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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Arens Of Sheffield 31~32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6.06 21:54:19
조회 114 추천 8 댓글 2



1~30






81.



"여기, 자네가 그 공룡이라 불리는 친구인가?"


패키지를 챙겨 게르다와 호텔을 빠져나온 랩터는 말쑥한 정장을 입고 밴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사내와 마주했다.


"그럼 넌 MI6쪽 참관인인가 본데, 동종업계 사람은 시계를 그렇게 차지 않거든."


참관인은 자신의 롤렉스 시계를 확인했다.


"우린 안쪽으로 보이게 찬다고, 먹물맛 담배자식아. 공룡이라고 부르지 마. 이름은 따로 있다고."


밴의 뒷문을 열자, 무장한 용병들이 일제히 양 옆으로 타고있었고, 가장 가까운 문쪽에 좌석이 두 개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름이 뭔데? 네 이름은 기밀사항이 아닐텐데, 우리측 데이터베이스에도 올라가 있을거 같고."


복면을 쓴 이름모를 팀원에게 패키지를 넘기려던 랩터의 몸이 불현듯 멈췄다.


"협박인가?"


"아니, 그냥 통성명이나 하자고, 게르다. 이 친구 믿을만 한거지?"


"한 때 날랐던 놈이야. 노조 은행 사건 기억나? 이 친구가 현장에서 뛰었다는 소문이 있어."


게르다가 랩터에 관한 소문에 대해 알려주었다. 랩터는 심기가 불편했지만, 절반의 사실과 절반의 거짓에 어쩔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에리얼이 조사를 부탁했고, 팀에 참가해서 오큰에게 심문을 가해야 했다. 말은 참관인이지만, 실상은 랩터의 임시 상관이나 다를 바 없었다.

"가스톤, 이게 내 성이야."


"이름은?"


"좆까, 알아서 찾아. 데이터베이스에 있다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팀원의 손을 잡고 밴에 탑승한 랩터 '가스톤'은 그들과 똑같이 하기 위해 패키지 가방에서 복면을 꺼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래서 네 이름은 뭔데?"


참관인의 손가락에 걸린 담배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땅바닥에 담배를 비벼 끈 참관인은 팀의 손을 잡고 밴에 오르며 말했다.


"유진 피츠허버트. 현재 내 신분이야. 잘 해보자고, '가스톤 좆까' 양반."






78.

[저기, 안나 씨, 내 말 듣고 있어요?]


열의에 찬 화이트의 열변이 안나에게 들어오냐고 그녀에게 묻는다면, 그녀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었다. 수술은 이두나 때와 마찬가지로 몸에 잠식된 검은 나뭇가지들을 상당수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원래 상처투성이었던 몸의 구석구석에 새로이 꿰메어진 자국들이 생겨났고, 안나는 이제 막 마취에서 깨어나 횡설수설한 상태였다.


[느에에....듣고있숩니다아..]


흐느적거리는 안나의 말에 화이트는 아하하 웃으며 그녀의 졸음에 웃음을 표했다.


[내가 볼 땐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기도하는 먹잇감'이 꾸준히 팔리고 있어, 전자책에서도 놀라운 판매부수를 자랑하고 있지, 벌써 20만 번이나 다운로드 되었어. 슬슬 베스트셀러의 이전인 스테디셀러에 접어들었단 소리와도 마찬가지지.]


"스터디는 공부 아뉘에영?"


[아니...진짜 취해도 단단히 취했는데...]


"화이트 씨? 책에 관련해서 저랑 애기하시면 될 것 같네요. 지금 안나가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인사불성이라서, 저랑 애기하시는 게 더 잘 풀릴 거예요."


옆에서 이두나가 안나를 향해 캠코더를 겨누며 화상통화가 진행중인 태블릿 스크린 속 화이트에게 말했다.


[안나 씨 어머님 되시는 분이죠? 사실 애기할 건 별로 없어요. 안나 씨의 소설이 이제 80만부를 팔았고, 해외에서 번역 및 정발 관련 계약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러 전화했었거든요. 한정판인 양장본도 금세 다 팔려서 추가분을 생산해야 한다... 이 정도쯤이면 될라나요.]


"화이트 씨라고 불러도 되죠? 어떤가요, 우리 안나가 쓴 소설이."


