한 중의적 표현이었건만!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일 안나가 아니었다. 어쨌든 식기 전에만 도착하면 될 거 아냐! 감독은 다시금 열의를 불태우며 재도전을 선언했다.




#S2 가게 앞 테이블에서/ 뜨거울 때 호다닥


안나, 음료가 완성되자마자 잔에 담고 곧장 벨이 앉은 테이블로 직행한다. 벨, 갑자기 사람이 다가오자, 놀라서 가슴 위에 오른손을 얹는다. 허나 벨은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이, 유연스런 동작으로 책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안나, 도발하는 눈길로 벨을 바라보며 잔을 내려둔다.


안나  (의미심장한 미소로) 조심하세요. 저희가 좀, 뜨.겁.거.든.요.
벨  (한 손으로 잔을 쓸어내리며) 글쎄, 내가 느끼기엔 영... 어맛, 어쩜 이리 뜨거울 수가! (깜짝 놀라며 잔을 엎는다)


잔에서 초콜릿이 흘러나와 테이블 위를 메운다. 벨은 급히 책을 들어 올리나, 이미 초콜릿에 당한 후다. 


안나  (혀를 끌끌 찬다) 저런,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안나, 여유 넘치는 손짓으로 초콜릿 위에 티슈를 한 장, 한 장 떨어뜨린다. 차차 초콜릿이 번지는 모습이 마치 굳은 피를 오버랩시킨다.


안나  (조롱하는 미소로) 그러게 소지품 간수는 잘 하셨어야죠.




너무 시비 거는 거 아닌가? 그러나 계속 시나리오나 만들다간 타임 오버로 두 번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에잇, 몰라! 안나는 될 대로 되란 정신으로 마지막 시나리오를 채택했다. 그녀의 비장한 발걸음에 맞춰 어디선가 스타워즈의 임페리얼 마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뭐라고?


이건 대본에 없었는데! 안나가 당황하여 소리의 근원지를 체크했다. 그 정체는 전부인인지 사기꾼인지 하는 사람한테 걸려온 전화였다. 핸드폰을 확인한 벨은 옆 강가를 아련한 눈길로 건너다보았다. 추측컨대 핸드폰을 던져버릴지, 자신이 뛰어들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접고 그녀가 통화를 수락했다.


“네, 교수님.”


교수님? 잔을 놓고 갈 틈을 찾지 못한 안나는 그대로 배경이 되어 통화 내용에 귀를 내주었다.


“......아뇨, 지금 밖에 나와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네, ......그래프 수정이요. ......통계 방식을 바꾸고 형식도 고치란 말씀이시죠? ......네. 그런데, 그 설정이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해서요...... 아, 급하시구나. 네, 그럼 바로 호텔로 돌아가서 수정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그리고 통화가 끝났다. 벨을 두 손으로 얼굴을 푹 감싼 채 미동없이 앉아있었다. 아까 휴가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일단 의문을 접고 안나는 불쌍한 대학원생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포장해드릴까요?”
“......그래주시겠어요?”


아쉽지만 재회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그녀가 얼굴에서 손을 떼자 그 안에는 다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나는 불과 30초도 안 되어 재정비를 마친 그녀의 멘탈에 내심 박수를 보냈다.


“참, 제가 들렀다는 말은 굳이 안 해도 돼요.”


어차피 내일도 오려고 했거든요. 벨이 말했다. 그녀는 마켓이 오늘까지만 열린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아마 그녀가 대학원생인 것과는 상관이 없겠으나, 그럼에도 안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연구실에 갇혀 사느라 시간 감각을 잃어버렸을지도 몰라. 안나가 생각했다.


“그게, 유감이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서요. 찾아오신대도 내일은 저희가 없을 거예요.”
“그래요? 으음, 그러면 대신 이렇게 전해주시겠어요?”


벨이 내일 정오, 광장 분수 앞으로 나와 달라고 부탁했고, 안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물으면 뭐라고 답해드릴까요?”
“익명의 누군가여도 괜찮아요.”
“익명의... 첫째 부인? 아님 둘째 부인?”


전혀 비밀 유지가 지켜지지 않는 안나의 작명을 듣고서 생각이 바뀌었는지, 벨이 말을 고쳤다.


“아뇨, 그냥 전약혼녀라고 해주세요.”
“알겠어요, 익명의 전...... 약혼녀라고요?!”


팔 안쪽이 세게 꼬집힌 톤으로 안나가 외쳤다. 아냐, 이것도 농담이겠지? 안나가 세 번은 안 속는다, 라는 눈으로 벨에게 진실을 요구했으나, 그녀는 미적지근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안나는 농담이었다는 말을 기대했지만 벨은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고서 그 길로 마켓을 떠났다.


또다시 스캔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알쏭달쏭한 의문만 남아있었다. 곧 닭 쫓던 개처럼 벨이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안나가 충격에서 헤어났다. 저 인간은 그래서 대체 누굴까? 엘사는 왜 아직도 안 올까? 그 여자랑 시시덕거리느라 늦는 걸까? 그런 인간들 속에 끼어버린 나는 또 뭘까? 그 때서야 안나는 지금 남 걱정이나 할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 전뭐시기들이 다녀간 게 뭐가 대수야?


따지고 보면 이쪽은 현재진행형이라구! 또다시 어젯밤을 생각하자니 화가 치밀었다. 돌아오면 기필코! 가만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안나가 악에 받쳐 외쳤다. 이......


“엘사 뻐킹 구설수 라이언!”
“......저, 저요?”


사자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늘의 염문 MVP께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캬악, 안나가 어깨를 뾰족하게 세우며 포효했다.


“왜 이제야 온 거예요!”
“죄, 죄송해요. 쫓아가다보니 멀리까지 와버려서......”
“그래, 다리 길어서 좋겠다!”


떠나기 전보다 한층 까칠한 반응이 돌아오자, 간신히 붙여놓은 엘사의 멘탈에 다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나요?”
“그것 말고도, 먼저 저한테 할 말이 있지 않아요?”


안나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쏘아붙였다. 이렇게 ‘해결’의 순간이 목전에 들이닥칠 줄은 미처 몰랐던 엘사는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안나가 참다 못해 입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엘사가 결정을 내렸다.


“오늘......”
“우리......”
“......먼저 말하세요.”


안나가 손짓했다. 엘사는 고개를 끄덕여 안나의 양보를 받아들였다.


“우리 얘기 좀 해요.”
“좋네요.”


안나가 허리에서 손을 떼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럼 오늘 저희 집으로 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안나의 눈빛이 맹수와 다를 바 없던 지라, 엘사는 차마 파자마 파티냐며 물을 수 없었다.



------


*참고: 벨은 딱히 엘사랑 사귄적이 업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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