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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위크] Feel the summer 5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8.01 02:03:24
조회 346 추천 15 댓글 7






나는 감히 피아노의 여제라고 불리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드물게 25년여만에 여자 지휘자로서 섰다.

'음악의 장래성'에 대해 논한 내 책들도 불티나게 팔린다.

내가 작곡한 교향곡은 평론가들이 말하길 '그녀는 지금 시대의 로베르트 슈만이다'라고 한다.

이미 커티스 음악원에 들어서는 오디션 날부터 북적였다.

창작물로 만들더라도 지나치게 재미 없을 정도의 성공가도.

나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캐릭터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사람이었다.


여름날이 되면 전세계의 음악계가 큰 이슈거리로 흥분에 휩쌓였다.

나는 오직 여름에만 공연을 시작한다.

그외 가을, 겨울, 봄의 기간에는 침묵할뿐.

그 이유는 특별한게 아니고 나한테 강렬하게 남은 고등학교 시절의 여름 기억 때문이다.

내가 맞는 27번째 여름의 시작은 우리 집 앞을 둘러싼 기자들로 시끄러웠다.


"엘사! 엘사! 대체 어떻게 좀 해봐요! 기자들이 아예 진을 치고 있다고요!"


6월의 끝무렵.

나는 아직 아무런 일정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새롭게 영감을 받아 선보일만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똑같은 연주를 또 할까?

보드 매니저인 크리스토프는 자기가 더 곤란해 보였다.


"올 여름의 첫 시작은 다음주 모교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세요."


"그게 전부인가요? 그걸로는 성미가 안찰거 같은데요."


"천천히 해도 늦지 않잖아요."


내가 사는 집은 365일 컴컴했다.

창문에는 전부 방범틀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또 두꺼운 블라인드에 커튼이 다시 이중으로 가린다.

거기서 또 내가 쓰는 집안의 연습실은 방음처리로 두껍게 가려져 있다.

내가 타는 차에도 마찬가지.

내 모든 사생활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취한 조치다.

나는 성공할수록 더더욱 두껍게 껍질을 만들어 나를 덮었다.

세간의 루머에서는 내가 엄청나게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 유명하다.

나는 크리스토프에게 딱 할말만 전하고 연습실 문을 닫았다.


휘황찬란한 인조 조명은 짜증이난다.

햇빛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야.

몇 번인가 과민 반응으로 내가 쓰던 첼로와 바이올린을 박살낸 적도 있었다.

더 잘해야해.

더 완벽해야해.

더 새로운걸 보여줘야해!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연습실에서 물건들을 몇 개나 박살내고 비명을 질러대기도 했다.

인간 관계에 지쳐버린 나는 모든걸 후회하는 중이다.

또 졸업식까지 결국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안나를 10년 가까이 원망하고 있었다.





마음을 잡으려고 드뷔시의 렌토보다 느리게를 연주했다.

아주......차분히.....다른걸 생각하지마.

초점이 흐려질 때까지 멍하게.

손가락만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영화에서 피아노를 느리게 연주하면 과거로 갈 수 있었다.

아니 반대였나.

아무튼간에.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지금 나는 과거로 간다면 이따위 음악은 다 때려칠 것이다.

세기에 다시 보기 힘든 천재 따위보다 어줍잖게 널린 범재가 더 나아.

그냥 그런 악단 어딘가에서 연주하는 아무개였으면 좋겠어.

그것도 못된다면 그냥 취미로 길거리 버스커.


쾅-! 쾅-! 쾅-!


나는 피아노 건반들을 박살낼듯 두드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올 여름을 어떻게 견뎌야하지.

이토록 무대에 서기 싫은적이 있었을까.

전화가 울려서 받았다.


"다음주에 모교 방문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매니지먼트의 전화.

이미 퍼졌구나.


"말그대로에요."


"갑자기 그게 뭐냐고 묻는거잖아! 모교 방문해서 뭘 하려고?"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재능나눔이나 하고 간단한 연주 정도 하겠죠."