이두나가 "엄마가 스코프를 겨눈다아아아"라고 중얼거리는 안나를 촬영하며 화이트에게 물었다. 안나가 쓴 소설은 픽션이지만, 민감한 부분을 제거하고 상상력을 가미한 그들만의 팩트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초본을 마주했을 때, 너무 많아서 읽는 걸 포기해야 하나 싶었어요. 워낙 제 취향도 아닌 장르였고, 수익성이 있을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술술 읽혀지더라구요. 다 읽고 나서 감이 왔죠. 이건 물건이다! 하고 말이예요.]


나름 솔직한 감상에, 이두나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안나가 이두나의 팔을 붙잡고 어린애처럼 칭얼대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화이트도 웃음을 만개시켰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스테디셀러 작가의 솔직한 면을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론 귀여움도 엿보였다.


"안나가 정신 차리면 제가 전해 드릴게요. 지금은 전화를 할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네에... 그럼 안나 씨에게 연락 주라고 좀 전해 주세요. 아, 수술 축하드린다고도 전해주세요!]


일방적으로 끊어진 통화에도 이두나는 개의치 않고, 옆에서 웅얼대는 안나의 어린 모습을 캠코더에 담아 두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엔 능력의 부작용과 수술의 사실이 가족들에게 드러날 게 분명했다. 그 때의 우울한 분위기를 환기시킬 보험을 만들어야 했고, 캠코더의 영상이 대표적이었다. 평소라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을 안나의 무방비한 모습은 다른 아렌들에게도 감추어졌던 새로운 모습이 될 참일 것이 분명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오린 건 수술하기 전 안나를 이두나가 배웅할 때부터였다. 안나는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거짓말이 들통날 것에 대해 두려워했고, 캠코더 아이디어를 떠올려 막 수술에서 깨어난, 마취가 풀리지 않은 이두나를 촬영했다는 것이었다. 그 캠코더 영상도 이두나가 들고있는 캠코더에 같이 저장되어 있었다. 안나가 수술실로 들어간 뒤, 이두나는 안나가 찍은 자신을 영상으로 확인했다. 여전히 특유의 둥글게 만 자세를 취하면서도, 주변의 이불들을 끌어모아 경단처럼 웅크리고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잠꼬대는 애처로웠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일까, 영상 속의 이두나는 아그나르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아렌들의 이름을 부르며 훌쩍이고 있었다. 괜스레 영상을 회상하자니, 이두나는 슬픈 기분을 떨쳐내고자 안나의 침대 옆에 걸터않았다. 이두나의 수술 부위는 에상보다 빠르게 호전되어서 깁스를 풀어도 별 다른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에 다다랐다.


"헤헤...엄마아..."


팔에 깁스를 했음에도 안나는 이두나를 안아보려고 한껏 팔을 벌렸다. 펜스를 잠시 내린 이두나는 안나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한에서 안나에게 몸을 맡겼다.


"어디 가면 안대에... 나 무서워어..."


안나 또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안나도 이두나가 그랬던 것처럼 훌쩍이고 있었다. 이두나는 캠코더를 들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안나의 등을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엄만 여기 있을 거란다. 네 옆에, 숨이 다할 때까지, 언제까지나 너희들과 함께 있을게. 그러니 울지 마렴, 우리 귀여운 둘째 공주님?"


이두나가 조심스럽게 안나를 타일러도, 안나의 포옹은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되려 이두나의 체향을 큼큼거리며 맡으며 안도감을 찾는 듯 했다.


"나도...나도...어리광 부리고 싶었는데에..."


본심이 나왔다. 이것은 엘사도 같은 처지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엘리사, 멜리사, 그리고 한나는 자연스럽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지만, 엘사와 안나는 달랐다. 전쟁의 화마에서 고아가 되었고, 모종의 이유로 10년간 생사도 불명확한 상태로 떨어져 각자의 삶을 지냈다.


"나만 여우 없어어...."


뜬금없는 칭얼거림도 이두나는 포용할 수 있었다. 진정한 딸, 진정한 엄마였으니 수용할 수 있다. 한편으론 이두나는 안나에게서 엘사의 모습도 비쳐보였다. 지금은 차분한 성격을 가진 엘사였지만, 10년 전의 엘사는 그러지 않았다. 안나가 엘사의 땋은 머리를 잡고 말이라고 소리칠 때, 아파하면서도 안나와 놀아주던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이젠 존재하지 않았다. 그 존재감을 엘리사와 멜리사가 대신 메꾸어 주어도, 본질은 다르기에, 이두나는 미세한 이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둘 다 엘사의 딸이 아닐까.'


