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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9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25 02:45:53
조회 725 추천 25 댓글 5



일요일 저녁 6시까지.

안나는 단단히 준비를 했다.

거추장스러운 정장은 버렸다.

가볍지만 기조 있게.

토요일 평화가 박살나고서 안나는 몇 번을 고민했다.

수를 세기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엘사가 무서워서 눈치보며 일할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안나에게는 말 다한셈이지.

안나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다.


벗자마자 맨살에 드러나는 수 많은 검자국들.

등쪽은 특히 더 심했다.

목 바로 밑부터 엉덩이까지.

가슴, 배꼽 언저리, 허벅지 사이까지.


안나는 그 흉들을 보면서 더 섬뜩해졌다.

엘사가 자신을 끌어안고 표독이게 웃는 모습이 자동적으로 그려지니까.

안나는 상상만해도 아찔해지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엘사가 언제 어디서든 지켜보는게 아닐까.


거울 뒤에 엘사가 웃고 있는거 같았다.

그 특유의 씰룩이는 입꼬리와 날선 눈매.

차갑게 내려식어져서 만지면 얼어붙을거 같은 엘사.

웃는게 웃는게 아니겠지.

환상속 엘사가 온몸을 조여온다. 


안나는 정말 힘겹게 현실의 합리를 판단했다.

엘사는 절대 알 수 없어.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가는 페어 행사장에 있잖아.


안나도 자신이 가장 걱정 없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에리사 리글렛?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여자 번호를 지워버리고 차단하면 끝이다.

매정하다 느끼면 못해도 거절의 메시지 하나 정도 남기고.


그런데 안나를 끌어당기는게 있었다.

엘사와 똑 닮은 모습은 둘째치고다.

그런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라 의심과 진상 조사지.

연락처까지 미리 알아두고선 갑자기?

그 날 술취해서 무슨 일을 했었더라?

혹시 나에 대한 신상정보에 다른 것도 알고 있나?


안나는 자기 눈으로 만나서 거절하고.

서로 마주보는 앞에서 메시지도 번호도 삭제하고.

단호하게 끝내고 싶었다.

서로 얼굴 화끈거릴 일 없게 끝내자고.


그 핑계로 억지로 엘사의 잔상을 지워냈다.

설령 엘사가 와서 따지더라도 당당할거라고!

엘사를 저버리는건 아니잖아?




안나는 검은 크로커스 달린 바 앞에서 서성였다.

막상 오고나니 더 고민되고 더 긴장된달까.

에리사라는 알지도 못하는 여자 때문이 아니고.

안나는 괜히 으슥한 벽에 바짝 기대어 있었다.

시간은 6시 조금 넘긴 시간.


안나는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고 핸드폰을 켰다.

잠잠한 핸드폰에는 엘사도 마찬가지.

20분 넘도록 그러고 있다가 안나는 최후의 결심을 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조심스럽게 바로 들어간다.

슬며시 바라본 바 건너 끄트머리.

가장 어두운 그 자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스윽 다리를 꼬아 올리며 팔을 괴고 있는 에리사 리글렛!

안나는 눈치 살피다 일행도 아닌것처럼 무심하게 옆에 앉았다.


"진짜 왔네요? 지금 너무 깜작 놀라서 소리 지를뻔한거 알죠?"


"전혀요."


안나는 일부러 의자도 조금 떨어뜨렸다.

시선도 최대한 앞만 보려하고.


"우선 한 잔 마실래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흐응~"


익숙한 비음에 안나는 휙 돌아봤다.

살짝 턱을 들어올리고 미소짓는 눈빛.

아주 잠깐이지만 엘사가 아닌가 싶어 심장이 철렁한다.


"마셨던거 마셔요. 그거 좋아하잖아? 롱티, 레이디킬러."


"장난치지마요! 그때는 얄팍하게 위로하는척 당했던거지."


"이미 시켰는걸요. 일행이 오면 달라고. 이쪽으로 줘요 바텐더.


바텐더는 안나 앞에 롱티를 내려놓았다.

안나는 괜히 눈을 째려봤지만 에리사는 웃고만 있는다.

안나는 하는 수 없이 롱티를 한 모금만 짧게 마셨다.


"착각마요. 오늘 따지러 온거니까."


"따진다고요? 어떤걸?"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면서."


에리사는 놀리려는지 능글 맞았다.

괜히 잔을 비비적대다 태평하게 넘긴다.


"또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 날은 진짜 실수였으니까."


"실수치고는 적극적이던데요?"


"누가요!"


"그 날 뭐가 있었는지가 중요한가요."


"그럼 내 연락처도 지워요. 이런 관계 만들고 싶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어요."


에리사는 깜작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정확하게는 진짜 놀란게 아니라 놀리려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치자면 삼류 연기처럼 작위적이다.


"그런 말 들을줄 몰랐는데요."


"그런 말 하려고 나온거니까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저는 연락처 교환한 기억도 없으니까 그렇죠!"


"난 있는데...혹시 지금 애인한테 죄책감 들어서일까. 이름이 엘사 맞죠?"


