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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위크] Feel the summer 1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7.23 03:35:21
조회 854 추천 17 댓글 5




최근에 좋아하는 keshi의 실화를 조금 비틀었어!





"너는 커티스 음대를 갈거지?"


수업 시작 전의 점심시간.

기타케이스를 옆에 내려두며 맞은편에 앉은 안나는 나에게 대뜸 물었다.

근래에 자주 묻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안나는 그곳에 가지 못할거란 것도 알고 있다.

또한 그 일로 아주 작디 작은 상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으, 응...아마도?"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하잖아."


나는 무얼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안나는 아무렇지 않게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본다.

우리의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잘 모르겠어. 사실 합격률도 너무 낮고...나 같은 애가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든."


나는 나를 내려깎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이게 정답은 아닌거 같은데도 나름 안나를 위로하려는 의미다.


"공부 좀 열심히 잘해볼까. 넌 SAT 만점이잖아."


"......"


"피아노에도 천재적이고. 그냥 음악적인 재능이 충만하지."


".......뭘."


화제 좀 바꾸고 싶어!

이렇지가 않았는데.

안나는 비꼬는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외롭고 괴로워 할까.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입 밖에 낼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 앞에 정해진 이야기의 결말을 인정하는거잖아.

마치 스포일러를 당해버리는 느낌일거야.


"아, 머리띠 내려왔다."


"뭐?"


안나는 내 금발을 빙글 두른 흰색 머리띠를 다시 잡아줬다.

안나가 잡아주는 머리띠의 감각으로도 알 수 있었던건.

내 머리띠는 전혀 흐트러진게 없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내가 딱 알맞게 두는 정수리 부근 그 위치에 있었고 안나가 만져주는건 거기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칠칠맞게 다닌다니까. 영재여도 차림새는 엉망이네 이런 소리 들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그런게 어딨어."


"진짜야. 너무 잘난 사람 틈바구니에서는 이런게 흉볼 거리라고."


안나는 일상을 되돌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안나는 책상 옆에 기대두었던 자기 기타를 꺼냈다.

기타를 무릎에 받치고 그 다음에는 종이와 팬도.

오선지도 아니고 그냥 A4 용지 몇 장이다.

거기에는 안나가 마음대로 휘적댄 코드표가 있었다.

가끔 오선지도 있는데 대충 줄을 찍찍 그어두고 점점점 찍어둔 것들이다.

그런 정리되지 않은 안나의 음악을 내가 똑바로 다시 수정해준다.

안나가 막무가내로 찍어내면 그걸 잘 가다듬는 편집자 정도?


"악상이 또 떠오른게 있어. 아직은 미완성이긴 한데 너라면 더 기발하게 만들거라 생각해."


"들려줘봐."


"으흠, 가사는...여름을 느끼고 있어. 아니지. 여름 같아. 스으읍, 뭐가 더 서정적일까?"


"*스캣을 해봐."


*무의미한 음절로 가사를 대신해 흥얼거리는것.


"좋아. 한다?"


안나는 간단한 4마디 정도의 기타 러프를 들려준다.

특별한 테크닉 없이 아르페지오로 울리는 선율은 안나 스타일답게 심플하다.

안나는 보기에는 엄청나게 거칠지만 내면은 부드러워.

그런게 음악을 할 때는 엄청나게 도드라져서 말도 안될만큼 깜작 놀랄 때가 있다.

순수한 소녀가 되어서 눈을 감고 있는 안나는 내가 언젠가 상상하던 음악을 부르는 요정 같았다.

흥얼거리는 스캣에 나름대로 생각하는 가사를 공기 반으로 불렀다.

아직 미완성인 곡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한 번더 4마디 남짓을 반복했다.

짧게만 듣고도 나는 얼굴 가득 미소지었다.


"별로야 망했어."


"뭐? 갑자기?"


"떄려치울래 이 곡은. 못 들은걸로 해줘."


"왜! 엄청나게 괜찮았어. 첫 도입부가 벌써 환상적이야! 벌써 다음 마디가 그려져."


"그냥 이게 전부야. 나머지는 가사나 멜로디로 대충 때우는건데 역시 아닌거 같아."


"주제는 여름이야?"


"야, 듣고 있어?"


"여름...여름...그 다음은 아마 G코드 괜찮아. 여름....여름을 느낄때면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가사가 긴데? 앗!"


안나는 수북히 어질러진 A4종이 하나를 휙 채갔다.

