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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19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13 16:03:06
조회 649 추천 18 댓글 7



엘사는 항상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굳이 알람 소리 같은게 없어도 정해놓으면 그렇게 한다.

되려 더 일찍 일어나기도 한다.

일어나면 망설임 없이 욕실로 향해 20분까지 샤워.

깔끔한 상태로 머리를 말리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옷장을 열어보면 윗줄은 검은 정장, 아래는 하얀 셔츠들. 더 밑에는 한 벌인 정장 바지들.

전부 다 칼 같이 똑같은 각으로 개어져 걸려 있었다.


휴가 첫 날.

엘사는 어느때처럼 똑같이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 모든 군더더기 없는 일은 7시가 될 때면 완성된다.

드레스룸 반대편에는 손목 시계와 간단한 악세사리들.

시계를 차고 차키를 챙겼다.

말끔한 정장처럼 광이 나는 구두로 갈아신는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서 우뚝 멈췄다.


지금 나간다면 회사에서는 1시간 정도나 일찍 도착한다.

이게 정상적인 엘사의 삶의 일부였다.

그런데 휴가라고?

엘사는 현관 앞에 있는 전신 거울을 바라봤다.

흠 잡을 곳 없는 모습.

단 하나 흠이라면 오늘부터 쉬라는거다.


'흠.'


엘사는 조금 망설인걸 후회했다.

뭐하러 망설인담.

제일 싫어하는게 그런거면서.






안나는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번쩍 눈을 떴다.

처음 드는 생각은 왜이리 방이 어둡지 하는 의문.

반박자 늦게야 안나는 이제 다른날보다 빨리 일어나는걸 인지했다.

그럴려고 6시 무렵에 맞춰둔 알람이니까.

안나는 핸드폰 알람을 껐다.

하나의 알림을 지우자 5분간격으로 맞춰둔 연이은 알람 팝업이 올라온다.

부신 눈을 뜬채 안나는 바쁘게 검지손가락을 움직였다.

휙휙 쳐내며 취소시키는 알람들.

안나는 결국 7시를 마지노선으로 조금 더 자기로 했다.


아주 잠시간 잔거 같았다.

알람소리에 안나는 6시와 똑같이 핸드폰을 잡았다.

또 출근이라니.

안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더는 못 이기고 일어났다.


"일어나면 연락해~♡"


에리사에게 남겨져 있는 메시지를 읽었다.

안나는 빙그레 웃고는 반쯤 눈을 감은채 샤워를 했다.

정말 대충이지만 양심상 머리만 열심히 감았다.

수건으로 몸을 말리며 안나는 곧장 에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로 맞춰둔 핸드폰을 화장대에 올려두면서.


"늦었네. 역시 6시 정각 기상은 불가능했어."


"아니에요. 그때 일어나고 지금 출근중인거지."


"대중교통치고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어느새 자가용이라도 샀나봐. 내가 몰랐네."


"알겠어요. 지금 준비중이에요."


"매니저 됐다고 벌써 늘어지는게 뻔히 보이네."


"말이 매니저지 아직 바지 사장 느낌인걸요."


안나는 열심히 사자 갈기처럼 삐친 머리를 정리했다.

모발이 워낙에 억세서 빗질 한 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은 어떤 날이 될거 같아?"


"그런 질문이 세상에 어디있어요? 제가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느낌적으로 말해봐. 기분 좋은 아침도 있고, 최악인 아침도 있으니까. 어려우면 오늘은 1점부터 10점까지 몇 점이나 되는 아침인지."


"7점?"


"어째서?'


"질문이 진짜 왜 이래요? 억지 압박 면접이라도 보는 느낌이에요. 6점은 적은거 같고 8점은 많은거 같고요. 그래서 답장이 됐어요?"


"상쾌한 아침이네."


안나는 실 없는 대화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왜 웃어?"


"그냥 웃겨서요."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뭘 해도 좋은 법이지. 그렇게 좋니?"