"엘사, 생각을 잘해야해! 여름에만 활동하는 컨셉도 이제 슬슬 그만둘 때가 됐어. 이런 쇼맨쉽은 언제나 가능한거잖아. 마치 더 보여줄것도 없고 하고 싶은 의지도 없어서 가십이나 만드는걸로 비춰질거야."


정답이네요.

라고 말하지 않고 숨을 넘겼다.


"그냥 옛 추억 때문이에요. 끊을게요."


"엘사! 이봐, 엘사!"


나는 전화를 끊고 몇 초간 완전히 끊어진걸 확인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눈에 보이는 아무거나 집어다가 피아노 위에 마구잡이로 집어던졌다.

마지막에는 피아노 의자를 번쩍 들어 건반들을 박살냈다.

자, 네 말대로 싸가지 없는 천재가 됐어.

인성까지 파탄나버린 쓰레기야.

이제 다음은 뭘 어쩌면 좋은데 안나?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의 여름.

내가 막 커티스 음악원의 오디션을 치룬 날이었다.

나도 그때는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끝까지 따라온 지도 선생님.

나를 데리고 도착해서까지 기도하는 부모님.

그 모든 부담을 안고 대기실에서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있었다.

내 앞에 먼저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재능을 의심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서 억지로 물을 마시려다 멈췄다.

중요한 순간에 생리 현상에 발목 잡힐지도 모른다는 조언이 떠올라서 그랬다.


"다음 사람 들어오세요."


내 차례가 오기 바로 직전.

나는 눈을 감고 몇 번이나 집중을 찾으려 노력했다.

시간을 확인해보려 핸드폰을 꺼냈다가 안나의 연락이 찍혀 있어서 화들짝 놀랬다.


"힘내, 잘할 수 있을거야. 졸업식 때 만나자."


짧은 내용의 응원 글에 갑자기 긴장이 팍하고 풀렸다.

내 뺨에 입맞췄던 그 감각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이 순간을 뒤집어 놨다고 할까.

자기 때문에 신경쓰여서 못할거라고 했지만 오히려 더 잘할거 같아.

나는 그 말을 답장으로 쓰려다가 이내 말았다.

졸업식 날에 만나서 실컷 수다를 떠들고 자랑해야지.

그리고 안나가 준비한 곡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다음 사람 들어오세요. 엘사?"


"네."


나는 대기실로 들어오는 진행 위원의 말에 당차게 대답했다.

무대 위로 오르면서 내 앞에 했던 사람이 스쳐갔다.

나는 잠깐의 기세 싸움도 지지 않으려했다.

자신감 가득하게.

이 자리에서 똑똑히 보여주는거야.

그럴리 없겠지만 나는 이 자리에 안나도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

지도 선생님께도, 부모님에게도 죄송하지만 이 무대 하나만큼은.

적어도 그 하나만큼은 안나를 위해서 하는 무대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졸업식.

학사모를 쓰고 졸업생 대표 축사를 맡게 된 나였다.

나는 일찍부터 연단 위에 있었고 졸업생들이 강당에 들어차는걸 전부 보고 있었다.

안나는....

안나는 어딨지?

왜 안들어오는거야.

인문과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는 눈을 씻고 찾아도 안나가 없었다.

안나랑 붙어다니던 자스민과 머리 긴 금발의 라푼젤은 여전히 보였는데.


"안나 왜 안오고 있어?"


"어디쯤이야?"


"졸업식 시작하겠어. 지각해도 괜찮으니까 빨리 와."


"시작하기 직전이야."


"오고 있는거 맞지?"


나는 시간이 갈수록 다급하게 문자를 남겼다.

안나가 신경쓰여서 졸업생 대표 축사를 하다가 계속 한 눈을 팔았다.

그러다가 숨이 꼬여서 축사말을 혼동하는 실수도 했다.

물론 모두가 멋쩍은 나에게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안나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또 내 메시지는 여전히 읽었다는 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건 전화에서도......

안나는 받지 않았고 한 달쯤 뒤에는 없는 번호가 되었다.

그게 나와 안나의 마지막 여름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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