너무 순간이라 첫마디만 읽었지만 분명 꽤 길게 쓰인 가사들.

아마도 이 곡의 다음 가사들이다.

이미 속으로는 거의 완성했구나...

갑자기 때려친우다는 변덕은 이미 안통한다.


"뭔데 그래. 왜 갑자기 들려줬다가 때려치운다는거야."


"그냥 싫어졌어. 다른 곡 쓸래."


"이미 완성했으니까 다른 곡을 생각하지."


"전혀. 너야말로 어마어마한 교향곡이나 새로 써봐. 저승에 있는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놀라 나자빠지게. 클래식 다음의 새로운 클래식! 엄청날거야. 그런게 진짜 음악이지."


나는 진짜 음악이라는 말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안나는 종종 내가 하는 음악들을 그렇게 말한다.

흔히 말하는 클래식.

나는 피아노는 기본이거니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모든 악기를 다룰줄 안다.

부유한 집안 사정 덕택에 집안에 그 모든 악기들을 두고 연습할 수 있는 여건도 된다.

덧붙여 나 스스로 겸손하다고 낮추고 싶어도 내 재능에 범주에 대해서도 이해한다.

그 모든걸 안나는 진짜 음악이라고 말한다.

"진짜 음악이 어딨고 가짜 음악이 어딨어. 다 똑같은거야."


"비싼 음악 값싼 음악이라 하면 더 선명하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농담이야."


"농담 아닌데."


"그만두고 빨리 가사집이나 다시 보여줘."


"싫어."


"보여줘!"


"그 노래 가사 아니야. 다른 미완성 곡이 있는데 그거랑 관련 있어."


"그럼 그 미완성의 다른곡 들려줘."


"싫어!"


"여름을 느낄때면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 다음 만약 입맞춤 어쩌고 있었어. 만약 입맞췄으면 어땠을까? 이런 내용일려나."


"완전히 틀렸거든."


이런식의 안나의 자작곡이 30개는 될거다.

가끔 세상에 빛을 발하는 천재들에게 이런 식의 미완작들이 몇개나 있을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틈에는 정말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릴 그런 것들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안나의 미완곡들에 집착이다.

누군가는 듣지 못하고 지나가버릴 안나의 감정과 생각들.

그걸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특별할 수 없거든.


"나는 너만의 감정이 좋아."


"뜬금 없는 소리가 늘었네. 천재적인척 하려고."


안나의 잔비꼼 섞인 장난조에 생글거렸다.


"그 미완성 작에 장황한 가사집은 언제 다시 들려줄거야?"


"이건 폐기처분이야."


안나는 재빨리 처음 꺼냈던 코드 적힌 종이와 가사집을 구겨버린다.

그리고 기타 케이스에 슛! 하고 던져서 집어넣어 버린다.

진짜 버리고 싶으면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여름 관련된 노래였으니까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들려줘."


"내 말을 못 듣는거야 무시하는거야? 폐기처분이라니까?"


"알았어. 그러면 새로운 여름 주제의 곡으로 만들어."


"지금 숙제 내주는거야?"


"그래, 못하면 벌칙도 있어. 벌칙은...키스 한 번?"


안나는 갑자기 홍조가 뜨며 당황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보란듯이 일부러 입술을 삐죽 내밀고 뻐금거려 보였다.


"뭐래 이 변태녀! 천재들은 하나 같이 이상하다더니 엄한 구석이 있어!"


"그 미완성 안 갖고 오면 나랑 키스하고 싶은걸로 이해할게."


"그러든가 말든가! 빨리 너내 천재들끼리 수업이나 들어가!"


안나는 서둘러 모든 짐을 정리했다.

나처럼 예체능쪽에 관련된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하나 둘 몰려들고 있었다.

안나의 반은 조금 떨어진 평범한 클래스였다.

그래, 우리는 이번 여름이 지나가면 헤어져야겠지.

나는 기타케이스를 들쳐매고 나가는 안나의 뒷모습과 가지각색의 교향단 악기를 매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겹쳐 본다.

나 때문에 음악에 빠지고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낡은 기타는 너무 초라하다.


비싼 진짜 음악...

그래, 나는 그런 음악을 한다.

고작해봐야 기타 조금 퉁퉁이며 심심풀이로 작곡에 빠진 진짜 천재는 값싼 가짜 음악을 하고 있고.


안나가 떠난 뒤에 무더운 햇빛이 느껴졌다.

여름이 정말 싫었는데...

제발 지금보다 더워도 괜찮으니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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