두 개체, 두 아이 모두 엘사의 DNA를 조작시켜 태어났기에, 이두나는 한 가지의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사와 멜리사와 엘사와의 관계는, 정말로 언니와 동생의 관계가 맞을까 싶은가 하는, 혹자의 면에서 보면 그리 중요치 않은 사정이었다.


"칭얼대서 미안해여어..."


이어지던 생각을 잘라낸 건 마취가 조금 깨 정신이 돌아온 안나의 사과였다.


"내가...내가 의젓해야 하는데에..."


풀리는 마취에 찾아오는 고통을 윽윽 억누르며 안나는 눈물로 얼룩진 고해를 이두나에게 성사했다.


"아냐, 우리 딸. 괜찮아. 아무리 시간이 지난들..."


10년의 시간이 지난들...


"넌 언제나 어리단다. 엘사도 어리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내 눈엔 다, 어려 보이니까, 언제든지 기대렴. 엄마는 두 팔 벌려 환영..."


'이 표현이 아닌 걸까'


이두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안나가 이두나의 어깨에 대고 끙끙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언제든지 기대렴."


이두나는 말끝을 바꿔, 너스콜을 누르며 안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79.


통칭 '와인'은 자신이 대통령이 될 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최근 발견한 광산에서 천문학적인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되었고, 민주적인 정부라는 곳은 채굴권을 모조리 중국계 기업에 팔아넘기려는, 일대일로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었다. 야당에 속한 와인은 그런 소식을 눈과 귀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서, 나라가 통째로 다른 나라에게 잠식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때마침, 미국의 CIA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잭 프로스트란 협상가를 내세워 합리적인 채굴권의 일부를 양도하기로 협상을 마치면서, 말 그대로 와인을 걸친 그들은 추가적으로 보츠와나에 더욱 민주적인 기반을 다지기 위한 인프라 건설 협정을 세울 수도 있다고 잭은 넌지시 와인에게 말했고, 다음 정권은 당신을 기반으로 한 정부가 출범하도록 밀어주겠다는, 잭을 위시한 미국의 입김이 있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니.'


독재할 마음은 전혀 없었고, 대통령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거사는 보츠와나 사영언론에 일대일로 찌라시를 퍼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현 정부를 국민의 등을 지게 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최대한 민주적인 쿠데타를 일으킬 심산이었다. 잭도, 그를 따르는 카산드라란 요원도 뜻을 같이했기에, 그의 앞날에는 민주적인 나라의 애국자로 남을 자신의 화려한 미래와 역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난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과는 다르게 살 거야. 채굴한 다이아몬드를 국민들에게 나눠 주겠어. 미국의 지원으로 SOC(운수(통신·용수), 그리고 전력 같은 동력 및 공중위생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는 여러 가지 공공시설을 말한다.)를 강화시켜 국민들의 편의를 생각하겠어. 내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할 거야.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와인의 다리를 궤뚫었다. 와인잔을 잡고 있던 그의 손과 몸이 의자에서 미끄러지며 나동그라졌고, 와인잔은 그의 비명에 맞춰 시끄럽게 깨졌다. 진홍색 와인과 다리에서 흐르는 검붉은 피는 무엇이 피고 와인인지 모를 정도로 섞여들었다.


"무슨...."


그의 신음소리에 답하듯 어둠 속에서 뚜벅, 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그에게 대답했다. 한 사람이 아닌, 머릿속으로 추산해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그의 펜트하우스 안에 있었다. '그 많은 경호원들은 어떻게 된 거지?'라는 물음은 머릿속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모두 죽었거나, 매수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계획을 꾸미고 있더군."


잭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카산드라의 목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고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영상에서 들어본 목소리, 테러를 자행한다는 목소리, 국가에 있어 위험한 테러리스트의 것이었다.


"세미...예르."


"내 이름을 알고 있나?"


그의 얼굴은 그림자의 장막에 걸쳐 보이지 않았다. 다만, 권총 끝의 검은 원통형 소음기가 조명 끝에 은은히 비춰보일 뿐이었다.


"알고 있지. 테러리스트...개자식."


"그리고 내가 곧 이 나라에 테러를 빙자한 내전을 일으킬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겠군. 미국과의 교섭이 흔들리게 말이야."


"절대 안 돼. 절대로...."


와인이 세미예르의 다리를 힘겹게 잡았지만, 세미예르는 거칠게 뿌리쳤다. 와인의 몸이 중심을 잃고 다시금 쓰러졌다. 세미예르는 그 사이에, 멀쩡한 다른 다리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죽일거면 그냥 죽여! 이 좆만한 새끼야."


