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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11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02 18:00:34
조회 816 추천 27 댓글 7




"결국 올거면서."


에리사는 안나의 잔에 건배했다.

혼자서 안나의 코스터 위에 부딪힌게 정확하지만.

안나는 자기 잔에 쨍하고 닿는 건배를 불쾌하게 여겼다.


"도로가 수월해질 때까지 잠깐이에요."


안나는 퉁명이게 에리사의 잔을 치워냈다.

세 번이나 반복하니까 술도 익숙해진다.

레이디킬러인지 뭔지 이것도.


"여전히 애인 생각?"


"집에 갈 생각이요."


"오늘 하루는 어땠어? 하긴 평범한 하루랬지."


안나가 느끼기에 에리사가 엘사랑 다른점.

외형은 똑 닮고선 전혀 엘사 같지 않은건 이거였다.

지금 같은 비꼬는 식의 말투들.

거기에 왜인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여유로움.

엘사의 여유와는 달랐다.


엘사가 모든걸 깔끔하게 정리 해놓은 여유라고 한다면.

에리사는 완전히 어질러놓고 있는 여유라고 할까.

안나는 대꾸 대신으로 한숨쉬었다.


"기운이 없네? 진짜로 평범했던 하루였어?"


"모르겠어요. 그보다 왜 자꾸 반말하시는거죠?"


"앞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어. 안나가 나보다 어릴거 같으니까. 친근하기도 하잖아. 안그래 안나?"


안나는 말을 말기로 했다.

마음대로 하라지.

어차피 세상 모두가 맘대로니까.


"우선 한 입 마셔. 건배도 했잖아."


에리사는 잔을 내밀며 눈웃음쳤다.

그 떠밀림에 안나는 과감하게 넘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 받는 하루다.

본인 스스로에게 열 받는 날이지.

괴로운 알콜이 목구멍을 데우고 넘어간다.

금방 속까지 부글부글 덥혀놓자 안나는 크게 호흡을 뱉었다.


"잘하네. 어느새 술이 맛있지?"


"그러네요."


에리사는 기특하다는 눈치였다.

안나는 에리사가 추가 주문을 하는걸 말리지 않았다.


"자, 평범하지 않았던 오늘은 어땠을려나."


"엉망이에요."


"그래?"


안나는 울적해져서 두 손은 기도하듯 잔을 붙잡았다.

차가운 글라스에 감촉이 정신을 잡아준다.


"어떤게 그랬을까."


에리사는 애 다루는 말투였다.

안나의 옆머리도 베베 꼬으면서.

안나는 정말 어린애라도 되는 듯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팀장님이 갑자기 페어에 떠나서 대리를 하고 있어요. 근데 팀원들은 내 말은 전혀 듣지도 않아요. 당연히 그렇죠. 내가 뭐라고. 나는 그냥 회사 라인 잘 타기만 한 바보천치인데."


"듣지 않는다구? 왜 그렇게 느끼는거야."


"보면 알잖아요. 내 말에는 집중도 안하고. 나보다 경험도 잘났으니까 대놓고 무시하고! 내가 말하면 팔짱 끼고, 눈도 안 맞추고, 의자에 디비 누워서 얼른 나불대보라는 식이에요! 더 열받는건 진짜 제가 몰라요! 일도 모르고, 경험도 없고!"


"알았어, 알았어. 목소리 좀 낮추자. 여기 그런 바 아니거든?"


"그런 바 아니면 뭔데요!"


"글쎄...목소리 낮추라니까."


안나가 부릅 돌아서자 에리사도 불쑥 다가왔다.

손가락으로 베베 꼬아대며 장난치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에리사는 그 머리카락 끝을 잡아 올곧게 다시 폈다.

손을 세워서 빗처럼 슥슥.

서서히 올라가서 안나의 머리결을 따라 정리했다.


"여기는 시끄럽게 떠들고 울며 사연 나누는 곳이 아니잖아. 좀 더 야릇한 곳이지."


"하지마요."


"알았어."


에리사는 안나의 허벅지와 무릎 사이로 다리를 비볐다.

안나를 달래는척 움츠른 어깨도 쓰다듬었고.

대답은 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만지면 애인 생각해?"


".......하지마요. 두번째 말하는거니까."


"세번째는 어떨지 궁금해서 못 참겠는데."


"진짜...!"


"농담이야."


에리사는 단번에 돌변해서 안나에게서 떨어졌다.

