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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위크] Feel the summer 2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7.26 01:35:35
조회 254 추천 11 댓글 3






이전화!

https://gall.dcinside.com/snowpiercer2013/1083816





진로가 결정되고 커티스 음악원이라는 목표점도 생길 무렵.

난 이미 학교에서도 특별히 신경쓰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손 꼽히는 명문에 갈 수 있다는건 흔치 않으니까 선생님들의 지도도 열정이다.

반대로 말하면 나 역시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문 밖을 보면 안나는 혼자 운동장 그늘 아래 벤치에 있었다.

거기서 혼자 기타를 치고 있다.

가끔 하품도 하고 있고.


"엘사! 어딜 보고 있니!"


나는 손뼉을 짝! 하고 때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조금 쉴까? 아니면 날이 더워서 그래?"


선생님은 창문을 닫으면서 교실의 에어컨을 켰다.

드르륵하는 소리에 안나가 내쪽을 보는 것도 보인다.


"항상 누누히 말하지만 음악도 집중력 싸움이야. 더 심해! 한 번이라도 박자를 놓친다거나 잡생각에 템포를 놓쳐버린다고 생각해보렴. 곧 바로 표시가 나! 오디션에서는 그런 실수 한 번은 바로 탈락이고! 얼마나 엄격한지 알고 있잖니."


"알고 있어요."


나는 시무룩하니 대답한다.

다시 숨을 고르고 어깨에 걸친 첼로를 바로 잡았다.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의 피아노 두 곡과 10분 이상의 솔로곡까지.

해야 할게 너무 많다.

지겹게 듣고 평소라면 눈을 감고도 칠 수 있는데 자꾸만 삐끗거린다.

결국 참다 참다 지친 선생님이 오늘은 그만하자고 할 정도가 되서야 나는 엉망인 연습을 끝냈다.

생각이 완전히 다른 곳에 갔나 보다.

나는 마무리는 큰 꾸증으로 끝나고서도 당장 창문 밖의 벤치부터 살폈다.

안나는???

안나는 보이지 않았다.

장장 두 시간이 걸렸으니 그럴만도.

그때 복도에서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안나는 뾰루퉁한 얼굴이었다.


"안나!"


나는 반가움에 이름부터 불렀지만 안나는 팔짱을 낀다.


"뭐하는거야? 완전 엉망이더라."


"듣고 있었어?"


"너무 더워서 계속 운동장에 있기는 그러니까. 창문도 중간에 닫아버려서."


"역시...내가 모자른가봐."


나는 기가 잔뜩 죽어 있었다.

안나는 내가 다루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은 하나도 만질줄 모른다.

또 어떤게 잘하는지도 본인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엉망인 꼴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안나가 선생님의 꾸지람보다 훨씬 매섭게 느껴졌다.


"미련 둔탱이. 마음이 완전히 콩밭에 가 있으니까 그렇지."


안나는 시무룩해 하는 내 대신에 정리를 도와줬다.


"내가 너라면 모자르다고 땡이 아니라 이 악물고 더 할거야. 학교 전체가 너만 바라보고 이렇게 전용 연습실까지 만들어 특급 대우를 해주는데 모자르다고 포기하면 참도 좋아하겠다. 그냥 완전히 바보 아니야?"


윽, 제발 그만해...

안나는 성격이 너무 직진이라서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뱉는다.

그리고 나는 소심하고 유약해서 그런 단어에도 민감하고.

안나는 더 어깨가 움츠러드는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 바보야. 바보라고 하니까 속상해?"


나는 입을 꾹 닫고 상심한 얼굴이었다.

안나가 두 손으로 내 볼따구를 비벼대도 투정부리며 빼기만 한다.


"제발 그럼 바보 같이 굴지말고 싸가지 없는 천재처럼 하면 안될까. 그런거 있잖아. 너내 같은 하층민들은 어떻게 해도 날 못 이겨. 이런 뉘앙스."


"그런게 뭐야."


"실수한다고 자책하는게 아니라 뻔뻔해지라는거지. 내가 하는건 그럴 수 있는거고, 너내는 한심한거고."


"그건 뻔뻔한게 아니라 인성이 틀려먹은거야."


"어쩌라고? 누가 뭐래? 너처럼 바보 같이 있으면 무시당하지만 잘난놈이 그러면 그래도 실력은 좋으니까...라고 납득한다니까."


"몰라 나는 바보인가봐...아악! 그만, 그만해!"


안나는 내 볼따구를 거칠게 비벼댔다.

그것만 하는게 아니라 머리를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내 정수리에 꿀밤을 먹여댔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이게 문제야. 차라리 나한테 기타 알려주고, 곡 피드백해주고, 선생님처럼 굴 때가 훨씬 좋아. 무슨 말인지 알지? 자신 넘칠때가 더 보기 좋다고."


나는 그 말을 새겨듣기로 했다.

나도 그게 문제라는걸 알고 있으니까.


"차라리 지금도 그래. 그럼 내가 바보면 너는 뭔데? 기타 조금 칠줄 알고 허접한 기본 러프로 작곡한다고 나대지마. 나는 너보다 훨씬 더 어려운걸 하고 있어. 이렇게 딱 잘라 말해버리면 내가 대들 수나 있겠어?"


"그건 진짜 너무 심하잖아."