"아니, 곧바로 죽이지 않을거야. 내 고용주께서 널... 메세지로 삼기로 하셨거든."


고용주? 세미예르란 자가 고용되었다고?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와인의 둔해진 머릿속에서도 한 가지 추론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세미예르보다 더 큰 악이 존재한다.'


이것을 즉시 잭에게 알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정장 안쪽 주머니에 넣어진 휴대폰을 꺼내려면 동작을 취해야 하지만, 그러기 전에 그의 머리에 구멍이 뚫릴 예정이었다.



"페르세우스께서 안부 전하라신다."

그 말을 끝으로, 세미예르는 와인의 머리에 권총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79.5



예, 녹화를 진행했습니다. 메세지를 전할 겁니다. CIA 놈들도 긴장할 겁니다.
네... 조만간 차량 테러를 일으킬 겁니다. 미군 군복 소속으로요. 중국 측에도 정보를 흘렸으니, 찌에 걸린 물고기마냥 덥썩 물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로 번지는 걸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조만간 아파치는 자살할 겁니다.
코르디스 디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CIA 중국 상하이 지부장인 는 올해로 10년차에 접어드는 노련한 뒷방 늙은이가 아니었다. 중국에 산개한 500여명의 블랙 요원들을 지휘하는 그인 만큼 매일 아침 중국 뉴스를 접하면서 미국에 대한 비방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체크해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수위가 강해지면,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핸들러와 컷아웃에게 전화를 걸어 요원들의 활동 범위를 축소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지금 즉시 행동해야 할 차례가 왔음을, 그는 평소라면 찾아올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환구시보(1993년 1월에 창간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신문이다. 인민일보의 중국 버전으로 나오는 자매지이다.) 의 첫 장을 읽어넘겼다.




[제2의 contradiction, 제 2의 contra diction]
보츠와나에서 내전이 발발하기 시작했다. 야당 내에서 입지가 컸던 '와인' 샌들러가 의문의 피습을 당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그를 지지하던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부의 음모라고 비난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미국이 뒤에서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현지 특파원의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의 일부가 미국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진을 증거 및 자료로 내세우며 가능성을 가중시켰고, 와인의 저택에서 CIA와 결탁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들을 대량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씨발, 미친 새끼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자신의 관할은 중국이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사정을 자세히 알리는 만무했다. 신문 속에서도 거짓이 깃들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의 젖을 이제 막 물린 공산주의의 우량아는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고, 공리주의를 우선시한다. 진실이 나중에 밝혀지든, 그것을 최대한 숨기며 아닌 척을 하는게 중국의 특징이었다.


"천안문 사태처럼 말이지. 씨발새끼들, 씨발."



그의 입에서 연신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의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상하이라면 자동차의 소음이 주를 이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귓가엔 차량의 소리보다, 인민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창가로 다가가자, 그곳에는 인파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이폰을 들고 일어나 서양 브랜드가 있는 차량을 부수고, 운전자들을 끌어내 밟는다. 피켓은 이제 막 붉은 페인트로 칠한 듯 피를 연상케 하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미제는 나가라]


[일대일로를 방해하지마라]


[더러운 자본주의 돼지놈들]


"씨발,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린데."


순간 충동적으로 유리창을 발로 차려고 한 그였지만, 그곳은 고층이었고, CIA의 건물은 중국 정부도 모를만큼 감춰져 있다. CIA의 지부장은 대사관의 대사가 아닌, 비밀스러운 존재여야 했다. 존재를 들켰다가는 그날부로 그의 몸뚱이는 지부 건물에서 끌어내려져 시위대의 발길에 짓밟혀 곤죽이 될 예정이었다.


'바스티유의 로네 사령관처럼 말이지.'


지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유리창을 커튼으로 가렸다. 그리고 서방 언론의 의사도 확인해 보기로 한 그는, CNN, 블룸버그, 뉴욕타임즈 등등 유명한 언론들에서도조차 보츠와나의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증거에 대한 논설들이 온라인 기사의 1면을 장식하는 희귀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좌파건 우파건, 제 2의 콘트라 사건에 비견될 만한 일에는 사상과 언론을 가리지 않고 정부를 비난하는 어조로 가득했다. 지부장은 즉시 전화의 핫라인 버튼을 눌러 국장인 메가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메가라가 지부장의 전화를 답하는 일은 없었다.


시위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홍콩의 봄이 실패로 끝난 지금, 중국의 겨울이 성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81.



