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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10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27 22:54:30
조회 754 추천 21 댓글 5


안나는 피곤한 상태로 출근했다.

에리사랑 만남 자체가 피로 덩어리였나보다.

술을 조금 걸친 것도 그렇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마음도 그렇다.

하여튼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었다.


안나는 미리 엘사가 시켜둔 일을 정리했다.

9시 정각이 되면 팀원들이 다 모인다.

그럼 여느때처럼 엘사처럼 해야 하는데...


안나는 출근하는 팀원들을 볼 때마다 괜히 눈치를 봤다.

팀원들도 엘사 자리에 있는 안나를 낯설게 여기는거 같았다.

아침 인사 이후에는 똑같은 대화가 오갔다.

왜 엘사 자리에 있냐는 비슷한 물음들.

그러면 안나는 엘사가 부재중인 기간 동안 대행을 할거라는 대답.


"모여볼게요."


9시 정각이 됐을 때.

안나는 심호흡을 하고 팀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다들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멈추고 안나에게로 돌아선다.

팔짱을 낀 사람도, 비스듬히 앉은 사람도 있는 차이가 있지만.

엘사가 부를 때는 모두 정자세로 있었거든.


"아시다싶이 지금 회사 차원에서 패션 페어에 나가 있느라 산만해요. 팀장님이 현장에서 지시한 일이 있으니까 그것부터 집중해야해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에 대해 끄덕이기 보다는 그럼 그렇지하는 눈치다.


"홍보 인쇄물 리플렛부터 보내라고 하셨어요. 아침 일찍부터 당장. 크리스토프가 바로 확인 좀 해줘요. 그리고 인보이스 체크해보니까 누락은 없는데 부스 지원...이거는 한스 씨가 전담 좀 해줘요. 또 부스 홍보에 재작 과정을 담는다고 하셔서 과정을 그린 러프들 같은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반영해주고요. 그것 말고도 영상물 제작이랑 수정은 유진.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제작팀이랑 조율해서 확인해줘요. 나머지는 대부분 원래 업무에 참여해주면 되는데 손이 모자르게 됐으니까 그 부분은 서로 서로 잘 분업해야해요. 전반적으로 제작팀에 인력이 부족해서 저희가 백업 붙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저희 업무랑 제작팀 업무 따지지 말고 서로 합심해야해요."


안나는 메모해둔 것들을 살피며 전달할 사항을 일렀다.

빼놓은건 없었다.

다만 팀원들이 대답이 시원찮을뿐.

미묘하게 늘어지는 분위기에 안나는 동공만 움직였다.

다들 대답을 들어먹은건지 아닌지 모르겠으니까.

답답하고 어색함 속에 한스가 손을 들었다.


"부스 지원이라는게 대체 어떤걸 말하는거에요?"


안나는 메모에 없던 내용에 짐짓 당황했다.

사실 회사 차원에서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거기다 원래라면 아직도 풋내기와 베테랑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어차피 큰 뼈대는 행사장에서 할건데 백월이나 포토월 같은거죠. 여기서 시안 뽑아야 하는거. 러프 과정 쓴다는거 보니까 동선 따라서 쭉 나열할 예정인가보네. 대충 그런거겠죠. 우리 의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각적이게 빡!"


"그런건 현장에서 하는거 아닌가요? 외부 업체 지원이 있을건데."


"그 외부 업체를 잘 컨텍하고 핸들링하라 이거지. 업체 의탁하면 기간 빵꾸부터 시안 잘못 잡히고 일정 꼬이고 하루 이틀이에요? 팀장님 성격에 가만히 노는 꼴 못보니까 시키는거죠."


"근데 우리 팀장님은 현장 총괄이긴 한데 모델로 직접 선다면서요. 거기 관계자들이랑 에이전시가 난리나서 진지하게 모셔가려 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이참에 이직하시는거 아닌가. 슈퍼 모델 되면 돈도 더 받을건데."


