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팝송위크] Feel the summer 3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7.28 17:39:09
조회 214 추천 13 댓글 3




다음부터 안나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언제나 운동장 벤치에 기타를 든 모습은 없었다.

심지어는 평소에도 나를 멀리 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게 견딜 수 없이 괴로왔다.

나에게는 친구가 몇 없다.

뜻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는 흔한 예술쪽은 일상이다.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정이 깊이 가지 않게한다.

언젠가 내가 이 사람을 경쟁자로 상대해야 하니까.

그 다음은 이 사람은 탈락이고 나는 올라가야 하니까.

그래서 안나는 조금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안나는 완전히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애가 아니라서다.

오히려 내가 알던 안나는 조금 불성실한 아이였다.

어쩌다 친해졌지...?

아, 내가 어처구니 없는 시비에 걸렸을 때.

교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나오던 안나가 나를 발견했다.

안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억울해 눈물 흘리기 직전인 나 대신에 시원하게 내뱉었다.


"옆에서 지나가다 들었는데, 너무한거 아니야? 너희보다 잘난 사람 괴롭혀서 쓰린 속이 달래지면 좋겠는데 별로 안그럴거 같아 보여서. 그리고 괴롭힐거면 상대가 맞게 골라야지 걔는 딱 봐도 너무 여리여리한거 같은데 그게 재밌냐?"


언성이 오갔다.

내가 타겟이던 음악과 학생들은 안나를 깔보며 조롱한다.

안나는 자기가 본격적이게 되자 훨씬 심한 욕설로 맞받아쳤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귀파는 시늉을 하기까지.

당연한듯 이어진 주먹다툼.

여자아이들끼리 싸우는거 치고 격렬할 싸움이었다.

물론 나처럼 음악하는 애들이 무슨 힘이 있을까.

머리가 산발이 되어 바닥을 뒹구는 안나는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값을 물어내라며 포효했다.

그만하라고 매달린 나는 간신히 떼어놓았다.

씩씩거리는 안나는 침을 탁-! 뱉고선 승리를 만끽했다.

나는 그 승자에게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사줬었고.


내 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안나에게 뭐든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집에 처음 놀러온 친구로서.

안나는 내 집에 있는 수 많은 악기들중에 고민했다.


"여기는 다 고급 악기 밖에 없구나."


"고급 악기?"


"전부 이런것들. 금색빛이거나 나무빛이거나. 이런거 다 비싼거 아니야?"


"그럼 고급 악기가 아닌건 뭔데."


"길거리에 페인트통 모아놓고 북 치는거?"


나는 안나식의 농담들이 좋았다.

안나는 우리 집에 있는 수 많은 관현악기들과 금관악기들에는 흥미가 없었다.

몇 개 추천해줬다.

숨을 헐떡이도록 볼이 빨개져서 트럼펫이니 플롯이니 불지도 못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제법 그럴듯하게 하더니 활이 부러뜨릴 기세로 긁어댔다.

피아노는 왼손, 오른손, 패달이 제각각 따로 놀았고.

그러다가 안나는 기타를 보고서는 화색했다.

그때부터 기타를 알려줬다.

안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타를 연습했고 아르바이트 끝에 낡은 중고 기타를 샀다.

그걸 언제나 매고 다니며 나를 기다렸고.


"엘사!"


선생님은 다시 손뼉을 짝 치며 나를 불렀다.


"너무 잘했어! 선생님이 여태까지 들어본 연주중에 최고였다!"


우습게.

나는 온갖 잡념의 파도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바흐의 협주곡을 끝냈다.

이딴거 아무것도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보여줄 수 있다.

눈을 감고 치라고? 아예 물구나무서서 하라해도 할 수 있어.

나는 안나가 늘 말하는 싸가지 없는 천재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안나가 다시 나를 신경써줄거 같아.

그래, 그런 확신이 있었다!

늘 안나가 말했던 모습이 되고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올거라고.

딱 일주일만 이렇게 있어보자고 생각했다.





"엘사만 엄청나게 특별대우 받는거 재수 없지 않아?"


다 들린다.

일부러 들으라고 교실 한구석에 똘똘 뭉친 무리들.

1년전쯤 안나가 아이스크림을 내놓으라 소리쳤던 그 애들이다.

요즘 내 기분은 엄청나게 저기압이었다.

반비례하게 선생님은 커티스 오디션 합격을 확신했고.


"자기만 무슨 대단히 잘난 명문에 가는 줄 안다니까."


자기네끼리 키득거리는 비웃음.

평소라면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귀마개를 꼈을거다.

인상은 찌푸리더라도 일부러 안들리고, 안보이는척.

지금은 달라.