샐리맨더는 국내적 갈등 상황에서 작전, 훈련, 지원 성격의 군대와 보안 용역 제공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를 위해서만 , 그리고 각종 국제 규범을 준수하고 주네브 협정에 의거하여 활동한다.
국제 테러단체인 보코 하람의 망명자가 최근 이슈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 귀사는 망명자를 구출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인력 및 관련 용역과 장비를 제공하기로 약정한다.
1.망명자를 구출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의 카두나에서 '칼드윈' 작전을 실행한다.
2.망명자의 은신처에서 추가적인 SSE를 실행한다.
3.구출 이후에는 블랙호크 헬기가 망명자를 카두나에서 빼내 카치나의 안전가옥으로 이송할 것임.
4.'정상적인' 심문 이후 망명자의 의사에 따라 미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가입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것임.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망명자 모하메드 카리프는 아래에 열거하는 필요한 모든 용역을 제공받기 위해 샐리맨더의 용역을 계약, 이용하는 데 동의한다.
계약 기간
2021-5-31~당해년도 6-30
*1차 대금은 상기 2의 조건을 만족했을 때의 지급할 것이며, 2차 대금은 상기 4의 조건을 만족한 뒤 지급할 것으로 합의함.

작전 승인 및 현장 책임자: 필립스 '헤라클레스' 오버맨.




82.


"SSE가 끝났습니다."


카키색 옵스코어 헬멧과 플레이트 캐리어를 착용한, AK계열의 총기를 들고있는 사내가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블랙호크에서 시가를 피우고 있는 필립스에게 보고했다.


"수고했어, 미첼, 가방은 몇개나 나왔지?"


"총 13개입니다. 그래도 실을 공간은 충분하고, 여차하면 안고 타서 쿠션 대용으로 쓸수도 있겠죠. 이거 완전 노다집니다?"


미첼이란 대원이 어깨를 으쓱이며 필립스와 마주앉은 흑인의 사내를 흘끔 쳐다보았다.


"저 사내에 대한 정보는 분석해봐야 나오겠지만요."


"일단 우리가 얻은 정보는 CIA와의 계약으로 인해 그쪽 분석팀과 ASIC, 그리고 레드퀸 에리얼의 인포카르텔이 해독할 거야. 우리 일은 이제 이 카두나를 떠나서 우리 안전가옥으로 이동, 이자를 심문하는 일만 남았어."


"설마 추적이 들어올까요?"


검은 AK의 총몸을 엄지로 살살 문질러 긴장을 해소하려는듯 미첼이 필립스에게 물었다.


"물론 오겠지. 하지만 보코 하람은 보코 하람일 뿐이야. 우린 더 빠르게, 더 높이..."


"그들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카리프가 입을 열었다.


"내 머릿속에 담긴 정보에 의하면 절대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이말입니다."


"뭐, 스메르치 미사일이라도 날아옵니까?"


시가를 뻑뻑 피우는 필립스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에 카리프는 연신 기침을 했다. 시가를 입에서 뺀 그는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얘기를 조금 풀어보자면, 그들은 각국 정보기관에 사람을 심어두었습니다. 아니, 테러기관에도 그들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그자를 색출해 처형을 시켰지만, 어디선가 또 나타나 우리의 정보를 뽑아내려 하더군요."


"당신들의 처형이라면 베스트고어에 널리고도 널렸는데."


미첼이 한소리 툭 내뱉었다. 그의 말을 의식하듯, 이제는 옅어진 시가의 내음 속에서 카리프의 헛기침이 들리면서 블랙호크의 로터가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여길 뜨고 얘기하도록 합시다. 한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군요."


고개를 저으며 카리프가 말하자, 미첼이 필립스의 옆에 앉아 파일럿에게 상승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이내 자료와 샐리맨더의 병력을 태운 네 대의 블랙호크는 카두나의 은신처를 날아올랐다.


카리프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추적하다가 샐리맨더의 용역에게 죽음을 직면한 수많은 보코 하람들의 시체와 테크니컬을 남긴채로.






83.



[어떡해어떡해!]


한나는 잠들어 있지만, 한나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졌다. 이제 자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해도 몸에서 깨어나지 않아 찰박찰박 뛰는 물사람 한나를 두고 붉은 여우 엘산나는 새로운 장난감이 나타났다는양 캬루루룽 거리며 코를 들이밀며 꼬리를 촐랑거렸다. 그 꼬리에 얼음사람 멜리사가 맞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왜 때려!]


