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냉랭했다.

여전히 안나는 좋은 성과를 냈다.

엘사는 개인 메일로 따로 업무를 지시했다.

하나 같이 거의 엘사가 끝내놓은 업무들.

그게 아니면 엘사가 계약한 일거리.

다 끝난 막바지 일은 후임자라는 명목으로 안나가 도맡아 마무리짓는다.

퇴근때도 두 사람은 오랜만에 서로 각자 헤어졌다.

엘사는 회사에 남거나 그게 아니면 자기 차로 빨리 떠났다.

안나는 좁은 플랫폼 사이를 비비며 빠져나가 택시를 탔다.

월요일 이후 지속되는 냉전 동안 안나는 기묘한 허기를 느꼈다.

"오늘도 잘했어. 퇴근 전에 이것만 전달해. 각 지점 가격 변경 내용이야. 그리고 이건 다음달 신상품들 매입 내역."

회사는 격주로 금요일 3시간 일찍 퇴근했다.

보통 기다렸다는듯 회사를 뛰쳐나가지만 엘사는 아니었다.

또 엘사가 맡기는건 언제나 안나였다.

그리고 이 날만큼은 다른 사람들도 안나에 대한 질투는 접어놓았다.

오히려 일간에서는 이런 날까지 붙잡히지 않아서 다행이야.

엘사 같은 사람한테 찍히면 같이 일만 늘어난다니까?

이런 생각들이 대부분의 여론이었다.

"퇴근하고 싶어?"

엘사는 안나 자리 파티션에 어깨를 걸치고 내려다봤다.

"아니요."

"그래야지."

엘사는 뭐가 웃긴지 늘 웃고 있다.

안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찾고 싶지 않았다. 

안나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두렵다.

언제라도 엘사의 기습에 노출된다는 뜻이거든.

이를태면 느닷 없이 뒤로 덮쳐서 껴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억지로 돌려놓고 입맞추면서 셔츠 단추를 풀어해칠지도.

그리고는 의자를 빙글 돌려놓고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는다.

거슬리는 스타킹 따위는 마구 찢어발겨놓고서.

안나는 시계 소리까지 폭탄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이때쯤이면...

...

...

...

안나의 생각과 다르게 시간만 흐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나는 괜히 엘사의 눈치를 살폈지만 엘사는 전혀.

덕택에 엘사가 시킨 일들을 순조롭게 다 끝냈다.

몇 가지 업무를 더 시켰지만 그걸로 마무리였다.

"다 끝났으면 퇴근해. 격주 조퇴일인데 끝까지 수고했어."

엘사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 신경전은 일촉즉발이라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안나는 괜히 자극하지 말자 생각했다.

"먼저 들어가볼게요. 그럼."

안나는 최대한 조용하게 이번주를 넘기고 싶었다.

마치 이번 한주가 모든 일의 리셋 버튼이나 되는듯.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팀장님."

안나가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다시 꾸벅 인사를 할 때.

그때도 엘사는 가만히 시큰둥했다.

그리고 안나가 사무실을 나가고 나자 그때부터 표정이 일그러졌다.

뚝-! 하고 엘사는 손에 쥐고 있던 사무 연필을 괜히 부러뜨렸다.

"팀장님? 하, 참."

엘사는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제보니까 사람 엿먹일줄도 아네?'

엘사는 진정이 안되서 셔츠 자락을 풀고 부채질했다.

엘사에게는 드물게 예측대로 되지 않은 일이었다.

동물처럼 날선 직감도 처음으로 틀린거 같았고.

그게 엘사에게는 더할 수 없이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또 그게 장난감처럼 여기던 어리버리한 신입이라 더더욱.

엘사는 핸드폰에 뜨는 알림음을 확인했다.

예약한 호텔룸의 노쇼에 관한 경고 사항이었다.

당일 노쇼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들.

엘사는 핸드폰을 껐다.

노쇼고 나발이고 생각할 겨를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