나는 가지런히 정리해둔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담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넌 어디 갈건데?"


내가 당당하게 나서자 무리의 시선이 나에게 몰린다.

움찔하며 떨거 같았는데 신기하게 아무렇지 않다.

내가 여태까지 서본 무대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있다.

앞으로 미래에는 열 배, 백 배는 될거고.


"잘난 명문이 쉬워 보이면 너도 가지 그랬어. 그게 아니라 못 가는 거겠지. 왜냐면 나처럼 못하니까."


"뭐야?"


"뭐라고 반문할게 있어? 연습이 모자르거나 재능이 없거나지. 내가 너내였으면 남 흉보고 다니는게 아니라 진작에 포기했을걸. 아, 어떻게 해도 얘는 못 이기겠다고 느꼈다면 말이야. 그렇다고 너무 열낼거 없어 상대가 나였으니까. 너희 정도였으면 나였어도 욕하고 있느니 따라잡아볼 생각은 했을거야."


나는 톡 쏴버리고 바이올린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무리들은 나를 불러 멈춰 세웠다.

교실 문에 나가기 전에 나는 우뚝 서서 한껏 우월감을 느꼈다.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약간 뒤로 꺾으며 이 세상에서 제일 거만한 눈빛으로.

딱히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표정으로 일갈했다.


'한심한 쓰레기들.'


그 몇초 사이에 내 의사를 분명히 전하고 교실 문을 나가버렸다.





안나의 반으로 갔다!

조금 있으면 바로 또 연습실에 끌려가야 하니까.

안나는 또 기다려주지 않을거니까 하교시간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

음악과의 건물에서 일반 인문과 건물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안나의 반은 아직 종례 끄트머리였다.

기타케이스를 옆에 둔 안나는 턱을 괴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우루루 몰려 나온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남의 반이라도 막무가내로 들어갔다.


"안나! 아직 안가고 있었지?"


"이제 갈려고 했지."


안나는 나를 보고는 시큰둥했다.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연습실 가야 할 때 아니야?"


"그렇긴 한데 아직 시간이 있거든. 그러니까 날씨도 덥고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난 괜찮은데."


"그냥 잠깐이잖아. 매점 밖에서 네 연주도 들어보고. 요즘에는 나도 잘하고 있어! 네 말대로 하니까. 더 조언도 듣고 싶고."


"더 연주할것도 없는데."


안나는 자기 짐부터 챙겼다.

왜이렇게 내가 매달리는 기분이지.

그게 기분 나쁜게 아니라 하루 사이에 확 변한 우리 사이가 불편하다.

안나는 일부러 나에게 선을 그어놓으려고 한다.

그 이유가 자기 때문에 내가 집중을 못하니까라고 추측한다.


"미안한데 엘사. 나 먼저 가봐야해."


"어디를 가는데."


"그냥 늘 그렇듯이?"


안나는 불편한 티를 팍팍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별로 할 것도 없잖아!

이제 고등학교의 여름은 세 달 밖에 없어.

그중에 벌써 우리는 한 달 반이 넘는 시간을 날리고 있다고!


"안나! 뭐하는거야? 요즘 뭐가 문제인데."


"문제 없어."


"그게 아니라 왜 자꾸 피하는건지 모르겠어. 네 말대로 잘하고 있어. 연습도 잘되고 있고...전에 말한 싸가지 없는 천재처럼 잘 굴고 있고."


안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긍정적인 신호일까?


"계속 그렇게 해. 앞으로도 쭉."


"안나! 너가 있어도 집중 잘할 수 있어! 그게 문제잖아! 그렇지?"


"아니, 넌 못해. 내가 있으면 보나마나 낙방이야."


"그럼 이대로 계속 할거야?"


"너나 나나 원래 이런 상태였어."


안나는 말문이 막혀 허...하고 마는 나를 버려둔다.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랑 나랑은 별로 맞는게 없어. 그런데 괜히 나 때문에 선생님들한테 꾸지람 듣고 스트레스만 받지. 그러다가 오디션에서 탈락이라도 하면? 그때가서 내 탓은 어떻게 견디라고?"


"누, 누가 너를 탓해."


"혹시 모르지. 그때가서는 너도 후회할지도. 괜히 나 같은 애한테 신경 썼다가 이렇게 됐다고."


"야!!!"


돌아온 대답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충격이다.

나를 그렇게 밖에 생각 안했다고?

안나는 내 고함에 침이 튀는걸 자기 기타 케이스로 막았다.


"어차피 너도 나도 알고 있었잖아. 우리 사이는 이번 여름까지라고. 너는 명문 학교에 입학할거고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건....! 그래도 친구로 지낼 수 있는거잖아."