씩씩대는 멜리사는 괜스레 뻥 하고 엘산나의 뒷다리를 찼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엘리사, 멜리사, 방법 없어? 너희들이라면 가능하잖아?]


[가능한데요... 그게 좀 추상적이어서요....]


엘리사가 말끝을 흐렸다. 엘사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엘리사를 이해했다. 아무리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개체였지만 본질은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추상적이건 구체적이건 좋으니까, 아무말이라도 해봐!]


찰박거리며 물사람 한나가 눈사람 엘리사의 팔을 잡고 흔들거렸다. 아무리 작아져도 현실의 키와 몸무게가 반영된 탓일까, 물사람 한나는 눈사람 엘리사와 얼음사람 멜리사보다 머리 두개는 더 컸다. 마치 토이스토리의 장난감을 눈앞에 보는 듯한 환상을 엘사는 무심코 느끼면서, 주어진 상황에 진지해지기로 했다.


"그래, 얘들아. 한나는 이게 처음이라 무서운 거야. 너희들도 무서운 건 싫잖니. 그렇지?"


[그렇죠오... 밤마다 침대 밑에서 괴물이 나오지 않을까...]


[난 내 사탕 빼먹으려는 '한나'라는 괴물이 더 무섭걸랑. 헤헤.]


얼음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았지만, 창밖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가로등빛의 실루엣에 멜리사의 짓궃은 미소가 드러났다.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해보세요. 그리고 속으로 '자는거야.'를 세 번 정도 외치는 거예요. 자... 제가 보여드릴게요.]


눈사람 엘리사가 물사람 한나의 손을 꼭 쥐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더니, 이내 눈사람의 형체가 가루처럼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엘리사?"


엘사가 침실을 향해 나지막이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부시럭거리며 이불 헤집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졸린 눈을 비비며 푸른 잠옷과 곰돌이 베개를 안고 나타난 엘리사가 천천히 거실로 다가왔다.


"이렇게...하면 돼요."


[헤헹. 저거 거짓말인데, 난 저렇게 안하고 깨거든.]


시실거리며 멜리사가 웃었다.


"엘산나, 잠시만."


엘리사가 잠시 베개를 한나의 배위에 올려놓고는, 캐르릉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산나를 안아들고 주둥이를 얼음사람 멜리사로 향하게 했다. 엘산나는 엘리사의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얼음사람 멜리사를 향해 혀를 내밀고 쓰윽 한번 핥았다.


[으이잇, 간지러워!]


멜리사가 도도도 발소리를 내며 테이블 한 켠으로 도망갔고, 엘리사가 꺄르륵 웃었다. 안겨 있는 엘산나도 캐루룽 울으며 웃음소리를 냈다.


[...안돼는데. 심장 터질 것 같아. 아, 터질 심장은 저기 있구나.]


한쪽에선 풀이 죽은 채로 고개가 숙여진 한나가 있었다. 엘리사와 얼음사람 멜리사가 장난을 칠 동안 수 번 심호흡과 자기 최면을 실행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물사람 한나의 형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도리어 실루엣에 불과했던 형체가 조금씩 뚜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으... 무슨 소울도 아니고, 난 22번이 아니란 말이야. 멜리사, 네 방법은 뭐야?]


[내 방법? 아주 단순한데, 난 매번 내 침대에 꼬물거리며 올라가서, 내 얼굴에 이 몸을 다이빙시켜. 그럼 퐁당! 하고 정신이 몸으로 돌아오더라구.]


"...얼음이 퐁당 소리를 낸다는 게 이상하지 안니, 멜리사?"


[아냐, 정밀이야, 진짜라구! 진짜 맞잖아, 엘리사, 그렇지?]


얼음사람 멜리사가 방방 뛰며 엘리사에게 하소연하고, 엘리사는 흐흐흣 웃음으로 답했다.


"맞아요. 멜리사는 늘 그런 식으로 정신을 깨웠어요. 언니, 한번 멜리사를 믿어 봐요."


[엘리사 네 말이면 믿을 만 한데... 둘이 장난치는 거 없기다. 엘사 언니, 나 좀 높이 들어올려 줘.]


"다이빙이라도 하려고?"


[당연하지! 지금 할 수 있는 게 달리 뭐가 있겠어?]


물사람 한나가 찰박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자, 엘사는 하는 수 없이 물사람 한나를 손에 올려놓고 천장을 향해 쭉 뻗었다.


[아우....좀 무섭네.]