"좋아하긴 해요. 7점 정도."


핸드폰 건너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에리사가 옆에 없어도 충분한 교감에 안나도 만족스러웠다.


"일단 끊어요. 이제 나가야하니까. 정식 매니저가 된 입장이라 빡세야해요."


"아무때나 연락해. 오늘도 퇴근하고 기다리니까. 퇴근 후에는 7점 이상으로 만족시켜줘."


안나는 부끄러워서 몸을 배배 꼬았다.

막상 몸을 마주하면 덜 부끄러운데 말로하면 부끄럽다니까.


"끊어요."





8시 20분 가량.

여러모로 안나의 계획보다 늦은 시간이다.

안나는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내일을 기약했다.

내일은 정말로 더 부지런해져야지.

오늘은 늦게 일어났고, 에리사랑 떠들고...

이미 회사 건물은 조금 분주한 느낌이었다.

부지런쟁이들은 나와 있는 시간대니까.

안나는 그들 중에 제일 부지런쟁이를 다짐한다.

그리고 자리에 오자마자 안나는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이제는 자신의 자리가 된 그곳에 엘사가 있었다.

안나가 오는걸 본 엘사는 안나의 컴퓨터에서 손을 뗐다.


"팀장님? 아, 아니죠. 이제는 CEO시죠...무슨 일로..."


"아직 정식 발령은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오늘부터 휴가라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휴가자가 출근해 있으니까 불편해?"


"흠, 아니요. 전혀요."


안나는 짐짓 당황한 기색을 서둘러 정비했다.

그리고 보란듯이 엘사가 서있는 책상에 가방을 내려놨다.


"열심히 하네. 예전보다 10분이나 일찍 나오고."


엘사는 선심쓰듯 조금 물러났다.

서둘러 자리를 차지한 안나는 켜져 있는 컴퓨터 화면부터 파악했다.

지금 당장 할려고 했던거지만 선수를 뺏기니 기분이 언짢았다.

엘사는 처음 느끼는 향수 냄새를 바로 알아챘다.

딱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어림 짐작한다.

그 베이지 정장 차림도 여전하니까.


"계속 감시하고 계실건가요."


"빨리 꺼지라는거야? 위에 치워지자마자 날이 섰어. 하긴 그런 야망이 있으니까 써먹을건 다 써먹었겠지만."


안나는 표정관리를 쉽게 하지 못했다.

스쳐갔지만 엘사는 분명히 알아차리고 웃었다.


"그런 뜻 아니에요. 다만 이제 제 자리가 여기일 뿐이라서요. 그리고 이제 너무 높은 분이 옆에 있으면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어제 정리를 다 못한거 같아서 인수인계 할게 뭐가 있을까 했을뿐이야. 일처리 괜찮게 하고 있네. 딱 그 정도로만."


"감사해요. 배운만큼 하는거죠."


엘사는 피식하고 비웃었다.

비웃음과 비꼼에 불편해 하는 안나를 충분히 음미했다.

이미 밑바닥까지 다 봤으면서 틱틱거리는게 귀엽게 느껴질 뿐이다.


"일처리 되는거랑 새매니저님 보니까 걱정 할 필요 없겠네. 정식으로 인사라도 할까? 특별한 팀을 인수 받아서 주목만한 분이니까."


안나는 슥 내밀어지는 엘사의 악수를 받을지 고민했다.

1초 남짓이지만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 고민을.

똑-딱 하고 시간이 다시 움직일 때 안나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새로운 CEO님."


안나는 엘사가 건넨 악수를 갖다 대기만하고 금방 뺐다.

마치 더 오래 잡고 있기가 불쾌하다는듯.

눈빛도 이전 같지는 않았다.

엘사는 여전한 안나의 모습에 구미가 당겨오는걸 느꼈다.

엘사를 흥분시키는 그 어떤 특별함을 말이다.

상상속에서 오만가지 능욕이 오갔다.

아주 순식간이지만.