"사장님한테 웃돈 얹어야 할걸? 세 배로? 아닌가 우리 회사 경영권?"


"그나저나 이런건 제작팀에서 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제작 두 개 팀이 끌려가서 현장 부스 만들고, 팀장님 백업 붙고, 아마 사장님 만족에도 들어야 하니까 그쪽은 인력난이 아니라 인력 홍수가 났던데요."


누군가의 말장난에 웃음소리가 나온다.

안나는 자기는 뒷전으로 두고 떠드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제작팀 인력난은 말했던 부분인데.

똑바로 듣지도 않았구나 한다.


연차로만 치면 안나보다는 선배줄이지.

안나의 회사는 디자인, 주는 의류 디자인이다.

하지만 이중에는 의류말고도 더 많은 전공자들이 있고.

그래서 더더욱 할 말이 없이 지켜봐야 했다.

경험도 미숙하고 능력도 애매했으니까.

자기들끼리 희희덕거리던 한스는 다시 안나에게 손을 들었다.


"또 전달할건요. 없죠?"


"네, 없어요."


"그럼 끝내고 일하죠."


한스는 자기가 나서서 짝! 하고 손뼉을 맞춘다.

슬레이트라도 치는듯 넘기자 그제야 늘어진 시간이 움직인다.

안나는 묘하게 자기를 따돌리는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지만.





"잘하고 있어?"


"네, 잘하고 있어요."


"걱정이 놓이지가 않네."


안나는 괜히 입술을 뾰죽거렸다.

팀원들에게는 권위도 신뢰도 없어 보였다.

멀리 떨어진 진짜 팀장도 마찬가지인거 같고.

전화를 쥔 손에서 힘이 주르륵 풀릴것만 같다.


"어련히 감시도 해야해. 분명히 지금쯤이면 놀 시간이네."


"제가 뭐라고요."


"내 대행."


안나는 전화에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 쉬어?"


"전혀요!"


"누가 말을 안듣나보구나? 누구야? 뺀질이 한스 아니면 흐리멍텅한 크리스토프?"


"아니에요! 다들 잘 들어요. 아침부터 일처리도 잘 되고 있을거고..."


"아침부터 잘된다? 그것 때문에 내가 참다가 전화했어."


안나는 통화 음색만으로 바뀌는 기류에 침을 넘겼다.

저절로 굽히고 있던 허리가 펴진다.

뭐가 잘못한게 있었던가?

기가 죽은 말투로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떤게 잘못됐나요?"


아주 미묘한 시간의 정적이었다.

1초도 긴거 같고. 0.5초는 짧은거 같고.


"아니 다 괜찮아. 그냥 내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어서. 덤으로 다른 것도."


"아..."


"나만 그런가보다?"


안나는 뭐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수긍하기도.

아니라며 둘러대기도.

그저 조금 실망스럽다.

뭐에 실망스러운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실망스럽다.

안나는 화제를 돌렸다.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여기야 잘되고 있지. 사장님 주책만 좀 줄어들면?"


"모델 선다면서요."


"그렇게 됐어. 나름 패션 페어인데."


"갑자기 그런게 되요? 어제까지 일반인이었는데."


"그냥 옷 입고 걷는거지 뭐가 다르겠어? 나름 코치도 받는 중이야. 보니까 어차피 아마추어들도 참여하는거 같더라......하, 끊어야겠다. 또 사장님이 부르시네."


"네, 그래요."


안나는 뚝하고 끊어진 전화를 물끄러미 기다렸다.

3분 남짓한 통화.


"뭐가 다르네요. 저랑은."


안나는 빈 전화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퇴근길이 무거웠다.

엘사의 자가용에 얻어타면 편한데.

간사한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안나는 택시를 붙잡으려 길가에 섰다.

퇴근길 택시 전쟁이 영 만만치는 않다.

생각해보니 정시 퇴근도 꽤 오랜만이다.