"사람이 공포를 느낀다는 11미터를 지금 키로 치면.... 한 1미터 정도는 되려나?"


[아, 아무튼 뛴다? 진짜 뛴다?]


물사람 한나가 확인차 엘사에게 물었다. 그 사이에 얼음사람 멜리사는 엘리사의 손바닥 위에서 엘사의 손 위에서 다이빙 자세를 취하려는 한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두려워 하지마!]


얼음사람 멜리사의 외침에, 한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엘사의 손바닥 위에서 펄쩍 몸을 던졌다. 1초도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다지 많은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확히 이마에 떨어졌지만, 마치 젤리처럼 통 소리와 함께 물사람 한나의 몸이 튕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추욱 늘어진 물사람 한나를 조심스럽게 엘사가 들어올리자, 끅끅대며 훌쩍이는 한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영원히 엄지공주처럼 사는 거 아냐? 아니...엄지보단 더 크잖아...]


"한나, 일단 진정해. 방법이 있을 거야. 아이들의 방법과는 다른, 너만의 방식이 존재할 거야."


엘사가 한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하지만 한나의 훌쩍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엘리사의 손에서 폴짝 뛰어내린 멜리사가 한나가 주저앉은 테이블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나는 됐었는데...]


멜리사가 주저앉아 훌쩍이는 물사람 한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물사람 한나는 얼음사람 멜리사를 부둥켜 안고 아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못 돌아가면 어떡해...]


"일단은..."


엘사가 말을 이으려다 잠시 멈췄다. 앞으로도 안나와 이두나와의 연락을 계속 취해야 할 테고, 언제까지나 한나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아침이 될 때까지는. 만약 그때도 이런 상태라면... 벨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방법이 있는지 여쭤보자. 꼬마 공주님들은 어서 가서 자렴. 언니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엘사가 얼음사람 멜리사의 몸을 들고 엘리사의 손에 얹으며 말했다.


[만약에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꼭 깨워줘야 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맞아요... 꼭 깨워주셔야 해요."


으하암, 하품을 하는 엘리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엘사는 아이들을 침실로 보냈다. 깨루룽? 엘산나가 훌쩍이는 물사람 한나를 보고 호기심이 가득한, 그리고 무언가 연민이 그득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저리 가... 넌 이해 못할거야... 바보 여우...]


한나가 바람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엘사는 안절부절 못하는 엘산나를 끌어안고, 물사람 한나를 손바닥 위에 놓으며 소파에 앉은 채로 조용히 새벽을 기다렸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물사람 한나가 사라지고, 진짜 한나가 깨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84.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스메르치가 아니어도, 어디선가 날아온 유도 미사일을 플레어를 퍼뜨리며 회피 기동을 한 블랙호크들이었지만, 이내 수많은 유도 미사일들이 날아와 추락한 블랙호크에서 카리프를 겨우 끌어낸 필립스는 죽은 대원의 손에서 빼낸 AK와 탄창 몇 개를 플레이트 캐리어에 쑤셔넣으며 어두운 숲 속으로 몸을 피했다. 그의 몸은 아드레날린이 가득 들어있는 드럼통에 몇 번이고 빠졌다 나온 것처럼 온 몸의 신경이 쿵쾅거렸고, 제대로 된 상황파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12시 방향! 테크니컬 두 대!"


노을과 밤이 교차하는 세상 속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총의 팝콘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졌고, 그 사이를 육중한 기관총 소리가 소음을 묻어버렸다.


"여긴 6-2, 6-2, 현재 포위당할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장 지원 바란다!"


필립스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6-2, 현재 10 마이크 지점에서 추가 호위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 버틸 수 있겠나?]


"조금 있으면 우리 모두 다 뒤질 것 같다고!"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 최대한 버티도록, 크리스탈, 아웃.]


가까이서 들려오는, 필시 영어는 아닌 듯한 언어를 쓰는 자에게 한 손으로 AK를 난사한 필립스는 피를 흘리는 카리프를 질질 끌고 숲 속에 도착했다.


"숲 속으로!"


필립스가 야시경을 작동시키며 AK의 레일에 달린 적외선 레이저를 다섯 바퀴 휘둘렀다. 그러자 추락한 블랙호크들의 주위에 생존해 싸우던 병력들이 그의 지시에 서로를 엄호해가며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의무병! 칼리! 이리로 빨리!"


레이저의 표시에 따라 의무병이 동료들이 만드는 탄막을 방패삼아 필립스와 카리프가 있는 곳으로 넘어지듯 뛰어들어왔다.