방금까지 희롱하더니 아무 일도 없는듯 자기 잔을 비운다.


"애인과 관계는 어때? 엘사라는 사람. 잘 지내고 있어?"


"그 얘기는 하기 싫어요. 상관 할 것도 아닌거 같네요."


"왜 상관이 없어. 네 기분이 엉망이게 된 주 원인이 그 애인 탓인데."


"왜 엘사 탓이에요!"


"애인한테 충성도가 높네. 눈을 부릅 뜨고선."


에리사는 표정이 완숙했다.

눈썹이며, 입꼬리, 손 제스쳐며.

무엇보다 눈빛 하나로도.

안나는 자신있게 소리쳤다가 움츠렸다.

살며시 턱을 당기는 에리사를 더 마주볼 용기가 없다.


"이미 당할대로 당했구나."


"제가 뭘 당했다는거에요?"


"간단히 말하면 가스라이팅? 어머, 이게 더 어렵나? 말하자면 아주 잘 길들여졌다고."


"저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녀는 너를 뭐라고 생각할까?"


"자꾸 반문하지마요! 제가 묻는건데."


"엘사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동경하고 있지?"


"그...그게 왜요."


에리사는 다시 뱀처럼 머리부터 밀고 다가왔다.

아주 찬찬히 몸을 등받이에서 때고 유연한 동작으로.

너무 부드럽고 유연하게 흘러가서 뼈가 없다고 느껴진다.

에리사가 다가온 만큼 안나는 상체를 뒤로 뺐다.


"어떤 감정이야? 좋아서 죽을거 같아? 그 여자를 보면 꿀이 뚝뚝 떨어지고 온 세상이 행복해져? 아니면 보기만해도 무섭고 오싹해? 하지만 그렇게 되고는 싶겠지?"


질문이 너무 쏟아진다.

끝마디마다 치솟는 억양에 정신이 없다.

안나는 에리사의 한마디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그, 그게 뭐가 중요한데요!"


"이제 알았다. 애인은 아니네? 적어도 안나에게는."


안나는 식은땀이 났다.

왜 그런지.

안나는 마치 잘못을 꾸증 받는 학생 같았다.

잘못한게 없지만서도.

안나는 에리사의 동공에 비친 자기 모습까지 보였다.

너무 가깝고.

너무 소름끼친다.


"라인탄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 서로 맞는게 있었던거야. 너는 회사 내에서의 자부심을 얻었고. 그녀는 유흥거리를 얻었고."


안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재빨리 훔쳤다.

그것만으로 이미 시인한 것이지만.

목이 타는거 같아서 억지로 술을 밀어넣는다.

알콜기운이 목을 달래주긴 커녕 더 뜨겁게 달궈놓지만.


"천천히 마셔. 뭐라하는거 아니야."


"......."


"여기, 물 한 잔만요. 얼음 가득 채워서."


에리사의 요청에 바텐더는 냉수를 내려놓는다.

안나는 허겁지겁 그걸 다 마셨다.


"전부 알았어. 흐응, 그랬구나. 그런거였던거야."


"트, 틀려요! 우린 서로..."


"아니, 너희는 딱 비즈니스 관계야."


안나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완전히 함락됐다.

너무 놀래서 손에 든 물잔을 떨어뜨릴뻔했다.

아니, 손이 떨려서 어색하게 내려놓다 엎질렀다.


"그 비즈니스에 나도 끼고 싶은데."


에리사는 넘어진 물잔을 다시 세웠다.

테이블에 엎어진 얼음중 큰 조각도 하나, 하나.

다시 주워담고선 물기 묻은 손으로 안나의 뺨을 당겼다.


"허락해줄 수 있어?"


안나의 머리가 어지러웠다.

급하게 마시던 술탓을 하기는 염치 없지.

이건 취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아주 살짝 등을 떠미는 정도다.


"내가 옆에서 조언해줄게. 어떻게 하면 될지. 너를 무시하는 회사 사람들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네 자존감을 찾을지. 특히, 그 엘사라는 여자의 실체가 어떤지까지도. 그보다 이제 세번째 만지네?"


에리사는 어느새 지척에 있었다.

안나가 살짝만 고개를 틀면 입 맞출 수 있을까.

에리사의 손은 피아노 건반 누르듯 날 세웠다.

그 손가락들이 안나의 허벅지 위를 사뿐히 걸어간다.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안나를 감싼 모든 것들이 하나만 가리키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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