"너무 심하게 해야해. 분명히 그 잘난 명문학교에는 왕싸가지들이 수두룩할거라고. 걔들한테도 그럴래? 어디 누가 너한테 벌써 입꼬리부터 쭉 내려가서 시비건다고 해봐. 실수 하나 물고 늘어지면서 꼬투리 잡으면 어떻게 할거야?"


"뭘 어떻게 해...다음에는 다시 잘...아야!"


나는 다시 한 번 꿀밤을 맞고 머리를 쥐어감쌌다.


"그게 아니고 싸가지 없게! 잘나게 해봐!"


"싸가지 없게 뭘!"


장난스러웠던 방금과 다르게 꽤 아픈 진심이었다.

나도 버럭 소리가 나온건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바보 같이 당하고 있지 말고 소리쳐보라고!"


"몰라! 어쩌라는거야! 연습할 때 실수 하나 찾았다고 유세 떠는게 더 꼴같잖아! 실력이 한참 모자르고 글러 처먹었으니까 유치한 심리전이라도 해볼 생각인가보지. 내가 너라면 남 실수 찾는다고 빌빌대기 전에 내 연습이나 더 할거야! 똑같이 하고 있다고 나대지말고 너나 잘해! 이제 됐어!?"


나도 모르게 과열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다 뱉고서 말하는걸로도 지친다고 느껴서 헉헉댔다.

안나는 입을 쩍 벌리고 충격적인 표정이었고.


"그거야!"


안나는 대뜸 내 손을 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바로 그런 태도라고! 제발 싸가지 없는 천재처럼 굴어! 속 시원하잖아!"


속 시원하다고?

나는 가슴이 쿵쿵 울리고 숨이 가빠오다가 다음에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희열감으로 차오르는 기분 좋은 흥분이다.


"기회되면 그런것도 연습하자. 표정부터 재수없게 눈 까닥이는거."


"그런건 또 뭐야?"


"있어 그런게. 천재들이면 말로 하는게 아니라 눈빛으로 욕할 수 있어야해."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천재, 천재, 천재...

지겹게 듣는 소리들에 솔직히 물려있다.

그런데 안나가 해주는 말은 다르게 들린다.

안나가 생각하는 천재는 남들이 말하는 천재가 아닌거 같아.

그냥 남들과 똑같은데 더 뻔뻔하게 구는거잖아.

그편이 이해하기가 쉬워.


"지난번에 들려준 노래는 어떻게 됐어?"


"뭐? 아...아! 그거? 폐기처분이라니까."


"그런게 어딨어. 그럼 다른 곡 써오라고 했던건."


"그것도 보류야.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뚝딱뚝딱 나오는게 아니라고."


"벌칙 있었던거 기억하고 있지?"


"모르겠는데."


"자꾸 미루면 그 벌칙 받고 싶다는걸로 이해할게."


"그러든가 말든가. 못하는건 못해."


나는 자기가 물리자 딴청을 피우는 안나가 귀여웠다.

나도 더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안나가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한건 순전히 나랑 어울리고 싶어서니까.


우리는 연습실을 정리하고 늦은 시간에 교문을 나왔다.

해가 떨어지고 있어서 하늘은 이미 주홍빛이 되어가고 있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연습해서 내일은 더 잘해야지.

해 지는 하늘을 보면 그런 다짐을 하면서 매일 매일 마음을 정비한다.

오늘은 정말 엉망이었어.

그래도 안나 때문에 다시 마인드를 잡은거 같아.

나는 집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기 전에 안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려 했다.


"엘사."


마치 내 마음을 읽기나 한듯 내가 말하려는 순간 안나가 먼저 나를 부른다.


"나는 더 신경쓰지마."


"응?"


"너는 너 할 일이 있잖아. 오늘 바보 같이 틀려먹은거 나 때문인거 다 알아."


"아..."


안나는 평소랑 다르게 차분한 어조였다.

그런 진지한 모습을 별로 본적이 없어서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내가 하는 유치한 음악 흉내도 그만 신경 써. 그건 어디까지나 애들 놀이 같은거야. 넌 나중에 세계적인 지휘자나 연주자가 될거잖아. 그런 애가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애들 놀이에 어울릴 수는 없어."


"무슨 소리야. 나는 정말로 좋아."


"그러니까 그딴거 더 이상 신경 끄라고. 나랑 너랑은 달라."


"그건..."


"또 착하게 굴지마. 싸가지 없게 행동해. 너랑 나는 가야하는 길 자체가 다르다고. 그때는 눈 돌릴 틈도 없을거야."


나는 안나가 하는 말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안나는 우리가 우려하던 선을 넘을거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이라 너무 무서웠다.


"내일부터는 너 안기다릴거야."


"안나."


"갈게."


"안나! 기다려봐. 안나!"


안나는 갈림길이 나오자마자 인사도 없이 자기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내가 아무리 불러봐도 오히려 잰걸음으로 더 빨리 멀어져간다.

나는 그렇게 허망하게 낡은 기타를 들쳐매고 가는 뒷모습만 지켜봤다.

늘 점심시간이 지나 우리반을 나가던 그 쓸쓸한 모습을.

안나의 언덕배기에서 시야에 사라질 때까지 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너무 진지하게 선을 그어버려서 뭐라고 대응할 틈도 주지 않았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아버린 얼얼한 느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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