허나 안나처럼 엘사도 싱겁게 끝내고 돌아섰다.

괜히 더 문제 일으킬 때는 아니겠지.

이 꼴로 출근한 모습을 사장님이 알면 잔소리가 늘어날거고.





엘사는 새롭게 마련된 자신의 집무실을 둘러봤다.

9평 정도로 깔끔한 가구 배치였다.

쓸데 없는게 없이 필요한 것들로만.


엘사는 아직 다 이전이 안된 집무실을 거닐다 자리에 앉았다.

충분하게 넓고 폭신한 안락 의자.

엘사는 그 자리에 앉아서 책상 반대의 유리창을 내려다봤다.

빌딩 아래의 전경과 도시.

대기업 총수 따위는 아니어도 느낌은 충분했다.


이제 하루종일 이곳에 있어야겠지.

답답하고 머저리 같은 일처리들을 지켜보면서.

엘사가 아는 사람중에 이 회사에 답답이들은 수도 없다.

또 말로 전하고 전하는 과정은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을 거다.

그나마 안나가 믿을만하겠군.

그러자 엘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나?


엘사는 여전히 안나는 손아귀에 있다 생각했다.

아침 인사가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특히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 억센 태도.

보란듯이 짓밟아 버리고 싶은 호승심을 자극시키는 모습.

안나가 꾸역꾸역 한 계단 올라갈 때, 엘사는 정상에 가볍게 올라왔다.

이제는 공공연한 사내의 최정상의 한 사람으로.

원래도 작았지만 이제는 정말 손위에 두고 굴릴 수 있지.


다만 불쾌한건 아직도 코끝에 밴 향수냄새.

그리고 그 짜증나는 새 정장.

엘사는 자신의 집무실에 어드민 직원들을 모두 모았다.


"필요한게 좀 있겠어요. 벽에 간단한 방음 시공 좀 해놔요. 복잡할 필요 없으니까 방음 패널 같은거면 충분해요. 너무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네. 그리고 카우치나 라운지 스타일의 의자도. 응접용으로 쓸거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아시죠? 가운데에 체스터 가운데는 앉았을 때 알맞은 높이의 유리 테이블, 좌우로. 휴게실처럼 커피 머신도 하나. 책장도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다용도로 쓸만하게 조금 모던한 디자인의 블랙톤. 커튼도 하나 달아요. 자동식에 암막이 확실히 되는 두꺼운걸로요. 휴가 끝나고 돌아오면 전부 완벽하게 되있어야 해요."


직원들은 엘사의 요구사항을 빠르게 메모해갔다.

간단한 메모와 질문 정도가 끝나고 엘사는 직원들을 돌려보냈다.


'역시 회사에 와야 할 일이 생겨.'


엘사는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환경이 엘사에게 영감을 쏟아내게 해준다.

잊고 있던 일들도 잘 떠오르게 된단 말이지.

다음 해야 할 일은.....


엘사는 '빌어먹을년'이라 저장된 번호를 켰다.

일전에 안나의 핸드폰에서 봤던 그 번호.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정작 그 당일은 신경쓰지 못해 잊고 있었지만.

엘사는 한 번 본것은 절대 잊지 않는 성격이었다.


통화 연결이 꽤 길었다.

엘사는 차분히 기다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모르는 번호라 망설이나?

망할년, 모르는 사람은 잘도 꼬여내는 주제.


"여보세요?"


"에리사 리글렛?"


"네, 제가 에리사인데요."


"날 알고 있지?"


"그쪽이 누구신데요?"


"안나의 전 애인."


"......"


"......"


두 사람 모두 고요한 침묵이었다.

아주 큰 긴장감이 감도는.

잠시 후 정적을 꺤 소리는 생각보다 밝은 목소리였다.


"좋아요.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요?"


"정해져 있을거잖아. 수작부리기 좋아하는 장소."


"훗, 그럴까요. 마침 저도 그 장소가 좋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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