"글쎄. 항상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올라서는데 나도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너가 나한테 배푸는건 친구로서 감정이 아니라 동정심 아닌가..."


완벽히 속을 베베 꼬아놓으려고 작정한 비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평소에는 잘도 참았는데 갑자기 팍 터져나온다.

갈피를 잃은 내 손은 안나를 향해 손찌검이라도 하려다가 간신히 억눌렀다.


"그게...그게 이유야?"


안나는 대답 대신에 눈을 피했다.

몇 분 정도 오열했을까.

안나는 내 손을 떼어놓았다.


"갈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유치한 애들 장난은 너도 끝내. 그편이 우리 모두 좋은 방법이야."


나는 어떻게 하면 됐어?

너무 물어보고 싶다.

너가 말하는 싸가지 없는 천재들이면 이런 상황에도 울지 말아야겠지?

오히려 비웃으면서 더 깔봐야 하는걸까?

근데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번 여름이 끝나고 나면 조금 멀어질건 알았다.

근데 이렇게 완전히 박살낼거였다고?

그 이전까지 어떻게 지냈는지도 중요치 않아.

동정심이라니.

내가 너를 친구 이상으로도 진심으로 좋아했다는걸 뻔히 알면서!


나는 그런 울분은 말하지 못했다.

실제 현실의 나는 그냥 소심쟁이니까.




추천 비추천

13

고정닉 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0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10 3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10:24 11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10:18 7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1] ㅇㅇ(115.138) 07:23 42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2 16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9]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1 47 8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65 10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37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13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17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0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5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3 0
1123665 이럴 때 정신놓으면 갓반인 된다 [2] ㅇㅇ(223.62) 06.06 25 0
1123664 말라간다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4 0
1123663 단편이나 떡밥 내놔!!! ㅇㅇ(211.234) 06.06 13 0
1123662 점심때되니 [1] ㅇㅇ(211.234) 06.06 16 0
1123661 오늘 갓생사는척 함 ㅇㅇ(211.234) 06.06 11 0
1123660 그르릉 ㅇㅇ(110.47) 06.06 10 0
1123659 69날이 다가온다 ㅇㅇ(223.62) 06.06 16 0
1123658 안돼 오늘은 휴일인데 일찍 깨버림 ㅇㅇ(223.62) 06.06 11 0
1123657 첫글 [1] ㅇㅇ(115.138) 06.06 19 0
1123656 엘둘기 [2] ㅇㅇ(110.47) 06.05 32 0
1123655 아까 낮잠자면서 엘산나 생각했는데 [1] ㅇㅇ(223.62) 06.05 23 0
1123654 설설설설쥬미미 ㅇㅇ(223.62) 06.05 15 0
1123652 털복숭이들아 [1] ㅇㅇ(106.101) 06.05 21 0
1123651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5 15 0
1123650 마법의 단어 [1] ㅇㅇ(223.62) 06.05 26 0
1123649 디씨 짤 다 터져서 나와 [1] ㅇㅇ(110.47) 06.05 28 0
1123648 안나는 마냥 해맑지anna [1] ㅇㅇ(223.62) 06.04 25 0
1123647 갤죽..... [2] 마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4 24 0
1123646 부히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4 17 0
1123645 오늘도 살아남았다 ㅇㅇ(223.62) 06.04 15 0
1123644 쥬흐흣 ㅇㅇ(110.47) 06.04 13 0
1123643 숨 좀 돌리자 ㅇㅇ(223.62) 06.04 17 0
1123642 화요일이잖아 ㅇㅇ(112.157) 06.04 18 0
1123641 프2 그립다 [1] ㅇㅇ(112.157) 06.04 26 0
1123640 [1] ㅇㅇ(112.157) 06.04 18 0
1123639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4 19 0
1123638 벌써 6시 ㅇㅇ(223.33) 06.04 18 0
1123637 새벽 4시 ㅇㅇ(115.138) 06.04 17 0
1123636 벌써3시 설갤러(118.43) 06.04 16 0
1123635 쥬미들아 나 픽 하나만 찾아줘ㅠㅠㅠㅜㅜㅠㅠ [3] 설갤러(211.59) 06.04 71 0
1123634 설하 [1] ㅇㅇ(110.47) 06.03 22 0
1123633 회로는 돌아가는데 글이 안나오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22 0
1123632 대표가 진상이라던 후기 [2] ㅇㅇ(112.157) 06.03 72 6
1123631 ㅅㅂ [2] ㅇㅇ(112.157) 06.03 32 0
1123630 엘산나 티비 시리즈 나올것 ㅇㅇ(223.38) 06.03 24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