'빈차'표시가 꺼지는 택시를 세 대째 보낼 때.

안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하루와 피로함에 다 때려치웠다.

정처없이 길따라 가다보면 빈 택시가 지나가겠지.

안나는 무기력증에 자동적으로 다른게 떠올랐다.

왜 그렇게 직장인들이 맥주라도 달고 사는지...


"한 잔?"


핸드폰의 알림소리가 들리면 조건 반사로 확인한다.

핸드폰을 꺼내 검지로 키고 시선도 한곳에 딱 꼿히기까지.

모든 동작이 간결하고 완벽하게 최적화 되어 있다고 할까?

메시지가 오면 몇 문장이든 바로 읽어내는 것도 포함이다.

그런 안나에게 딱 두 글자는 어처구니가 없게 맥 빠진다.

에리사 리글렛!

꾸준하게 집착적이네.


"연락하지 말라니까."


안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택시나 다시 살폈다.


"읽고 있는데 왜 답장 안해요? 퇴근 시간인데 술 한 잔만 해요."


"연락하지 마시라니까요1"


안나는 택시를 또 한 번 놓치고 짜증을 가득 담아 토했다.

한 번 답장을 보내고 잠시.

에리사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무시하지 못했다.

안나는 바로 받았다.


"왜 자꾸 연락하는거에요?"


"우리 약속했잖아요. 일요일날 나오면 가벼운 만남이라도 허락한걸로."


"누가 허락했는데요?"


"그 날 나와서 잔 받았으니까 허락한거죠."


안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디까지나 호의에 승복하는거라고!


"그쪽은 출근도 안해요?"


"알아서해요."


"자기에 관해서는 꽁꽁 숨기시네요."


"궁금해요? 이쪽에 오면 알려줄게요. 차도 안잡힐건데. 나라면 한 잔 마시겠다. 공짜로."


"하루종일 바에 앉아서 술만 마시는 알콜 중독자랑 할 말 없어요."


"흐응~ 일 중독자는 못되는 사람이면 그편이 나을걸요."


안나는 말문이 막혔다.

일 중독자는 못된다고?

안나는 그 말이 묘하게 자존심 상했다.


"그걸 에리사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나쁜 의도로 한 말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이라는거지."


"평범한게 뭐가 어때서요!"


"왜 그렇게 성이 나셨을까? 술 마시면 훨씬 애교쟁이던데."


"장난치지마요!"


"장난 아니야."


순간 바뀌는 말투.


"내가 장난치고 있는거 같아?"


갑자기 칼 같아지는 반말과 강압적인 어조에 안나는 움찔했다.

이 여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엘사의 판박이거든.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그게 안나의 수 많은 조건 반사를 작용시키고 있다.


"하나 알려주자면 평범한게 나쁜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높은 허들에 실망하지말고 나한테 와."


"......."


'나한테 와'

그 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단호하다는 표현을 넘어 강압적이기까지 느껴졌으니까.

안나는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뭐라 반박할 힘도 논리도 없었다.

안나는 에리사라는 여자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근데 저 여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분이랄까.

천적 같지만...안나의 편이라고 설명해야할까.

복잡한 사람이었다.


"한 잔만 먹자. 마시면서 내가 들어줄게. 실망시키지 말고 바로 와. 다른데로 새지 말고."


전화는 일방적이게 끊어졌다.

월요일 시내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물론 여전히 펍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안나는 첫 일탈을 저지른 때와 데자뷰가 겹쳤다.

갑자기 목마름이 느껴진다.

안나는 속으로 최면을 걸려 노력했다.

이깟 일에 넘어가면 안된다고.


"아...앗!"


고민하던 찰나에 빈차가 지나갔다.

택시는 안나가 있는 곳 5m 정도를 가더니 다른 사람을 태웠다.

1시간 정도면 택시 잡기는 여유롭겠지.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돌렸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하는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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