"어떻게!?"


"나는 다 기억한다니까요."


에리사는 싱그럽게 미소지었다.

벙찐 안나를 두고 잔을 싹 비우더니 하나 더 주문한다.

두번째 잔이 놓여진다.

에리사가 그걸 마시려고 집어들때 안나가 멈춰세웠다.


"엘사에 대해 내가 뭐라 얘기했어요?"


"엄청 힘들다고 했죠. 또 직장 상사는 맞는데 진짜 연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고. 그냥 자기를 장난감 취급하는거 같아서 괴롭다..."


"내가 그랬다고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할까요? 또 하나 더. 내가 그 사람이랑 닮았다면서요. 그것도 엄청나게. 친자매나 쌍둥이쯤 되는 정도, 아니 그 이상으로 거의 도플갱어 같다고."


"내가 언제요!"


"흐응~ 얘기를 해주는데도 그러네."


에리사는 잔을 막은 안나의 팔을 툭 털어냈다.

안나는 너무 황망스러워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 자리에서 곧 바로 수 백번 돌려보지만 기억은 역시나.

싹둑하고 그 부분만 날아간게 되돌아올리는 없지.


"그래서."


에리사는 갈곳을 잃어 헤메는 시선의 안나쪽으로 돌아섰다.


"그 엘사라는 사람이 확실히 누군데요? 어떤 관계고. 하긴 사실 저는 그런건 궁금하지 않아요. 다만 자존심은 조금 상한달까. 나랑 섹스할 때도 엘사거리는게 조금 거슬렸거든요."


"그, 그런 말 크게 하지 말아요!"


"다른 얘기할까요?"


"뭐가 됐든!"


"그럼 안나는 오늘 왜 나왔어요?"


안나는 그 말에 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순간 왜 여기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다.

안나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지금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판단이든 집중력이든 뭐든지.


"우리 지금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이상한데요. 이상한건 그쪽이에요. 원래 아무나 가볍게 만나서 이런식으로 추근덕거리나요?"


"네!"


에리사의 당당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안나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턱 하고 나왔으니까.

에리사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마저 칵테일을 더 마셨다.


"뭐가 잘못됐나요? 이 바를 다니는 사람이면 다 그렇지. 안나도 그랬고요."


"나는 처음이었어요. 그럴 의도도 아니었고."


"의도? 술만 마실 생각이었나."


"그, 그래요. 그게 뭐가 어때서요?"


"엘사라는 여자가 어느 부분을 좋아하는지 알겠네."


에리사는 바 테이블에 기대며 능글맞게 웃었다.


"자꾸 팀장님 얘기하지 마....!"

"됐고 이것만 정해요. 오늘 조금이라도 허락의 의미로 나온건지. 아니면 거절할 생각으로 온건지. 허락이라면 온김에 같이 술 마시고 대화도 하고 재밌게 놀다 가요. 거절이면 바로 끝내고."


"뭐...."


안나는 에리사에게서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에리사는 정말로 엘사랑 비슷하다.

안나의 꼭대기 위에 자리 잡은 느낌까지도.


"고민하지마요. 나쁜것도 아닌걸. 오히려 나쁜게 있다면 안나의 마음을 매마르게 괴롭히는 엘사가 나쁘지. 만약 엘사가 정말로 잘해줬다면? 안나도 괴로워 할 필요 없었으면 술을 찾았을까요? 나와 마음이 맞았을까? 곰곰히 생각해봐요. 누가 먼저 잘못했을지. 안나의 진심보다......그 여자의 욕망이 더 큰게 아닌지."


"엘사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요."


에리사는 알겠다는듯 두 손을 들고 손바닥을 두어번 쥐었다 폈다.


"가볍게 즐겨요. 잠깐 잊고 넘겨버리자구요.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나한테 전부 넘기면 되니까. 내 탓을 하면 편하잖아. 상처난 마음에 내가 유혹했고...당할 수 밖에 없었어. 그렇겠죠?"


에리사는 안나에게 아주 유혹적인 롱티를 들이밀었다.

안나는 자기 앞에 드르륵 밀려오는 잔을 보고만 있었고.

에리사는 끈적해 빠져버릴 눈빛을 쏘아댔다.

한참 그러다 이제 정말 관심 끄겠다는듯 다시 몸을 돌린다.

바 테이블 정면만 보며 홀짝거리는 동안 흘끗거리지도 않는다.


안나만 초조하게 다리까지 덜덜거렸다.

도저히 이 잔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거절하고, 원래 하려던대로해.

어차피 여기까지 온거 그냥 저질러버려.

안나의 속에서는 두 패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


갈등 사이에 안나에게는 에리사의 말이 너무 뇌리에 꼿혀있었다.

엘사가 장난감 취급하듯 가지고 휘두르던게.

그게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던가?

그것 때문에 갈등이 없던게 아니다.

안나가 아는 엘사는 사사로운 정보다 칼 같이 날선 사람이니까.


"난...."


침이 유달리 요란하게 목구멍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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