"부상이 심각한 것 같아. 어때 보여?"


"미친, 플레이트 캐리어만 교묘하게 총알이 박혔는데요? 저격이라도 당한 모양이예요."


칼리의 말대로 카리프의 양 어깨와 허벅지에 총알이 하나씩 박혀 있었고,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씨, 씨발...이게뭐야."


과다출혈로 죽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카리프의 입은 움직여지고 있었다. 10분 내로 호위 병력이 도착하지 않으면 카리프는 이대로 죽을 운명에 봉착하고 만다. 필립스는 하는 수 없이 계약서의 3과 4의 과정 사이의 활동을 카리프에게 실행하기로 했다.


"카리프, 최대한 살려보겠는데, 네가 말해줘야 할 게 있어."


"씨발, 저격수다! 3시 방향! 2명!"


불행한 소식이 들려옴에도 필립스는 특유의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자신이 죽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바디캠으로 보고 있을 샐리맨더 임원진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도대체 뭐지? 서방에 경고해야 한다는 그 비밀이 뭐냐고!"


"나, 나부터 먼저 살려...아악!"


갑자기 그의 어깨 너머로 지혈제 주사의 내용물이 밀려 들어왔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그의 어깨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을 것이고, 그의 정신 또한 한 순간 아늑해졌을 것이다.


"지금 살리고 있잖아. 아, 씨발."


바로 필립스의 머리 위로 총알이 스쳐 지나갔고, 그가 몸을 움찔 하며 고개를 더더욱 숙였다. 저격수까지 동원된 이상, 지금 병력으론 살아남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소음의 발사음도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저격총에 맞았거나, 탄창이 부족해 권총으로 응사하고 있거나 그 중 하나일 것이리라.


"더, 더럽게..아흑.."


"빨리 말해, 이러다 모두 죽을지도 몰라. 적어도 메세지가 뭔지는 말해 줘야지! 키워드라도 좋으니까."


"아 알겠소, 얘기할 테니... 모르핀, 모르피인!"


카리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팔에 칼리의 모르핀 주사가 꽂혀졌다.


"맛이 간 상태에서 얼마나 말할 수 있나 보자고, 카리프. 어서 말해, 너희가 감추고 있던 비밀이 뭐지?"


카리프는 잠시 숨을 헐떡이다가, 필립스의 멱살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가 우리 보코 하람의 동지들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지원하고 있소,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 그리고 북아프리카까지 전쟁이 확산될 거요."


"씨발, 그건 또 무슨 엿같은 소리야! 남아공 내전도 개빡쎄게 끝냈는데!"


"남아공, 남아공...그것도 그 자의 작품이오. 그의 총구는 이제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으로 향할 거요. 온 유럽이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지도 모른단 말이오..."



필립스의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모르핀에 취하거나, 과다 출혈로 죽어가거나 둘 중 하나인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칼리는 다른 상처에도 지혈 주사를 억지로 밀어넣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가 누군데, 빨리 말해, 한 시가 급하다고, 계속 돌려 말할 때마다 우리 팀이 죽어가고 있는 거 안 보여? 네 입에, 우리 팀의 생명이 달려 있어. 어서 말해!"


"저격수 한 명 처리!"


간신히 기쁜 소식이 어둠을 타고 흘러나왔다. 씨발, 듣던 중 다행이네. 적어도 팀의 전멸 속도는 낮아지겠어.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카리프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


"세미예르요, 그리고 그 자 뒤에는.... 아파치, 그리고..."


카리프는 거의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페르세우...스."



그 말을 끝으로 카리프의 의식이 끊겼고, 목과 손목의 맥을 확인한 칼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망했습니다."


씨발, 속으로 욕을 뇌까린 필립스는 자신의 바디캠에 카리프의 진술이 제대로 녹화되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전쟁의 확대, 유럽을 향한 테러, 세미예르, 그리고 아파치와 페르세우스. 최대한 머릿속에 넣어 기억한 필립스는 칼리에게 나무 뒤로 숨으라 명령한 다음, 자신도 나무 밑둥에 숨어 호위 병력이 올 때까지 숨어 있기로 했다.



아파치와 페르세우스.



세미예르의 배후에 있는 자들이니 만큼, 필립스는 CIA와의 접촉이 불가피해졌다. 임원진들은 필립스와 메가라의 커넥션을 모르기에 한시라도 연락을 취해야 했다.

그녀가 말한 페르세우스가, 카리프가 언급했던 페르세우스가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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